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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90화 (90/141)

< -- 90 회: 8> 화려한 나날. -- >

“두 놈이 ‘암컷’이 되어버리는 순간, 이미 후계자는 존재하지 않기에 남은 한 명의 남자가 승자.”

두근.

심장이 뛴다.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두 년을 굴복시키는 순간. 나는 이 게임의 승자가 되고, 탐닉의 군주가 되고, 이 세계를 지킨다.”

크흐흐흐흐,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웃음이 터진다.

“자……. 생각하자. 그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내가 한정한 한 달의 시간 동안, 그래. 제일은 나를 완성시키는 것. 그걸 위해서 첫 번째로 단미애를 굴린다. 험하게. 그것은 흑공자와 백공자의 경계선. 그것으로 나의 이미지는 결정된다.”

더듬더듬, 자신의 계획을 소리 내어 말해본다.

입 꼬리는 올라가고 눈매는 비틀린다.

그는 이미 훌륭한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 그것도 군주위를 노리는 후계자처럼 보였다.

이기적이고 추악한, 자신만을 위한 계획을 상정하고 탐닉에 젖는.

어스 엠파이어의 128군주 중 하나.

탐닉가.

이시현이 생각한 최고의 계획.

그것은 두 후계자를 후계위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왕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아이템을 끝까지 모아두었다가 흑공자, 백공자와 대면했을 때 그들에게 사용하는 것. 장군이 된 그들은 더 이상 후계자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된다.

흑공자와 백공자의 외형을 봐서는 그대로 여자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성격개조는 필요할 것이다. 여자가 된다고 해도 기본적인 베이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사라져도 상관없다. 일부러 괴롭힐 가치는 있으니까.

여자가 여자를 섬기는 일은 불가능.

그렇다면 흑공자와 백공자가 후계위에서 탈락하고 여자가 되는 순간,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기반과 무장, 장군까지도 자신의 것이 된다. 완벽한 승리, 퍼팩트 게임이다.

이시현이 왕권으로 장군을 만들어 자신을 지킬 방벽을 만들지 않는 이유.

흑백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이 게임의 틀을 쓴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유.

이 모든 것이 승리를 향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병력을 늘리고 적극적으로 둘을 싸움 붙여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 또한 강해져야 한다.

어째서 흑공자와 백공자 같이 ‘기본 배경이 괜찮은’ 남자들이 앞에 나서서 싸우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어스 엠파이어의 미학인 거겠지. 이시현은 모든 일을 뒤에서 관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직접 움직이는 일도 필요하다.

이시현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단련을 쉬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세상을 지배하는 법을 익히고 공부도 할 생각이다.

이시현의 터무니없이 좋은 스펙은 많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손적은 어스 엠파이어의 무장이다.

어스 엠파이어에서 태어났고 무장으로 육성되었다. 한때는 장군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힘을 내지는 못한다. 물론 무장치고는 몹시 강할 터였다.

이시현은 도장을 하나 대여했다.

태권도를 가르치던 도장이었는데 망해서 횟집으로 개조되던 걸 구입한 것이다. 딱히 원생을 필요로 하지는 않기에 그대로 구입, 창이고 뭐고 다 닫아둔 채로 단련에만 사용할 계획이었다.

도장에는 손적과 단미애, 그리고 미노가 서 있었다.

“손적.”

“넵.”

손적이 경쾌하게 경례했다.

“넌 얼마나 강하지?”

“강함의 기준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해둘까요.”

손적은 타는 듯이 붉은 머리칼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앞의 암퇘지와 암소가 힘을 합쳐도 저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서 이길 수 있답니다.”

이시현의 현 최강병력은 손적이다. 마음같아서야 리퍼도 끼워넣고 싶지만 그녀는 이미 님이 있어…….

이시현이 호, 하고 흥미를 느꼈다.

“미노.”

미지연. 이제는 미노라고 불리게 된 여성이 정장 코트를 벗었다.

