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8 회: 10> 게임의 끝. -- >
흑공자는 속절없이 세 번의 공격을 후려 맞았다. 말 그대로 허공을 나는 것 같다. 하지만 흑공자는 어스 엠파이어의 사람이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이것으로 끝장났을 상황에서도, 그의 뇌는 ‘그가 의도한 사항’을 신호로 남긴다. 내장끄집게가 그의 미세한 손놀림을 따라 움직인다.
-휘우우우웅!
이시현은 순식간에 한쪽 시야가 안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쥐어터진다고……기능을 다 잃을 줄……아냐……!”
상대는 앞에 있다. 하지만 일부가 보이지 않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시현이 잠시 당황했다. 보이지 않는 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소리로 알았다. 공격을 받은 건 확실하다. 힘껏 고개를 젖혀 피했다. 그리고 스텝을 밟아 움직였다.
보이는 시야는 방금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다.
“뭣?”
보이는 시야에서, 내장 끄집게에 매달린 조각을 본다.
눈.
사람의 눈이다.
이시현은 본능적으로, 아니, 보이지 않는 시야와 슬슬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눈 앞의 사실을 이해했다.
눈알이 뽑혔다. 한쪽 얼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만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내장끄집게에 의해 눈알이 뽑혔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그 눈알을 뽑하 입으로 넘겨 삼키고, 으득, 하고 깨무는 흑공자를 보며…….
“이……개새끼가……!”
“사람 눈에 DHA가 많다는 건 알고 있어? 모르겠지. 사실이 아니니까. 카득. 크 히, 크히하하하하하하하!”
흑공자가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입에서 게워내는 피는 그 자신의 것일 터.
“왜 둔기가 병신 같은 무기인 줄 알았겠지! 크히히히히히히!”
둔기의 유용성을 설명하자마자 한쪽 시야를 빼앗아갔다. 이시현은 머리 끝까지 피어오르는 살의에 상실의 두려움에 앞서 끝없는 분노에 사로 잡혔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건 이런 미친 싸움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지 않을까.
흑공자는 죽어가고 있다.
분명히 이시현의 주먹은 통했다.
웃으면서도 포해내는 피의 양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이시현 또한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이제 감당하기 어렵다. 손을 들어 얼굴을 한 번 훑어볼 것을 그랬다. 죽음의 시간이 임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눈알이 뽑혀나갈 정도면 얼굴은 얼마나 밭고랑이 파였을까.
흘러내리는 무언가를 느끼지 않으려 애쓰며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며 이시현이 한 걸음 걸었다.
스응, 소리가 보이지 않는 쪽의 귓가에 울렸다.
“뭐 이 병신아! 주먹이 최고거든!”
무언가가 떨어져나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흑공자가 몸을 쓰레기처럼 구기고 있다. 타격은 받고 있다. 보이는 눈의 시야에 본인의 주먹이 보인다. 그의 복부를 찢을 것처럼 후려치고, 반대편 손으로는 흑공자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하지만 흑공자는 입으로, 코로, 눈으로, 귀로 피를 토하면서도 머리가 으깨지거나 젖히지 않는다.
그제야 이해했다.
아, 한쪽 팔이, 보이지 않는 안구 쪽의 어깨가 찢겨 나갔구나.
“고마워. 시발, 5kg은 가벼워진 것 같거든!”
무언가를 붙잡고 흔드는, 가르는 소리도 아니고 휘두르는 쇳소리뿐이었는데 몸의 일부가 날아간다. 이시현은 물러나려던 것을 멈췄다. 흑공자가 든 내장 끄집게가 눈앞에 비친다. 그 또한 휘두르지 않는다. 이시현이 싸움의 ‘룰’을 어기고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고 숨고르기 없이 그대로 달라붙은 탓이다.
흑공자 또한 내장끄집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범위로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장끄집게를 뾰족하게 세우고, 이시현의 얼굴을 긁을 것처럼 찌른다.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슬로우모션.
