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5 회: 10> 게임의 끝. -- >
샤를로테.
사람의 이름이지만 어떤 작품에 등장한 이후, 그 이름은 비극을 만들어내는 주연이자 절대로 꺾을 수 없는 꽃이 되었다.
젊은 베르테의 슬픔.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이기도 했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소설이다. 자신의 실연과 친구의 자살을 소재로 하여 쓴 작품으로 여러모로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서간체소설이라는 특징이 있고, 젊은 세대의 자살, 베르테의 효과라는 표현도 만들어낸 명작으로 나폴레옹조차도 진중에서 들고 다니며 열 번 이상 읽었다는 그런 내용이다.
베르테의 사랑을 받지만 끝내 거부하는 여성, 로테. 그리고 괴테의 사랑을 거절한 샤를로테 부프.
그녀가 선언하는 외침을 남자는 거역할 수 없다.
사랑이 거부당했지만, 그 사랑 대신 따뜻한 보살핌으로 이끌었고, 그로 인해 고독했던 이의 자살. 스스로를 총살로 이끌었던 젊은 베르테의 죽음은 샤를로테의 가장 주요한 코드다.
샤를로테는 역사상 영웅이 아니다.
신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에서 등장하는 이를 필요로 한 어스 엠파이어의 군주들에 의해, 현실과 가공의 인물은 서로가 서로를 닮은 채 현실의 무장 및 장군으로 등장한다.
샤를로테의 특기.
.
달리 젊은 베르테의 슬픔.
그녀의 선언을 들은 남성은 즉각 가장 유용한 도구를 이용하여 자살한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특기는 아니다. 하지만 남자를 적으로 만났을 때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강주희, 그녀는 왕권에 의해 장군이 되었다. 하지만 왕권으로 인해 장군이 되던 중 그녀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고 스스로 육박전을 벌이는 유형은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장군이 되는 것은 확실. 하지만 그 장군이 전투와 관련된 유형은 아니다.
이시현은 그녀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이해했다.
그녀는 이를테면 커맨더다. 태어날 때부터 주변 환경이 좋았고, 무엇하나 걱정 없이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그녀의 이해를 넘어선 자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확실해지기 이전에 몸과 마음이 이시현에게 복속되었다. 이시현을 위해서 그녀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가 된 것이다.
머리칼의 색깔과 곱슬거리는 정도가, 신장과 체형이, 피부의 색깔조차 바뀌었다. 하지만 그 거만하고 도도한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장군답게 굉장히 밝아진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강주희를 아는 이들은 그녀를 다른 이로 착각할 수 없었다.
강주희, 아니 이제 샤를로테가 된 그녀의 선언에 흑공자는 한 걸음 물러섰다.
어스 엠파이어에 장군은 많다. 외모로 판별하기 쉬운 이들도 있지만 그 외에도 풍기는 이미지나, 어스 엠파이어의 남성으로서 알아챌 수 있는 요소도 많았다. 문학에는 관심없는 이시현이 강주희의 변화를 본 순간 그 이름을 알아차릴 수 있던 것처럼, 그녀와 몇 마디 말을 섞어본 것만으로 알 수 있었던 흑공자처럼.
샤를로테의 선언과 그 효과를 흑공자는 어렴풋이 이해했다.
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죽음의 언령.
그 언령을 나이트캡을 쓴 여성이 창을 들어 막아냈다. 정확히는 창의 몸통이 완만하게 구부러져 있고, 거기에 끼워진 활줄을 튕겨서 음파를 차단시킨 것이다. 샤를로테의 우아한 얼굴에 짜증스런 기색이 얼핏 서렸다.
나이트캡을 쓴 여성은 무표정했다. 헐벗은 몸으로 창대를 한 손으로 잡고 줄을 반대편 손으로 잡고 슬쩍 잡아당긴 채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음파를 정확한 상황에 맞춰 울려 퍼지게 하여 죽음의 언령을 들리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너 짜증나네.”
샤를로테가 갈색 머리를 우아하게 쓸어 넘기더니 휙 하고 치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이트캡을 쓴 여성이 창을 바닥에 꽂았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을 부수고 창대를 한 뼘 박아 넣더니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일어나는 선풍. 몸을 날려 버릴 만큼 강대한 바람을 버텼다. 나이트캡을 쓴 여성은 그렇게 버티고 서서는 샤를로테를 무심하게 응시했다.
“그렇게 버티기만 해서 어디 살아남겠어? 응?”
샤를로테가 비아냥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이트캡을 쓴 여성은 말없이 공격을 방어했다. 방어자세를 취하고 흑공자를 막아서려 했다. 흑공자는 여유만만한 기색이었다. 샤를로테의 뒤에 서 있던 회색분자, 이시현은 흑공자의 여유가 못마땅했다. 저 녀석 지금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뭐지? 나이트캡을 쓴 여성의 이름이 펜테실레이아라는 건 손적이 알아내어 이시현에게 전한 바였다.
손적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조금 늦었다.
이시현은 그리스 신화 같은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고, 호메로스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어쩐지 상대를 보면 그녀가 아마존, 복수형 아마조네스의 여왕인 펜테실레이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펜테실레이아의 특징도.
