< -- 139 회: 11> 진 엔딩. -- >
11> 진 엔딩.
어딘가의 픽션이나 CG작업이 된 영화를 보면 빛이 구체처럼 뭉쳐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건 그리 없을 것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꼬리에서 빛을 내는 벌레들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빛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백금의 바닥. 백금의 바닥 틈틈이 채워진 사금은 잡티하나 없다.
70m가 넘어가는 거상들이 좌우로 진열되어 있고 걸을 때마다 귓가에 엘펜리트(Elfen Lied)가 흐른다. 사람이 한 장소에 수백 명은 모여있지만 어디나 같은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공간이다.
백금의 바닥과 사금이 더해진 바닥을 소리 없이 밟다가, 이윽고 붉은 카펫을 오른다.
붉은 카펫에는 황금을 녹여 만든 실로 128개의 문장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움켜쥔 문장. 기염의 군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여섯 개의 눈동자. 천겁의 군주.
두 개의 파충류 손이 서로를 얽매는 문양. 공생의 군주.
대포 앞에서 지휘봉을 든 인간 형상의 데포르메. 포화의 군주.
큰 십자가와 네 방향에 작은 십자가가 새겨진 심벌. 전신앙의 군주.
샤를로테와 리퍼가 뒤에서 이시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무대의 주인은 이시현 본인.
희고 검은 색의 정장에 붉은 루비가 박힌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걷는 이시현은 문득 자신이 이곳에서 레드 카펫을 걷는 이유를 떠올렸다.
* * *
이시현이 의식에서 깨었을 때는 ‘걱정할 필요 없이’ 모든 상태가 회복되어 있었다. 외안도 아니었고, 팔이 잘려나가지도 않았다. 대신 눈은 오드아이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눈을 이식한 것일까. 이시현은 거울 속에서 비치는 자신의 검은색 눈동자와, 낯선 빛깔의 노란색 눈동자를 보며 이질감을 가졌다.
자신이 머무는 곳은 거대한 병원이었다.
어스 엠파이어의 병원은 아니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병동. 단 이곳의 주인인 여의사는 불의의 사고로 죽어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쪽에서는 분쟁이 일어나도 아래쪽은 무사하여 이시현은 정상을 찾을 수 있었다.
‘세이브 포인트’ 때문이었다.
흑공자와 정면대결을 해도 자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흑공자의 정면, 궁성에 들어오면 모든 능력을 상실하니까. 세이브 포인트를 잊어버렸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전력으로 싸워 승리할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몸 상태는 건강했다. 현대의 의료기술로 날아간 눈을 복구시키거나 잘려나간 팔을 자라나게 할 수는 없으니, 특별한 수단을 발휘했겠지.
약 이틀, 먹을 것 충분히 먹고 일어났을 때 강의곤이 자신을 불렀다.
이시현은 그의 연락을 듣고 짙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향했다.
강의곤은 아주 조금 변한 이시현의 외모보다는 느껴지는 기세에 조금 위축된 것으로 보였다.
싸움은 끝났다. 이시현의 그 말에 강의곤이 되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시현은 대답했다.
‘이 지구는 내 겁니다. 나의 것입니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국내에서 제일가는 병원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 이시현이 머무는 병동은 병원 관계자들의 방치 속에서 최신식의 기술을 이식받았고, 팔을 재생시키고 눈을 복원시켰다.
이제 이 지구는, 자신이 사는 세계는 이시현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축하하네.’
강의곤은 사위가 될 남자의 승리를 축하했다. 아직 이시현이 가질 많은 것들을 모르는 강의곤으로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그룹을 버리진 않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이시현은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앞날을 축복했다.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샤를로테와 리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 사이에 낀 어떤 여성이 보였다. 흑공자는 아니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죽은 상태니까. ‘어떤 의식’ 후에야 왕권을 이용해 흑공자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걸, 이시현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이해했다.
샤를로테와 리퍼에게 발을 묶인 여성은 이시현은 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물에 젖은 파래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늘어뜨린 매혹적인 인상의 미녀였다. 어지간한 일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지만 이시현은 미녀를 보며 소리 없이 경악했다. 샤를로테도, 리퍼도 장군이다. 얼마만큼 강한지는 이시현 본인이 더 잘 안다. 하지만 상대는, 저 검은 곱슬머리의 미녀는 뭔가 차원이 달랐다.
