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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78화 (78/141)

< -- 78 회: 7> 플랜. -- >

태양그룹의 회장, 강의곤과 통화하던 강주희가 고개를 돌렸다.

“대가가 뭐냐는데?”

“응?”

“여당 총재와 지루한 말싸움도 하고 선물도 하고 시간도 보내야 하고,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데.”

“……썩을.”

이시현은 이마를 손으로 덮고 신음했다. 이 영감이 진짜…….

“거기서 채굴되는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준다고 해.”

“와, 정말?”

“네게 준다고, 네게.”

이시현은 말꼬리를 돌려서 말했다.

“영감님이 그런 거 가져서 뭐해. 나중에 커팅해서 네게 줄 테니까, 자식 선물 받는 거 보고 싶으면 순순히 나오라고 해.”

“후후, 알았어. 응, 작은 거라도 달라는데. 아, 덤으로 달라는 의미인가봐.”

“줄 테니까 냉큼!”

강주희가 전화를 끊었다.

스포츠카를 몰고 태양그룹 회장의 사저로 향한다. 강주희에게는 자기집인 셈이다.

시원하게 달리는 스포츠 카 안에서 이시현이 턱을 괸 채로 말했다.

“돌아가면 널 엄청 범해주지. 죽지 말라고.”

“아잉, 내 잘못도 아닌걸.”

애교스럽게 강주희가 대꾸했다.

“잘못이 없어도 범할 거야. 쳇. 정말이지 만만찮은 상대가 하나도 없다니까.”

강주희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길이 막혀도 곧 당황해하며 길을 비키는 차량들 때문에 이동하는 길은 쾌적했다.

바람이 생각보다 선선했다.

‘올해 안에는 끝나겠지?’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이시현은 그 울림이 마음에 들어 씩 웃었다.

‘올해 안에는 끝내겠어. 이 미친 게임을.’

“김주황이라고 하네.”

단도직입적으로 그는 말했다.

위치상으로 보았을 때 이시현은 서 있는 편이 마땅했지만, 이 주죄를 연 이유가 그 때문이니 만큼 자리에 앉았다. 물론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여당 총재의 맞은편이었다.

“태양그룹 회장과도 아는 사이였는지는 몰랐군.”

“폐가 된 건가요.”

강의곤 회장이 일어날 준비를 한다. 물론 이만한 사람이 ‘부르지 않았다고 일어서는 걸’ 방관할 리가 없다. 태양그룹 회장은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벌이다. 김주황이 말렸다.

“허허,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앉으시죠. 다만, 조금 까다로워졌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직설적이군요.”

“물론이지요. 국내에서 유래 없는 일을 맡아야 하는 입장이 되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하.”

“하긴, 좀 직접적이긴 하지요.”

두 명의 늙은 영감이 이시현을 바라보며 뼈있는 웃음을 던졌다.

이 인간들이 뭐라는 거야. 머리를 벅벅 긁고 싶은 것을 참고 있자니 왼쪽 가슴에 노란 뱃지를 달고 있는 김주황이 물어본다.

“그래서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이번, 아니 이제는 저번이라고 해야 하는군요. 테러가 있었을 때 있잖습니까. 그때 호텔에 있을 때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눈앞의 이 젊은이였지요. 그리고 구해준 사람 또한.”

“그때 회장님을 구한 것이 이 젊은이라고요?”

놀랍다는 듯 물어보는 김주황을 향해 강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깨가 결린다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잡혀 살고 있지요. 여기에도 끌려온 걸 보십시오.”

“그렇군요. 이래서 선조들이 아이들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벽화로 알렸던 거군요.”

다이아몬드 내놓으라는 사람 어디 갔어. 그리고 벽화로 남겼던 말은 그런 게 아닐 텐데!

이시현은 그런 식으로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알기에 닥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덕담 및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이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래서 자네를 부른 이유라면 말이지. 자네도 예상하고 있다시피 시에라리온에서 새로이 찾아낸 다이아몬드 광산 때문이라네.”

“네.”

이시현이 깍지를 꼈다.

대답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로를 어떻게 추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영국령인 시에라리온’을 영국의 부탁을 통해 정당하게 땅을 구입했고, 광산이 나오거나 자원이 나와도 제 소유로 돌린다고 신고했습니다. 아마 여기까지는 팩트겠지요.”

“그렇지.”

“그리고 저는 그것을 필리핀에 마련된 저의 이름으로 된 재단에 위탁했고 재단은 그것을 공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에라리온은 물론이고, 영국도, 필리핀도, 그리고 한국도 거기에 대해 돈을 물 필요가 없고 말입니다.”

재단이 필리핀에 있는 이유는 대개 횡령의 목적으로 돈을 보관하는 싱가포르보다 현 상황이 나았기 때문이다. 근래 있었던 폭풍으로 인해 말 그대로 재앙이 덮친 필리핀은 자구책으로 싱가포르의 기법을 도입했고, 숨겨야 할 필요가 있는 무수한 돈이 필리핀에 보관되었다.