보기 좋게 부푼 가슴, 날렵한 다리. SP로 오랫동안 솜씨를 자뎌온 그녀는 육박전에 매우 능하다. 단미애와 미노 간에는 성능의 차이가 살짝 있다. 기본적인 육체의 스펙은 단미애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겨루면 미노가 100% 이긴다. 그녀는 몸을 쓰는 요령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술 또한 익혔다. 하나의 분야에서 절정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지키고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정수만 익힌 그녀는 굉장히 빼어나다.

손적이 짝다리를 짚고 여의봉을 쥔 채로 목을 우둑거리고 있었다.

미노보다도 몇 살은 어려보이는 젊은 여성. 소녀로도 보이고 처녀로도 보이는 그녀는 여의봉을 쥐지 않은 손을 까딱였다.

와 봐.

미노는 양미간 사이에 살짝 주름을 그렸다.

그녀는 탁, 하고 바닥을 짚었다.

바닥이 슬쩍 눌리는 한 순간. 미노의 몸은 손적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미노가 라이트 훅을 먹인다. 손적은 그 자리 그대로 회전해서 주먹을 흘리고, 겨드랑이로 뻗은 미노의 팔을 꼈다. 미노의 눈이 커진다. 마치 약속대련과도 같이 손적은 최적의 루트로,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팔을 붙잡았다. 손적이 씩 웃으며 끼고 있는 팔을 꺾었다.

우득.

걸리고 버티는 것 없이 팔꿈치와 손목 사이의 뼈가 부러진다. 손적은 상대의 뼈가 부러진 것을 느끼자마자 여의봉으로 미노를 걷어냈다. 미노가 여의봉에 허리를 얻어맞고 튕겨 날아갔다. 나동그라지지는 않았다.

여의봉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몸을 뒤로 빼고 있었고 낙법 또한 훌륭하게 사용했으니까. 다만 뼈는 부러졌다.

‘이 정도 격차가 난다고……?’

단 한 번의 격돌로 승부가 난 것과 다름없었다.

믿기진 않지만 미노 정도 되는 여자가 한 번의 격돌로 전투력에 극심한 손해를 입었다. 게다가 손적이 손대중을 한 것 같은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미노가 탄식했다. 갈비뼈가 두 개가 금이 가고, 팔이 한쪽 부러졌다.

미노가 이를 악물고 뼈마디를 맞췄다.

-꾸득.

근육의 탄성으로 뼈의 위치를 맞추고, 엇나가지 않게 고정한다. 졸라맨 넥타이를 풀어 부러진 팔에 감는다. 고통 때문에 눈살도 찌푸리고 식은땀도 흘리지만 아파 죽을 것 같은 기색은 없다. 고통에 익숙해진 탓이다.

미노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아. 창백해진 미노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손적이 삐딱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노가 걸음을 옮겼다. 일격에 모든 걸 건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전면전. 자잘한 주먹을 나누며, 제대로 싸움을 하겠다는 기세가 묻어났다. 미노가 손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손적이 여의봉을 휘둘렀다. 허리를 쪼갤 것처럼 휘두르는 여의봉에서는 바람가르는 소리가 맹렬했다. 미노는 여의봉에 일부러 다가갔다. 여의봉에 옆구리를 얻어맞으면서 그 궤적을 따라 몸을 옮긴다.

터무니없다.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속도를 따라잡고, 맞는 순간에 여의봉을 휘두르는 방향으로 몸을 띄워 99%가까이 충격을 해소하며 도리어 이동한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온 미노는 여의봉의 인도에 따라 손적의 등뒤를 잡을 수 있었다. 미노가 진각을 밟았다.

바닥이 움푹 들어가고, 조금 떨어진 미노의 위치에 있는 바닥이 솟구쳤다. 미노가 돌아본다. 그녀의 시야에는 가벼운 잽을 날리는 미노가 있었다. 등뒤를 점했다는 이득이 있었지만 미노는 방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펙을 믿고 달려들었다가 큰 손해를 두 번이나 입었다.

