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6 회: 9> 마지막이 가깝다. -- >
9> 마지막이 가깝다.
흑공자는 요즘 짜증을 많이 부린다.
일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도 기타 군주의 수작에 일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되었다. 짜증나는 날의 연속. 시원섭섭하게 백공자와 한 방에 맞붙었으면 좋겠지만 그의 미학은 그것을 반대한다. 일격에 모아서 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다. 그들의 전쟁이란 일발역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노리고 도박을 하지 않는다. 그의 성향은 곧 백공자의 성향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풀리지 않으면 꽤 답답한 진행이 이어진다.
그것에 흑공자 게인은 열이 올라 있다.
“하는 수 없지.”
흑공자는 더 이상 이런 식의 ‘주위간섭’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를 지원해준 군주의 무장을 잃은 대가로 페널티를 겪고 그것을 무마하느라 의미 없는 시간을 썼다. 그 동안 퀘스트도 몇 개 받았는데 완벽히 해결하지 못한 까닭에 보상도 깎였다. 제대로 된 무장은 다섯에 불과. 그 외는 무장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장군급에 가까운 무장을 잃지 않았었다면……. 모르드개를 너무도 허무하게 잃어버린 흑공자는 혀를 찼다. 그녀를 ‘포’로 삼아 다른 ‘포’인 측천과 함께 운용했다면 백공자를 포위 압박할 수 있었을 터였다. 물론 지금도 유리하긴 하다.
지금 서로의 힘으로는 이쪽이 유리하다. 우선 측천이 그의 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놈에게도 장군이 있지만 측천에 비하면 많이 밀린다. 그 측천을 이용하여 추가 퀘스트를 한 덕분에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무구도 얻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이득도 얻을 생각이다.
게임은 게임답게. 변수는 제거하고, 거기다 포석을 위해 말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말판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여줄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훼방 놓지 말라고. 그냥 지켜만 보는 걸로도 끝내주는 게임을 해줄 거라고.
흑공자는 이미 경찰병력이 포진해 있는 거리를 보며 귓가를 매만졌다.
“측천.”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특수한 주파수의 무전기를 통해 측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주인님.”
“주위관찰은 끝났나?”
“네.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측천의 물음은 타당했다. 흑공자 게인은 주변에 단 두 명의 무장, 말만 데리고 있으니까. 흑공자의 곁에 측천은 없다. 그리고 그런 두 명만을 남겨둔 채로 조직간 항쟁이 있을 항구의 외진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미 흑공자 게인이 지배하고 있는 조폭들이 모여 있었다. 맞은편에도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형님, 괜찮겠습니까?”
흑공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 이를 바라보았다.
움찔하면서도 묻는 것은 불안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
“공권력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거 분명히 일망타진 될 겁니다.”
“이해한다. 겁쟁이.”
흑공자 게인은 가늘게 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네놈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면 그따위 약한 소리는 해서는 안 되었을 터. 네놈에게는 친척 여동생이 있다고 했지. 바쳐라.”
“……네.”
아니라고 말하면 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고문받기에 그는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다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흑공자에게 굴복한 이들 중 한 명으로서 한 조직의 두목이었다. 물론 몇 명이나 되는 조직원이 사망한 후 비참하게 굴복했다. 고문도 받았다. ‘신경’이 튕겨지는 벌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의 표정은 그때 이후로 굳어서 펴지지 않는다.
“하지만 충성이겠지. 죽이지는 않겠어. 실력을 보여주지 않은 탓도 있지. 하긴, 그렇겠지.”
흑공자는 킥킥 웃었다.
“측천.”
“네. 주인님.”
“죽여.”
허공에 투명한 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선 여인이 있었다. 두 조폭이 맞붙기로 된 항구의 황폐한 공단에서 1000m도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 높이가 300m에 이르는 허공에 느긋하게 올라선 궁장차림의 여성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엇갈리게 엮은 용 모양을 한 비녀에 걸친 장신구가 잘랑잘랑 밤바람에 흔들렸다.
큰 가슴에 어깨가 다 드러난 궁장. 그리고 큰 신장과 치마의 옆이 트여 치골에서부터 발까지 드러나는 굴곡이 무척 매력적이다. 비녀에 궁장, 거기다 사향주머니와 버선 등을 보아서는 어울리지 않는 가터펠트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치마 사이에서 드러났다. 측천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옛 중국의 황족들이 정원에서 가지고 놀았다는 공이다. 발로 차기도 하고 던지며 놀기도 하는 비단 공을 한손에 움켜쥔 측천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낮추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삼, 이, 일.”
“쳐.”
흑공자의 선언. 조폭들이 움직인다. 맞물려 반대편에서도 몰려든다. 둘이 서로 치고 박기 전에 모였지만, 확실한 분쟁이 일어날 때까지 대기하던 전투경찰들이 바빠졌다. 측천이 자세를 낮춘 후 공을 쥔 손을 뒤로 뺐다.
“우와아아아아악!”
“이 개 자식들아아아아아!”
갖은 고함과 괴성이 오가는 한 순간.
측천의 손에 쥐어진 비단 공이 전투경찰들의 내부, 활발하게 무전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던 경찰청창의 머리통을 쓸고 지나간다.
