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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30화 (130/141)

< -- 130 회: 10> 게임의 끝. -- >

루크레치아의 첫 번째 남편. 밀라노 공국의 페사로 영주인 조반니 스포르차와의 결혼. 밀라노 공국의 힘을 빌리기 위한 강제적인 결혼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밀라노 공국이 쇠퇴하고 조반니 스포르차 또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자 암투가 벌어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조반니의 고소와 고발 등에 따라 파혼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혼인 무효 과정을 밟는 동안 루크레치아는 네피의 수녀원에 머물렀고 ‘한 아이’를 낳았다.

루크레치아는 그 아이를 모 심부름꾼의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로마의 시민들은 오라비 체사레 보르자의 근친상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야 어떻던, 루크레치아의 초상화 중에는 수녀의 복장을 한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간음장군 루크레치아는 그런 수녀복장의 일부를 굳이 소유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어둠이 씻겨나간다.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리퍼가 보인다. 그런 리퍼를 바라보며 루크레치아는 쿡쿡 웃었다. 그녀는 ‘멀쩡한 손’으로 메일의 끝자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오라비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 갖은 남자와 관계를 나눴다, 남편의 거시기가 시원찮아 이혼하려 한다. 이혼, 아니 혼인 무효의 수순엔 말 그대로 엄청난 말들이 떠돌았지. 그리고 그 동안 나는, 루크레치아라는 여자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수녀원에서 수녀 생활을 하며 살았어. 그리고 혼인 무효가 이루어지고, 아이까지 낳았을 때 외부의 소문은 씻겨 사라졌지. 대신 수녀원에서 낳은 아이에 대해서만 비난이 이뤄질 뿐이었어. 뭐 어떤 왕의 심부름꾼과 관계하여 낳은 아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그건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겨두자고.”

루크레치아는 쿡쿡 웃었다.

“중요한 건 그 동안의 비난이 죄다 사라졌다는 거니까.”

<검은 베일>.

D급 특기. 영웅의 무구: 루크레치아의 베일이 필요.

쓰고 있던 베일을 던진 시점에서 다시 쓰는 시점까지 있었던 모든 ‘자신의 상황’을 복구. 덧붙여 자신에게 상해를 입힌 모든 공격방식 및 특기의 무효화.

리퍼는 더 이상 어둠을 깔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힘껏 내던진 메스를 눈꺼풀로 받아내고도 메스만 우그러질 뿐,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면서 웃는 루크레치아를 보면서 깨달았다.

“과연 장군님.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거네.”

“그런 거지. 그런데 너 아직 더 공격할 수단이 있어?”

장군과 겨뤄보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그랬기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걸 꽤 늦게 알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루크레치아는.

리퍼가.

가장 좋아하는.

취향을 지닌 목표였으니까.

리퍼가 킥킥 웃었다.

주변의 공간이 바뀐다. 어둑어둑해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골목길>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리퍼는 루크레치아가 검은 베일을 쓰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 실크햇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리고 머리가 들어가는 곳에서 손을 넣었다가.

“<프롬 헬(From hell)>.”

킬 더 킹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잭 더 리퍼의 무구를 꺼냈다.

“컹컹! 컹!”

“우------!”

개가 짖는다.

목이 졸린 그림자들이 일어났다. 달을 삼키는 암야.

건물 내 1층, 프런트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도시의 건물이 솟구치기에 이른다.

“<더블 이벤트(double event)>.”

“<인간해체>.”

“.”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리퍼가 스산하게 말했다.

“지옥으로의 초대를 시작한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잊어버렸지만, 루크레치아 또한 장군이다. 자신의 기량을 생각해보고 리퍼의 현재 모습과 각오를 반추한다.

“망할.”

루크레치아가 잇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끝내주는 싸움을 하고는 있지만 이긴다 한들 대가가 없잖아.”

루크레치아는 아직 흑공자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건을 제시했지만 시간부족을 이유로 흑공자가 다른 조건을 내걸었던 탓이다. 리퍼를 죽이게끔 해주지. 그 말에 허락했던 건데…….

“걱정하지 마. 나도 아직 조건을 완수하지 않았어.”

리퍼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뭐, 장군 한 명을 죽이면 천 명을 죽이는 셈 칠 테지만 말이지.”

“그렇게 간단히 제안하지 마. 장군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장군의 가치래 봐야 벌 거 있나.”

“별 거 있지. 너 같이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쓰레기와는 달리 제대로 된 장군은 이런 것도 쓸 수 있거든.”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살인마를 앞에 두고 루크레치아는 양손을 벌렸다.

“<군주 소환>.”

“what the fuck?”

***

게임 스테이지 2.

“……오공인가?”

흑공자 게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외형을 지닌 장군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를 말총머리로 묶어 틀어 올린 소녀였다. 현 시대에 걸맞은 복장에 길게 뻗은 다리를 하얀색 바지로 감싸고 있는 소녀.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길, 청원경찰의 역할을 할 이들이 머물 방의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으흥. 안녕하세요. 손적입니다.”

“손적? 오공이 아니라?”

