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25화 (125/141)

< -- 125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엘리자벳은 신음했다.

이것도 제 3자가 예상한 걸까? 아니다. 아니지만 상황은 이렇게 되었다.

측천은 더 이상 말을 들을 여지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녀가 엘리자벳의 말에 현혹되어 ‘방황’했다. 명백히 방황했다. 측천은 이곳에 리퍼가 아닌 아그리피나가 있다고 판단했었으니까. 하지만 엘리자벳의 거짓말에 리퍼가 있는 건가, 추측하고 말았고 리퍼를 상대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루크레치아를 불렀다.

하지만 루크레치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엘리자벳은 ‘허세’인 건가 생각했다. 루크레치아가 여기에 없는 상황인데도 나타나라고 말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허세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했지만.

측천이 틈을 보였고 그 틈을 보고 아그리피나가 기습했다. 측천은 부상을 입었다. ‘리퍼가 기습해왔다면’ 따라왔던 루크레치아가 그 공격을 막아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일부러 틈을 보였던 탓일까. 생각 외로 큰 부상을 입은 측천은 나타난 상대가 아그리피나라는 것을 확인한 후 머릿속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루크레치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 그녀는 리퍼를 상대하기로 하고 측천의 뒤를 쫓았기 때문이다.

헌제 리퍼가 있다고 말한 엘리자벳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그리피나가 나타났고 측천을 기습했다. 루크레치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 리퍼가 여기에 없으니까.

허나 엘리자벳은 진실을 안다.

리퍼는 여기 있었다.

그리고 리퍼는 아그리피나를 심처 속으로 밀어 넣고 싸우다, 루크레치아를 확인한 후 아그리피나를 버리고 그녀와 맞섰다. 루크레치아 또한 ‘상대하기로 예정된’ 리퍼를 목격하고 그녀와 맞서고 있다.

심처 <망자의 거리> 속에서.

‘도망칠 수 없어.’

측천은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 후에 그녀는 엘리자벳과 아그리피나를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판단했고, 각오했다. 엘리자벳은 측천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죽어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흑과 백, 두 명 모두 최대 전력인 장군 넷을 여기에 묶어두고 말았다. 반면 제 3자는 단 한 명만의 장군으로 이 사태를 정리하려 하고 있다.

흑이 둘, 백이 둘, 3자, 회색이 1.

3자가 극히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지금 이렇게 장군이 묶여있는 동안 흑과 백에게는 장군이 없다.

‘망했군.’

악몽 같은 결과다.

백공자의 거의 완벽한 패배. 수읽기부터 운용까지, 모든 것이 실패했다. 군주의 장군이 죽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측천도 죽어줘야 하는 것이 옳다. 엘리자벳이 측천과의 싸움을 꺼린 것은 사실. 측천은 장군들 사이에서도 이건 급이 다르다고 느낄 만큼 강하다. 물론 상대할 수밖에 없다면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꺼리는 이유는 측천이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 치명타를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측천이 ‘여기서 죽더라도’ 다른 둘을 죽일 각오로 달려들고 있었다.

엘리자벳은 그 결과가 결코 좋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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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분노를 몸에 휘감고 용의 피를 이은 중국의 황제처럼 날뛰던 측천이 망령들의 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망령은 수없이 많이 모여서 영적능력이 없어도 보일만큼 뭉쳐 있었다. 측천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네년.”

“당신은 아그리피나를 죽였어. 그러니 당신도 좀 죽어줘야겠어. 이대로 돌아가긴 너무 아쉽거든. 내 체면을 위해서 죽어줘.”

망령은 빠르게 육괴로 변한 아그리피나에게로 깃들었다. 측천이 쳐죽인 장군이다. 아그리피나, 그녀는 명성과는 달리 꽤 빠르게 탈락했다. 그만큼 측천이 힘을 과하게 쓴 탓도 있었지만.

아그리피나는 결코 말을 듣지 않을 측천을 처리하기 위해 ‘일부러 과다한 힘을 받아내기로’ 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측천이 벗어나려 했지만 육괴로 변한 아그리피나의 몸이 폭발하는 것이 빨랐다. 엘리자벳은 몸을 엑토플라즘 화 시켰다.

“네년……!”

<망령의 여왕이 제어하는 육체지배>.

대상이 되는 육체를 조종하여 자신과 비슷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특기. 하지만 대상이 된 자는 모든 힘을 소모하고 육체를 활용한 덕분에 죽게 된다. 측천이 포의 능력으로 백공자의 욕조에 침공했을 때 때마침 엘리자벳은 함께 들어온 무장을 <망령의 여왕이 제어하는 육체지배>를 통해 장군급으로 만들고 격퇴했다. 물론 그 무장은 죽었다. 그녀가 장군이 된다면 할 수 있을 모든 가능성을 소모하고서.

