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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20화 (120/141)

< -- 120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누구냐고 물었어!”

“저 살인의 수법은 아마도 리퍼겠죠. 그리고 리퍼에게 붙은 인간이 공격한 것일 테고요.”

루크레치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누출을 막기 위해 이곳에 오기 전에 정보통제가 가해졌어요. 리퍼가 선택한 이가 누구인지 ‘전 주인님’이신 탐닉에 의해 물리적으로 기억을 잃은 터라 대답할 수 없었음을 용서하시길. 그녀의 흔적이 드러나자 소량의 정보가 다운로드됐네요.”

흑공자 게인은 이를 빠득 갈았다.

“3자. 그래, 하얀 놈과 맞붙었을 때마다 일어났던 모든 불리함. 피해. 이상한 기류. 이 모든 것이 3자가 있었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지. 이제야 알겠어. 그래. 탐닉의 세 장군은 전부 주인을 찾은 거군. 그리고 암약하여 숨어있던 세 번째 놈이 친 거야. 그놈은 누구지?”

“정보통제가 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인 충격으로 잃어버린 거라, 어떤 조건이 없다면 떠올리는 것 자체가 무리에요.”

“하는 수 없지. 이번은 패배를 인정한다. 그리고 복수한다. 루크레치아. 나와 체격이 비슷한 놈의 외형을 바꿔. 나로 위장시킨 후 죽여.”

“아. 저는 그게 가능해요. 네, 가능하죠. 하지만 어째서 그래야 하죠?”

“뭐?”

루크레치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백 쌍의 근찬상간을 이루지 못했잖아요. 당신은 저를 사용할 권한은 없어요.”

게인이 섬뜩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3자가 있었다면 같은 시기에 떨어졌을 거잖아. 그런데 저놈은 리퍼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어. 조건을 수락하진 못했을 거 아닌가.”

“리퍼의 조건이라고 해봐야 별 게 있겠나요? 얼마의 숫자를 죽여라. 뭐 그런 식의 조건이었겠죠. 수는 많지만 이 시대에 얼마의 수가 죽든 딱히 문제될 게 없잖아요. 대통령의 죽음, 그것이 아마도 리퍼의 조건을 모두 완수하고 사용한 첫 번째 사례일지도 모르겠네요.”

리퍼는 암살자에 가깝다. 암살에 특화되어 있고 간교한 상황을 만드는데 익숙하다. 그녀의 성향은 적의 깨끗한 죽음. 리퍼가 장군이 될 때 내건 조건은 틀림없이 죽음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3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것 벌여온 것을 보면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교활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리퍼의 조건을 완수하는 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처참한 죽음.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건 무장, 아니 무장으로도 어렵다. 장군쯤 되어야 할 것이다. 리퍼의 짓이라고 하면 깨끗하게 이해가 된다.

그 죽음부터 생각해봤어야 했다. 어떤 놈일까, 생각하면서 감탄했던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작정한 듯 쓸어버리는 모습은, 제 아무리 조폭들이 강하다고 해도 군인에게는 쥐 잡듯이 털린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흑공자 게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측천!”

루크레치아가 움찔해서 물러났다.

측천이 당의를 나풀거리며 흑공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루크레치아가 군주의 장군이라고는 하지만, 측천은 황제의 장군이었다. 지금은 그 수준이 격하되었다고는 해도 그 격하된 것이 군주의 장군을 위협케 할 정도다. 흑공자는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측천이 있다면 재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뒤엎는다. 측천, 네년은 네 피가 흐르는 이들을 충동해라.”

측천이 장군 세 명과 싸워도 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

측천 홀로 수천의 무장과 맞먹을 수 있는 이유.

그녀의 존재 하나만으로 군주들의 세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 이유.

측천은 중국(中國)이라고 불리는 영향권에서 파생된 모든 생명, 권력, 체제 등에 강제로 올라설 수 있다.

그녀가 작정한 순간 그 영향력에 해당하는 이들은 집단최면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네 명의 영혼뿐인 무장(적인걸, 장간지, 환언범, 경휘)을 소환, 그 무장을 각자 마음에 드는 이의 육체에 심어 제어권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즉 당대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반대파 지도자, 군부대 지도자, 민간지도자 등등을 완전히 자신의 부하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이 맞추어졌을 경우 그녀는.

E급 특기 <수렴청정>.

같은 E급 특기 <무주의 치>.

그러면 그녀는 사실상 개발이 어려운 최강의 특기, F급 특기 <무측천>을 발동할 수 있다.

그녀의 영향권 내 모든 생명체의 수만큼 살며, 그만큼의 부하를 부릴 수 있으며, 그 영향력 내에서 나오는 권력을 힘으로 삼고, 그들의 총합적인 힘만큼 강해지고 사고할 수 있다. 전 중국인이 동시에 뛰었다가 덜어지면 지구가 밀려나간다는 농담이 있는 것처럼, 그들 총합의 힘이 측천에게 더해진다.

중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세력권 모두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한 그녀는, 표현 그대로 유일무이한 여황제로서 세상을 울린다.

어떤 신의 이름을 가진 장군보다, 어떤 전설과 위대한 위명을 지닌 영웅보다도 측천의 이름이 앞선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녀는 황제의 장군이며, 그 홀로 군주들의 세력권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불린 이였다.

측천이 네,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망설였다. 그 망설임에 덧붙이듯 루크레치아가 반발했다.

“안됩니다.”

루크레치아가 대답했다.

