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3 회: 5> 죽음의 게임. -- >
5> 죽음의 게임.
15셀은 많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적은 돈도 아니다.
셀은 어스 엠파이어에서 사용되는 화폐단위로, 무장을 만들고 장군을 키우는데 소모되는 재화다. 그리고 이 셀을 금이나 다른 화폐로 바꾸면 막대한 돈을 가질 수 있다. 셀은 일반적인 자원과는 달리 ‘생산하고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시현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처벌을 받은 양아치들의 생명수당으로 15셀을 받았다. 그리고 필수교육을 통해서 받은 셀을 합쳐서 두 명의 무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시현은 병실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사흘을 버텼다.
혐오감이. 지독한 메슥거림이 밀려왔다.
안면이 있는 이들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처참했다. 물론 처참했고 보기 괴로웠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라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재만은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저버린 살인 게임에 참여해서, 죄다 처참하게 죽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있다.
다만.
다만 이시현이 혐오감과 절망과 공포를 함께 느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이시현이 두려움을 느끼고 메스꺼움에 말을 내뱉지 못하는 이유가 그거다.
귀족이 되지 않으면. 귀족이 된다고 해도.
그들간의 경쟁에서.
어스 엠파이어의 지배자급이 되지 못하면.
자신 또한 저런 게임의 말이 되어 처참하게 살해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이 참여하는 이 게임, 킬 더 킹조차도.
지켜보며 폭소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시현은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 것이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새로운 인생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후회라는 감정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런 후회보다, 두려움보다, 혐오감보다도.
이시현은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걸 선택했다.
“이긴다.”
어스 엠파이어.
“반드시.”
탐닉의 군주.
“절대로.”
킬 더 킹이라고 하는 게임에서.
“나는 승자가 될 거다.”
이런 선택을 한 이시현은 사흘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벨을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시현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퇴원을 명령한다. 이시현은 바깥에서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을 보면서 씩 웃었다.
즐길 것이다.
그리고 이길 것이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희생을 줄일 것이다.
“그럼 퇴원할까.”
퇴원을 하자. 그리고 강주희와 남민아를 안자. 허리가 아프도록, 그녀들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도록 범해줄 것이다. 그리고 추태스러운 모습도 찍을 것이다. 그것들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면서 또다시 범할 것이다.
“흐…….”
이기면 되는 거다.
“가자.”
이기는 사람만이 각광받고 기준이 되는 세상은 어스 엠파이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참. 그러고보니…….”
다시 안아야 할 사람이 있지.
이시현이 킥킥 소리 내어 웃었다.
단미애.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칼침까지 맞았어. 그리고 이런 고뇌를 해야 했지. 당신을 괴롭히던 남자들이 갈리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뇌해야 했어. 당신만은 용서 못한다.
누군가를 구해줌으로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 예전에는 운명이려니 했지만 현재 이시현이 된 지금은 ‘착한 일 해서 처음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 피해보상을 받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다.
이시현은 딱 달라붙어 팔짱을 끼는 강주희와 남민아를 보면서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의 쾌락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참아야 한다. 그녀들을 괴롭히는 것은, 단미애를 한껏 범한 후로도 충분하다.
“잠시 다녀올게.”
“잉? 사흘이나 참았는데? 자기, 어디가려고?”
“비밀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시현은 강주희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가 작지만 확실하게 대답했다.
“울고불고 빌어도 멈추지 않고 범해줄 테니까.”
강주희가 다리를 떨었다. 옅은 쾌락이 깃든 미소를 지으며 뺨을 붉혔다. 그녀는 이시현을 바라보고, 그리고 우아하게 웃었다.
“약속이야, 자기?”
이시현은 남민아의 귓가에도 속삭였다.
“한 번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하면 네 알몸 사진을 사방팔방에 뿌려주지. 작은 창녀.”
“오빠, 진짜 지독하네요. 후훗. 얼굴은 꼭 모자이크 해주세요.”
남민아 또한 자신을 극히 모욕하는 말에도 도리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달라붙었다. 그만큼 이시현에게 빠져든 것이다. 그의 미모에, 정력에, 전투실력에, 위치에, 매력에. 이시현은 두 명의 무엇하나 아쉬운 것 없는 여자들이 색녀처럼 웃으며 기다리는 걸 보면서 재차 마음을 굳혔다.
