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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36화 (136/141)

< -- 136 회: 10> 게임의 끝. -- >

베르테는 네 번째 총알을 막아내다 창대가 부러지는 것을 본 직후 뛰어들었다. 그리고 펜테실레이아를 공격했다. 베르테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 돌린 베르테의 시선을 느낀 샤를로테가 외쳤다.

“귀를 막아! !”

그리고 남자살해의 언령. 베르테는 양쪽 귀를 막았다. 창대를 튕겨내 샤를로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는 펜테실레이아가 낭패어린 신음을 냈다. 흑공자는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싶더니 바닥을 세게 발로 밟았다.

“닥치거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흑공자의 힘은 장군에 필적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무장의 수준도 안 된다. 하지만 흑공자가 발로 바닥을 찧은 후 외친 소리에, 죽음의 언령이 깨졌다. 샤를로테의 눈이 커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펜테실레이아가 부러진 창대로 베르테를 후려쳤다. 베르테는 귀를 막던 손을 빼내 창대를 붙잡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시현은 흑공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흑공자가 눈가를 덮은 흑발을 쓸어 넘기고는 서늘하게 웃었다.

“훗. 내가 좀 잘났지?”

이시현이 대답했다. 입을 열어서는 아니고, 손을 내밀어서. 흑공자가 공간이동을 하기 전에 CCTV 앞에서 했던 손 모양으로 이뤄진 욕설이었다.

“크크크. 그보다 비장의 패가 이 모양이어서야. 지금까지 내 수족을 제거한 보람이 없군.”

흑공자의 비아냥을 한 귀로 흘려 넘기며 이시현은 생각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하여 죽음의 언령을 없앤 것일지는 모른다. 그의 권능 같은 것일까? 권능은 보기 전에는, 듣기 전에는,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죽음을 무시하는 권능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까 있었던 펜테실레이아의 대응이 이상하다. 베르테가 힘겨루기를 하다가 총을 뽑았다. 조금 밀리는 기색이었지만 총을 뽑기 위해서 일부러 틈을 낸 것이다.

베르테는 펜테실레이아의 머리를 향해 총을 쐈다. 창대를 서로가 붙잡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상태. 입고 있는 방어구는 거의 없고, 특히나 머리에는 나이트캡을 쓴 게 전부. 펜테실레이아의 머리를 꿰뚫을 탄환은 그대로 그녀의 숨통을 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탄환은 펜테실레이아의 이마 한복판을 때리고, 그대로 반사되었다. 반사된 총알은 베르테가 들고 있던 총의 총구로 빨려 들어가 권총을 파괴했다.

“아 씁.”

아연한 표정의 베르테를 보고 펜테실레이아가 잇소리를 냈다.

“들켰잖아.”

여태껏 별다른 감정 없던 그녀의 얼굴이 찌푸러졌다. 이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들켰다고?

뭐가 들켰다는 거지? 정체?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건가? 펜테실레이아. 아킬레우스에게 심장이 꿰뚫려 죽은 아마존의 여왕. 그녀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그녀의 속도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던가. 그녀가 굳이 방어를 하려고 들었던 이유.

“설마?”

펜테실레이아가 피식 웃었다. 샤를로테가 무언가를 깨닫고 손을 치켜드는 시늉을 했다. 바람이 불었다. 펜테실레이아는 창대가 없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람을 맞았다. 사람의 몸도 날려버릴 수 있는 강풍에 펜테실레이아가 쓰고 있던 나이트캡이 벗겨졌다. 나이트캡이 벗겨지는 것과 동시에 금색의 머리칼이 짧아지고, 이내 그녀의 체형도 바뀌었다.

건강한 갈색피부였던 그녀의 모습이 백인의 것처럼 바뀌고, 머리칼 또한 부드럽게 흩날렸다. 헐벗은 몸 대신 은의 갑옷을 걸친, 서양의 기사처럼 보이는 자.

“아킬레우스였다고?”

펜테실레이아, 아니 이제는 아킬레우스가 실소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아킬레우스. 뭐 같은 여자지만 인상이 좀 다르지?”

신화에서나 다른 곳에서는 남자거나 괴물일지라도 무장, 혹은 장군이 되면 성별은 죄다 여자가 된다. 남자가 이용해먹기 좋은 신체를 지녀야 하니까. 그런 이유로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의 이름이지만 성별은 여성인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이시현은 흑공자를 바라보았다. 흑공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비장의 패였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만. 깜짝 상자 같은 거지.”

흑공자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적이 속은 것이 조금은 기뻤는지 어깨를 떨었다. 개새끼. 이시현은 속으로 욕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속인 거지?”

“음? 속인다고? 아, 펜테실레이아로 속인거 말이냐. 그야…….”

흑공자가 간단하다는 듯 대꾸했다.

