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8 회: 5> 죽음의 게임. -- >
단미애가 삼지창을 짧게 쥐고 세 개의 창날을 살짝 흔들었다.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은 다섯 개에 불과했지만 창날로 모두 튕겨냈다.
입을 벌리는 조폭들.
단미애는 어째서 그렇게 저 사람들을 두려워했는지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총알이 눈에 보인다. 튕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튕겨내고 창날이 우그러지지 않는다. 당연한 사실 앞에서 단미애는 첫 조폭의 목을 찔렀다.
목이 꿰뚫려 즉사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부르르, 하고 떨고, 오물을 쏟아낸다. 그대로 단미애는 시체를 꿴 삼지창으로 옆에 선 조폭을 후려쳤다.
-우드드드득!
사람의 몸에서 이런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 삼지창, 그리고 거기에 꿰인 시체에 두들겨 맞은 조폭의 몸 절반이 완전히 함몰되고 최소 백여 개 이상 뼈가 분해되었다.
한순간에 절명. 마치 로드 롤러에 갈린 것과 같은 충격을 맛보며, 두 번째 조폭은 반대편 벽에 날아가 함몰됐다. 단미애가 삼지창에 뀌여있던 시체를 떨쳐내고 날을 바닥에 찧고 몸을 띄워 올렸다. 그리고 세 번째 목표가 된 조폭을 향해 몸을 날려 그의 머리를 향해 이단옆차기를 먹였다.
순간충격 5톤이 넘어가는 이 압도적인 충격에 의해 조폭의 목은 그만 머리를 놓아버렸고, 머리는 볼링공처럼 천정을 날아갔다가, 벽에 부딪치고 바닥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꽈직.
기괴한 소리를 남기고, 머리 없는 시체가 움찔거리다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5분이 지났다.
단미애가 걸어 나왔다.
죽어버린 눈으로,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며 피투성이가 된 단미애가 걸어나왔다. 리퍼는 물끄러미 그녀를 보다가 손가락 하나를 들고 싱긋 웃었다.
“합격.”
“이제 어떻게 할거지?”
“으, 으응?”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 사람을 이렇게 죽였는데.”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게다가 흔적도 남아있다.
단미애가 우려하는 바를 깨달은 리퍼는 아,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물리게 했다가 부딪쳤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던 손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완전히 한밤중이 되었던 주변이 녹아내린다.
‘바깥’의 풍경과 혼합된다. 단미애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몸을 응시하고 흠칫 놀랐다.
핏물이 씻겨나가고 있었다. 단미애는 급히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사무실 또한 ‘문을 부수기 이전’으로 복원되었다.
“이건……?”
“말했지 않나요? 저의 심처 [망자의 거리]. 펼친 순간의 모습을 복제하여 놔두는 거예요. 물론 저의 취향에 맞물려 조금의 변형은 있지만요. 이를테면 밤이 된다던가, 발밑의 그림자가 주인이 바라보지 않을 때는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던가, 주변 거리에 목졸리거나 목이 잘리거나 해체된 시체의 모습이 남겨져 있는 식으로. 이번엔 그런 게 없었지만요.”
리퍼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의 심처인 [망자의 거리]는 심처를 펼친 순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거예요. 복제하여 보관했던 그때 그 상황을 덮어씌우는 거죠. 그 뒤에 일어났던 모든 참상과 형태는 저장했던 상황으로 복구된답니다.”
“그럼……조폭들은?”
“아, 복구는 되는데 말이에요. 생명은 복구가 안 되요. 복제도 안 되고요.”
리퍼가 하는 말의 의미를, 단미애는 깨달았다.
“완전범죄……!”
“알겠나요? 저의 심처를?”
리퍼의 묘하게 가학적인 미소를, 단미애가 바라보았다.
장군은 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저팔계의 힘을 지닌 지금 상황에서도, 리퍼를 바라보는 게 두렵다. 어째서 그녀가 ‘잭 더 리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지 이해했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돌아가죠. 당신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고마워.”
“뭘요. 장차 제 주인님이 될지도 모를 이시현님을 잘 보필하세요. 알겠나요?”
“그럴 생각이야.”
“그리고 말이에요.”
리퍼는 흥 하고 코 울림 소리를 냈다.
