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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23화 (123/141)

< -- 123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측천이 이곳에 오면서 혼자서 온 것은 아니다. 측천의 뒤를 쫓아오기로 한 장군이 하나 더 있었으니까. 야당의 대표를 협박하고 그에게 흑공자의 세력말소를 의뢰한 리퍼가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리퍼를 잡기 위해 루크레치아가 뒤따라 왔다.

루크레치아에게 이 전장을 맡긴다. 그리고 3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측천은 흑공자에게 향할 필요가 있었다. 3자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그건 흑공자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닥쳐들 것이다. 측천이 흑공자의 곁에 있어야 했다. 지금 당장.

본래 측천이 하려던 일은 그녀의 뒤를 따라온 루크레치아에게 맡긴다.

이곳에는 엘리자벳, 그리고 백공자의 장군이라는 리퍼가 있다.

루크레치아는 두 명의 장군을 상대로 승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측천이 함께 한다면 둘을 쓰러뜨리는 건 쉬운 일이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뿐더러 적의 가장 강력한 병력을 제거할 수 있다.

적의 장군 중 한 명을 완전 제압한 후 다른 이에게도 부상을 입히거나 피로하게 만들고 그 후에 측천이 흑공자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포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하여 그녀의 자궁에 흑공자의 정액을 가득 담아왔고, 포의 능력을 발휘하면 여성의 자궁에 든 정액의 주인에게로 순간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크레치아! 여기에 리퍼가 있다!” 나와!“

측천의 외침이 거세게 울려 퍼졌다.

엘리자벳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젠장.

설마 여기에 장군 둘이 다 왔어?

“잠깐만요.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을…….”

“죽여주마!”

엘리자벳이 뭐라고 하든 측천은 이미 공격할 태세를 굳혔다. 엘리자벳이 몸을 피했다. 아니, 피하면서 반격했다. 하지만 측천이 소리 높여 외쳤다.

“멈춰라, 쓰레기!”

엘리자벳의 몸이 덜컥 하고 멈췄다.

특기 <어명>.

정확한 매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어떤 위치’ 혹은 ‘조건’을 통해 자신이 위쪽이라면 상대에게 명령할 수 있는 최면, 혹은 세뇌 형식의 선언이다. 젠장, 하고 엘리자벳이 신음했다. 피하며 반격하려던 엘리자벳이 멈추자 측천은 공격하던 상황에 힘을 주어 엘리자벳을 걷어찼다. 화려한 복장이 너풀거리며 펄럭이는 가운데 엘리자벳은 반투명화 된 몸으로 벽까지 날아갔다가 벽을 짚었다. 반쯤 몸이 허물어져 벽 속으로 파고 들어갔지만, 벽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반투명화 된 엘리자벳은 창백한 피부, 그 이상으로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액토플라즘이나 반투명화 된 겔처럼, 엘리자벳 특유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고 반 유령 상태가 되었다.

엘리자벳.

오페라 ‘엘리자벳’에 등장하는 실존 여왕으로, 극중에서는 망령의 여왕처럼 보인다.

가상의 주인공이자 허구의 주연. 하지만 그런 존재도 장군이 될 수 있다. 엘리자벳은 그것 덕분에 특기 <망령의 여왕>을 지니고 있고 일반적인 물리공격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항상 몸에 갈려있어 영향을 주지만, 유령을 안아봐야 감각이 없으니 껐다 킬 수 있도록 백공자가 명령했다.

<어명> 덕분에 엘리자벳이 멈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렇게 멈춘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액토플라즘 화 시켜 공격을 무위로 돌릴 수 있었다.

측천은 물끄러미 노려보더니 재차 움직였다. 엘리자벳 또한 공세로 전환했다.

측천이 짚은 바닥이 파도를 맞은 것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엘리자벳은 허공에 떠올라 반 이상 액토플라즘 화된 몸으로 측천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녀가 완전히 유령으로 변하지 않는 이유는 유령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건 측천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기 <망령의 여왕>은 0%에서 100%까지, 유령 상태의 밀도를 변환시킬 수 있었다. 지금 엘리자벳의 몸이 액토플라즘이 되어 있는 것 또한 75%정도의 밀도로 <망령의 여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측천은 소매를 휘두르려다 멈칙하고 몸을 낮추었다. 돌격하던 것을 멈춘 후 주먹을 뒤로 당겼다가 포탄처럼 날렸다. 허공을 때려낸 주먹. 엘리자벳의 액토플라즘화 된 몸도 주먹의 궤도를 따라 구멍이 났다. 엘리자벳에게 고통은 없었다. 보통 같았으면 살점, 아니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그 순간 즉사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엘리자벳은 물리적인 충격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당황했다. 측천이 주먹을 날린 방향에는, 그녀의 몸 뿐만이 아니라 야당의 대포도 있었으니까. 엘리자벳이 다급히 양손을 치켜들었다.

“오라, 나의 백성!”

유령 소환. 망령의 여왕이 지니는 자신의 백성을 소환하는 의식. 영국을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그녀의 부하들을 불러 충격을 버텨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재차 어명이 떨어졌다.

“입을 다물라! 쓰레기!”

주문을 외던 엘리자벳이 멈칫했다.

유령의 소환이 멈췄다. 엘리자벳은 대신 자신의 양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입은 여전히 다물려 있다. 측천이 눈을 험악하게 굴렸다.