“아킬레우스는 원전에서도 소녀처럼 꾸미고 다녔지. 영광의 끝에서 죽을 거라는 예언을 받고, 전쟁 중 죽을 거라고 그의 어머니는 믿었으니까. 그래서 공주들 사이에서 여자처럼 꾸미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 그래서 아버지는 아킬레우스를 찾아내려고 인형들 사이에 칼을 놔뒀더니 유일하게 혼자 아킬레우스가 그걸 대뜸 집다가 전쟁터에 끌려갔고.”

“결국 아킬레우스는 여자처럼 예쁘장했다는 거군.”

“뭐, 그것 뿐만 아니지. 펜테실레이아를 죽인 후 아킬레우스는 그 시체의 목이라도 잘라 위업을 자랑하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가슴이 꿰뚫린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주으러 갔더니 어이쿠, 번쩍번쩍하는 미녀가. 그 얼굴이 꽤 마음에 들었다더군. 시체애호가 같지?”

“펜테실레이아로 변장할 수 있다는 말을 길게도 하는군. 이해했어. 하지만 아킬레우스라는 건…….”

이시현이 반문했다.

“그렇게 약점이 명확한 걸 왜 만든 거지?”

아킬레우스는 불사신이다. 하지만 그런 불사신들이 대개 그렇듯 치명적인 약점이나 생각지도 못한 약점이 존재한다. 아킬레우스 뿐만 아니라 요가를 통해 경지에 올라 브라흐마에게 소원을 빈 아수라 등도 대개 약점이 없을 것 같은데 약점이 찔려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킬레우스 또한 약점, 그 유명한 아킬레스 건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치명적인 곳을 맞아 죽었다.

이시현의 의문은 당연했다.

흑공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야 그 약점만 노릴 테니까.”

그러고선 제 말이 웃긴지 피식피식 웃었다.

“네깟 놈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뻔하지. 뭐 믿고 있는 건 이 년 뿐만은 아니다만. 아무튼 잘 싸워보도록.”

“너는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고?”

이시현은 총을 꺼냈다. 흑공자를 향해 조준하자 아킬레우스가 슥 움직여 총의 사선을 가렸다. 흑공자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기 스스로가 무기가 되어서 움직이는 꼴이 얼마나 한심한 줄 알면 그냥 닥치고 앉아있지? 반사된 총알에 맞아 죽지 말고.”

이시현은 총을 내던졌다. 권총의 총알 정도는 손가락으로 튕겨낼 수도 있는 게 장군이라는 존재다. 게다가 펜테실레이아라는, 꽤 위명이 떨어지는 장군에서 아킬레우스라는 유명한 장군으로 변화했다. 이시현은 값비싼 의자에 앉았다.

아킬레우스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칼이 나왔다. 다른 무장들이 그러하듯 주변의 공간에 무기를 숨겨두고 자유자재로 꺼낼 수 있는 것이다. 칼과 방패를 찬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뚫을 수 없는 벽이었다. 베르테는 한숨을 쉬었고 샤를로테는 손톱을 깨물었다.

베르테가 움직였다. 근접거리로 접근하는 것과 동시에 아킬레우스가 검을 후려쳤다. 베르테의 목이 대번에 잘렸다. 금색의 검이 만들어낸 궤적은 말 그대로 섬광 같았다. 베르테의 목이 툭 떨어졌다. 하지만 베르테의 몸은 여전히 움직였다. 금색의 검이 심장을 꿰고, 다시 치켜올라가 쇄골을 자르고 몸을 두동강냈다. 그럼에도 베르테는 움직였다.

샤를로테가 주문을 외웠다.

“밑천이 다 드러나게 하다니. 짜증나. 죽어!”

베르테. 샤를로테가 소환할 수 있는 장군급 부하. 자살 이외에는 죽지 않는 불사신. 육체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고 무기도 한정되어 있지만 샤를로테의 명령에 따라 방어도 하고 묶을 수도 있다. 샤를로테가 외쳤다.

“슬픔! 우울! 조울! 침울!”

감정을 조절하는 마법. 감정의 격류를 통해 사람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 샤를로테는 영웅조차 아닌 픽션의 존재에 불과하지만 장군으로 만들어지면 충분히 납득가는 특기와 강력한 힘을 소유한다.

물리력으로는 무적에 가까운 아킬레우스지만 정신을 강타하는 마법에는 면역이 없다. 장군 특유의 내성은 존재하지만 같은 장군의 힘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아킬레우스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공황이 일어난다. 갈라진 몸이 붙어 회복되고 잘린 목을 붙인 베르테가 아킬레우스를 붙잡아 내던진다. 그리고 총을 꺼내려다 부서진 총을 보고 우울해져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도 우울해지면 안 되지!”

샤를로테의 말에 베르테가 울적한 기분을 버리고 품을 뒤져 비수를 꺼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발꿈치를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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