“누구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좀 잠겨서 이시현이 물었다.
“얄다바오트.”
반쯤 내리깐 눈으로 입 꼬리만 올려 미소 지으며 미녀는 대답했다.
“얄다바오트라고 합니다.”
“얄다……바오트?”
그노시스 주의의 파괴신? 이 세상의 신인 데미우르고스의 대극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종말에 빠트릴 존재. 이시현의 머릿속에 어떤 신화와 사상에서 등장하는 극악의 존재를 지칭하는 이름을 떠올린다. 저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무슨 창세신적인 존재를, 그런 존재를 장군으로 부린다고?
어스 엠파이어는 정말로……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송구하나마 진언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만물의 황제!”
보는 것만으로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숨 쉬기가 버거워질 것 같은 존재. 얄다바오트라 스스로를 밝힌 미녀는, 한때 측천이 그랬듯 어스 엠파이어 절대자 중 한 명의 장군이었다.
“무슨 일이지?”
“새로이 즉위하시게 된 군주님께 초대장을 배달할 수 있는 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새로운 군주의 즉위를 축하드리며 직접 알현하고, 덧붙여 다른 군주님들의 축하도 받을 수 있는 무도회를 주최하기로 하셨습니다.”
“……황제가?”
“황제폐하죠.”
얄다바오트가 가라앉은 눈으로 이시현을 응시했다.
온 몸이 내리 눌릴 것 같았다.
혼자서 백공자의 모든 세력을 거덜 낸 측천. 그 측천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것을, 얄다바오트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시현은 절절히 통감했다. 이건 도저히 같은 장군이 아니다. 리퍼와 샤를로테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시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현은 리퍼와 샤를로테가 일반 무장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얄다바오트. 이게 ‘황제’의 무장이라고 생각하면, 어스 엠파이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할 수 있다.
샤를로테와 리퍼가 얄다바오트의 앞에 섰다. 얄다바오트는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지만 이시현은 여전히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샤를로테와 리퍼의 뒤에는 얄다바오트가 있었다. 아니, 얄다바오트와 흡사한 외형을 가진 여성이 그녀들의 어깨를 슬쩍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방금 물에 적신 듯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창백한 미인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이시현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군주님. 저는 황제폐하의 장군인 데미우르고스라고 합니다.”
“데미우르고스……와 얄다바오트는 쌍둥이군.”
샤를로테와 리퍼의 뒤에 선 데미우르고스는 앞서의 얄다바오트와 거의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얄다바오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폐하께서 그것을 원하셨기에. 그럼 슬슬 가보는 게 어떨지요.”
“……황제님. 그래, 황제폐하께서 나를 염려해주신 거군.”
이시현의 존대를 듣고 얄다바오트는 이시현에게 향하던 시선을 살짝 내리 깔았다.
“염려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군요. 군주님은 훌륭하시니까요. 그저 아주 자그마한……아주 자그마한 성의표시입니다.”
얄다바오트는 백금 플레이트를 꺼냈다. 플레이트에는 미세하게 흠이 파여 있었다. 그것이 초대장이리라. 이시현은 그것을 받아들고 손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어스 엠파이어의 육신은 정밀한 감각으로 미세하게 파인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고맙군. 영광이라고 전해줬으면 좋겠어.”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이시현은 백금 플레이트로 된 초대장을 받고 하루 뒤 어스 엠파이어로 이동했다. 공간이동을 통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일흔두 명의 여성 메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행성 전체를 궁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곳은 어스 엠파이어의 수도다.
세 황제의 거처이기도 했다.
각지에 흩어진 군주들은 수도에 들어설 때를 대비해 궁전의 일부에 자신의 방을 만들었고, 이시현 또한 이곳이 자신의 방임을 깨달았다. 일흔두 명의 메이드는 이시현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이시현이 모르는 갖은 기술로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보이지 않는 기생충을 제거하고 잔털을 죄다 밀었다. 그 후 땀샘에 차 있는 노폐물을 치워내고 특수한 약제처리를 한 액체로 이시현의 전신을 문질러 땀을 흘리지 않고도 체온조절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노폐물은 더 이상 이시현의 피부 위에 기어 다니지 않는다. 머리칼 또한 한올한올 다듬어 빠지지 않고 구부러지지 않게 만들었고, 손톱과 발톱도 다듬었다. 약간 벨런스가 어긋난 신체를 안마로 완벽히 다듬고 체향을 이시현이 원하는 박하향으로 풍기게 만들었다.
