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5 회: 6> 승부. -- >
“쿡쿡,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답니다. 골고루 맛을 보아 주세요. 같은 곳을 먹어도 자세가 다르고 흥분도가 다르면 느끼는 쾌감도 달라지니까요.”
다섯 번째.
최단 시간 만에 다섯 번째 사정을 마쳤다. 이미 그녀의 아랫도리, 두 구멍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정액으로 범벅이 된 엉덩이를 흔들며 나른하게 손적이 말했다.
“조금은 채워진 것 같지만……제가 좀 많이 먹잖아요? 아직 조금 덜 찬 것 같은데요.”
“잠깐만. 이제는 내가 리필 안 될 것 같은데.”
이시현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고 물었다.
“하……. 어스 엠파이어의 여자들은 다 너 같아?”
“설마요.”
손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어깨를 타고 넘어온 포니테일을 뒤로 넘겼다.
“저 같은 여자는 저 혼자뿐이랍니다.”
“크……그 자신감만큼은 그럴듯한걸.”
“후후. 저의 위업치고는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장군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무장을 하룻밤 사이에 두 명이나 죽였잖아요. 잘난 체를 좀 하면 안 되나요?”
“하긴, 영감에게도 알려줬지. 흑공자, 백공자놈을 엿 먹였다고. 다음엔 비디오 촬영도 하라던데 어떻게 생각하지?”
“전장만 만들어주신다면 얼마든지.”
이시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손적을 끌어안았다. 다소 마른체격이었지만 가슴의 크기는 훌륭했다. 유방에 탄력이 넘친다. 유방을 몇 번 주물러보던 이시현은 자지를 끼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금방 눈치를 챈 손적은 질척질척한 자지를 손으로 덮어 앞뒤로 흔들더니 곧 그를 침대위에 눕혔다.
“재미있는 문질문질시간~.”
“이런 건 처음이야. 아니, 처음은 아니었나.”
이시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처음이든 아니든 처음 경험하는 쾌락에 곧 넋을 잃을 뻔 했다.
자지를 유방 사이에 끼우고 유방을 가볍게 붙인 채 안의 자지를 자극한다. 발치에서 용을 쓰는 동작도 그렇고, 도드라진 유방도 그렇고, 그리고 바라보던 이시현이 만지기 좋게 유두를 그 쪽으로 밀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계산이 되어 있다.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방식에 익숙해진 몸. 이시현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뿐이었다.
이번 추가 퀘스트에서는 예전 비디오 촬영의 패배를 되갚고 무장까지 챙겼다.
이름은 손적. 자신의 말로는 제천장군 오공이었다고 하던 여성.
“네년은 독이야.”
“어머, 이제 독부가 되어볼까요?”
“너 같은 진미를 너무 일찍 맛보는 바람에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빛이 바래잖아. 이 사태 어떡할 거야?”
“아항. 그거라면 너무하시네요. 저는 그저 봉사를 열심히 할 뿐이었는데. 그럼 간단한 해결책이 있죠.”
손적이 싱긋 웃으며 정액을 받아낸 얼굴로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가슴으로 해준 자극 때문에 여섯 번째로 정액을 뽑아낸 손적이 대답했다.
“제가 분신으로 원하는 여자 모습을 하고 마음껏 안기면 되겠죠? 뭐든 이야기만 하세요. 어떤 이로도 변해서 안길 테니까요. 쿡쿡.”
몇몇 얼굴이 예쁜 연예인을 떠올렸지만 이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예인이 아무리 부티가 나고 아름다워도 손적도 만만치 않았다. 지구에서는 고르고 골라 그런 미인인데 어스 엠파이어에서는 길가다 보이는 사람이 죄다 이 모양이다. 미의 기준이 한없이 높은 어스 엠파이어의 여성답다.
“그럼 다시 한 번 먹어볼까.”
안는다. 범한다. 섹스를 나눈다.
그런 표현을 쓸 것이 아니다. 어스 엠파이어의 여성은 먹는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녀들은 육식동물인 어스 엠파이어의 남성들에게 가장 감미로운 맛을 전해주는 향신료이자 메인요리다. 언제나 다른 맛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쾌락을 즐기게 만든다.
굳이 힘든 자세를 할 필요도 없이, 명령만으로도 비틀린 욕구는 채워진다. 그리고 평범한 동작으로 성교를 나눠도, 그 깊이가, 품질이, 맛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스럽다.
정말이지 굉장한 섹스다.
이시현은 한계까지 뽑고 나서 그녀의 입 봉사를 즐기며 그리 생각했다.
***
“문제가 있군.”
피투성이 폐허.
살점이 바닥에 달라붙어있고 몇 명이나 되는 시체가 잔혹한 모습으로 굴러다니는 고문실.
흑공자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피를 뒤집어쓴 사내가 쇠꼬챙이에 끝이 후크처럼 굽어있는 도구를 바닥으로 향한 후 날카롭게 말했다.
“계획이 어긋나고 있어. 뜻대로 안 되는군. 계획이 비틀리는 거야 놈을 상대하니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당했다?”
“나의 뜻대로 진행이 안 된 것은 두 번. 하지만 한 번은 쓰레기에게 읽고 읽힌 덕분이지. 이것까진 전술의 실패.”
“하지만 실패한 직후 새로운 계획을 짜기도 전에 퀘스트는 실패했다.”
성질이 난 모양이다.
여성들은 모두 고깃덩어리가 되어 갈고리에 매달릴 각오를 한 채 고문실로 들어섰다. 흑공자가 패배를 겪었다. 수모를 당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시간대가 너무 좋아. 말과 말이 부딪쳐서 났다고 하기엔 결론이 납득이 안 가.”
