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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68화 (68/141)

< -- 68 회: 6> 승부. -- >

잠이나 더 자야겠다. 피곤한 건 아니지만, 자다 깼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다. 자신의 성격이 이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식이 되었고 그게 적절한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게 미지연의 행방을 잊어버린 이시현을 보며 단미애가 불안해했다.

“저, 저기 아까 이 사람은 어디로…….”

“수련회 갔지. 너도 가고 싶었어?”

“아, 아니요.”

뭔지는 몰라도 안 가고 싶어하는 단미애의 결정은 꽤 바람직했다.

“그럼 자. 옆에 누워.”

단미애는 자꾸만 불안한 듯 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시현이 보채자 그의 곁에 누웠다. 그의 손이 가슴에 닿자 그녀는 옅고 긴 신음을 토했다.

단미애의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현재의 그녀를 보며 과거의 단미애를 찾아보는 건 꽤 어려울 것이다.

외형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모든 행동기준이 이시현에 맞춰진데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매우 소심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미망인이었기에 얌전을 떨다가도 이시현의 손이 닿으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면은 있었지만, 그녀를 보며 30대로 생각하는 이도 없을 터.

이시현이 유방을 주무르면서 잠드는 것을 보며 단미애 또한 눈을 붙였다. 마치 대기 모드와 같은 상태. 언제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을 밝힐 스마트 폰처럼, 그녀는 확실하게 깨어날 수 있도록. 하지만 분명히 잠이 들었다.

“음……어?”

퀘스트는 뭐라고 했지?

퀘스트 다음에 뭔가 글자가 있었다. 평소처럼 보상만 보고 난 후 눈을 감았더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시현은 곤혹스러웠다.

잠이 홀딱 달아날 정도.

무슨 일이 있었지? 이시현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자 단미애도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

하루 전.

탐닉의 군주가 미소 지었다.

“여러 군주 여러분. 내기 하지 않겠나?”

“갑자기 무슨 내기야.”

원정을 준비하던 이도, 집구석에 틀어박힌 이도, 갑자기 과거를 깨달은 이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탐닉의 군주가 만든 동영상 사이트 버서버섯의 열혈 정회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세 명의 군주는 그 덕분에 그의 행성으로 초대되었다. 그리고 여러 즐길거리를 즐기다 보니 그의 본론이 나왔다.

“내게는 후계자가 둘, 아니, 셋이 있지.”

“셋? 그때 동영상을 보니 그런 것 같기는 하더라만……그런데 댁의 후계자는 둘 아니었남?”

“둘이었는데, 하나 늘렸지.”

탐닉의 군주가 하는 말에 마성의 군주, 마성이 혀를 찼다.

“어떻게? 10년 전부터 후계자 선정 싸움을 했고 그때 애를 봤다고 해도 태어난 건 고작 2년 전 아닌가?”

10년 전 애를 보았는데 현재 두 살이어야 하는 까닭은 제국에서 태어난 아이, 특히 귀족은 8년간 인큐베이터에서 적절한 육체변환의 과정을 겪은 후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다. 탐닉의 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세 번째는 그런 식으로 낳은 건 아니고. 그저 군주(君主)의 세포 일부로 꽤 예전에 만들었지. 심심했거든.”

군주의 세포라니, 그거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 세 명의 군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를 돌아보고는 확신을 얻었다.

이 녀석 진짜 미친놈이다.

뭐? 세 명의 황제에게서 수여된 군주의 피와 살점을 이룰, 한 명의 군주가 만들어질 때 그 육신과 영혼, 삶과 운명 모든 걸 최상급으로 만들어줄 그 세포. 군주를 군주로 존재하게 만드는, 제국에서 황제의 세포 다음으로 월등한 128군주의 근간이 되는 세포를 일부라도 떼어 후계자를 새로이 만들었다고?

그건 ‘같은 분야’의 권능을 가진 두 명의 군주를 만드는 미친 짓이다. 말 그대로 자신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아니, 그 자신의 복제가 아니다. 그 자신의 근간이 된, 탐닉의 군주라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분야에서의 동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군주의 복제를 만드는 경우는 있다. 그놈도 좀 군주 사이에서 미친놈으로 불리는 부류지만 그건 ‘그 자신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제된 자신을 적으로 삼을 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복제에게 죽는다해도 복제 역시 자신이기에 그 자신의 존재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탐닉의 군주가 말한 그 방법은…….

“어, 그 정도라면 분명히 다른 후계자들과 비교할 만하겠지. 나의 성격과 삶과 인생이 강하게 깃들어 있겠지만 일단은 황제의 세포에서 분화한 군주의 씨앗이니까. 황제의 권능을, 운명을, 행운을, 미래를 일부나마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하늘의 황제에게서 배양된 세포이니 확실히 강할 거야. 하지만……왜 그런 놈을 만들어 놓고 이제야 후계자 싸움에 붙인 거지?”

마성이 조금 진정해서 반문했다.