이시현은 제국이 만들어준 시현재단이 왜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곳이 아니라 필리핀에 있는지를 생각했고 제국의 마음슴슴이를 이해한 후 대답을 정했다. 필리핀에도 시현재단의 소유로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모른다면 다행이지만 알고 있어도 별 문제는 안 된다. 재단 소유로 다이아몬드 광산이 들어왔지만 취득세니 토지세니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뜯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뼈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은 엄청난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 굴러올 것이다.

일반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뜯어낼 사람들이 있다. 이시현의 눈앞에 있는 이도 그런 사람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과 관련된 제 설명은 여기까지. 그럼 무엇을 여쭐 생각이십니까.”

너희들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내게서 돈을 뜯어낼 수 없다.

이시현이 방금 한 말은 그런 선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것을 듣고서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의 답변 정도는 일찌감치 예상한 바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당 총재쯤 되는 이라면 그 주변에 한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고,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답했으니 그럼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묻도록 하지. 필리핀에 자네의 재단을 만든 이유는 뭔가.”

“누군가의 선물이었습니다.”

“자네의 이름으로 된?”

“세상에는 그렇게 쓸데없는 부자가 많은 것 같더군요.”

시현재단이 만들어진 배경은 어떤 부자가 시현을 자신의 상속자로 두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둔 이유는 본래부터 그 부자가 필리핀에서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 부자가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서류 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는 죽은 인간이고 남은 것은 이시현에게로 넘어온 재단이니까. 상속은 정당하게 이루어졌고 법적 하자가 전혀 없었다.

“자산 100억 원대의 재단을 받기 전의 일. 그 동안 사회활동을 한 것 치고 돈을 취득한 사실이 조금도 없더군.”

“안타깝게도 평범하게 벌면서 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 하필 필리핀이지?”

“저도 궁금하군요. 왜 하필 높으신 분들이 스위스, 싱가포르, 필리핀으로 자식들을 이민시키죠?”

“자네는 아직 젊어. 그리고 가능성이 무한하지. 덧붙여 자산 또한 엄청나. 그것 알고 있나? 광산채굴이 시작되면 국내에서 최고의 부자는 자네가 될 거야.”

이시현은 문득 샤워 룸에서 생각했던 일을 떠올렸다.

“결혼정보회사에 자신의 정보를 입력할 때 저금한 자산에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라고 적어둘 수 있겠군요.”

“엄청난 돈이지. 그리고 전 세계의 귀금속 시장의 한 틀을 움켜쥘 수 있는 힘이 될 테고.”

“단도직입적이 아니군요.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다. 그런 말은 하지 않겠네. 채굴에서 시작해 귀금속으로 만들어 팔리는 과정까지에 추천하는 사업체들을 넣어줬으면 하는 목적은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거지.”

“그거?”

여당 총재 김주황은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비서가 담배를 내밀었다. 희한한 심벌의 담배였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이시현 또한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 전에는 담배를 폈었던 것 같다. 담배가 땡기지는 않지만 그 냄새가 제법 익숙했다.

“정치인이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 뭔지 아나?”

“서민요.”

얌전히 듣고 있던 강의곤이 쿡 하고 웃었다. 김주황이 놀랍다는 듯이 이시현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생안정이지.”

“……맞췄는데 기분은 나쁘군요.”

민생안정이 필요하지도 않고 서민도 아니게 된 이시현이기에 할 수 있는 조크였다.

“다음에도 권력을 쥘 수 있을까, 다음에도 국회의원직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경력을 쌓고 재선, 삼선에 도전한 후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지. 그것을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역시 서민이죠.”

“큰 틀에서 말하면 표인 건 확실하지. 하지만 그 표를 모으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아는가?”

“역시 민생안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맞아. 민생안정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돼.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이…….”

이시현은 그제야 김주황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업적.”

강의곤이 낮게 음, 하고 소리를 냈다. 김주황이 이시현을 바라보았다. 이시현이 깍지 낀 손을 풀고서 말했다.

“나는 이런 일을 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인 업적. 다이아몬드 광산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그 부의 일부만이라도 이곳에 풀 수 있다면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과를 벌려 업적을 쌓는 거겠지요.”

“맞아. 그거야. 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의 채굴권도, 다른 것도 바라지 않아. 가공 및 운송 같은 것들에 필요한 업체를 소개해주고 싶고, 그에 해당하는 약간의 보상을 받고 싶기는 하지만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 내가 필요한 건 자네가 말한 그거네.”

정치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진 이와 악수하고 사진 찍고, 그와 연관되고 광산으로 인해 떨어지는 부를 한국에 쏟는다. 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과정이 외부에 밝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 업적을 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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