“전술부터가 잘못되었나. 전술을 짜게 된 계기가 뭐였지.”
“도발?”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다.”
“도발의 문구를 살펴보면…….”
“너무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흑공자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혔다.
로딩 중.
그런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표현. 그리고 침묵.
“……고려해둬야겠군.”
후크처럼 보이는 쇳덩이를 신음하는 반시체의 머리통에 꽂아 넣으며 흑공자가 키득 웃었다.
“과연?”
“정말 그런가?”
“이제와서……?”
“크크크크크크큭.”
낮게 깔리는 비웃음과 함께 흑공자가 고문실을 나섰다.
백공자는 긴 금발을 쓸어 올리며 조금 지친 듯이 무거운 몸을 소파에 던졌다.
털썩, 소리가 나게 앉은 그는 아- 소리를 내면서 마음에 안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퀘스트는 실패. 그것도 공멸.
결과적으로 누구도 이득을 취하지 못했으니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런 보드게임에서 보통 승리하는 방법은 ‘모두가 잘 되는 걸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극소라도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쪽’이 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토아비스를 다루는 것은 꽤 주의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력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흑공자 따위와 공멸한 것은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실수를 다 하다니……흠. 곤란하군.”
후회의 기분은 흑공자와 비슷하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실패를 곰씹는 것도 같다.
펜트하우스에 주거지를 마련한 덕분에 백공자의 말들은 죄다 여기에서 살고 있다. 각기 생활이 있는 이들은 집에서 잠을 자고 일을 한 후 펜트하우스로 올라와서 정액을 받아가고는 했다.
“실수, 흠. 벌써 이긴 것이 아닐 텐데 여기서부터 실수를 했다는 건 문제가 있는데.”
흑공자와 마찬가지로 백공자 또한 공멸에 낙심하긴 했다.
하지만 백공자는 그것을 회고하고 푸는 방식이 달랐다. 흑공자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반성은 꽤나 진지하고 조용했다.
아무도 거실로 들어서지 못하는 가운데 백공자는 그가 보고 생각해왔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순차적으로 떠올렸다.
“이상한 점은 없어.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문제는 마법진을 그려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놈의 탓. 하지만 뭐가 이렇게 걸리는지 모르겠군.”
그의 양미간 주름이 조금 깊어졌다.
“나와 놈이 공멸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놈들이 있나?”
“시체도 건지지 못하고 폭발시켜야 했단 말이지.”
“반응이 빨랐어. 반응이 빨랐다. 그렇군. 반응이 빨랐단 말이지.”
100명도 넘게 죽었다고는 해도 그 짧은 시간에 특공대와 진압부대 등을 보내는 건 어렵다. 더욱이 그런 난장판인 상황에서.
“우리들의 싸움을 아는 녀석이 있다……그렇게 생각해도 좋은가.”
“높은 사람의 신고.”
“경찰을 동원할 정도의 신고를 할 수 있는 자……?”
“도대체 어떤 녀석이?”
흑공자도, 백공자도.
패자가 되었다.
하지만 패자가 된 상황에서도 그들의 영리함은 빛을 발한다.
그 빛은 가장 뛰어난 두 명의 후계자라는 자부심과, 10년간 싸워온 경험을 매개로 빛나는 것.
두 명은 이 싸움에서 각기 다른 뭔가를 획득했다.
최소한 떠올릴 수는 있었다.
이시현은 하루가 가기 전에 상황을 전달함과 동시에 부탁을 했다. 대상은 강의곤. 충분한 대가가 있기를 바라겠다며 그는 수락했다.
다음날 아침.
뉴스의 일면 타이틀은 <강의곤 회장. 테러리스트의 짓으로 추측되는 글자를 통해 진압부대와 특수부대를 요청. 혜안이 밝혀져>였다.
백공자는 여성의 눈물을 짜내 받은 잔을 들고서 반쯤 비웃는 표정으로 강의곤을 바라보았다.
흑공자 또한 피가 튀어 입은 옷이 젖은 채로 뉴스의 타이틀을 주의 깊게 응시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둘의 표현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강의곤이란 놈을 조사해.”
***
“최소한 그들은 이 실패에서 뭔가를 얻을 수는 있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고 해도,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
이시현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꾼다. 그들의 실패를 몰아간 이가 후계자 3호이 아닌, 민간인 1호로. 물론 가능한 일이지. 왜냐고?”
이시현이 짙은 미소를 머금고 지도에서 태양호텔이 있는 부분을 엄지로 꾹 눌렀다.
“이곳은 내가 포위하고 내가 채운 집이니까. 증거 같은 건 남지 않아. 내가 두 개의 말을 먹은 이곳은 내 포석으로 차지한 지역이니까.”
바둑의 특성.
포석을 통해 말을 따내어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곳을 집이라 한다.
집에는 다른 말을 놓을 수 없다.
집이 완성된 지금, 그들은 어떤 수단으로도 제 3자, 이시현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다.
그곳을 집으로 만든 대마(손적)를 알지 못하는 이상, 그들은 완벽히 지워진 상대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완벽히 지워진 상대를 추적하지 못해 의심이 생길 것을 우려해 강의곤을 팻감으로 내민다.
그는 충분히 흑공자와 백공자가 저지른 짓으로 생각하는 테러의 희생자이며.
그들의 반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였다.
“나는 말이지,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엿 먹이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있어. 이기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적극적인 공격도, 소극적인 공격도 없이 상황을 주시하고 약점을 간파하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거야.”
“약자의 전쟁을.”
“약자가 삼파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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