“지금은 손적이지만요. 그리운 이름이긴 하군요.”

흑공자 게인은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런 게 여기에 있나 싶은 것이다.

어스 엠파이어는 인간의 제국이며 오직 인간의 편의에 따라 이루어져 있다. 장군, 어스 엠파이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병기들은 괴물이든 신이든, 기이한 외형을 지닌 전설의 존재도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야 성교를 나눌 수 있으니까!

전설에서는 남자일지라도 죄다 여성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공포의 군주가 지니고 있는 최강의 장군인 아자토스가 나이트캡을 쓰고 언제나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잠자는 소녀라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레메게톤 같은 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책이 수녀복 같은 걸 입고 다니는 여성인 것도 어스 엠파이어만의 고유한 사상 때문이다.

오공, 돌원숭이로 불리며 서유기로 널리 알려진 기서의 주인공.

여의금고봉, 달리 여의봉이라 불리는 봉을 무릎 위에 얹어둔 그 모습은 게인이 알고 있는 오공의 모습이었다.

“넌 마성의 군주 소속이 아니었나?”

“흑공자님도 한때는 다른 군주 소속의 무장을 데리고 있지 않았던가요?”

손적의 고급스러운 화법에 흑공자 게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였군.

백공자의 무장과 공멸한 자신의 무장, 장군까지 한 걸음 남았던 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명의 무장이 무너진 백화점 위에서 공멸한 것은 손적의 술수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때 상황은 다소 의문이 있었지만 오공, 아니 지금은 손적이라고 불리는 이 여자가 관여했다면 말은 달라진다.

“이해했다.”

세 번째 놈, 회색분자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암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하얀 놈과 겨루면서 손해 봤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서서 손해를 강요했을 일들을 떠올려 본다.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가 치명타다. 흑공자 게인은 서늘한 눈으로 손적을 노려보았다가 피식 웃었다.

“가영.”

“네.”

“처리해.”

“알겠습니다.”

회색분자의 암약에 타격은 있었다. 하지만 3자이기에, 정체를 감추었기에 손대지 못한 영역도 있다. 흑공자나 백공자가 키우는 무장의 질. 나서서 뭔가 일을 저지를 때가 아니면 회색분자는 흑공자의 힘을 깎을 수 없었다.

흑공자 게인은 측천과 쌍으로 포의 자리에 앉은 소녀였다.

측천의 힘 일부를 지니고 있는 그녀는 흑공자의 팻감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장군 다음으로 강력했다. 어쩌면 측천은 자신의 최후를 조금이지만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후계자 비슷한 소녀에게 힘의 일부를 건넸던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상 측천무후를 돕고 국정을 운영하던 네 명의 대신을 소환, 이 소녀에게 깃들게 한 것이 느껴진다.

길지 않은 검은 머리에 귀밑머리를 목덜미까지 기르고 곳곳에 갈색 염색으로 멋을 냈다. 나이는 16세.

손적은 장군도 아닌 소녀가 혼자서 앞을 막아서며 전투준비를 하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말도 없이 주먹을 지르는 소녀에게 얼굴을 얻어터지고 두 바퀴쯤 허공에 나뒹굴고, 바닥을 쭉 미끄러져 쓸어버리자 표정이 변했다.

“어이쿠, 이거 좀 아프네요. 생각보단 실력이 있어 뵈는데. 음, 이건 발경인가요?”

비뚤어진 코뼈를 맞춘 덕분인지 코피로 입술과 턱이 흠뻑 젖고 말았다. 연골을 바로 세운 손적이 피로 질척해진 손으로 머리털을 뽑았다.

흑공자는 대답 없이 걸음을 옮겼다. 스테이지 2, 그렇게 불리는 층을 건너는 흑공자에게는 손적과 가영의 승부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손적은 몇 개의 분신을 만들어낸 후 코를 매만지면서 한 명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기왕이면 이 급조된 무장이 아니라 장군을 상대하고 싶었던 그녀는 쓴 표정을 지었다. 장군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느새 장군을 만든 모양이다. 백공자를 마지막으로 처치한 자이기 때문에 왕권 같은 것이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머리에 두건 비슷한 것을 쓰고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성. 수영복을 닮았지만 굉장히 폭이 좁은 것으로 젖가슴과 비부만 가리고 있는 맨발의 여성이다.

이시현이 루크레치아로 생각했던 여자. 하지만 아니었다.

흑공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무장, 즉 리아와 엘렌을 ‘팔아치우고’ 급히 장군을 하나 구입했다. 그가 지닌 경력과 조교의 솜씨가 빚어낸 극적인 성사였다. 리아는 자신이 태어날 때 주어진 무장. 그리고 엘렌은 그의 가짜 아버지를 섬기던 무장이었다. 흑공자를 낳은 측천과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흑공자에게 충성하고 조교 당하던 이들이었다.

리아와 엘렌을 산 이는 군주였다. 광신의 군주. 흑공자를 지원했다가 강력한 무장을 잃은 그는 흑공자가 보는 앞에서 리아와 엘렌을 범했다. 믿을 수 없는 치욕 속에서 흑공자는 장군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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