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16화 (116/141)

< -- 116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달리 수호장군(守護將軍)이라고 불리며 군주와 일심동체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오직 주인의 안전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군이 그것이다.

고대의 군주가 자신의 목숨 끝에 기말장군(紀末將軍) 페름을 둔 것처럼, 마성의 군주가 파천장군(魔性將軍) 치우를 본인의 핏물 속에 봉인한 것처럼, 광신의 장군이 자신의 성물에 십자장군(十字將軍) 크루세이더를 보관한 것처럼, 탐닉의 군주도 자신의 감정이 통제를 벗어날 때 나타날 최강의 장군이 존재한다.

물론 장군의 격을 따지는 건 어렵다.

아그리피나도, 루크레치아도, 잭 더 리퍼도 최강의 장군이기에. 하지만 최후의 최후에 탐닉의 군주가 신뢰하는 건 탐닉의 군주를 수호하는 장군, 무법장군(無法將軍)이라는 별명을 가진 호군이다.

호군은 군주의 자랑이며 주인이 가장 신뢰하는 무기이며, 주인의 목숨을 어떡해서든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벽이다. 그런 특기와 그런 힘과 그런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호군으로 불릴 수 있다.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성장하면 그리고 결국 나를 대신할 자가 되면……그들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겠지. 그건 나중 문제야.”

탐닉의 군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한 말을 부정하듯, 혹은 머리에서 떨처내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녀들을 응시했다.

“너희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이들 밑으로 기어들어가도록. 그들을 이길 수 있도록 조력해. 물론 너희들끼리 싸우라는 소리야. 싸워서 죽이라는 거지. 최종최후의 순간에는 내가 통제권을 쥐겠지만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성욕의 대상이 되어도 돼.”

세 명의 여성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건 배신이라고 여기는 모양새다. 그의 명령만 있다면 개에게도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흠뻑 적시는 것이 어스 엠파이어의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주인의 통제권까지 다른 이에게 쥐어준다는 건 말 그대로 그녀들을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탐닉은 욕심이 많은 자다.

자신을 충실히 따르는 암캐들을 버릴 리 없다. 그것도 최고급의 서러브레드라면 더더욱. 그런데도 이와 같은 처리를 한다는 건…….

언젠가 탐닉이 말했던 최고의 쾌락을 탐닉하기 위한 계책이 발동된 것이리라.

“최후의 명령권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문제없어. 버리는 건 아니니 울지 말라고.”

탐닉의 군주가 킬킬대면서 말하자 그제야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느끼고 세 여자가 눈물을 닦아냈다.

“너희들을 공짜로 주는 건 좀 아깝지. 주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놈들에게 최고의 정식을 주는 건 배알이 꼴린단 말이야. 그러니까……한 가지씩 조건을 정하자고.”

“조건이라면?”

“그래, 조건. 너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혹은 너희들이 저지른 일들을 받아들일 자세를 보아야겠어.”

킥킥, 탐닉의 군주는 즐거운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음산하게 웃었다.

그리고 하루 뒤.

흑공자 게인은 물끄러미 눈앞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요부장군 루크레치아.

그녀는 익히 알고 있는 존재다. 그가 가져야 할 여자이기도 했다. 그는 탐닉의 군주가 될 사람이었으니, 이 여자는 전 탐닉의 군주를 몰아낸 후 자신의 소유물이 되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현 탐닉의 군주에게서 다리를 벌리고 정액을 연료 삼아 살아가는 창녀다.

“그러니까 너를 가지기 위해서.”

“네. 저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것을 해주셔야겠어요. 아마 조건은 제일 간단할 거예요.”

“뭐지?”

“근친상간.”

루크레치아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가슴 앞에 끌어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머리에 덮어쓰고 있는 검은 베일 때문에 수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백 쌍의 가족을 근친상간 시켜주세요. 그러면 저 루크레치아는 당신을 따라, 당신이 군주가 되기 위해 벌이는 이 전쟁, 킬 더 킹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 적을 쓰러뜨릴게요.”

“킥. 성격하고는.”

흑공자 게인은 가늘게 웃었다.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 후에는 죽었다고 각오하는 게 좋아. 나를 움직이게 한 대가는, 네년의 몸무게를 10kg이하로 떨어뜨리게 할 고문이니까.”

“아, 그 잔혹함은 정말로 매력적이라니까요.”

“지껄이는 건 잘 하는군. 마음 같아서야 살점하나 남겨두지 않고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건 참기로 하겠어.”

“어머나, 왜 그렇죠?”