“남자 정액 풀풀 풍기면서 다른 여자 앞에 나타나지 말고요. 배알이 꼴린단 말이에요.”
단미애는 삼지창을 지워 없앴다. 그녀는 저팔계로서 지녔던 냉정한 감각을 지워 없애고 보통의 단미애로 되돌아갔다. 사람을 스물이 넘게 죽였지만 겁은 먹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리퍼 앞에서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며 사과했다.
음란해서 미안합니다.
단미애가 돌아왔다.
그녀는 이시현의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손을 바닥에 짚은 채 깊이 절했다. 이시현이 만족한 듯하자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었다.
아직은 부끄러운 마음이 남아 뺨이 붉다.
안내자로서 역할을 끝낸 리퍼가 손을 흔들며 사라진 후 단미애는 이시현에게로 왔다.
그는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녀보다 열 살은 젊은 나이지만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시현이 다 낡아빠진 추리닝을 입고 골방에 처박혀 있어도 존경할 수 있는데 멋드러진 모습이니 더욱 보기가 좋다.
이시현은 단미애의 과거 정리를 끝내던 상황을 알고 있는 걸까.
“잘했어.”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시현이 안다고 하고 잘했다고 하면 그걸로 된 거다. 단미애는 납득했다.
“앞으로도 나를 위해 봉사하도록. 내가 준 힘을 통해서.”
“네.”
“리퍼가 그러더군. 삼지창은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니라고.”
단미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리퍼가 다녀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시현이 그 일을 알고 있던 걸까.
“상보손금파. 저팔계가 사용하는 무기는 본래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더군. 팔계가 되기 전, 오능으로서 천상에서 천군일 때의 무기라고 그러던데. 뭐, 이건 장군이 되어야 얻을 수 있겠지. 갈퀴나 당파, 삼지창은 완전한 모습이 아닌 거야.”
“네…….”
“언젠간 그렇게 될 수 있을걸. 어쩌면 그때는 리퍼보다도 강해질 거야.”
리퍼가 어스 엠파이어에서도 유일하게 이름을 독식하고 있는 장군(Numbering IDOL)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마이너 하다. 이름의 힘이란 결국 유명세를 탈수록 많은 이들이 부르고 다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수록 강해지니까. 잭 더 리퍼라는 이름은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격이 떨어진다. 물론 그녀가 약하다는 건 아니다. 어지간한 장군보다도 강할 것은 확실할 터. 그러나 황제의 장군이며 번호를 가지고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장군들-신화의 주역이나 대대손손 이어질 영웅, 사상 최강의 괴물 이름을 딴 장군들에 비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시현은 단미애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한 단미애가 순진한 시선으로 이시현을 마주했다.
뺨은 여전히 붉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어. 게임이 뭔지는 알지?”
“네.”
“나와 같은 종류의 남자가 둘이 더 있어. 두 명은 준비된 멤버고 나는 끼어드는 입장이지. 신입이라고 해도 좋을 거야.”
이시현은 자신이 품은 여자들 중 유일한 무장을 향해 설명했다.
“장군, 무장, 일반인. 뭐 일반인은 의미가 없지. 그런 이들이 열여섯. 열여섯은 게임 판에서의 말로 움직이고 상대편의 군주를 쓰러뜨려야 하지. 결국 킬 더 킹, 왕을 죽이는 것. 그것이 유일한 승리조건이고.”
이시현은 킥킥 웃었다.
이시현이 웃은 이유는 의미불명이다. 단미애는 그렇게 생각했다. 웃긴 말이었나, 저거?
“왕이 될 수 있는 조건이지. 아무튼 단미애, 넌 내가 최초로 가진 말이야. 최초의 무장이라는 거지.”
이시현이 퀘스트를 통해 얻은 능력은 심처무장 만들기다.
만들 수 있는 무장은 심처무장인데 어쩐지 육탄돌격형 무장이 만들어졌다. 본래는 심처무장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름의 힘이 강대하다보니 억지로 변형된 것 같았다. 근간에는 물론 심처무장으로서의 능력이 있을 것이다. 리퍼와 마찬가지로.
잭 더 리퍼 또한 암살무장으로서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궁극의 특기는 심처 [망자의 거리]다. 그게 그녀의 이름과 합쳐져 터무니없이 잘 어울리는 특기가 되었다고 해도.
