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3 회: 8.5> 고문관. -- >
8.5> 고문관.
어스 엠파이어는 절대황제(絶代皇帝)라고 불리는 세 황제에 의해 지배된다.
하늘의 황제, 만물의 황제, 죽음의 황제.
이 세 황제는 각기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하나 만은 확실했다.
제국 어스 엠파이어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초인들.
어스 엠파이어의 사법, 입법, 행정은 모두 세 황제에게 귀속된다.
뿐만 아니라 군권에서부터 모든 제반 사정, 업무, 그리고 국민의 생명까지도 황제가 소유하는 게 명시되어 있다.
그만한 지위를 누리는 것은 절대적인 힘이 있거나, 혹은 국민들의 성격이 호구 같지 않는 한 무리다. 그리고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호구라는 말을 세상 가장 큰 모욕으로 알아듣는 이들이며 세 황제의 노예와도 같은 삶에 순응하지 않는다.
물론 분쟁은 없다.
분쟁 따위 있을 리가 없다.
하늘의 황제가 지닌 무력만으로 어스 엠파이어가 멸망에 이를 수 있고, 만물의 황제가 하는 명령 한 번에 어스 엠파이어의 모든 인간들은 언어를 잃어버릴 것이다. 또한 죽음의 황제는 기술 전반을 관리한 자. 어스 엠파이어의 몰락을 손가락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초래할 수 있는 이들이기에 그들은 황제의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복종을 당연시 한다.
그럼에도 저항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저항한다고 해서 황제가 자신의 권위를 침해당했다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황제들에게 있어서 그런 저항은, 반란과 분쟁은 뭣 모르는 손주가 부리는 소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이렇게 얌전한 이들이었나?
우리 은하가 만들어낸 사상 최악의 문명이 어스 엠파이어인데, 세 황제가 절대자라고 해서 그 절대에 도전하지 않았던 건가?
우리들은 진짜로 인간말종인데. 제어가 안 되는데. 황제가 아무리 잘나도 그거 어쩌라고 이러는 놈들인데? 우리들 세뇌 당하고 있는 건가? 우리들은 병신인가?
의아함이 배가 되었고 그 의아함이 추문이 되어 황제의 귀에도 들렸을 때 세 황제는 옥좌에 앉은 채로 빙그레 웃었다. 하늘의 황제가 눈짓하고 죽음의 황제가 웃음을 손바닥을 덮어 가렸을 때 만물의 황제는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이들에게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삭제한 역사’를 전했다.
‘삭제한 역사’.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이 세 황제를 못마땅해 하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쾌락이 반란임을 깨닫고 단호히 배반의 줄을 당길 때, 오만이 극에 달해 황제와 1:1로 싸움질하고 싶어 욕설 적힌 편지를 보냈을 때, 그 외의 여러 불만과 반란의 이유가 존재했을 때.
세 황제는 그렇게 죽인 이가 1조가 넘었고 세 황제가 추구하던 ‘자유와 만족’조차 잊고서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제국인들을 보고서 일부러 처형의 역사를 삭제했다. 세 황제는 어스 엠파이어의 그 어떤 군주와 주민들이 생각한 처형법보다 잔혹하게 처형했고 고문했고 살해했으며 괴롭게 만들었다.
이후 어스 엠파이어는 딱 한놈의 반골(反骨)을 제외하고서는 세 황제에게 무릎 꿇었다.
공포와 경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어떤 짓을 저지르든 ‘세 황제보다는 못함’에 존경하고, 더욱 더 자유와 만족을 위해 날뛰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한계를 멋대로 정한 그들 자신을 책망하고, 더욱 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다 신을 자처하는 놈이 나오고 네 번째 황제라고 자처하는 놈에 같은 군주도 살해하는 미친놈이 나오기도 했으나…….
고문관은 어스 엠파이어에 드물게 존재하는 군주령 소속의 기관이다.
어스 엠파이어의 생활은 대개 자기만족이며, 취향을 즐기는 것이고,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며, 남을 괴롭히는 것이 주가 된다.
고문관의 조교사는 여러 가지 괴롭힘을 통해서 고문받는 이를 단련하고 특이한 성벽을 각성시키고, 매우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군주들이 신뢰하는 부하들로서 숙련된 경험과 다양한 여성을 만나야 한다.
너무 강해지는데 몰두하다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거나, 혹은 예쁘기는 한데 그것 외엔 볼 것 없는 이들을 각종 기교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정신개조, 감각개조, 신체개조 등을 통해서 조교사들은 의뢰인의 요청에 충실히 따르니 많은 이들이 고문관을 찾아 자신의 무기들을 더욱 훌륭히 벼려낸다.