게인은 살벌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게임의 배경은 여기 이 땅, 세 황제께서 계시고 제국의 모성, 그 중심 수도인 한국령입니다. 세 황제께서 만나신 이곳이 바로 게임의 무대입니다. 외세를 일부러 불러 게임의 판을 망친다면, 게임의 룰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외세가 아니야! 특기를 사용할 뿐이다!”

“외부의 말을 끌어오는 순간 게임은 본래의 목적을 잃게 됩니다. 3자도 외세를 끌어오긴 했지만 이 당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즉 안 됩니다.”

흑공자 게인은 사납게 루크레치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늘고 하얀 손이지만 루크레치아의 목을 파고 들고 살을 뭉개는 데는 아무런 지정이 없었다. 루크레치아가 꺽꺽거리며 신음했다. 그녀가 완전히 숨이 넘어가기 전에 게인은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장군 하나를 얻었기에 이렇게까지 수를 써오다니. 세 번째는 대단하군. 하지만 그것뿐이야. 유리한 곳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온 것에 지나지 않아. 게다가 나를 죽이지도 못했지. 존재는 드러냈지만,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였지만 그게 전부지.”

게인이 사납게 웃었다.

“좋아. 이번만은 네 무대였음을 인정하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사냥 시간이다. 측천. 이 법을 제창하고 날뛰게 만든 녀석을 잡아와. 야당의 대표인지 뭔지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죄다 털어. 매스컴에 드러나도 상관없어. 그리고 루크레치아. 네년에게 제안을 하지.”

“무슨 제안인가요?”

“리퍼와 싸워보고 싶지 않나?”

루크레치아가 과연, 이라고 운을 떼며 싱긋 웃었다.

“측천이 야당의 대표를 잡을 때 리퍼가 방해한다면 측천이 싸울 거야. 물론 리퍼가 이기기는 어렵겠지. 그러니까 리퍼는 그 모습을 숨어서 관찰할 확률이 높단 말이야. 너는 그것을 염두해두고 그 현장을 살펴. 그리고 리퍼를 찾고 그년이 도망친다면 그걸 추적해. 그년의 주인이 있는 곳을 찾아!”

“그러겠습니다. 그건 제법 재미있겠네요.”

루크레치아가 황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루크레치아는 조건을 완벽히 해결하지 못한 흑공자를 돕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게인은 리퍼와 정정당당히 싸우게 될 장소를 섭외했다. 싸우지 않더라도, 흑공자 게인을 이렇게 몰아붙인 이를 추적하고 눈에 담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저들의 추적은 어떻게 할 거지요?”

저들,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말함이다.

게인은 측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측천이 앗,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잘라.”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루크레치아가 눈을 크게 떴다. 입도 벌렸다. 그것은 그녀뿐만 아니었다. 흑공자의 무장이, 관계된 이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세상에……!”

게인은 흉폭한 웃음을 피워 흘렸다.

“이런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상식 있는 어스 엠파이어의 후계자라면 이따위 짓은 생각하지도 못하겠지.”

날카롭게 벼려진 비수로 측천의 흑단 같은 머리 일부를 잘라 눌러썼다. 가발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에 덮어씌우는 시늉만 했는데 어느덧 게인의 머리칼은 무척이나 길어졌다. 마치 머리칼 끼리 합쳐진 것처럼. 게인은 손으로 입가와 눈가를 몇 번 문질렀다. 목을 겨눈 비수처럼 예리하고 살벌했던 표정은 꽤 바뀌었다. 성격은 있지만, 독특한 매력이 돋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로.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른 그는 곧 목도 매만졌다. 목의 튀어나온 부분도 사라진 그는 가슴은 없지만 완전히 여자 같아졌다.

“이 몸의 이름은 자명(藉名) 정도로 해두지.”

자명. 이름을 빙자하다, 즉 가명을 대다라는 표현을 이름으로 쓴 그는 킥킥 웃었다.

“그럼 움직여.”

백공자 샤를은 머뜩찮은 표정으로 한 통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야당의 대표를 지켜주면 입국불어를 해지해준다?”

흑공자가 탈탈 털리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신자 불명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를 통해 샤를은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이 게임의 무대인데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으면 게임의 포기로 간주하게 된다. 강제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흑공자의 재림이 될 것이다.

“3자가 있군. 확실히. 자신이 배치한 말을 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겠다는 소리잖아. 야당의 원내대표인지 뭔지는 결국 자신의 말로 배치했어. 포석을 깔았다고 해야겠군. 3자가 하는 게임은 바둑인가. 바둑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나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괘씸하지만 나쁘지 않아.”

백공자 샤를은 피식 웃었다.

“엘리자벳.”

오페라 엘리자벳의 주연, 엘리자벳.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오페라의 주연이자 현 시대에는 망령의 여왕 등으로 불리고 있는 ‘퀸’이 부드럽게 허리를 숙여보였다. 이름이 메이저하진 않고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드물기에 정체는 순조롭게 감추어지며 활용하는 특기를 알아채기 어렵다.

“놈을 지켜.”

“그러도록 하지요.”

백공자 샤를은 곧 고개를 돌렸다.

“아그리피나.”

“네,”

“그 후 지배해.”

“그러도록 하지요. ‘주인님’.”

아그리피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백공자의 명령에 대답했다.

***

본격적인 승부는 시작되었다.

아니, 이미 서로의 패를 읽혔다.

이용당한 자의 분노. 그리고 교묘하게 위장한 복수.

대기하고 있는 자의 여유. 분노를 돌리기 위한 작전.

3자의 존재를 알아챈 자의 반격. 이용하려는 술책.

============================ 작품 후기 ============================

파탄왕 파탄왕 하셔서 봤는데 좀 재밌었음.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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