흑공자 게인은 자신의 정장 재킷을 걸치고서 팔짱을 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선택했으니까. 네년이 아그리피나와 잭 더 리퍼 개썅년들과는 달리 그나마 정상적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죽이지는 않아. 다만 고문은 참아달라고. 그것마저 그만두면, 네년은 가치가 없어지니까.”

그러니까 죽어도 고문은 하겠다는 말이다. 흑공자의 살기어린 미소에 루크레치아는 힘껏 웃었다.

“물론이죠, 나의 주인님.”

“나를 위해 일하도록.”

“물론이죠, 주인님.”

“다리 벌려.”

루크레치아가 치마를 들어 올리고 다리를 벌렸다. 이미 속옷은 입고 있지 않다. 흑공자는 자신의 상관이자 아버지이며 벗어날 수 없는 적의 것이었던 여자의 음부를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

“그러니까 네 말은…….”

“네. 가장 간단하고 쉬운 일이죠. 당신 밑에서 굴복하게 된 절  위해서 만찬을 열어주지 않겠어요?”

“만찬이라. 하. 너도 좀 즐길 줄 아는데.”

“그야.”

아그리피나는 살며시 걸어와서 백공자의 턱을 슬쩍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자리에 앉아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공자 샤를은 자연스레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백공자 샤를의 우아한 얼굴을 바라보며 아그리피나는 깊게 입맞춤을 나누었다.

“저 또한 빛나는 거라면 무엇이라도 하기 때문이죠. 제가 당신의 장군으로 들어갈게요. 당신의 말로 존재할게요. 당신의 게임에서 승리할게요. 당신의 가치를 모르는 장군들을 패죽일 거예요. 루크레이차와 잭 더 리퍼를 산산조각 내고 당신의 유쾌한 인생을 위해서 일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저를 위해서 만찬을 열어주세요. 그래, 만 명쯤 되는 사람들을 기상천외하게 지배해주세요.”

“그게 조건? 나에게 들어오기 위한?”

“네. 그런 거, 게임의 시작으로 괜찮지 않나요?”

“괜찮지.”

백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빙그레 눈으로 웃는 샤를의 눈동자에 살벌함이 깃들었다.

“겨우 만 명. 그 정도를 지배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 좋아, 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지. 나의 위광에 복종하도록. 나의 부하가 된 것을 환영한다.”

백공자 샤를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있는 아그리피나의 정강이를 깠다. 아그리피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 시늉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번엔 백공자 샤를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네 주제는 파악해야겠지? 응?”

아그리피나는 백공자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게 저의 눈높이인가요?”

“그래. 네가 나를 선택한 것은 필연. 하지만 네가 나를 올려다 볼 수는 없지. 안 그래?”

“그렇군요. 이제부터는 언제든 당신의 앞에서 네 발로 기어 다닐게요. 그만큼, 저를 다뤄주실 수 있겠나요? 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정도로 잘난 분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이 과연?”

“기대해도 좋아.”

그녀의 머리를 꾹 누르고 백공자 샤를이 웃음을 터뜨렸다.

“팔다리가 다 붙어 있어도 바닥을 꿈틀거리면서 기어 다니게 하지는 않을 테니, 나의 자비심에 만족하라고.”

퍽이나 만족스럽겠지만 아그리피나는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래, 이 남자는 이런 오만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그리피나가 선택한 주인의 능력.

“자,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너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선 서둘러야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제가 바라는 걸 할 수 있고, 남은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니까요.”

***

이시현이 멈춰 섰다.

언제부터 이런 거리를 걷고 있었던 거지?

어쩐지 닥쳐든 쓸쓸함에 호텔에서 나와 집, 카두케우스 스쿨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러 먹을거리라도 사오려 했다.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한 대가로 공복이 찾아왔던 탓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걷던 거리가 바뀌었다.

사람의 인적이 없고, 어두컴컴해지고, 개의 우짖음이 멀리서 들려오는 곳으로.

이곳은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다.

아니, 있던가?

어둠이 짙게 내리깔리고 어두운 자줏빛 하늘과 땅의 경계가 겹쳐져 그림자만이 돌아다닌다. 음산한 바람소리. 으르렁거리고 컹컹거리는 개소리와 발을 질질 끌고 걸어다니는 이의 소리가 낮게 들린다.

“리퍼?”

이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저쪽에서 긴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오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잭 더 리퍼가 방긋 웃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좋겠죠. 안녕하세요, 주인님.”

무슨 일인지 몰라 경계하는 이시현을 바라보며 잭 더 리퍼가 말을 이었다.

“저를 맞이할 기회를 드리죠. 퀘스트를 드리는 거죠. 음, 무례하다면 좀 줄여줄게요.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떤가요, 이 예쁜 떨이상품 하나 가져가지 않으실래요?”

이시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