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70화 (70/141)

< -- 70 회: 6> 승부. -- >

“안타깝구나. 난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말을 뱉으며 생을 보내려 했는데 네가 그리 싫어한다면 재미없는 본론을 꺼낼 수밖에 없지. 그래서 뭐를 말하려 했던 거지? 음, 고대의 군주께서 너를 보냈다고?”

“으앙, 네. 그 뭐라더라. 응, 탐닉의 지위를 노리는 후계자에게 무장을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물론 그냥 보내는 건 아니고 그 뭐라더라? 각기 무장이 하나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대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응, 탐닉께서 군주들을 불러서 후계자에게 승패를 걸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군주께서는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벌이기 위하여 외부에서 무기를 공수해주기로 한 거죠. 기왕이면 승자에게 선물로 주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면 깜둥이에게도 무기가 하나 간 거군?”

“네. 정해진 시간은 사흘. 사흘 안에 한 명만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해요. 후계자는 복수. 무기는 단수. 싸우는 요령은 임시 주인님이 판단. 저는 경쟁자를 만나면 반드시 쓰러뜨리도록 할 거예요. 그러니까 유리한 지형을 만드는 것, 적기를 판단하는 것, 다른 세력을 이용하거나 병력을 이용하는 것, 다른 무기를 부수는 것은 전부 임시 주인님이신 백공자님이 판단하셔야 해요.”

백공자 샤를이 우아하게 웃으며 눈가를 덮었던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갔다. 입고리가 히죽 하고 위로 올라간 것이 정말로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과연. 이해했어. 그치들도 제법 재미있는 생각을 했군. 무력은 준다. 하지만 그 무력을 쓸 주인의 능력을 시험하겠다. 그리고 그 능력이 가장 어울리는 자만이 무력을 가질 수 있다. 그거지?”

“어, 아? 응. 그런 거예요. 백공자님은 인간쓰레기인데 머리는 똘똘하네요.”

“그런 말 면전에서 하면 상처받아.”

“미, 미안해요. 저는 언제나 진실하거든요.”

“나도 진실하지.”

백공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가 진실하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지? 존재자체가 거짓인 존재에게?”

“이런.”

소녀는 쓰고 있던 아랍 풍 모자를 벗었다.

“조금 장난을 쳐볼까 했는데.”

검은 머리칼이 갈색으로 변모한다.

“과연 후계자 중 한 사람. 영리하네요. 영리해.”

소녀의 모습이 성인 여성으로 변한다.

“영리한 사람은 나쁘지 않아요. 거짓말을 진실처럼 만드는 사람을 난 좋아한답니다.”

옅은 갈색의 머리를 나부끼고, 싱긋 웃는 회색 피부의 여성. 그 여성은 팔다리에 매달고 있던 천을 내던지고 샤를의 앞에 걸어왔다.

“싸워 봐요. 그리고 당신이 승자의 자격에 어울린다는 자격을 보여주세요. 나는 당신의 무력, 당신의 무기. 당신의 노예이며 수단, 방법.”

여성이 경의를 표하듯 허리를 숙여보였다.

“자. 당신의 전쟁을 위해 저를 사용하세요, 주인님.”

“그 말도 거짓말이지?”

“어머나. 그걸 어떻게 또 아셨나요?”

방그레 웃는 그녀는 분홍색 몽실몽실한 머리칼에 키 작은 유아로 변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짜증나. 인상을 쓰며 소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스마트폰이라서 익숙지 않나 싶지만 그녀는 전화조차도 사용하길 꺼려하는 성격이다.

본래의 성정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머리가 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엉덩이까지 닿는 붉은색 포니테일을 흔들며 소녀가 가까스로 스마트폰을 연결했다.

“누구야.”

잠에 취한 듯한 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이 새끼 자고 있어? 게다가 정오까지? 뭐 잠을 사랑한다거나 하면 몰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점점 짜증나. 미치겠군. 열 받아서 돌아가시겠어. 날려버릴까. 몇 가지나 되는 파괴방식을 떠올리다 그만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는 말투가 더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다. 아니, 그런 갭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의 주인이 어투를 바꿨다.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 건가요, 아니면 사람의 용건이 중요한 건가요.”

“후자지. 이런 거친 소리 오랜만인데. 그래서 무슨 용건이지?”

“어스 엠파이어의 군주께서 보낸 선물이에요.”

“……군주라고?”

저쪽에서 목소리가 바뀌었다.

목소리에서 섞인 호전성과 적대감, 긔고 긴장감과 함께 전해지는 어떤 활발한 감성을 깨닫고 그녀는 미소 지었다.

조금은 괜찮은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군주? 누구?”

“마성의 군주. 처음 들어보신 건 아니죠? 어스 엠파이어의 모든 악의와 악마의 성정을 품고 관리하는 분이 보냈어요.”

“곧 가지.”

“이런 점은 마음에 드네요. 음, 여기 핫도그 가게가 있으니 먹고 있을 거예요. 현금 챙겨 와요. 난 많이 먹으니까. 소비효율이 나쁘다고 타박 받았죠. 루이 헨리 개년들. 지네들도 다 처먹으면서 나만 가지고 그런단 말이지.”

욕설을 퍼부어놓고 스스로 깜짝 놀라 입을 가린다.

“어머나, 실수. 제가 사실 이런 사람이 아닌데…….”

