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57화 (57/141)

< -- 57 회: 5> 죽음의 게임. -- >

단미애는 무장이 되었다.

육체는 이미 무장의 그것. 주먹을 휘둘러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을 깨고도, 손에는 약간의 통증만, 콘크리트는 허물어지는 그런 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무장으로서의 성질도 바뀌었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무장으로서의 마음가짐.

‘안내자’를 따라서 그가 하라는 것을 하라.

이시현이 명령한 것을 단미애는 따를 생각이었다. 아니, 애초에 거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령이 아닌 일이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터. 그녀는 자신이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건 표현하자면 기계 같은 것이 아닐까.

정신적인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다.

기계 같은 삶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기계적인 정신을 가진 것처럼 이시현의 명령은 부조리하다고 느끼면서도 수행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단미애의 앞에는 장군이 있었다.

잭 더 리퍼.

이름만큼은 유명한 살인마. 하지만 그 이름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리퍼가 장군이라는 위치에 올라있다는 사실이었다.

장군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최종병기.

그건 단미애가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터무니없는 불길함이, 공포가.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안내자로 불리는 일이 많네요. 나쁘진 않지만요. 평소 생활은 다소 무료하거든요. 뭐 차치하고 제가 가르쳐드릴 것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에요. 사고방식이 바뀌었을 거예요. 그래서 죽인다고 해도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진 않겠죠.”

“자, 잠깐만. 사람을 죽인다고?”

“네. 왜 그렇게 놀라는 ‘척’을 하는 거죠?”

단미애가 흠칫 놀랐다.

자신은 놀라는 ‘척’을 한 건가?

단미애는 사람을 죽인다는 표현에 그리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을 보고 당혹했다. 사람을 죽인다.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수십 가지, 수백 가지 머릿속에 떠오른다. 피, 아니 그보다 짙은 유전자 형질속에 새겨진 ‘사람을 살해하는 방법’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다.

“게다가 당신과 제가 죽일 사람은 좀 죽어도 될 사람들이랍니다.”

“그게 도대체 누구기에…….”

“당신을 협박했던 녀석들이요. 뭐 다섯 명인가가 잡혀가서 노리개가 되었지만, 다섯이 전부일리 없잖아요.”

단미애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들을 죽이러 간다고?

“그들은 조폭인데……?”

조폭. 폭력의 상징.

일반인에게는, 특히나 빚을 진 이에게는 한없이 두려운 상대. 그들의 협박과 시비를 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 단미애 또한 그들을 생각하면 온 몸이 떨려왔다.

“네. 그들은 조폭이죠.”

쯧, 하고 혀를 차고 리퍼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장군과 무장이고요.”

리퍼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단미애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자신이 강해졌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실감할 수는 없다. 주먹 한 방에 사람을 육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마음이 설마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걸 위한 안내자일까. 단미애는 리퍼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생명을, 인간을 살해하여 영혼까지 새겨진 피의 냄새는.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다, 당신은…….”

어린 소녀의 모습이지만 그녀는 결코 단미애보다 어리지 않을 것이다.

“무장이 되었잖아요. 이제 당신은 단미애라는 이름이 아니에요. 저팔계, 쿡. 그래요, 팔계죠. 보이는대로 암퇘지네요.”

리퍼가 키득 하고 웃었다.

“저팔계로서 다시 태어난 당신은 과거와 결별해야 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 세계의 모든 방범망은 우리를 찾지 못해요.”

어느새 리퍼가 걸음을 멈추었다. 건물이 하나. 그 건물에는 사채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업무를 하는 조폭들의 사무소가 보였다. 일반적인 사업장, 그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곳.

단미애가 온 몸을 끌어 모으며 신음했다.

사업장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갑자기 주변을 에워싸는 듯한 불길한 기세.

뭔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괴악한 느낌.

단미애는 리퍼를 바라보았다.

리퍼가 어느새 새까만 나무지팡이를 바닥에 짚고, 반대편 손으로는 메스를 몇 자루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빙그레 웃었다.

“느꼈나요? 잭 더 리퍼의 심처인 [망자의 거리]랍니다.”

단미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게 그늘지고 있는 세계. 사람의 흔적은 없고 바람조차도 ‘심처가 펼쳐졌을 때 불어온 것’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가 정체되고 세계의 순환이 멎고, 모든 것이 정적으로 감싸였다. 단미애는 이런 현상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건…….”

