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2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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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흑공자와 백공자가 세상에 두각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이시현은 잠적했다.
그 선택이 옳은 건지 아닌지는 모른다. 예언가 따위 없고, 예언가가 있었다 해도 이시현에게 알려주었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시현의 선택은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부정할 리가 없었다.
그 동안 태양그룹은 몇 개나 되는 건물을 지었다.
건축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믿는 나라의 높으신 분은 태양그룹의 활동에 기뻐하며 여러 가지 특혜를 주었고, 그것으로 사적인 건축물까지 제작할 수 있었다.
태양그룹이 만든 학원이 그것으로, 이 학원에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함으로서 급부상한 다이아몬드 팰리스까지 지원을 했다.
두 개의 커다란 기업이 지원을 하고 도심 한복판에 생겨났다.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 그곳의 원장은 강주희, 태양그룹의 회장인 강의곤의 딸이었다.
결국 딸의 인맥 및 소꿉놀이를 위해 이런 학원을 만든 건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강주희는 부정했다. 임시로 원장은 자신이 맡고 있지만, 잠시 후에는 바뀔 거라고. 자신은 그냥 학원교사로 남거나 부원장 자리로 떨어질 거라고.
그에 흥미가 끌은 사람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규모로 운영될 것인가를 생각했다.
흥미가 있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원은 높으신 분들의 충분한 비호를 받아 정보가 통제된 채로 운영되었다. 그런 정보통제가 이뤄지고 며칠 후,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지위의 아내, 즉 영부인은 다이아몬드 팰리스에게서 받았다는 선물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이뤄지는 그것이 일반적인 수업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딱 한 명, 최초로 학원이 학생으로 받은 이는 정태우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인재로 유명했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였다. 때문에 학원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태우를 인터뷰함으로서 정보를 얻으려 했다.
정태우는 준수한 미모의 소년이었다. 청년에 가까운 신장에 잘 짜인 몸을 가진 남성미 넘치는 미남. 그는 다수의 기자들 앞에서 난감해하다가 이내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시험을 하나 쳤고요, 면접을 했고요, 그리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 시험을 치기 전에 이미 그쪽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요.”
정태우의 설명만 들으면 무슨 대기업 면접 보는 듯한 방식이었다. 흥미를 느낀 이들이 추궁하듯 재촉했고, 정태우는 이미 생각해두었던 대로 말했다.
“네. 학교를 재학하면서도 이곳을 다니라고 하더라고요. 음? 질문이 뭐였나고요? 아, 그것도 말해야 하나.”
정태우는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질문은 딱 한 개였어요. 그건 말하면 안 되죠. 프라이버시니까.”
그 대답이 더 기자들을 애닳게 했지만 정태우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어찌됐든 신기한 일이다. 학원이라고 이름을 걸어둔 주제에 대기업 입사시 면접처럼 사람을 모은다. 그리고 질문도 신기하다. 무엇을 가르쳐주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공부는 아니라고 대답했기에 의혹은 더욱 심화된다.
그 동안 학원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처럼 굴러갔다.
누구 하나 취재를 허락한 일이 없는데도 중요한 일이니 뭐니 하는 취급을 받으며 갖가지 생각을 썰로 풀어댄 것이다. 그 중에 한 명은 본래 있는 사실도 소설로 쓰는 것으로 지탄받는 인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가 한 말은 이 이름도 없는 학원이 ‘인재육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했다.
1. 다이아몬드 팰리스라는, 세상 유래 없이 급성장한 그룹이 후원한다.
2. 한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대기업 태양그룹의 회장 딸이 있고, 그 회장이 직접 높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학원의 이름을 딴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3. 학원운영을 위해 이만한 위치에서 이런 건물을 지었지만, 그들의 뒷 배경을 생각하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4. 학생을 모으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딱 한 명, 받은 학생조차도 비범하다.
5. 학원에서 모으는 건 인재이며 아마도 훗날 있을 사업 등에서 써먹을 어떤 임원을 뽑는 것이 아닐까.
소설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부하. 남성 부하를 만들기 위해서 이시현은 시험을 쳤고, 정태우는 시험을 치르는 시늉만 했지만 어쨌든 합작은 이루어졌다.
정태우는 학원의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찾으면 나올 수 있는 조금 사는 중상층 집안. 그런 집안을 위해 방탄차량까지 준비해서 배웅을 하고, 학교를 다닐 때도 호위를 한다.