경찰들은 망연자실 그 모습을 지켜본다. 엄청난 바람을 몰고 닥쳐든 비단 공은 한 사람의 머리통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경악, 당황, 수습하기도 전에 몰아닥치는 질풍. 바람은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전투경찰들을 후려치고, 머리가 달아난 시체는 기우뚱 하더니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
“기, 기습이다아아!”
측천은 전력으로 공을 던진 투수가 어깨를 빙빙 돌리듯이 동그란 어깨를 반대편의 손으로 짚고 몇 바퀴 돌렸다. 어깨를 푸는 시늉을 해 보이는 것이다. 진짜 아픈 것은 아니고. 그녀는 작정하고 돌멩이를 던지면 어스 엠파이어를 위협하다 골로 간 문명의 우주전함도 뚫는다.
“소싯적에 가지고 놀던 걸 이제 와서 사용하려니 힘드네. 여기서도 포병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으면 좋았을걸.”
측천은 투덜거리고는 재차 품속의 공을 꺼냈다. 아까의 공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비단 공. 머리를 박살내고 그녀의 품속으로 돌아온 공은 그녀의 특기에 기반 한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도 내 것>. 특기치고는 참, 작명이나 뭐나 좀 그렇긴 하지만 활용하는 이의 수준에 따라서 효율적인 특기가 될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자, 당이라는 나라의 황제이자 중국 최초의 여황제.
그 이름과 힘을 가진 측천무후의 지배력은 같은 성향을 지닌 이들보다 월등히 강하다.
황제를 수호하고 그의 곁에 있던 장군, 측천무후.
게다가 그녀의 명을 사용하는 다른 장군이 없는, 넘버링을 달고 있는 장군이다. 그녀만큼 강력한 이는 같은 황제의 장군 중에서 찾아야 형평성이 맞을 정도의 강자. 엄밀히 말하면 어스 엠파이어에서 손꼽히는 최강병기 중 하나인 것이다. 말 그대로 군주위를 진지하게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같은 장군이라고 해도 차원이 다른 실력자다.
그런 그녀가 어스 엠파이어 주민들의 행운을 노리는 복권을 통해 한 명의 남자에게 전해졌고 그것이 그녀의 한계를 제약했다. 굳이 현 시대에 비유하자면 ‘외교통상부 차장급’을 복권으로 전 국민에게 뿌리고 뽑힌 단 한명을 차장에 앉히는 것과 같은 것. 돈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힘과 권력을 쥘 수 있는 그런 권한이다.
물론 제 아무리 장군이며 최강의 무력이라고 해도, 결국은 무기. 사용하는 이의 위세나 권능에 따라 그 힘은 감소된다. 측천의 강함은 여전하지만 황제의 곁을 지키던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떨어진 셈이다.
황제를 섬기던 장군이 군주의 장군이 되는 것도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할 정도의 변화인데 그녀의 주인은 군주조차 아니다. 후계자. 그녀를 아는 이들은 얘 왜 이렇게 등신 같아졌냐며 의아해한다. 한때 같은 반열에 서 있던 황제의 장군들은 측천을 보면(볼 기회도 좀처럼 없겠지만) 알아보질 못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황제의 장군 이‘었’고 군주의 장군 임과 동시에, 흑공자의 장군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반 장군급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나 그러고서도 그녀는 무측천이다.
그녀는 흑공자가 탐닉의 군주가 되기 위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장기의 말로서 포지션을 정했고, 포병이 됨으로서 여러 가지 능력을 제약받았다. 거기다 게임에 참여시키기 위해 수단을 사용한 탓에 떨어져나간 특기도 다수.
측천은 말 그대로 페널티 중첩이 된 상황에서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다. 같은 장군 셋과 정면으로 맞서서 죽지 않고 생환할 수 있다. 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지만 작정하고 달려든 장군 셋도 그녀를 죽일 수 없다. 황제의 장군이었다는 타이틀은 끝없이 능력이 하락해도 이만큼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 그녀가 다음으로 권한이 강한 이를 목표로 지정했고 야구공을 던지듯 몸을 비틀어 비단 공을 던졌다.
이번엔 심장이 뚫렸다. 심장이 완전히 뽑혀 나가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 피분수를 뿜는다.
“저격이다! 찾아!”
“어디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죽었어! 죽었다고!”
전투경찰들이 기습을 가하기도 전에 벌인 저격.
저격이라고 하기에는 불합리한 점이 많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측천은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꺼낸 비단 공은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고운 얼굴에 약간의 짜증이 깃들었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도 내 것>은 본래 이런 이름이 아니었다.
본래는 <무소불위>라고 칭해지는 F급 특기였다.
<무소불위>는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타인이 가진 것을 제한 없이 빼앗아서 사용하며, 심지어는 상대의 생명조차 제어하고 운명조차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초절한 특기다. ‘핵폭탄’을 생각하고 위력을 대강이나마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녀의 손아귀에는 핵폭탄이 나타난다. 자세한 지식을 알 필요는 없다. 그저 사물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리고 부르는 명칭을 말하며, 효과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
애초에 특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어떤 기능 및 효과를 상정하고 그것을 불러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