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59화 (59/141)

< -- 59 회: 5> 죽음의 게임. -- >

비인외도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몸이다. 두 명의 다른 라이벌을 제거하고 반드시 왕에 올라야 했다.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그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죽음 때문에 잃어버리게 될 꿈 같은 미래다. 미래지행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터무니없이 이기적인데도.

단미애는 이시현의 옆에 얌전히 앉아있다가 움찔 놀랐다. 이시현의 손이 그녀의 유방을 쥐었기 때문이었다. 옷을 입고 있지만 이시현의 손길은 꽤나 억셌고, 어느새 옷 속으로 손이 들어와 유방을 움켜쥐었다. 브래지어를 올린 후 유두를 주물거리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억눌렀다. SP는 상황을 눈치채고 있을 텐데도 아무 말이 없다.

이시현은 손 가득히 잡히는 그녀의 부드러운 느낌에 즐거움을 느끼다 이내 단미애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묻고 잠들었다.

“도착하면 깨워.”

“도착했다.”

이시현이 재차 웃었다.

“농담 말고.”

SP가 이를 갈았다. 차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수십 분을 달렸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각 동안 이시현은 잠들었다.

예전에는 불안한 미래와 스스로에 대한 한없는 자신감부족으로 인해 잠을 설치는 일이 빈번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눈을 붙인지 1분도 안 되어 잠든 이시현은 고작 한 시간 정도 잠들었을 뿐이지만 매우 가뿐하게 일어났다.

이시현이 도착한 곳은 이제 막 빌딩을 올리고 있는 건설현장이었다.

그곳에는 강주희와 남민아가 있었다. 그녀들은 단미애를 보더니 입을 벌렸다.

SP가 차의 옆에 삐딱하게 서 있고 강주희와 남민아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미녀는 누구야?”

“가, 가슴 엄청 커.”

거기에 놀라냐. 이시현은 대답해주기로 했다. 물론 스스로 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너는 누구지?”

“암퇘지입니다. 꿀꿀.”

“그렇단다.”

단미애는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았다. 거침없이 나오는 그 태도에 세 명의 여자는 각자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무표정하게 서 있던 SP조차도 나름 충격을 받은 것이다. 여자가 스스로를 암퇘지라고 지칭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이나 한 건가?

그녀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시현이 물었다.

“그래서, 이 건물이 내가 일으킬 사업체?”

“응. 교육 분야면 뭐든지 돼. 학원 같은 게 되려나.”

얼떨떨한 얼굴로 강주희가 대답했다.

이시현은 올라가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만한 건물이다. 사업도 꽤나 열심히 하려고 했던 듯 하다. 최소한 수십억 대 사업. 그런 곳을 이시현에게 건네주었다? 이시현의 재량을 보기 위해서?

강의곤, 태양그룹의 회장.

그의 대범함에 새삼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에 대해 처음 내린 기준은 변하지 않지만, 그 대범함만은 인정해주어야겠다.

“23일 후에는 건물이 다 만들어진대. 그 사이에 이런저런 사업인가도 내고 해야겠지. 무슨 학원을 만들 거야? 예의 인재양성학원?”

“응. 세부적인 내용은 다소 정리해야겠지만.”

이시현이 돌아섰다.

“그럼 돌아갈까?”

“응. 돌아가자. 저 차는 내버려두고 내 차 타자.”

강주희가 권유했다. 이시현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2인승이잖아.”

“자기만 나랑 가면 되지.”

“압, 치사해요.”

남민아가 깜짝 놀라 외쳤다. 단미애도 떨어질까 두려웠는지 이시현의 옆에서 몸을 배배 꼬며 비비적댔다.

이시현은 잠깐 고민했지만 이미 답은 정해진 사항이었다.

“내 차 타지 뭐.”

아직 내 차라는 실감도 없는 고급 세단에 올라탄 이시현은 옆자리를 가리켰다.

“누가 내 옆에 앉으려나.”

SP를 제외한 세 명의 여자가 가위바위보를 하려는 것을 본 후 이시현은 키들키들 웃었다.

옆자리에 앉은 것은 단미애였다. 두 명의 여자가 내는 손을 0.01초 단위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녀의 현재 시각. 이지기 못한다는 게 이상했다.

“흐윽, 흐, 으응. 꾸, 꿀꿀.”