그건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학원을 다닌다고 이런 지원을 해준다니.
도대체 이 학원은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가.
광고도, 홍보도 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사람들이 찾아와 취재를 해갔다.
마침내 학원은 그 이름을 알렸다.
두 마리의 뱀이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에 감겨 있는 모양의 심벌과 함께 이름이 정해졌다.
이름은 카두케우스 스쿨.
이시현이 생각하고 작명한 곳으로, 왜 하필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그만이 알고 있다.
“가끔 생각해보지만 현 세계는 강자에게 너무 많은 것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네.”
정태우는 말했다. 이시현은 긍정했다.
“스타트 라인이 다르면 할 수 있는 종류가 다르거든. 제국은 그런 점에서 좀 나은 편이야. 제국 역시 신분의 차이가 있고 가지는 것의 차이도 있으나 못 가진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체제도 후지고 바꾸려고 하는 야망도 없고 이 동네는 살면 살수록 한심할 뿐이군.”
스타트 라인이 다르면, 애초에 인생을 다시 살아도 불가능한 것들이 태반이다. 받아들인 정보의 양과 질부터가 다르다. 즐길 거리를 알고 있는 수준이 다르다. 이시현은 그런 면에서 정태우와 마찬가지로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의 차이가 있었다.
“동감은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렇지만 폭정을 마음껏 행하는 세계에서 온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시현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턱을 괴었다.
“당신네도 황제니 군주니 혈족이니 시민이니 분류가 있잖아.”
“황제폐하를 분류로 삼지 마라, 쓰레기 같은 새끼가.”
정태우는, 정확히는 정태우의 몸을 가진 고대의 군주 신석기는 눈을 사납게 뜨고서 일갈했다.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
“……무섭구만.”
황제에 대한 존경은 태연하던 남자를 화나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은하가 만들어낸 사상 최악의 제국 어스 엠파이어.
그 제국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끌어온 자 황제.
하늘, 만물, 죽음의 상징을 부여하고 스스로를 삼황제라 칭한 이들은 그들의 피와 유전자를 섞어 군주를 만들었다. 128명의 군주는 그들에게 주어진 여성들을 통해서, 혹은 그들 자신도 유전자를 채취하여 피를 이은 이들을 만들었고 그들을 군주의 피를 이어받은 귀족, 혹은 피를 물려받은 혈족이라고 불렀다.
5조에 이르는 인구가 모여 있는 제국. 그곳에서 5조의 머리맡에 있는 이가 단 세 명에 불과한 황제이며, 그 황제 아래서 제국 통솔을 위임받은 것이 128명의 군주다.
눈앞의 정태우는 신석기라는 이름을 가진 고대의 군주 중 하나.
군주들끼리의 내기로 인하여 이 세상에 떨어졌다. 아무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살던 그가 이시현을 만나 돈을 지원받고 머물게 되었다. 머물기로 예정된 기한은 지났다. 그럼에도 그는 남아 있었는데 휴가의 개념으로 머무는 듯 했다.
불평불만이 늘었고 이 사회가 싫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면 돈 많은 이들이 투정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흑과 백이 날뛰고 있더군. 본래라면 길게 이어졌어야 하는 게임이었을 거야. 하지만 탐닉의 수단, 즉 회색을 끼워 넣으면서 그들이 상정한 시나리오는 무너졌고 시나리오가 제 손을 떠나기 전 급히 수습해서 마무리 짓겠다는 결론으로 나왔더군.”
“그런가?”
“흑은 주중에 끝내려고 들 거다. 애초에 그놈에게는 측천이 있어. 전면전으로 나가도 패배하진 않아. 장군 셋을 상대하는 여자니까. 그동안 해온 게임의 보상을 모두 측천을 유지하는데 써왔지. 그만큼 강력한 패고, 그의 성정에도 잘 맞아 떨어져.”
“측천이라……. 공정한 게임을 통해서라면 그렇게 균형을 무너뜨리는 녀석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시현의 물음은 일견 타당했다.
정태우는 그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정한 게임은 재미없지. 불균형하고 어딘가 공략해볼만한 약점이 생기고, 자신이 약하면서도 혜택을 받는 그런 류가 더 재미있어. 게임은 스포츠가 아니잖아. 왜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게임을 하면서 쌓아올린 실력과 실적을 모두 소비하고 다른 게임을 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이건 아니잖아.”
“어째서지?”
“그러면 탐닉할 수 없으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