“됐어. 통화만으로도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오랜만이네. 그래서 무장? 장군?”

“장군인데 쥐어 터져서 무장으로 떨어졌어요. 정확히는 말투 안 고치면 영원히 그 자리다 하면서 나약해졌지만. 음……주인님 바보.”

“그게 무슨 말이야.”

전화를 받는 남자, 이시현은 이해를 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우선 현금을 좀 챙겨야 할 듯하다.

아마도 자신이 잊어버리고 만 퀘스트에서 그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시현이 도착한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벌써 오픈한지 얼마 안 되는 길거리 장사를 죄다 끝장내놓고 있었다. 벌써 네 개째의 포장마차를 털어먹고 있었다. 돈은 곧 오는 사람이 준다고 해대서 주인들은 머뭇거리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가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못한 듯 했다.

이시현이 지갑을 던졌다.

그녀는 금방 이시현을 알아보고 입가에 싸구려 양념소스를 잔뜩 묻힌 채 지갑을 받았다. 지갑 안에는 수표가 가득했다.

“몇 개나 아작 낸 거야?”

“이제 겨우 네 개째. 아직 배는 1/17도 안 찬 것 같아요.”

“……너 이름이 뭐야.”

“이름이 중요한 거예요, 아니면 용건이 중요한 거예요?”

전화통화중에 했던 말을 반복했지만 이시현은 잘생긴 얼굴에 인상을 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붉은 머리를 말총머리로 틀어 올린 소녀가 킥킥 웃었다.

“너 복 받은 거야. 세 군주 중에서 나의 주인님께서 너를 승자로 선택한 것은 너의 가장 큰 행운일 거라고 생각해. 내 이름은 손적. 장군일 때의 이름은 오공. 제천장군이면서 폭군이었지. 자, 나를 사용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구.”

“너 반말 됐는데.”

“……에요.”

***

손적이 가지고 온 정보는 이시현에게 꽤나 쇼크였다.

그러니까 세 명의 다른 군주가 게임에 끼어들었고 게임에 참여한 이들을 한 명씩 맡아 서포트하겠다는 말이니까. 서포트라는 표현은 조금 어색하다. 그냥 자기들이 재밌기 위해서 휘하의 무장을 한 명씩 내려 보낸 것이니까.

고대의 군주.

광신의 군주.

마성의 군주.

그들 모두 현재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탐닉의 군주와 비슷한 위치에 권력을 가진 이들. 제국에서 손꼽히는 최강자들인 셈이다. 그들이 탐닉의 군주가 제안한 게임에 게스트로 참여하여 후계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꽤 강력한 무기를 내놓았다. 후계자들의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서.

이시현은 장군이었다가 무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손적을 바라보았다.

단미애가 불안해하며 그녀를 보고 있는데 호텔의 방, 이시현이 머무는 곳까지 찾아온 그녀는 이것저것 가지고 놀며 작은 냉장고에서 잔뜩 음료를 꺼내어 마셨다.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손적은 배에 뭘 채워 넣는 짓만 했다. 전투준비를 위한 과정이라고 하는 모습에서 이시현은 다소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의 의미를 깨달은 손적이 말했다. 그녀는 꽤 강력한 대신에 에너지 소모가 대단히 많다고. ‘힘과 체력’을 성실히 성장시켜온 이들과는 달리 ‘힘은 장군급’인데 장군에서 떨어져 체력이 엉망이 된 그녀는 힘을 전력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하게 에너지를 채워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군이었는데 무장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흔한가?”

“흔한 편은 아니지만 아주 없지도 않죠.”

“이를테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아실만하신 분이.”

손적은 빨간 머리만큼이나 볼을 빨갛게 하고선 말했다.

이시현은 군주의 후계자 쯤 되면 알만한 내용이라는 듯한 뉘앙스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장군이었다가 무장으로 떨어질 만한 이유라면 뭐가 있을까?

“그건 그렇고…….”

이시현은 손적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서 온 것이라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지금쯤 흑공자와 백공자도 그들에게 향한 무장의 말을 듣고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음료를 거의 대부분 비운 손적이 붉은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요?”

“세 군주들의 후원은 그거군. 나의 기량을 보겠다는 것.”

“아항.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저라는 강력한 무기를 줬어요. 사용하게 해줬지요. 하지만 그 무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어요. 왜냐면 그 무기에 합당한 소유자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거든요. 앞으로 사흘. 그 동안 반드시 내가 포함된 상태에서 전쟁을 벌이고 다른 둘을 제압해야 해요. 물론 1:1:1을 선택해선 안 되죠. 아니, 나는 상관없는데 그쪽이 문제겠죠?”

“그래. 알고 있어. 어떤 수단을 쓰든, 어떤 방식을 취하든 결국 다른 둘을 제압하고 쓰러뜨리면 끝난다는 거잖아.”

“아항. 그거예요. 그래서 무장은 충분한가요?”

“없어. 무장은 한 명 네가 오기 전에 수련회인지 뭔지로 보내버리고 다른 한 명만 여기에 있지. 그 외에 내 세력이라고 할 건 조금도 없어.”

손적은 단미애를 바라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이시현을 응시했다.

“무장이 없다면 세력은요?”

“세력도 없다고 말했잖아.”

“그럼 돈은요?”

“그건 좀 있지만 많다고 볼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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