옆에 앉은 단미애는 그 후 즉각 옷이 반쯤 벗겨졌다. 속옷을 깐 채로 유방과 보지를 끝없이 공략당하며 시트를 흠뻑 적셨다. 암퇘지로서 열심히 꿀꿀거렸지만 그보다는 신음이 더 많았다. 맞은편에 앉은 두 명의 여자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단미애가 온 몸이 붉어진 채로 이시현의 자지를 빨아주었을 때에는 어느새 강주희의 집으로 도착한 후였다.

“그래서 누구야? 저 어자는. 나처럼 백이 있거나 부자거나 그래?”

강주희가 잔뜩 골이 나서 물었다. 단미애가 이시현의 옆에서 서 있었다. 남민아는 강주희 만큼 매몰차진 않지만 맞아 맞아 하면서 강주희와 단미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내 보디가드.”

“보디가드라고? 여자가?”

“암퇘지.”

단미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디 부수기 좋은 것이 있나 검토했다. 그러다 한 켠에 세워진 골프채 세트를 찾았다. 한손으로 가볍게 들고 온 그녀는 3번 아이언을 쥐었다. 프로골퍼들에게도 엿 같은 신음을 안겨주는 특유의 채를 쥔 단미애는 그것을 꾸깃꾸깃 쥐었다. 갈아마시고 싶은 3번 아이언을 한손안에 들어오게 접어버린 단미애는 이시현의 앞에 내밀었다. 이시현은 그것을 쥐고 슛 하고 던지는 시늉을 했다.

강주희와 남민아가 아까보다도 훨씬 크게 입을 벌렸다.

“이, 이게 뭐야. 사람이야? 도대체……이게 가능하기나 한가?”

“맞아요.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누구에요? 저 사람은?”

이시현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너 뭐라고 했지?”

단미애가 대답했다.

“암퇘지입니다. 꿀꿀.”

***

석유시추회사인 BP그룹은 한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지간한 국가예산보다 많다.

전통도 있고 역사도 있는 이 회사는 한때 대영제국이라고 불린 나라에 적을 두고 있고 가장 번성할 때부터 활동해왔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원인 석유가 나는 여러 곳에 지분을 두고 있고, 송유관을 비롯한 석유채굴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생산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국영기업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

그곳의 후계자는 샤를.

백공자라고 불리는 소년이다.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 샤를이 후계자로 격상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성장이라며 반발하지만 그가 해낸 일을 생각해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BP그룹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를 그가 처리한 것이다.

맥시코만 지저 가장 깊은 곳에서 터진 석유 유출사고. 그 덕분에 세계 최대의 기업인 BF그룹조차도 박살날 정도.

피해는 그야말로 막심하고 누구하나 회복할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그때 백공자 샤를이 찾아왔다.

“내가 처리해주지. 대가로 내게 굴복해라.”

샤를이 가진 권능은 B급 권능 [왕의 지배].

패배한 자를 구원한 후 지배하는 것.

패배하고 마음 깊이 상처 입은 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고 수렁에서 건져올린다. 그 후 채워진 정신의 골에 따라 지배할 수 있는 수준이 달라진다. 시간은 지배하는 정도에 따라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첩될 수 있다.

가장 비참한 상황을 몇 번이나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때마다 구해주면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은 제곱으로 늘어난다.

BP그룹은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던진 샤를을 무시하고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왕의 권능]을 사용하기 전에 적합한 자잘한 군주의 능력을 통해서 그 과업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가벼운 최면과 세뇌. 그리고 말을 이해시키는 권능은 ‘한 번 믿어보지’ 수준으로 굳어졌고, 즉각 샤를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말을 불렀다.

퀸.

킬 더 킹에서 체스라는 게임을 고른 샤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대한 말이다.

샤를도 게인도, 킬 더 킹에 참가할 때 본래 데리고 있던 무장 및 장군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샤를과 게인은 룰의 틈을 이용하여 가장 강력한 말들인 장군을 빼냈다.

게인은 측천의 지위를 포‘병’으로 만들면서 무장도, 장군도 아닌 병사 신분이라고 빼냈고, 샤를은 일찌감치 게임이 시작될 곳을 찾아 퀸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몇 가지 자잘한 틈새를 찾아 서로간에 강력한 패들을 준비했다. 완벽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전력의 15% 정도는 채워넣을 수 있던 수준.