상대는 월등히 강하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미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잽을 날렸다. 손적은 그대로 잽을 맞았다. 고개가 살짝 젖혀졌지만 턱을 당겨 버텨냈다.

버텨? 아니, 일부러 맞았어?

손적의 목에 핏대가 서는 것이 보인다. 턱을 당기고 선연한 미소를 짓는 게 보인다. 얼굴을 향해 1초에 열 번 가까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손적은 버텨냈다. 코도 비뚤어지지 않고 안면으로 주먹을 받아냈다. 물론 멀쩡하지는 않았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입술은 찢어지고 당장 얼굴이 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적은 움찔하지도 않고 도리어 손을 뻗는다. 미노가 물러선다. 물러서는 그녀를 향해 여의봉을 길게 늘여 찌른다.

‘이 녀석은 그냥 빠른 것만이 아니야!’

한 손으로는 갈퀴처럼 만들어 살을 움켜쥘 것처럼 내밀고 다른 손으로는 무기를 익숙하게 찔러온다. 양손잡이. 반응속도는 말 그대로 자동화기계 수준.

갈퀴처럼 만들어 뻗는 손에 맞으면 살점이 다 뜯겨나갈 것 같다. 살점이 아니라 근육, 뼈까지 닿아 완전히 ‘우득’ 하고 뜯어낼 것 같았다. 차라리 여의봉에 맞아 거리를 벌리자. 복부에 힘을 주고 미노가 여의봉의 충역을 버텨냈다. 물론 뒤로 가볍게 뛰어 충격을 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너무 근시안적이었다.

손적은 미소 지으며 여의봉이 뻗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여의봉, 손적의 무구. 무게도 엄청난데 길이까지 무한정 길어지게 만들 수 있는 무구다. 튼튼하기도 이루말할데 없어 다이아몬드 커팅이 된 기계로도 깎아내기 어렵다. 여의봉이 길어지는 속도도 조절할 수 있는데 손적은 ‘그러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왔다.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빛의 속도로’ 뻗는 여의봉을 보며 미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가속도가 붙은 여의봉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살짝 물러나는 미노의 복부를 관통했다.

배를 꿰뚫린 통증이 뇌까지 닿기도 전에 손적은 여의봉의 길이를 줄였다.

복부가 꿰뚫린 미노가 그대로 딸려왔다. 여의봉은 늘이거나 줄이는 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또한 ‘늘어나고 줄어드는 부분을 조절할 수도’ 있다. 손적이 쥐는 부분을 줄였다면 당연 미노는 그대로 복부에 피구멍이 난 채로 쓰러졌을 터. 하지만 손적이 여의봉을 줄인 부분은 손적이 쥐는 부분과, 미노를 꿰뚫은 부분 바로 그 사이였다.

덕분에 미노는 손적의 앞까지 딸려왔다.

손적이 하얗게 웃으며 갈퀴로 만든 손을 뻗었다.

미노가 피하고 싶은 공격이, 손적의 갈퀴가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그만.”

그리고 미노가 근육의 도드라진 부분을 움켜쥐고 ‘근육까지’ 잡아 뜯으려 하던 공격은 이시현의 말에 멈췄다.

미노의 배를 꿰뚫은 여의봉을 회수하고 손적은 노란색 갱지에 자신의 피를 내어 부적을 그린다. 부적을 만들어 피구멍이 난 배에 붙이자 곧 아물기 시작한다. 최소한 구멍은 막혔다.

“기가 막히군.”

이시현이 혀를 찼다.

미노를 완전히 어린애처럼 다룬다.

손적이 대단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가 말하는 만큼의 힘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힘은 말 그대로 미니멈, 최소한의 힘이었다.

미노가 손 한 번 못 대고 어린애처럼 농락당했다. 그리고 손적이 말한 대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무구를 사용하는 방법도 터무니없이 세련되다. 손적은 무구를 완전히 자신의 육체 일부처럼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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