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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65화 (65/141)

< -- 65 회: 6> 승부. -- >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하지 않았더니, 그녀의 본성을 엿볼 수 있었다. 미지연이라는 인간의 본성은 생각보다 훨씬 선량한 듯 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다. 가슴만 조금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조금만 온순했으면…….

이시현은 온순이라는 말에서 옆을 바라보았다. 단미애가 눈물까지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이시현은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단미애가 적극적으로 혀를 엉겨왔다.

이 정도로 온순한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하긴 단미애가 도도하게 구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단미애니까 이런 온순함도 개성이 되는 셈이다. 이시현의 곁에 있는 여성들 중에 사실은 제일 강한 주제에. 이름의 힘을 얻지 못한 미지연이 경험 면에서 우위라고 해도 무장의 질이 다르다. 아마 단미애가 장정하고 친다면 미지연은 그날부로 미립자가 되고 말 것이다.

“흐아, 하아, 으아아, 하아아아, 가, 가요, 가아아아!”

열 개가 넘는 트럼프를 양손에 쥐고 오던 미지연이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비난은 그게 전부다. 이시현은 마침내 옷을 벗기고 단미애의 유방을 다 드러내게 했다. 그리고 유방의 꼭지를 모아 쥐고 하나로 모으고, 거듭 그녀를 자극했다.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토하며, 절정에 오른 단미애가 축 늘어졌다. 그녀가 앉아있던 소파가 흥건했다.

혼절하다시피 기대오는 단미애를 옆으로 슬쩍 밀어낸 이시현은 맞은편의 미지연을 바라보며 도발했다.

“게임 한 판 어때.”

“트럼프? 포커?”

“이기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지.”

“너를 전력으로 패게 해줘.”

“좋지.”

이시현은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순히 대답했다. 미지연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너는 구멍마다 하나씩 뭔가를 넣어야 한다. 이 정도는 들어줘야겠지?”

미지연 또한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포커를 자주 친 편은 아니지만 룰은 알고 있고, 지금은 떠다니는 먼지의 개수고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력과 총알도 꿰뚫어보는 동체시력이 있다. 자신은 있다.

“오냐. 한 판 붙자.”

이시현이 양팔을 벌렸다.

소리 높여 웃으며 선언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자! I wanna play the game! HA! HA! HA! HA! HA!”

* * *

어스 엠파이어의 세 황제가 모였을 때는 어스 엠파이어의 서력 1년이 되었다.

그 후로 2만 년.

약 2만 년에 걸친 시간 끝에 어스 엠파이어는 인근 우주에서 제일가는 최악의 제국이 되었고, 모든 이들을 떨게 했다.

하늘의 황제 진천은 자연을 자신의 발 밑에 두는 이였다.

말 그대로 패왕.

기와 마나, 포스와 스피릿 에너지 따위의 자연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힘을 집중하여 세계 위에 자신이 있음을 선언한 자였다.

그는 언젠가 하늘을 걷던 도중 자신이 올 것을 대비해 세 개의 탑을 쌓아두고 기다리고 있는 만물의 황제, 진언을 보았다.

그는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라 칭했지만, 놀랍게도 지상을 걷는 이들 중에 그의 친구가 될 이가 있었다. 그는 만물의 황제 진언과 악수하고, 자신이 살 탑으로 향했다.

하늘의 황제가 어스 엠파이어에게 베푼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스 엠파이어의 2만년 역사를 지켜온 힘.

어스 엠파이어의 주변에는 그 이상의 발전된 문명과 잔악한 제국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를 하늘의 황제가 처리했다.

말 그대로 구세신화의 주역처럼, 수억의 주민을 일격에 날리고, 별을 개조하여 만든 인공요새를 맨몸으로 박살냈다. 어스 엠파이어의 전쟁 선두에는 반드시 하늘의 황제가 있었고, 그에게 굴복한 문명만 3만이 넘는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

기, 마나, 포스나 스피릿 에너지 등등. 자연에서 추출가능한 모든 것들을 흡수하여 육체를 강화시키고 신체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술을 선사했다. 말 그대로 세계를 아래로 두는 권능.

다른 두 황제와는 다른, 하늘의 군주만이 지니는 특유의 힘이다.

그가 천신이자 무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기, 마나, 포스, 스피릿 에너지.

그 외의 많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이라는 객체를 향상시키는 요소가 된다. 신선들이 사용한다는 신통력 같은 것들도 결국 하늘의 군주가 내려준 힘에서 기인하는데, 이것들이 집약되다보면 인간은 분명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을 무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의 이시현처럼.

“……말도 안 돼.”

“어째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그야 당연하잖아.”

순발력이 아니다. 안력으로 쫓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냥 카드를 드로우하고 까지도 않은 채 딜(Deal)할 뿐이다.

포커를 치는 중이었다.

겨우 그것뿐인데.

이시현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일곱 판을 연속해서 이겼다.

“이건 사기야!”

“증명해 봐.”