퀸은 샤를이 이 세상에서 완벽한 신분을 가지게끔 하고, BP그룹의 톱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줄 수 있는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어주었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BP그룹의 말에 샤를은 행동으로 대답했다.

다음날, 가장 무거운 지게차 대신 석유송유관을 짊어진 퀸은 수심 5000피트로 내려갔다. 사람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무게를 짊어지고 들어가는 것. 그걸 대처방법이라고 내놓으니 사람들은 다들 샤를이 미친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는 “네.” 하고 대답하고는 수심 5000피트, 즉 1500m아래로 들어가서 파열된 곳을 때우고 낡은 부분을 말끔하게 고쳐 수십 년간은 무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본래는 석유가 유출되는 부분을 뚜껑을 덮어 막고 밀봉하려 했던 조치보다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다.

수일 동안 심해 1500m속에서 작업을 하고, 기름때에 젖었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온 그녀는 도저히 인간 같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경악 속에 물었다.

“저건 사람입니까?”

샤를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보여?”

언제나 높은 곳에서 지배하고 있던 샤를은 한국 땅을 밟았다. 이미 행성을 넘나들고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어스 엠파이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땅은 꽤나 중요한 곳이라고 들었다. 땅으로 치면 선조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즉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에 불과하지만 어스 엠파이어의 기원이 된 세 황제가 처음 만난 곳이라고 하던가.

그래서 전쟁을 벌이면 언제나 이 한반도라고 불리는 곳에서 치르곤 한다.

가장 유력한 회사의 후계자 자리를 6개월 만에 차지한 샤를은 한국에 출장을 와 있다. 그는 퀸과 함께 찾아왔고, 여러 정제계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그는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이면서 영국의 기업의 후계자가 되었고, 개인으로서도 훌륭한 가문의 가주다. 이렇게 축복받은 인생을 가진 이가 둘 있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의 충실한 종이자 장군인 퀸이 노력한 결과다.

“퀘스트를 하면 하나의 말을 준다고 하던데. 흠, 어떻게 생각하지?”

프랑스인이지만 영국기업의 후계자, 하지만 타고 다니는 차는 이탈리아 제인 알파로메오. 희한한 구성을 하고 있는 샤를은 옆에 앉아서 서류를 넘기고 있는 여성에게 물었다. 여성은 샤를이 하룻 동안 만나야 하는 사람과 가야하는 곳을 훑어보다가 대답했다.

“제국이 전한 퀘스트 말이군요. 종류가 서바이벌이더군요. 제국의 방식이에요.”

‘말’이 될 무장을 제공해준다는 퀘스트를 받은 샤를은 거기에 참여할지 말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말을 준다면, 그것도 뛰어난 무장을 준다는 조건이면 하는 것이 옳다. 강한 말은 결국 승부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서바이벌.

제국에서 ‘생존’이라는 명제 하에 여성을 단련시키는 방식.

그 방식의 종류는 수없이 다양하며,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기껏 유망주를 투입했다가 지랄 같이 어려운 종류의 퀘스트를 받아 죽어버리는 일도 다반사. 유희의 군주가 제창한 무장육성계획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샤를은 알파로메오 줄리에타에 앉아서 차의 문에 손가락을 몇 번 톡톡 두들겼다. 유망주를 몇 발굴하고 무장으로 만들 계획에 있다. 애초에 제한숫자인 16인을 전부 채워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방식에 따라 ‘말의 기능’에 제한이 된다고 해도, 전략 전술에 따라 다른 형식의 무장이 필요할 테니까.

이런 생각은 백공자 샤를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흑공자 또한 절반의 말도 만들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지배한 샤를과는 달리 전장이 되는 한반도의 어둠을 장악했다. 그의 살벌한 명령에 달려들 조직폭력배들만 수만. 그는 가장 강대한 그룹을 흡수한 샤를과는 달리 매우 실용적인 병력을 만들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전장에 참여하는 기본적인 룰은 같다. 어쨌든 흑공자도, 백공자도 게임의 대가이니까. 서로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 게임에 시작할 때 끌어들인 수가 달랐을 뿐이다.

“전화를 해볼까, 흠.”

“전화 말인가요?”

“그래. 그 새끼는 뭐하나 궁금해서.”

샤를은 익숙하게 전화를 눌렀다. 단축키는 18. 백공자가 라이벌인 흑공자에게 바치는 최대의 천사다. 전화는 네 번쯤 울린 후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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