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07화 (107/141)

< -- 107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특기란 일종의 게임 스킬과도 같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적에게 130데미지를 입힌다, 그런 것.

물론 만들어내는 것의 한계는 있었다.

특기의 등급이 최고급을 뜻하는 F급이라고 해도 특기에 불과하니까. 군주의 권능과는 범위나 효과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들에게 있어서 가장 뛰어난 특기라는 건 분명하고 효율성도 어마어마했다.

어쨌든 측천은 주인이 바뀌면서 페널티를 엄청나게 먹었고 특기의 대다수가 격이 떨어졌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도 내 것>은 F급 특기인 <무소불위>의 하위 특기. C급 특기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고, 마법적인 힘 혹은 초능력이 갖추어져야 하며, 위력에도 제한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하루가 지나면 만든 것이 사라져 사용할 수 없다. ‘생각’과 ‘말’만으로도 무제한의 무기를 만들었던 때와는 다르다.

측천에게는 기분이 나쁜 것이 당연할 터.

광선검 같은 것을 휘두르던 검사가 숫돌을 갈아서 써야하게 되었으니 짜증나는 건 당연하다.

측천은 피로 물든 비단 공을 쥐었다. 섬섬옥수에 핏물이 맺힌다.

더러운 피가 묻은 것에 기분 나빠하면서 측천은 와인드업을 했다. 세 번째로 공을 던지는데 던질 때마다 자세가 좋아진다. 신체의 세밀한 세포가 한 번 던질 때마다 최적의 움직임과 감각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자세가 맞춰졌다 싶으면 월등한 신체능력은 백 번, 천 번을 던져도 그 자세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던질 수 있게 한다.

무식하게 던졌기에 장군이면서도 빠듯함을 느꼈던 첫 번째, 두 번째는 머리라는 큰 표적이 아닌, 보이지 않고 작은 심장을 꿰뚫었다. 세 번째는 이제 매우 야구의 투수다운 자세를 취하고, 훨씬 적은 힘으로 세 번째 사람의 목을 끊는다. 머리와 몸, 그 사이를 잇는 목이 사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건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이 불합리한 무력에 처참하게 죽는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세 명이나 되는 상관들이 죽었다. 그 세 명이 이곳의 경찰병력을 지휘하는 1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전투경찰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급히 상부로 연락을 하고, 무전을 타전한다. 측천은 눈을 감았다. 무전의 전기신호가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측천이 눈을 떴다. 비단 공을 움켜쥐는데, 핏줄과 힘줄이 가느다란 손목에 솟아날 정도다.

“그러면 곤란하지. 안 돼. 여기서 죽는 게 도리어 자비를 베푸는 길일걸? 나의 아드님께 지배받는 것보단. 후후, 나의 주인님이자 아드님은 내가 생각해도 좀 잔인하기는 해.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 친히 여기서 죽여주지.”

측천은 비단 공을 내던졌다. 비단 공은 음속을 넘은 속도로 날더니 순간 사라졌다. 그녀가 목표하고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하여 나타난 그것은 무전을 통해 명령을 지시하는 이의 입을 꿰뚫고 후두부로 튀어나와서 사라졌다.

이상상황.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된 죽음.

전투경찰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측천은 다시 돌아온 비단 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늘을 향해 내던졌다. 끝없이 상승하던 비단 공은 이윽고 마찰열에 의해 완전히 타들어가 사라졌고 그것으로 범행도구는 사라졌다.

측천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 패거리가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두 명의 여자와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소년이 한 명.

소년을 중심으로 일점돌파를 시도한 서울의 조폭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고 인천을 제압, 도전해온 두목 앞에 섰다. 소년, 흑공자 게인은 직접 손을 썼는지 끝이 완만하게 굽은 하키 채를 들고 있었다. 하키채의 끄트머리는 핏물범벅이 되어 있어 몇 번이고 써왔다는 걸 증명했다.

흑공자 게인을 마주보는 남성은 야성적이고 야만적이며 살벌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굉장히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쓰레기. 네놈이 내 발걸음을 막는 거냐?”

“우주 외계인주제에 지구를 만만히 여기지 마라.”

“하.”

흑공자 게인이 소리내어 웃었다.

“대강 상황을 알고 있는 모양인데. 완전히는 모르나보군. 뭐,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너 따위는 페널티에 불과하기에. 아무튼 내 길을 방해했으니 죽어라, 쓰레기. 살려두지 않아. 너는 그냥 죽여주마. 귀찮고, 열받고 짜증나고, 무엇보다 고문해봐야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흑공자는 하키 채를 들어 휘둘렀다.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번개 같은 출수, 그리고 회피. 하지만 바람결에 이마 일부가 약간 찢어졌고, 핏물이 흘렀다. 사내가 으득 이를 갈며 품속의 검을 꺼냈다. 사시미라고 불리는 회칼. 흑공자는 하키채를 양손으로 쥐고 흐릿하게 웃었다.