“후계자와 비교할 꺼리가 아니지 않나? 흑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순혈 아닌가?”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그러나 탐닉은 그 의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심심해서 만들기는 했는데 제국에서 안 키웠거든.”

“뭐?”

“제국에서 보호받으며 제국의 기술을 받게 만들지 않았거든. 즉 세 번째는 제국의 어떤 축복도 받지 못하고, 피 속에 각인된 권능조차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냥 평범한 원시인처럼 자랐을 거야. 게다가 좀 험하게 굴렀다면 병신이 되어서 패배자로 살았을지도 모르고. 크키키. 탐닉의 피는 이기적이거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득 없이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게 리스크가 되어서 인생에 타격을 입히는 형태로 날아오지.”

물론 그 리스크를 지는 일은 어스 엠파이어 인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으므로 의미는 없다. 그러나 어스 엠파이어가 아닌 다른 ‘원시 지구’에서 자랐다거나 하면 같잖은 인간성 같은 것을 키우다 리스크를 잔뜩 짊어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야 이 미친놈아. 왜 그딴 짓을 해?”

마성의 뜨악한 표정과 물음에 탐닉의 군주가 어깨를 흔들며 키들거렸다.

“재밌잖아.”

“역시 이 자식은 미친놈이었어! 군주의 세포라며!”

입을 쩍 벌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탐닉의 군주는 해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본래 그들을 부른 목적을 말했다.

“그보다 여러분. 재미있는 게임을 해보지 않겠나?”

“게임? 탐닉의 군주인 그대와? 농담도 잘 하는군.”

“아니, 나랑 하자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주관자.”

“주관자라면? 게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중계를 할 뿐이지.”

중계를 한다고 말했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 것인지 고대의 군주, 고대가 물었다.

“무슨 게임을 하자는 거지?”

“매우 간단한 거야. 후계자 쟁탈전, 킬 더 킹에서 마지막에 승리할 자를 고르기.”

“음?”

세 명의 군주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하고 싶은 것은…….

“킬 더 킹이라는 게임을 좀 더 치열하고 재미있게 만들어보자?”

“그거지!”

세 명의 군주가 서포트를 함으로서 병력을 늘리고 조금 더 치열하게 만들자.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우리의 숫자가 셋이니 만큼 후계자를 한 명씩을 택하고. 흠, 장군이나 무장을 한 명씩 전해주는 건가? 선택한 이에게?”

“그런 것도 좋고 임무 같은 걸 맡겨도 좋겠지. 그 임무를 달성할 때마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가장 높은 이에게만 뭔가를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 명을 택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셋 중 하나만 뽑는 거라고?”

“그런 것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 뿐. 선택은 그대들 뜻대로.”

무대는 마련했고 그 무대에 올라선 후계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 다른 군주들의 선택이다. 탐닉은 그렇게 말하고 선택을 종용했다.

흥미를 느낀 마성이 잠깐 고민했다. 광신의 군주, 광신이 킥킥 웃었다.

“그럼 세 명에게 공동으로 퀘스트를 주지. 그리고 그 퀘스트를 세 가지 완수하는 이에게는 뭐. 장군이라도 하나 주던지 하고.”

“장군이 그냥 줄 수 있는 물건이냐. 미친놈아.”

광신의 말에 마성이 토를 달았다. 광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미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지. 탐닉의 군주가 우리에게 은혜를 입는 거니까.”

미래 탐닉의 군주가 될 이에게 은혜를 입힌다. 그렇게 생각하면 장군을 한 명 투자하는 것도 그리 손해가 아니다. 세 명의 후계자. 그리고 그들 중에서 살아남는 한 명. 그렇게 생각하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탐닉의 후계자들이니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싸움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면도 있다.

“간단한 걸로 하지.”

고대가 말했다.

“우리가 건네주는 세 명의 무장을 서로 싸우게 만들지.”

“싸운다고 말하면?”

마성이 물었다.

고대가 우아한 얼굴에 음침한 미소를 베어 물고 씩 웃었다.

“그 중에서 하나만 남은 이에게 무장을 건네주는 거지. 뭐 어떻게 싸우든 어떤 식으로 만나게 할 지는 몰라도 정해진 시간 안에 싸울 수 있도록.”

“세 번째가 명백히 불리하지 않나? 음, 흠. 아니군.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이건 좀 재밌을지도 모르겠는데.”

광신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럼, 핫. 그거 재미있겠군. 정해진 시간 안에 건네준 무장 중 한 명만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는 무장을 건네준다. 좋아, 재미있겠어!”

“수락한 건가?”

탐닉의 군주가 질문했다.

광신이 대답했다.

“그래.”

고대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지.”

세 명의 군주가 대답하지 않은 마성의 군주를 응시했다. 마성은 한참 침묵하고 있다가 대답했다.

“하는 수 없지. 그럼 쓸 만한 무기를 좀 내 줄까.”

“쓸 만한 무기로 치우(蚩尤) 어때?”

“……그 쓸 만한 무기로 네놈부터 조져줄까? 그건 내 호군이라고, 씨발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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