옛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때를 떠올린다.
한쪽 다리의 뼈가 부러졌을 때, 정상적으로 걷고 싶어도 자세가 무너졌었다.
한 명의 여자를 구하려 양아치들과 맞선 후 뼈가 부러지고 치료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치욕과 빌어먹을 움직임을 생각한다.
한순간에 움푹, 하고 자세가 무너진다. 이시현의 얼굴 쪽으로 향하던 내장 끄집게가, 이시현의 귀만 찢어가고 허공으로 피화살을 그린다. 순간적으로 다리뼈가 박살난 사람이 움직이듯 움푹, 자세를 낮춘 이시현은 어깨가 사라진 몸으로 흑공자를 밀쳐낸다.
흑공자가 떠밀려 넘어진다.
보이는 시야에, 흑공자가 멀어져간다. 귀를 뜯어낸 내장 끄집게가 방향성을 잃고 이시현이 있는 곳과 거리가 먼 곳으로 튕겨 날아간다.
흑공자가 히죽 하고 웃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죽 하고 자신 또한 웃은 것 같다.
어쩐지 이가 시리다. 아니, 잇몸이 시리다고 해도 좋을까. 거울 보면 난리 나겠지. 눈알이 뽑힌 부분의 얼굴은 입술도 날아간 것 같다.
“이거 엄청 아플 거거든.”
이시현이 주먹을 쥐었다.
제대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러니까 뒈지지 말라고.”
흑공자의 머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 죽일 주먹 휘두르지 말라고. 등신아.”
이시현은 주먹에 힘을 잠깐 뺄까, 하는 헛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현실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주먹의 궤도에 있는 남자의 웃음을 보고서였다.
흑공자는 자신의 죽음이 명백한 상황 앞에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승리를 축하한다. 탐닉.”
흑공자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틀어박힌 이시현의 손에서 수십 개의 뼈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주먹에 정확히 얻어맞은 사람의 머리가 몸통과 함께 저 멀리 뻗어나가 데구르르 굴렀다.
달캉.
까앙.
그르르릉.
내장 끄집게가 반쯤 부서진 대리석 바닥의, 그 중에서 무사한 곳의 먼지를 훑으며 회전한다.
“가…….”
핏물이 범람한다.
승리를 만끽하기도 전에 온 몸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야 이 개새끼, 이러다 더블 KO나오는 거 아닌가. 누가 좀 살려줬으면 좋겠…….
한 순간 의식이 멀어졌다 다시 생겨난다.
세이브 포인트.
제국 어스 엠파이어를 들렀을 때 어떤 남자로부터 얻었던 생명보존의 능력을 부여하는 힘은 죽어가는 이시현의 몸을 복원한다. 복원하는 중심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즐거웠나? 유쾌하냐? 미칠 것 같냐?”
흐릿해진 한쪽 눈으로 보이는 건 한 사람의 얼굴.
두 무릎을 꿇고 상체를 젖힌 채, 고개를 들어올리고, 피와 고름과 그 외의 체액으로 범람한 시선 앞에, 그런 이시현을 내려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
“탐닉했나?”
“그…….”
“그? 그이? 그녀? 그곳?”
“그걸 말이라고……하냐……!”
“하. 그래? 물어본 게 우스웠지? 매우 즐겁겠지. 기뻐 죽겠지? 죽음의 감각마저도 행복하게 느껴지지? 아, 물론 지금 당장 죽어가니까 하나도 안 기쁘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이 기쁘다고 느끼고 있을 거야. 아, 그냥 대강 그런 걸로 하자고. 후계쟁패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줄은 몰랐거든.”
이시현의 손이 남자의 손에 의해 들린다.
붉은색의 정장에 푸른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넘기고 오드아이가 돋보이는 남자. 탐닉을 의미하는 육창(六娼)의 귀걸이를 양쪽에 매달고 있는 남자였다.