액토플라즘화 된 육체의 일부가 측천의 주먹에 떨어져 나갔다. 그 조각이 갑자기 커지더니 엘리자벳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즉, 떨어져 나간 옆구리의 살덩이가 본체가 되었다는 소리다. 엘리자벳은 그대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공기를 때려 대포알처럼 만들어 쏘아 보낸 측천의 주먹이, 압축된 공기가 뻥 하고 터졌다.

“죽이려는 마음은 변함없나 봐요. 하긴, 야당의 대표인가 뭔가 하는 이 작자를 죽이면 현 상황이 나아질 테니까 그럴까요?”

유령 특유의 웅웅대는 목소리로 엘리자벳이 물었다.

엘리자벳의 예상대로 측천의 목표는 야당의 대표.

그만 죽으면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고 현 대통령과 야당대표의 죽음이 만들어내는 공백은 엄청난 소란을 발생시킬 것이다.

엘리자벳은 반 투명화 되다시피 해서 측천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정확히는 맞아도 데미지의 거의 대부분을 무효화한다. 하지만 그건 측천도 알고 있다. 측천은 아무 말 없이 몇 차례 더 공격을 퍼부었고, 엘리자벳은 쉽사리 막아냈다.

몇 번이나 엘리자벳의 움직임에 공격이 무력화되자 측천은 머리의 황금비녀를 한 개 뽑았다. 머리를 틀어 올린 긴 흑발 일부가 목덜미와 등을 덮었다.

용의 모양이 각인된 비녀를 마치 비수처럼 쥔 채로 측천이 자세를 잡았다. 뾰족한 송곳 같은 비녀를 역수로 쥐고 소매를 늘어뜨린 측천이 비녀를 가슴 앞까지 들어올렸다. 측천이 가진 황금빛의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용의 모습을 한 비녀역시 살벌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못 막아.’

엘리자벳이 가진 특기 <망령의 여왕>을 사용하면 물리적인 충격은 거의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다. 측천이 작정하고 친 직격에도 그저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것으로 해결이 되니까. 100% 밀도를 조절하면 완전히 만져지지도 않게 되지만, 거기까지 하면 도리어 엘리자벳이 측천을 공격할 수단을 잃고 만다. 물론 방어도 불가능하게 변한다.

21세기, 현대. 21세기문명기술가지고는 엘리자벳의 100% <망령의 여왕>을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측천은 물리적인 공격도 우월하지만, 다른 식의 공격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정말로 황룡의 비늘을 몇 개나 접고 갈아서 만든 비녀. 손으로 움켜쥔 비녀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의 연기는 고도로 정련된 검기다.

저건 <망령의 여왕>을 100% 밀도로 사용해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막아낸다고 해도 저것에 의해 떨어져나간 살은 복구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물리적인 공격이지만 영적능력, 혹은 신비가 더해진 검기. 그 검기를 막는 건 엘리자벳으로는 어렵다. 그녀가 약한 게 아니다. 측천이 너무 강한 것이다.

“하는 수 없군. 보고 있지? 도와줘!”

엘리자벳의 말에 측천은 살짝 몸을 굳혔다.

리퍼가 나올 것이다. 그녀는 타고난 암살자고, 약한 이름을 혼자서 독점함으로서 상당히 강해졌다. 주인인 리퍼조차 제어가 어려운 심처도 가지고 있다. 강력하고 힘이 있는 심처. 그 심처를 사용하는 리퍼는 상당히 강하다. 그런데 그 리퍼가 나온다면 방비를 굳힐 수밖에 없다. 물론 루크레치아가 곁에 있다면 방비를 굳힌 측천이 리퍼의 공격을 막아내고, 빈틈을 만들어 루크레치아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루크레치아! 어서 나와라!”

측천은 함께 따라왔을 루크레치아에게 명령하고선 탓, 소리를 내며 엘리자벳을 향해 뛰어들었다.

엘리자벳이 주문을 외웠다. 유령의 소환. 유령 따위는 죄다 무시하고 달려들려던 측천은 갑자기 허공에서 마술처럼 나타난 여성을 보고 비녀를 휘둘렀다. 여성은 투명화되어 숨어있던 것 같았다. 충분히 상대를 주의하고 있던 측천조차도 갑자기 적이 나타나자 당혹한 것처럼. 측천이 비녀를 휘두른 것은 놀랄 만큼 재빠른 상황판단과 동작변환 때문이었다. 불과 10cm. 그 정도의 간격만을 두고 앞에 나타난 여성은 온화하게 웃는가 싶더니 그대로 안기듯 측천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측천이 휘두른 비녀를 피하듯이 움직였다.

측천은 <암약>으로 숨은 아그리피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암약이란 거의 반드시 선제공격을 날릴 수 있게 해주는 특기로, 장군의 감각조차도 무시하고 숨어들 수 있다. <암약>을 걸면 소리 없이 조심스레 움직여야 하지만, 그 정도는 어지간한 무장조차도 할 수 있는 것.

심장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조절하며 측천 앞으로 걸어온 아그리피나는 갑자기 <암약>을 풀고 측천 앞에 나타났고, 그녀의 놀랄 만큼 재빠른 동작변환에도 약간의 텀은 있었고, 그 텀을 노리고 아그리피나가 달려들었다. 아그리피나의 몸에 닿는 순간 측천은 온 몸의 뼈가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전력으로 달려오던 소형경차와 맞은편에서 질주하던 전철이 부딪쳤을 때. 보통은 경차가 찌그러지겠지만, 경차가 터무니없이 단단했다고 가정하고, 높이가 길어 밑으로 낄릴만하지 않았다면 경차의 꼴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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