“엘리자벳----------!”

폭음이.

그리고 독연기가.

생화학병기라고 해도 조금도 과하지 않은 폭발이 야당의 대표가 살고 있는 집을 녹이고 붕괴시켰다.

수십 미터, 아니 수백 미터가 독연과 폭발에 휘말려 가루가 되었다. 살아남은 자 또한 몸을 녹이는 독에 중독되어 죽어버렸다.

한 명의 대상을 목표로 한 싸움.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투.

그 분투의 끝에서.

아그리피나.

그리고 측천이 사망했다.

“웩.”

엘리자벳이 토하기 시작했다.

원인모를 폭발, 그것도 공기가 지독한 독으로 되어 있어 부촌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동네에서 다수의 사람이 함께 죽어버렸다. 다행히 그들의 영역, 즉 집의 넓이가 넓고 아파트가 아닌 터라 떼죽음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그 말을 희생자에게 하기엔 잔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다 유체상태로 몸을 변환한다. 유체상태에서도 먹히는 독을 보면 정신, 혹은 영혼에도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독이 아그리피나의 체내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그리피나는 죽었다.

정확히는 속절없이 죽은 것을 최후에 부비트랩처럼 이용해 먹고자 엘리자벳이 사용했을 뿐이지만. 폭발의 범위에 엘리자벳이 있었다는 것으로 동정표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잘못했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측천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힘을 폭력으로서 아그리피나에게 써버렸으니까.

측천은 공격력이 부족한 대신 다양한 능력이 있고, 그렇기에 세 명의 장군과 싸워도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그리피나라는 정식 장군을 죽였다. 아그리피나가 가장 잘 사용하는 독을 통해 측천의 힘을 많이 소모하고 방어력을 의미없게 만들어버리며 죽어버린 탓이었다.

아그리피나의 시체는 측천을 쓰러뜨리는데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측천, 흑공자 비장의 패를 여기서 묻어버렸으니까. 측천의 시체는 흔적도 없었다. 아그리피나에게는 괜한 죽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큽, 욱, 흐흑.”

하지만 왜 이렇게 구토가 나는 걸까. 머리가 찌를 것처럼 아프다. 정신이 없다. 완전하게 유령처럼 변해버린 엘리자벳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리를 굽힌 채 허우적거렸다. 술 취한 귀신이 있다면 이렇게 보일 정도로.

지독한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경찰 대부분의 병력은 측천이 저지른 난동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측천이 여기서 죽은 건 킬 더 킹이, 게임이 백공자의 측으로 기울었다고 보아도 좋다.

‘아니.’

머리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엘리자벳은 그 생각을 부정했다.

‘3자가 있어. 흑과 백만큼 뛰어나진 않겠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이쪽은 손해가 생겼어. 명백한 손해지.’

흑은 장군 하나 분량치고는 너무 강력한 측천을 잃었고, 백도 아그리피나를 잃고 말았다. 그리고 엘리자벳은 심한 부상. 이쯤에서 보자면 백공자의 명백한 우위지만…….

‘회색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흑공자는 남는 거라고는 루크레치아 뿐이다. 루크레치아와 상대하는 건 제 3자, 회색의 장군인 리퍼. 둘 다 쓰러져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사리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루크레치아가 몸 성히 돌아간다고 해도 후계자 전쟁, 킬 더 킹에서 흑공자는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경쟁에서 흑공자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공자도 아그리피나를 잃었지만 엘리자벳은 살아남았다. 말의 패로서 ‘퀸’이기도 하니 유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엘리자벳은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신음했다.

‘3자, 빌어먹을 새끼. 회색분자.’

어디서 그런 게 튀어나와서 이런 꼴을 겪어야 하는 걸까. 결국 그놈 때문이었다. 그놈 때문에 이 꼴이 된 거다.

정면으로 붙는다면 후계자 레벨에서 백공자 샤를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없을 터. 그런 면에서 3자는 매우 잘 숨었다고 할 수 있었다. 후계자에게 탐닉의 군주 휘하 장군을 분배하자마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확실히 함정을 파두었으니까.

‘바둑. 으, 욱.’

저도 모르게 유령상태가 풀리고 육체를 가진다. 그리고 내장 녹은 것 비슷한 오물을 토했다. 엘리자벳이 코로 줄줄 흘러내리는 핏물을 인중을 눌러서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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