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09화 (109/141)

< -- 109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원 구속이나 구속 전 병이 나 휠체어 신세 때문이 아니라 암살 때문이었다. 머리든, 심장이든, 목이든. 어쨌든 사람이 맞으면 죽어버리는 약점. 그 약점이 뜯겨나가 즉사한다. 수십 명이 넘게 죽었다. 시작은 아마도 서울지역의 조폭들과 인천지역의 조폭들이 맞붙으려 할 때. 그때 이미 전투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사상 최대의 체포작전이 펼쳐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체포 작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곳에서 지휘권을 가진 이들 전원이 저격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저격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한 걸까. 신체 일부분이 뜯겨나간다. 마치 종이에 비비탄 총알을 날려 구멍을 뻥 하고 뚫어버리듯이 신체 일부가 뜯겨나간다. 도구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죽일 때 사용했던 흉기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주먹보다 작은 뭔가를 던졌고 그것이 육체를 뜯어낸 것이지만 어떻게 회수를 한 건지 증거물품이 남아있지 않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암살.

사람들은 정의다 뭐다 하면서 환호하고 있고,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신임을 못 받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주식이 대폭락하고 사회분위기가 흉흉해진 것을 생각하면 그리 좋아할 일도 못 되었다. 게다가 인천지역의 조폭들을 일소한 서울지역 조폭이 득세하고, 유래 없이 난리를 부리는 사실은 서민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조폭들은 살맛이 났다. 조폭들 중에서도 지위가 있고 흑공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이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흑공자는 모처럼 살육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일까. 꽤 너그러웠다. 사실 그는 부하에게는 제법 잘 대해주는 성향이었다. 물론 그 잘대해주는 부하의 기준이 ‘많이’ 높은 편이고, 그 잘대해 준다는 것도 목숨만 붙여준다는 의미가 강했지만. 어스 엠파이어식 기준대로 하면 죄다 뇌에서 육체를 움직이는 부분만 남기고 다 제거, 살아있는 인형으로 만들어 굴려야 할 수준이었겠지만, 나라를 흔들고 있다는 즐거움 때문인지 호화롭게 돈을 뿌리고 마음껏 하도록 했다. 뒤처리는 자신의 무장에게 맡겼다.

경찰들이 죽어나갔다. 높으신 분들의 머리가 뻥뻥 뚫린다.

조폭들은 유래 없는 번성기를 맞이했다.

백공자 샤를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갑작스런 유령소동.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는다.

막대한 소송비용을 낼 생각조차 하고 공중파를 타고 퍼진 동영상.

유령들이 연출한 오페라 ‘엘리자벳’은 말 그대로 왜 내가 저걸 라이브로 보지 못한 걸까 하고, 그쪽 관련 사람들을 통탄스럽게 했다. 라이브로 그 무대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행복한 임종을 맞이하고, 유령들의 여왕 또한 사라지려 했을 때 갑작스럽게 재계에 두각을 드러낸 청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나누고, 짙은 입맞춤을 나눈 후 여왕은 떠나갔다.

그 후 전 세계에 알려진 그의 모습. 굽이치는 금발에 파란색 눈동자에, 마치 조각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모. 덧붙여 BP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그를 세계의 황태자처럼 보이게 했다.

한 명은 어둠과 폭력의 황태자로서, 다른 한 명은 빛과 신비의 황태자로서 군림할 때.

이시현 또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건물을 만들어.”

서울 각지에 태양그룹의 이름으로 된 건물이 올라간다. 건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손적이 진법을 새긴다. 그리 대단한 진법은 아니지만 싸우는 데는 반드시 유리해진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학원 건물에는 미노가 대기했다.

그녀가 무장으로서 받은 이름은 미노타우로스.

크레타 섬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머리가 소인 식인 괴물이었던 자다. 그를 내보낼 수 없고,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어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미궁.

<심처: 미궁>

심처는 주변 혹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신전과 넓은 범위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성역으로 나뉜다. 미궁은 신전과 성역을 교묘하게 섞은 곳으로, 표현하자면 신전에 해당한다.

‘이름’을 가진다는 건 그만큼 유래가 되는 자의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미노타우로스, 즉 미노의 이름만을 가졌을 뿐인데 D급 심처를 획득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특기를 얻는 것은 확실하지만 미노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언제 획득했을지 몰랐다. 고문관을 통해 <수호>의 특기를 가지게 된 미노는 손적과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단련했고, 미노가 손적의 뺨을 슬쩍 긁었을 때 손적은 ‘이름의 힘’이 주는 존재로서 상대했다.

그 후 미노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특기를 개발했다.

<수호>는 심처 특기를 지니게 되었고 심처의 이름은 미노타우로스의 이름과 맞물려 미궁(迷宮)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심처: 미궁>의 능력은 간단하다.

타인의 오감을 봉함과 동시에 자신의 오감을 증가시킨다.

더 쉽게 말하자면 상대의 오감을 흡수한다. 오감이 초월적으로 증가하고 그렇게 발전한 오감은 미래예지에 이른다. 상대는 절반, 아니 그 이하로 줄어든 감각에 적응하느라 허덕이는 동안 미궁에서만 가능하지만 <통찰>부터 시작해서 <미래예지>, <육감>, <초감각>, <시간제어> 같은 특기가 다닥다닥 달리는 미궁의 괴물이 달려든다.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의 존재는 신화 상에서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스 엠파이어에서 육성된 장군은 충분히 화려하고, 원본을 뛰어넘는다. 신의 위명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괴물이나 영웅 정도는.

아마도.

앞으로 태어났고 태어날 모든 인류의 최종형과도 같은 하늘의 황제가 존재하고,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장군인 한, 그들의 힘은 끝없이 뛰어나고 강대하다.