근간은 심처무장. 이를테면 결계를 펴고 세상을 바꾸는 마법사. 하지만 저팔계로서 이름의 힘을 부여받은 지금은 육탄전이 강할 것이다.
이시현이 무장을 만든 방법은 어스 엠파이어의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러니 그로 인해 완성된 단미애는 일반적인 상식으로서의 무장이 아니다. 애초에 수조에 달하는 일반적인 시민은 무장을 만드는 능력조차 없다. 무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시현은 어스 엠파이어라는 거대한 제국에서도 상위 1%의 인재에 들어간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단미애가 힘껏 대답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약함을 안다. 처음 만난 어스 엠파이어의 생물이 잭 더 리퍼였으니, 그 힘의 격차를 순수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보관되어 있는 기억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무장임도 안다. 그녀의 목적은 이시현을 보호하는 것. 그의 명령을 듣는 것. 그리고 그가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판단에서는 그가 무섭다고 느낀다.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잠재의식처럼 뒤로 밀려나 있다. 이시현의 명령 하나만으로 인단으로서의 단미애가 생각하는 모든 걸 내던져버릴 수 있다. 이런 판단을 매우 이성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무장인 모양이다.
“그럼 우선……. 흠.”
이시현은 느긋하게 턱을 괴고서 말했다.
“뭘 하지?”
“……네?”
“할 게 없어. 아, 미애. 아니, 팔계. 그렇게 불러야 하나? 아니지. 음, 이거 곤란한데.”
팔계라는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에게 붙일 수 있는 뉘앙스가 아니다. 물론 미애라는 본명이 있지만, 그래서야 이름을 붙인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시현도 잘은 몰랐지만 무장일 때에는 팔계, 미애. 두 이름을 같이 사용할 수 있었다. 무장은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무기이니까. 무기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창도 될 수 있고 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완전히 고형질이 되고 신검, 마창이 된 장군이 되었을 때나 완벽히 붙여진 명칭을 쓰고는 했다. 또 장군으로서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애칭도 사용할 수 있고. 그 이름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그냥 암퇘지라고 하지 뭐.”
“네.”
“암퇘지라고 했는데.”
“꿀꿀.”
단미애는 대번에 자신의 존엄을 돼지이하로 바꾸었다. 수치심은 들지만 모욕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는 돼지니까. 돼지가 돼지소리를 내뱉는 건 당연하잖아. 꿀꿀.
이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단미애의 그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던 그는 이내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의 밖에는 여성 SP가 대기하고 있었다.
예의 불만스러운 표정이긴 했지만, 값비싼 세단을 세워둔 채로 기다렸다. 이시현은 입을 벙긋 벌리는 단미애를 따르게 하고 차에 올라탔다.
“옆에 여자는 또 뭐지?”
“안면이 있잖아.”
“정말 그 여자라고? 그 시달리던 여자?”
그녀의 말에 이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보기에도 단미애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세한 특징은 남아있다. 성형 같이 얼굴을 미는 걸로는 곧바로 묻혀버릴 것들. SP는 차차 이해했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군.”
“너도 안기면 달라질 걸.”
“네게?”
“내게.”
코웃음치면서 SP가 차량을 이동시켰다. 이시현이 탄 세단에 스치지 않기 위해서 차들이 옆으로 빠진다. 앞에 선 차도 불안해하고 있는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같은 직선로를 회피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그 앞의 차는 뒤에 나타난 세단을 보며 당혹감을 삼킨다. 차 하나 때문에 사람들의 긴장상태도 달라진다.
이시현은 피식 웃었다.
이제 겨우 스타트지점.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시작은 하지도 않은 상태. 그런 상황인데도 벌써 세상의 왕이 된 것 같다. 어스 엠파이어의 군주, 128명의 군주 중 하나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최소한 한 개의 자원행성과 관리행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겨우 회사 하나, 수천, 수만 명의 그룹 하나, 나라가 아니라 행성이다.
“즐겁냐?”
SP가 도발하듯 물었다. 이시현이 방금 비웃음 비슷한 것을 흘린 덕분인 듯 했다.
“아니.”
“그래.”
이 정도에 즐거워서는 곤란했다. 물론 곤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