미지연이 J 투 페어가 나왔으면 이시현은 Q 투 페어가 나온다. 미지연이 고심 끝에 카드를 내어 3트리플로 만들면 이시현은 4나 5 트리플을 낸다. 이시현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만 있을 뿐. 속임수가 있다면 미지연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카드를 섞는 이는 단미애였다. 그녀에게서도 별 다른 이상함이 없었다. 트럼프를 쥐어보는 것이 어색한지 좀 느슨한 자세이긴 했지만 이시현의 명령으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결국 이시현은 ‘운이 좋다’는 말이다.

손 하나 대지 않고서도 트럼프를 하면 ‘보통의 인간’에게서 반드시 이기는 패가 나와 준다는 말이다.

천운(天運)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군주가 모든 어스 엠파이어 주민에게 자신의 힘을 깃들게 하면서 바뀐 인간의 운명.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하나 같이 ‘운이 좋다’.

물론 운이 좋은 인간들끼리 붙으면 누구 운이 좋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머리 굴리는 솜씨, 경험과 숙련 따위로 나뉜다. 운이 좋기 때문에 모두가 패망하는 결과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방에 모든 걸 걸었다가 망하는 사태는 ‘없다’고 보아도 좋았다. 물론 그런 운조차 무시하고 한 방에 모든 걸 거는 미친놈들이 없는 건 아니다.

아마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무기를 강화하는 시도를 한다면, 여기서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직감을 느낄 때가 있다. 직감은 대부분 적중하며, 그 정도의 손절을 할 깜냥은 있다는 말이다.

생물로서 보다 완벽하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여 그들이 전하는 운명을 더 큰 운으로 덮기 때문에.

이시현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왠지 싸워도 질 것 같지 않다, 그런 막연한 자신감에 승낙했지만 결국은 전승. 압도적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상대가 머리를 굴린 것보다는 높은 패가 나온다.

지금 당장 복권을 긁어도 1등은 무리지만 2등, 못해도 3등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어스 엠파이어는,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으로 태어난 것만도 복을 받은 것이다. 세 명의 황제가 지배하기 때문에, 그들이 전해준 기술만으로도 이렇게 축복받은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론적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일곱 번 연속으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미지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보다 높은 패가 나오는 건 운이 좋다는 말 말고는 뭐라고 써야할까?”

이시현은 거만하게 고개를 젖히고 물었다.

“더?”

미지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더 할 거야?”

“……졌어.”

승산이 없다. 이대로는 끝이다.

미지연은 멍청하지 않았다.

타고난 강운이 그에게 존재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네가 진 걸로 하고 마지막 한 판을 하지.”

이시현이 카드를 모았다. 그리고 탁탁 두들겨 정리한 후 섞었다. 꽤 빠른 속도였지만 미지연이 집중하자 그 모든 동작을 느린 촬영 하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속임수는 없다.

카드를 세 장씩 받고 한 장을 들춘다. 이시현은 스페이드 원. 그리고 자신은 하트 원.

“작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

이시현이 씩 웃으며 카드를 드로우 했다. 스페이드 K, 하트 K, 스페이드 Q, 하트 Q, 스페이드 J, 하트 J. 미지연이 기겁해서 일어났다.

“마지막은 뭘까.”

“……10.”

“반만 정답이군.”

이시현은 카드를 비밀 카드를 받아든 후 뒤집었다.

이시현의 비밀 카드는 예상대로 스페이드 10이었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royal straight flush).”

미지연이 패배감이 깃든 어조로 신음했다.

10, J, Q, K, A. 문양은 똑같은 스페이드.

포커에서 가장 높은 패다.

이시현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카드 덱을 뒤집었다. 그녀의 비밀 카드는 다이아 J. 결국 J 원 페어에 그쳤다.

“진지하게 하면 이 정도는 나와주는군. 어때. 이게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실력이야. 행운도 실력. 이 정도면 살벌한 적이지?”

……이길 수 없다.

미지연은 강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이해했다.

자신이 인간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졌다면……상대는.

그녀의 주인이 될 사람은 분명히.

보통의 인간은 절대로 막지 못하는, 영웅 없는 신화시대의 괴물처럼 날뛰게 되지 않을까.

미지연은 더 이상 이시현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겁을 먹었다고 해도 좋다. 사람으로 대하는 건 어지간해야 그럴 것이다. 진지하게 마음 먹겠다고 해놓고 카드를 뒤집는데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나온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시현이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즐거운 구멍 막기 시간.”

“젠장!”

그러고보니 그런 약속도 했었다.

“더블유더블류더블류 쩜. 제이제이제이 쩜 넷. 그리고 이모티콘 별 띄고 냄비구녕 좀 막아주세요. 띄고 별. 30대 잘빠진 미시의 구멍을 좀 막아주세요.”

“그게 뭔데.”

“인터넷에서 내게 털린 새끼가 남기고 간 유언. 엎드려.”

“……씨발!”

당연하다는 듯이 터져 나온 욕설에 이시현이 대꾸했다.

“씨발이고 씨받이고 다 좋은데, 슬슬 욕설 줄일 때 아냐?”

이시현은 느긋하게 걸어와 미지연의 다리를 문질렀다.

“욕에 익숙해지는 것도 그렇고, 욕설을 할수록 네게 대하는 태도도 좀 험악해지잖아. 아, 일부러 그런 건가? 내 짐승 같은 면을 보려고?”

“좆을 까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미안. 난 예전에 고래 잡았지. 후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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