그의 주변에, 정확히는 이시현과 그의 주변에 이시현이 잘 아는 여성들이 무릎 꿇고 있었다. 리퍼와 측천 같은 제국 장군에서부터 남민아나 여야당의 대표들까지, 제국을 모르는 이들조차였다.
젊은 사내, 오드아이 청년의 등 뒤에는 황금색 깃털을 가진 닭 머리 인형 모자를 쓰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가 싱긋 웃으며 오드아이 청년과 피투성이가 된 이시현을 응시했다.
“탐닉?”
“그래. 내가 바로 탐닉이다.”
“……댁의 자식들과 후계자가 선택되지 않아 슬프겠군. 나 같은 쓰레기가 당신의 자리를 계승하게 되다니.”
오드아이 청년은 쿡쿡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내 자식이다. 몰랐겠지만. 이 모든 것은 숙명이었지.”
“뭐?”
“나는 나의 호군을 통해서 아이를 보았지. 그리고 그 아이를 이 행성에 내던지고 떠났다. 남자가 태어났는데 흥미가 없었거든. 그래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흑백대전이 이 행성에서 벌어지지 뭔가. 흑백만으로는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여 회색분자를 하나 고용하려고 리퍼를 보냈더니……하하하. 이럴수가. 나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자식을 리퍼가 선택했고 회색분자로 만들었지.”
“……뭐라고?”
이시현은 고아로 태어난 자신의 부모님이 눈 앞의 오드아이 청년, 즉 탐닉의 군주와 그의 호군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진정한 나의 자식이자 후계자는 너였다는 말이지. 너는 내가 잊고 있던 삶을 이어갔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으며, 모든 절망을 끌어안고 죽음을 결심했을 때 비로서 탐닉할 수 있는 삶을 얻었지. 너는 나의 자식이다. 그리고 나의 대자이며 나의 자리를 이어갈 진정한 탐닉이지.”
이시현은 혈통과 부모님을 뒤늦게 알았다. 실로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시현의 몸이 얼추 복구되자 오드아이 청년은 그의 손목을 붙잡고 힘껏 들어올렸다.
“후계쟁패 승리자. 킬 더 킹 최후의 승자! 이시현 승리!”
이시현의 시야가 흐려진다.
“그는 이제 어스 엠파이어의 탐닉을 지배할 자이며 모든 쾌락의 끝에서 몸서리치며, 자신의 탐닉을 위해 세상 모든 것을 희생할 이이며, 탐닉을 위해 세계 자체를 지배할 폭군이라!”
오드아이 청년.
삼태극전쟁의 승리자이자 현 탐닉의 군주가 소리 높여 외쳤다.
“나의 후계, 나의 대리자! 나의 자식! 이시현의 승리를 나 탐닉의 군주가 선언한다!”
<킬 더 킹의 승자께>
마지막 퀘스트입니다.
킬 더 킹의 승리자, 탐닉의 끝에서 웃고 있나요?
웃어도 됩니다. 승자는 웃는 것이 당연합니다.
울어도 됩니다. 승자는 울어도 아름답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 탐닉의 군주 위.
추가로 가질 수 있는 것들.
왕권 수여.
죽은 이 부활.
소원.
한 개의 문명세력 지배권.
어스 엠파이어의 지배자가 된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 작품 후기 ============================
엘리자벳이 리퍼가 있다고 구라를 쳤던 이유: 아그리피나가 있는 줄 아는 적에게 리퍼가 있다고 하면 혼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이게 실책이었다.
덧. 딸기, 쪼꼬, 오렌지 주스라는 말 듣고 웃었음. 아는 사람은 알지요.
측천이 좀 다른 성향이 되었지만 살아났습니다. 덧붙여 층마다 전투를 벌이던 이들은 흑공자 죽자 다 자살, 혹은 사망.
덧둘. 강주희의 장군 인상이 좀 흐리긴 한데 이건 작품 시작하기 전에 의도한 장군명이라...
덧셋. 선추코!
내일 에필로그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