펜테실레이아는 딱히 대단한 영웅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중 하나인 아킬레우스와 맞붙었다가 패배한 이니까. 군신 아레스의 딸 중 하나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은혜를 입어 트로이 전쟁에서 아마조네스를 이끌고 트로이의 편에 섰다. 그리고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죽었다. 훗날 ‘아킬레스 건’이라 이름 붙는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를 제외하고, 온 몸이 불사인 아킬레우스와 맞붙었을 정도면 그 힘은 쉽게 알 수 있다. 강할 것이다. 하지만 신화적이지는 않다.
예언에 일컫길 반드시 아버지보다 뛰어난 아이를 낳을 것이라 공언되었기에,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신들의 음모에 의해 일부러 인간 남성과 맺어진다. 그리고 낳은 아이가 아킬레우스. 태어나서 황천의 강물, 스틱스에 몸을 씻어 어머니 테티스가 붙잡은 발꿈치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불사가 되었다. 여러 가지 기행도 벌이고 영웅적인 업적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준족으로 소문났던 그는 여러 영웅을 쓰러뜨리고 그 또한 전장에서 사망했다.
펜테실레이아는 결국 아킬레우스가 쓰러뜨린 여러 영웅 중 하나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 그랬을 터인데.
딱히 ‘장군’으로 취급하기엔 약해보이는 패가 분명하다.
‘그런데…….’
방어하기엔 쓸 만하다 이건가? 이시현은 거듭해서 방어만을 고집하는 펜테실레이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샤를로테는 거듭 비난했다. 비아냥대고 멸시했다. 하지만 펜테실레이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방어에 치중했다.
방어만 하는 펜테실레이아를, 샤를로테는 뚫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공격을 하고, 그것을 수월하게 막는 것을 보더니 그녀는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걸 인지했다. 샤를로테는 긴 한숨을 내쉬고 소리 높여 주문을 외웠다. 충분히 반격에 대한 준비는 갖춰두고서.
“어쩌면 나도 당신을 사랑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사랑을 전하기 전 당신은 바위가 되고 말았어요.”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는 듯한 주문.
그 주문이 완성되는 것을, 펜테실레이아는 지켜보지 않았다.
마침내 전면적인 공세에 나서려고 하는 것일까. 바닥에 꽂아둔 창대를 빼내고 그것을 겨냥한다. 샤를로테는 쏠 테면 쏴보라는 듯이 펜테실레이아를 노려보고서 주문을 외웠다.
“소망대로 월계수 아래서 횡색 조끼와, 푸른 연미복과, 장화를 신은 모습으로 매장되었어요.”
펜테실레이아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창을 던졌다. 샤를로테가 휙 하고 피했다. 창은 기이하게 꺾이더니 샤를로테의 심장을 꿰뚫었다.
창이 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심장을 꿰었다. 이건 뭐지? 이시현의 눈이 커졌다. 샤를로테는 심장이 꿰뚫려 몸이 천장을 향해 튕겨 올라가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주문은 끊이지 않았다. 여전히 선언한다.
“베르테……. 여기에.”
심장이 꿰뚫려도 살아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힘껏 뻗은 창은 그녀의 심장을 꿰지 못했다. 붉은 드레스 너머, 젖가슴을 뚫고 심장을 꿰려고 했을 때, 창대는 더 이상 심장을 꿰지 못하고 멈춘 것이다. 대신 창대에는 몇 방울의 피와, 심장에서부터 자라난 장미 줄기가 얽혀있었다. 펜테실레이아가 탕,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펜테실레이아는 한 손으로는 창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샤를로테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펜테실레이아가 창대를 잡았을 때. 그리고 그녀가 샤를로테의 얼굴을 훼손하지는 못했을 때, 가냘픈 인상의 남자가 펜테실레이아의 발목을 쥔 채 붙들었다.
샤를로트의 성향은 명료하다.
전투지휘형. 커맨더.
그녀는 특정한 적을 한순간에 압도할 수 있고, 어떤 공격에도 내성을 가진다. 무엇보다 주인을 배신하거나 배반할 수 있는 경우가 조금도 없다. 장군이라는 시스템을 구현한 황제와, 휘하 극소수의 군주가 아니라면, 그 어떤 수단에도 주인의 제어권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불리한 싸움을 자신이 유리한 싸움으로 바꿀 수 있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진다. 샤를로테라는 약한 이미지. 그런 이미지기에 범용성이 넓을 수밖에 없다.
샤를로테는 자신의 약한 공격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베르테를 소환했다.
베르테.
가냘픈 인상의 남자. 그 남자는 펜테실레이아를 도중에 붙잡고 내쳤다. 펜테실레이아는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에서 몸을 뒤틀어 베르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고,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본래의 자리를 되찾았다. 샤를로테의 심장을 꿰려다 실패한 창도 붙잡고 있었다.
그나저나 샤를로테, 베르테도 소환한 걸까. 이시현은 베르테라는 이를 살펴보았다. 가냘픈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샤를로테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가 싶더니 곧 총을 꺼내 펜테실레이아를 향해 겨냥했다.
스스로를 비극으로 이끈 사내. 자신의 세계를 슬픔으로 빠트리고, 그것도 모자라 현실세계까지 슬픔으로 물들인 자. 베르테의 총격에 펜테실레이아를 창을 양손으로 붙잡고 탄환을 튕겨냈다. 그럴 때마다 창대에 깊은 흠이 생겼다. 총알을 창대로 막아내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물론 장군에게는 숨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