“흑공자고 백공자고 다들 뭘 해도 좋아. 얼마든지 잘난 체하라고 해. 하지만 승리하는 건 이쪽이야.”

흑공자와 백공자는 싸움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자기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날뛰고 있다. 이시현은 이것을 ‘스트레스 발산’이라고 보았다. 손적도 그리 판단했다. 그들을 자세히는 몰라도, 대강은 알고 있는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인 손적은, 그들이 지금껏 조용히 힘을 길러왔다는 걸 믿기 어려워했다.

그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 동안 실로 오래 참았다고 할 수 있다.

뭐 서로 적대하는 사이이지만, 먼저 도발하고 공격하지 않는 이상 반격할 필요가 없으니 시간을 죽이며 지냈을 터. 그래도 꽤 얌전히 전략을 가다듬고 상대할 수단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을 만족시키기엔 어려웠다. 그들 특유의 성격이 표현되지 않았었던 탓이다. 그들은 이제야 전력이 갖추어졌다고 판단하여 사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흑공자와 백공자, 둘 모두 최소한 장군은 한 명씩. 그리고 장군에 비견할 이가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이건 확신은 아니다. 하지만 흑공자와 백공자쯤 되는 이들이 겨우 카드를 ‘하나’만 가지고 배팅할 리는 없다. 이시현의 판단이었다.

그들은 신나게 날뛰고 있다.

그럼 이제 이시현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시현은 그들이 날뛰기 전에 이미 날뛰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시현이 힘을 기르기 위해 잠복해야 할 차례다. 흑공자와 백공자와는 순서가 반대다. 남자 심복도 얻었다. 그리고 전장이 될 ‘집’도 짓고 있는 중이다. 집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지만 ‘판’은 짜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풀면서 이제 마음껏 자신들의 장기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이시현은 전장을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인재를 모을 때다. 자신의 세력을 늘릴 것이다.

“그동안은.”

이시현은 쿡쿡 웃었다.

“그 동안은 잠시 너희들끼리 놀아라.”

아주 잠깐은.

“그게 너희들의 마지막 휴일이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

임정아는 소위 말하는 거마 대학생이었다.

즉 다단계에 빠진 20대라는 의미다. 어릴 적부터 귀가 얇고, 주변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친한’ 지인의 부탁에 못 이겨 그런 곳으로 들어갔고, 몇며칠 이야기를 듣다가 대출까지 받아서 이상한 용품을 한가득 사 버렸다. 판매할 수는 없었고,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비로소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빚이 2000만 원 이상 늘어난 상태. 갚을 도리가 없었다.

회수팀이 찾아왔고, 그녀는 잡혀갔다.

그리고 그들의 상냥한 대화를 통해 몸을 팔게 되었다.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이가, 회사의 상관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것을 30분 이상 지켜봐야 했던 그녀는 그들이 ‘협박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든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갗이 찢어지고 이빨이 후둑후둑 떨어지고 눈이 돌아간 사람을 피투성이 바닥에 떨어뜨린 후 그의 상관은 느긋하게 돈의 회수를 요청해왔다.

그녀가 소위 말하는 ~~촌으로 팔려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녀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그것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임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도 부족했다. 그녀의 부주의가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임정아가 나락에 떨어져야 한다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덩치 큰 이들이 그녀를 빼왔다.

아무리 봐도 ‘상냥한 회수’를 목표로 하던 회사의 상관보다도 험악해보였지만, 그들은 딱히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본래 임정아가 빌렸던 6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뗀, 300만 원만 던져주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며 화목하게 악수해왔던 탓이다. 친절한 회수를 목표로 하던 상관은 친절한 우호를 관유하던 조폭들에게 굴복했다. 그들이 워낙 친절했던 탓일 터였다.

임정아는 떨면서 그들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임정아는 거기에 있는 다수의 여자들을 보고, 겁을 먹었다.

그녀들 앞에 한 명의 소년이 나타났다.

검은 머리를 기르고 눈매가 날카로운, 어찌 보면 여성으로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굉장히 잔인해 보이는 미소 때문에 몸서리가 처지는 자였다. 창백한 피부에 검은 와이셔츠, 검은 바지, 반대로 하얀 넥타이를 맨 것이 굉장히 아이러니해 보이는, 중학생에서 고교생 정도로 보이는 이였다.

“세상엔 쓰레기들이 이렇게 많이 있군. 구제불능의 쓰레기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 쓰레기를 갈고 닦아서 더욱 더 큰 쓰레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저건 무슨 말일까. 임정아는 망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쓰레기를 제조할 수 있는 쓰레기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눈 앞에 벽이 쳐졌다. 두 명씩, 나눠 격리되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발치에 칼이 떨어졌다.

“찔러. 죽여. 이기는 년만 살려주지. 아, 시간제한은 60초. 둘이 남으면 둘 다 죽는다.”

임정아는 생각했다.

이거 진짜?

맞은편에 있던 눈밑이 까만 여대생이 칼을 들었다. 몸을 떨고, 신고 있던 스타킹도 다 뜯어져 있었지만 임정아보다는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모양이었다. 임정아는 그것을 보면서 하하, 소리내어 웃고는 자신 또한 발치에 떨어진 비수를 쥐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외침을 들으며 임정아 또한 비수를 휘둘렀다.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제발, 이게 꿈이라면 깨었으면 좋겠어.

꿈은 깨지 않았다.

임정아는 꿈속을 거니는 듯이 미소 지으며 비수를 양 손목에서 뽑았다. 양손을 머리 앞에서 교차한 후 비수를 역방향으로 쥐었다. 30명의 여자를, 그 30명이 탄생하기 위해 300명이 넘는 여자가 죽고 나서야 획득한 힘. 쓰레기를 양산할 수 있게 된 힘을 임정아는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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