“네놈의 정보는 알고 있어. 가족이 있더군. 애인도 있었고. 범해주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주겠어. 공공변소로 사용해주지. 그리고 최후의 최후까지 써먹겠어. 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며 갖은 증오를 안겨주지. 내가 너에게 보이는 성의다.”

“지랄 마, 이 개새끼야!”

“내가 개새끼긴 하지. 나도 인정해. 그러나 어미가 개지 나는 개가 아니야.”

흑공자는 태연하게 냉소하며 상대를 향해 뛰쳐나갔다.

두 명의 남자가 맞붙었다.

흑공자가 처음으로 육박전을 선보인다. 측천은 하늘 위에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싱긋 웃었다.

자신이 배를 아파 낳은 아들이 이따위 시골 원주민 따위에게 질 리가 없다.

흑공자에게 승리를 건 마성의 군주가 패널티로 적 혹은 방해물을 만들어냈고, 그 방해물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흑공자 게인과 사내는 살아온 삶이 다르다.

무게가 다르다. 경험이 다르다. 흑공자는 어스 엠파이어의 남자다. 그리고 귀족이며 군주위를 노리는 후계자라는 높은 지위에 있다. 그가 직접 선두에 나서서 전쟁을 벌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키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이런 시대의 남자 정도는.

“크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그리고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과 비슷하지만, 주민조차 아닌 남자 정도는.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이미 죽어버린 사내의 위에 올라타 광기를 보이는 흑공자의 모습에서 전투의 끝을 본 사람은 적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흑공자 게인이 얼굴에 튄 피를 핥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치에는 육괴가 되어버린 살덩이가 약하게 부들거리고 있었다.

“싸움 끝내. 반항하면 다 죽여.”

그는 웅성거리며 물러나는 전투경찰들을 가리켰다.

“저놈들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처리해.”

흑공자 게인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에게 말을 건 사내를 올려다보고 그의 무릎을 발로 걷어차 자신의 시선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돌아가서 네놈의 사촌 여동생과 아까 죽은 새끼의 가족들을 끌고 와. 가족 및 애인, 주변 사람 전부. 주제파악을 못한 탓이다.”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두목이 죽어버린 이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치지 않고 싸우던 이들은 눈치 볼 것 없어진 이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숨통이 끊어질 정도였다.

“돌아간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소년, 흑공자 게인이 혀를 날름 핥고서 말했다.

“시간낭비였어.”

“시간낭비라고 해도.”

측천은 그를 내려다보면서 황홀한 듯 미소 지으며 손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당신의 그 모습은 실로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나의 주인님.”

“측천!”

흑공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방해하는 것들을 모조리 처리해라!”

폭력조직을 이끌고 있는 흑공자를 방해하는 것들은 경찰을 말하는 것이다. 측천은 대답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움켜쥐었다. 손아귀에서 공기가 압축되는 것이 보인다. 주변 대기가 일그러지고 압축되어 있다. 측천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공으로 사람의 몸을 뚫어버릴 수 있지만 공이 없이도 죽이는 건 문제 없다.

공기총마냥 손아귀 사이에 공기를 압축해서 그걸 집어던지면 된다.

그녀는 실제로 한 명의 얼굴을 향해 공기의 공을 던졌고 격살시켰다. 측천은 이걸 거듭해야 한다는 것에 약간의 피로를 느꼈지만 다시금 대기를 압축해 던졌을 때는 피로를 잊어버렸다.

흑공자는 세력 대 세력으로 몰아 전투를 일으키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전투경찰들을 물러나게 하며 자신의 능력을 알렸고, 적의 두목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럼으로써 상대에게 공포를 안겼다. 적으로 정해졌던 ‘페널티’는 사망했다.

흑공자 게인은 자신보다 수준이 한없이 낮다고 해도 적이 된 이상 살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백공자는.

백공자 샤를은 퀸을 불렀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가면무도회를. 페널티도 예술로 승화해보지.”

백공자 샤를의 뒤에 선 퀸이 싱긋 웃었다.

하얀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머리에 쓴 황금의 티아라를 양손으로 들어 머리에서 떼어냈다.

“쿡쿡, 저의 공자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변화시켜 볼까요?”

“변화라니, 나는 보수주의자야.”

백공자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오만하게 대꾸했다.

퀸이 입가를 가리며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웃었다.

“그러면 이대로 놔둬요? 조용히? 뒤진 채로?”

“썩은 보수는 도려내야지. 그게 진정한 보수지.”

“변화 맞네요, 뭘.”

“보수 맞아. 자기 유리한 쪽만 놔두고 쳐내고 변화시키는 건.”

퀸은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백공자가 검지와 중지를 붙여 세운 후 슬쩍 들었다.

“여기 마실 것.”

뜨겁게 김을 올리던 홍차를 찻잔에 들고 대기하고 있던 여성이 자신의 젖을 짜서 톡톡, 모유를 홍차에 섞었다. 빠르게 달려 그에게 가져다주는 것을 보면서 퀸 역시 손가락 두 개를 붙여 슬쩍 올렸다.

“차가 식기 전 다녀오겠습니다!”

“……너 그런 캐릭터였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