질까보냐.
여기서 멈출까보냐.
웃기지 마.
두 명을 제치고 병원을 빠져나오자 여성 SP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벤츠와는 또 다른 차량이었다. 국내 재계서열 1위에 빛나는 회장이 타고 다닌다는 차량으로 방탄차량에 ‘알라의 요술봉’에 직격당해도 운전자와 타고 있는 사람은 무사히 탈출시키는 옵션이 장착되어 있었다.
“너무 고급 아닌가? 회장 영감님은 도대체 왜 이런 차만 주는 거야?”
“당신 거야.”
“뭐?”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이시현은 말도 안 돼, 그런 표정을 지었다가 곧 피식 웃었다.
이제 이 차가 내 거라고? 죽이잖아. 이런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고? 이건 뭐 대통령이 부럽지 않다. 이시현이 만족한 듯 웃자 SP의 표정이 찌푸러졌다.
“조폭과 맞짱 뜨고 안 죽은 대가라고 하더군. 아, 물론 또 다른 조건도 있어. 회장님을 영감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그렇게 어려운 부탁을 하다니.”
이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곧 졌다는 듯 말했다.
“할 수 없지. 영감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럼 영감이라고 불러주지.”
“뭐 임마?”
SP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시현이 농담이야,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장님이라고 불러주지. 공식자리에서는.”
“짜증나는 놈. 타라.”
“어딜 갈 건지는 알고?”
“네놈이 생각하는 건 뻔할 테니까.”
이시현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서 좋군. 덤덤하게 생각하고는 차량에 올라탔다. 최소 수억 원 대, 3억 원은 확실히 넘는 차량을 거저 얻었다. 이런 차량에 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기에 이시현은 매우 만족했다.
이러다가 다른 차량을 타지 못하는 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푹신한 소파. 표범 가죽 융단이 바닥에 깔려 있다. 넓은 공간에, 긴 다리를 뻗어도 어딘가에 치이지 않는다.
“좋군.”
“좋냐.”
“정말로 좋아.”
이시현은 만족했다. 강주희와 남민아가 창문 너머에서 대꾸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다리고 있어.”
이시현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눈을 감았다.
정말로 차량이 이동하는데 거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느긋하게 이동하는 차량 속에서 이시현은 즐거움에 미소 지었다. 좀처럼 웃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단미애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시현은 창문너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이시현이 나타나자 얼굴을 굳혔다.
긴장하고 당황하다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내일 찾아와.”
SP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그리고 존댓말 쓰고.”
“싫어.”
그림처럼 차량이 빠져나간 후 이시현은 집안으로 향했다. 단미애가 얼굴이 빨개진 표정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현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가는 손목을 쥐고, 양손을 벌렸다. 단미애가 손을 모으려 했지만 턱도 없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미애는 깜짝 놀라 이시현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단미애는 이 말도 안 되는 그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시현은 무방비상태가 된 단미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깊은 키스를 나누고 혀를 감았다.
“흐윽, 제발, 문은, 문은 잠그고…….”
“문을 잠궈주면 뭘 해 줄거지?”
이시현은 말을 높이지 않았다. 단미애 또한 그것을 알았지만 뭐라 항변할 수는 없었다.
“……할 테니까…….”
이시현은 잠자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타액으로 흠뻑 젖은 입술을 달싹이며 단미애가 울 것처럼 말했다.
“안길 테니까……!”
이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 문을 잠갔다. 낡아빠진 구식문이지만 자물쇠는 세 개였다. 세 개 모두를 잠근 후 그녀를 안았다. 가슴 앞에서 안아들자 단미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독히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현은 그 손을 내리지 않았다.
어차피…….
어차피 내리게 되어 있으니까. 이시현은 그녀를 안아들고 침대방으로 향했다.
낡아빠진 침대였지만, 두 명이서 잘 수 있는 침대였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이시현이 정장을 벗었다.
후끈거리는 열기.
단미애가 숨을 헐떡였다.
상황 자체가 너무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시현 또한 더운 숨을 내쉬었다. 넥타이를 풀었다. 거칠게 풀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조각 같은 몸이, 단미애의 손가락 속 시선에 깊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