완벽한 무균실에서 살다온 사람처럼 되어버린 이시현은 그 후 어쩐지 중세식의 복장을 갖춰입고, 탐닉의 군주를 상징하는 심벌이 새겨진 주먹만한 루비가 박힌 지팡이를 들었다. 탐닉의 군주를 상징하는 심벌은 여섯 개의 선이 서로를 얽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스 문자의 Ψ에서 중간의 직선을 빼고, 대신 U자 모양의 그것을 위아래로 대칭하여 놓은 글자. 즉 X 모양에 수평으로 선을 그은, ‘*’처럼 보였다.
표현으로는 육창(Six spear)이라고 하는데, 이시현은 육봉(六棒)이 아닐까 싶었다. 뭐 말장난을 하자면 육봉(肉峰)으로도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몸단장을 마친 이시현은 손목이며 발목, 귀에 주렁주렁 장신구를 매달고, 샤를로테와 리퍼의 시중을 받으며 레드 카펫을 걸었다.
수백 명의 군주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시현은 100m도 넘게 걸어서 레드 파켓의 끝자락에 위치한 제단을 바라보았다.
세 명의 남자가 이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두 개의 층으로 쌓인 제단, 그 제단의 가장자리에는 황제의 장군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이시현이 무릎을 꿇었다.
웅성대던 궁성의 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세 황제는 이시현이 생각한 그대로의 인간이었다.
이시현이 보는 쪽에서 왼쪽에 위치한 하늘의 황제는 백색의 머리칼을 야성적으로 늘어뜨린 사내였다.
하늘의 황제 진천.
마치 신의 조각처럼 보이는 완벽한 근육으로 짜인 상체를 알몸으로 드러내고, 바지는 품이 넓은 도복처럼 된 것으로 가린 채였다. 끝이 갈라진 눈썹. 눈썹 아래 용융중인 주괴의 열기를 품은 눈동자. 검은 옻칠이 되어있는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다른 쪽 다리를 늘어뜨린 채 흥미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간에 앉아있는 이는 이시현이 지나가다 한 번 본 이였다. 가볍게 말참견을 한 이시현에게 선물이라고 세이브 포인트를 선물한 과감한 자.
만물의 황제 진언.
여성처럼 곱상한 인상에, 검고 가는 머리칼을 한쪽으로 늘어뜨린 미남이었다. 패도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하늘의 황제와는 달리 다소 색이 엷어 보였지만, 그의 가는 몸을 완벽히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정장과 내려다보는 시선은 절대적이었다. 침도 함부로 삼키기 어려워 보일 것 같은 압박. 세 황제의 중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세상을 지배했을 황제만이 사용했을 것 같이 화려하고 용과 봉황과 기린과 드래곤, 그리폰 따위가 조각된 황금의 옥좌에, 그림과 같은 단정함으로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언의 황제에게서 오른쪽에는, 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인상을 지닌 미인이 앉아 있었다.
죽음의 황제 진명.
완벽한 침묵 속에서 혼자만 소리를 내고 있는,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회전하는 티타늄 의자에 그는 앉아있었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몸을 옛 드루이드의 후드 같은 것으로 휘감았다. 이시현의 눈은 그의 눈동자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깨닫고 소리 없이 경악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언가. 유일하게 상체를 기울여 턱을 괸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이는 없을 것 같았다.
“본디.”
만물의 황제가 말했다.