물론 돈이 든다.
괜히 군주령이 아니다.
탐닉의 군주가 되기 위한 게임에 참여한 흑공자도 한때는 조교사였다. 그의 장군인 무측천도 흑공자의 조교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조교사의 실력과 변화한 무장 혹은 장군의 숫자를 통해 고문관에도 등급이 생긴다.
탐닉의 군주가 가지고 있는 고문관의 수는 많은 편이다.
막 생기는 고문관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고문관도 나름대로 레드 오션이니까. 자금이 있고 조교사가 있다고 고문관을 만들었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폐쇄할 수도 있다. 탐닉의 군주가 지닌 고문관은 가장 낮은 등급의 고문관도 고문관 전체에 비교하면 평균일 정도. 그 중 최상위의 고문관이 셋 있는데 그 중 하나에 미노와 레베카가 섰다.
“나는 왜 여기에…….”
미노가 고문관 이곳저곳에 있는 육괴(肉塊)를 보면서 참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레베카는 전장에 선 미국인 병사처럼 말했다.
“여기가 지옥이구나…….”
***
세 명의 조교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화려한 금발을 늘어뜨리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백인 남성.
탄탄해 보이는 갈색피부의 근육질 거한.
키득거리며 웃는 왜소한 체구의 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소년.
탐닉의 군주가 자랑하는 세 고문관 중 하나, <꿈도 희망도 없는> 고문관의 명 조교사 셋이었다.
“저희들의 주인 탐닉의 손님이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위대한 탐닉의 고문관 <꿈도 희망도 없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왕자님처럼 우아하고 곱상한 외형을 지닌 금색장발의 미남이 허리를 숙여보이고는 말했다.
“고급 진행을 원하셨습니다. 모든 신체능력의 상승과 미용 에스테틱, 그리고 주인님이 아닌 남성의 어떤 자극에도 무미건조한 감각을 유지, 덧붙여 한 명은 정보추적 및 탐지의 특기를, 다른 한 분은 수호의 특기를 가질 것을 원하셨습니다. 능력개조에 하루, 미용에 하루, 감각개조에 하루, 그리고 특기를 습득한 시점에서의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으로서의 상향으로 사흘, 총합 여섯 일이 걸립니다. 거기에 체향과 기억기관의 개조도 하루 포함됩니다만 너무 급한 개조는 곤란하겠지요. 이건 넘기겠습니다.”
사람을 장난감 블록으로 보고 어디어디를 개조하고 고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현실의 일일까. 현실이다. 최소한 어스 엠파이어에서는. 미노는 이와 비슷한 곳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나름 안정할 수 있었지만 레베카는 그저 경악뿐이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요?”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이에 숙달된 조교사니까요.”
금색장발의 미남, 루이가 싱긋 웃었다.
“장군도 여섯 분이나 조교하였고 F급 특기를 획득하도록 도움을 드렸지요. 대학교에서는 최하점, 낙제이겠지만 어스 엠파이어에서는 최상급이랍니다. F급은 범위든 위력이든 ‘행성 단위’ 규모가 되거든요. 말이 길었나요? 조교하는 동영상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갈 때 필요하면 몇 개 사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조교, 아니 고문일까. 그런 동영상도 판매한다는 사실에 레베카는 혀를 찼다. 자신이 이곳에서 6일을 보내고 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이시현은 말했다. 이곳에서 도움이 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레베카는 다른 개조와 특기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시현이 아닌 다른 남성에게 자극당해도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은 마음에 들었다.
미노는 손적이라는 강력한 라이벌 때문에 자존심을 늘상 자극당해 강해지길 원하는 것 같지만…….
“그럼 옷을 벗어주실까요?”
루이는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성이 여성을 향해 존대하는 말도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지만 나갈 때는 알아서 여성들이 존댓말을 쓸 테니 상관없었다. 루이의 존댓말은 여성들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효과도 지니고 있었다. 무장이 된지 얼마 안 된 미노와 레베카는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3, 2, 1. 벗기겠습니다.”
루이는 레베카를 붙잡았다. 압도적인 힘은 아니었다. 그저 툭 치면 밀려날 정도. 어스 엠파이어에서 남성이 그리 강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렇지만 힘은 없었다.
“특성을 통해 힘의 수치를 강화하지 않는 이상 암컷은 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답니다. 벗어나지 못해 아쉽겠지만요. 하하, 게임의 시작부에 나오는 공주를 잡아 보스에게 달려가는 역할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