“심처. 자신과 그 근처만 바꿀 수 있는 신전과 주변 공간 및 세계 전부를 바꿀 수 있는 성역이 있답니다. 심처란 자신이 품고 있는 세계를 꺼내는 방식. 세계를 자신의 이상으로 변형시키고 이끌어나가는 과정. 그건 위대한 마법이기도 하고, 무위자연의 경지를 혼합한 것이기도 하고, 체내에 품은 나노입자를 분출하는 식이기도 해요. 세 황제님의 성향에 따라 다르답니다. 저의 심처인 [망자의 거리]는 저를 기준, 반경 420m의 공간을 복제, 따로 떼어놓는 것. 말로는 좀 어려울까요?”

리퍼가 싱긋 웃으며 지팡이를 들고 휘둘렀다.

“지금 심처를 펼친 순간, 이 세계의 분기가 두 개로 나뉘었다는 말이랍니다. 뭐, 자세한 사항은 벌여놓고 확인하도록 하죠.”

단미애는 점차 어두워지는 공간에 겁을 먹었다.

심처라는 것을 사용하고 난 뒤.

주변의 공간이 점차 침식을 거듭하고 있다.

어두워지고 있다.

겨우 1분. 그 정도의 시간 만에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아스라이 빛나는 별빛이 반겨주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던 반경 420m의 공간, 총합 840m의 원구 내는 ‘바깥’과는 달리 완전한 밤이 되었다.

그 구체안에 들어있던 조폭들도 바깥의 이상함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 리퍼와 단미애가 보이자 그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퍼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조폭들을 한참이나 올려다본 리퍼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메스를 휘둘렀다.

사람이 ‘갈라졌다’.

두 동강이 났다.

직소퍼즐처럼, 아니. 무슨 종잇장 갈리듯 사람의 상반신이 두 동강이 났다.

어느새 메스는 그녀의 키만큼이나 길어져 있었다.

“무구랍니다. ‘이름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대개 이런 것을 사용할 수 있어요. 이 메스는 말이에요. 무지무지 예리해진답니다. 닿는 것이 물질이라면 뭐든지 벨 수 있을 정도로. 단분자라고 하죠? 뭐, 그냥저냥 사용할 수 있는 건데 어머나 놀라워라. 제가 사용하면 사람을 해체할 수 있을 만큼 길어지기도 한답니다. 누가 들어도 강하지만, 제가 들면 확실히 더 강해지죠. 물론 이걸 다 잃는다고 해도 문제는 없지만.”

사람이 반 토막 나는 이 믿기 어려운 광경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던 조폭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다.

“너희들은 누구야!”

리퍼가 실크 햇을 벗고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잭 더 리퍼. 이쪽은 암퇘지. 그리고.”

실크 햇을 던져 말을 꺼낸 조폭을 ‘폭발’시키고 그 피와 살점을 뒤집어 쓴 채로 리퍼가 걸음을 옮겼다.

“당신들을 사냥할 사람.”

모자조차도 사람을 파괴할 파괴력을 가진다.

단미애는 이런 이가 제국에 ‘수없이’ 있을 거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오한이 몰려들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아니, 생물조차도 아니다.

강해진다는 게 저런 건가?

그런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강해진다는 건 좋다.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강한 것에도 정도가 있다.

리퍼가 고개를 돌리고 단미애를 돌아보며 채근하듯 말했다.

“남은 이들 모두를 죽여요.”

리퍼가 겁을 먹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미소지었다.

“아니면 당신이 죽어요. 나에게.”

단미애가 입술을 깨물었다.

“힘줄 하나하나 잘라줄게요. 심장을 씹어줄게요. 보지를 떼놓고 변태성욕자에게 팔 거예요. 유두를 잘라 구워먹을 거예요. 머리채를 다 뽑고 가죽을 찢어발길 거예요. 눈알을 뽑아 발로 차 터뜨릴 거예요. 못할 것 같나요?”

단미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아요. 눈치는 있군요.”

리퍼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시작해요.”

단미애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읊으며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냐의 양손에 들린 것은 거대한 창.

무게는 128kg. 폭은 7cm. 길이는 2.1m.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약 3세기 후에나 발견될 처리를 통해 터무니없는 탄성과 강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 삼지창. 그것을 드는 순간 머릿속이 지나치게 냉정해진다.

이건 나쁘다. 이런 상태는 곤란하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 감정은 단미애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세포 속에 깃들어있던 힘, ‘저팔계라는 이름의 힘’이 이런 정신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일 터였다.

단미애가 삼지창을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의 문을 두들겨 깨부쉈다. 쇳덩이가 된 문이 그녀의 손길에 우그러져 떨어져나갔다.

사무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폭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기관총도 뭣도 아니지만, 사람을 살상하기엔 충분한 총.

단미애는 문이 박살나는 것과 동시에 고함을 지르는 이들을 힐끗 바라 보았다.

“쏴! 저 개년을 죽여 버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