“탐닉의 군주, 탐닉은 더 이상의 탐닉은 없다 여겨 스스로의 지위를 반납했다. 본디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바에야 지위를 반납할 수 있는 이유 따위는 없다. 하지만 탐닉의 군주가 새로운 탐닉을 찾기 위해 현재의 지위가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가늘지만 힘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하여 그는 지위를 반납하고 탐닉의 후계자에게 그 지위를 대리하기로 하였다. 대리라는 말은 옳지 않다. 새로운 탐닉의 왕을, 탐닉의 지배자는 그의 방식에 의해 뽑혔다. 본디 위대한 제국,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이 아니었으나 계속되는 승리 속에서 어스 엠파이어의 당당한 주민이 되었다. 이시현. 너는 네가 쟁취한 이 자리를 가질 의향이 있나?”
“있습니다.”
“이 세상의 탐닉을 위해 인생을 소비하고 탐닉의 끝을 위해 매진하고, 탐닉을 어스 엠파이어에 전파할 자신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부터 탐닉의 군주가 되리라. 탐닉의 군주로서, 탐닉을 추종하는 이들의 왕이자 탐닉의 지배자로, 모든 미주를 맛보고, 모든 쾌락을 즐기고, 모든 타락을 축복하고, 탐닉한 것들을 가져라. 탐닉의 군주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린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이시현은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힘겹게 숨을 들이키고 이윽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탐닉의 군주가 아닐 때 가지지 못했던 세계를 가지고 싶습니다.”
“너의 세계를 제어 하에 둘 수 있게 하겠다.”
“왕권을 원합니다.”
“승부 속에 소비된 힘이 필요로 하다면 왕권을 하사하겠다.”
“강력한 권능을 원합니다.”
“네가 떠올리는 탐닉을 즐길 수 있는 권능이 따를 것이다.”
이시현은 고개를 툭 하고 떨어뜨리듯 숙였다.
“이제부터 탐닉의 군주는 클론을 만들 수 있고 죽음이 영면을 허락지 않을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신이라는 존재가 발휘할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을 선언한다. 새로운 탐닉이 완성되었다.”
황제가 선언했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군주들로 보이는 존재들이, 그 혈족들이, 그리고 수많은 메이드와 단 위에 눈을 감고 서 있던 황제의 장군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시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을 때, 이시현은 자신의 거처, 카두케우스 스쿨의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이시현이 좌우를 바라보았다.
리퍼와 측천이 두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앉아, 모은 양손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린 채였다. 모은 손 사이에는 왕권이 빛나고 있었다. 두 개의 왕권. 그녀들을 선두로 회장실에 이시현의 여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당황했지만 역시 무릎은 꿇었다.
“흠.”
이시현은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흐.”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흐흐흐흐흐.”
새어나온 웃음은 곧 광소가 되었다.
“으흐흐흐흐흐. 으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웃음의 의미는,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시현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큼성큼 걸어서 창가로 향했다. 카두케우스 스쿨의 창에서 내려다보는 세계.
그 세계를 향해 양손을 펼치며 이시현이 선언했다.
“나에게 복종하라!”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순.
아니면 꽤 오랫동안.
21세기의 지구, 그 일정한 시간대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한 곳을 응시했다. 지표면 위에, 혹은 그 아래, 그 위쪽 우주로 나아간 모든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시현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들의 눈에 각인되는 육창.
시간은 짧았다.
겨우 1초, 혹은 2초.
그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이시현의 선언은 먹혔다.
그는 세계를 가졌다.
황제가 선언한 대로 그가 즐길 수 없었던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세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절대군주의 등장이었다.
============================ 작품 후기 ============================
끝입니다.
더 끌어갈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리메이크는 1부로 끝입니다.
나세지(오리지널)의 연재중단 때문에 다른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또한 연재완결도 아니고 중단에 기다려주신 많은 분들께 누를 끼친 것 같아 나름의 정리를 위해 일단은 완결을 구상하여 리메이크를 작성했습니다.
거친 시련을 통해서 마침내 절대자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이제는 목숨에 위협을 느낄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탐닉하며 살아가고, 그 탐닉과 맞서는 여러 적들이 등장하는 것이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지금은 생략해두겠습니다.
우선 깔끔살끔 완결을 목표로 하고, 이후 이 사이트를 통해 다른 작품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많이 부족한 작품이자 옛날에 한 번 봤던 작품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다들 감사합니다.
덧붙여 외계인과 게임하자, 그리고 얼마 뒤 선보이게 될 어스 엠파이어 연작에도 관심 기울여주세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