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 회: 4> 제로 섬. -- >
“그놈들? 내 자기에게 칼침 놓은 놈들? 그놈들 사고 났어.”
“사고?”
“응. 이상한 차량에 실려 가다가 유조차를 들이받고 도로에서 불이 붙었지 뭐야. 다 죽었대.”
“다 죽었다고……? 음.”
그게 어스 엠파이어식 처벌인가. 이시현은 다소 실망감을 느꼈다.
그녀들이 따따부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가버리고 혼자 남은 병실에서, 이시현 또한 긴 하품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서 잠들려 할 때였다.
눈 앞에 어스 엠파이어의 퀘스트와 알림을 전해주는 홀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럼 그렇지.”
처벌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처벌의 시작은 그들 전원이 머리를 붕대로 싸맨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어떤 건물 안.
그들이 눈을 떴을 때, 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고 바깥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인공의 빛이 깔려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형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머리가 아직 아픈 모양이었다. 그는 머리를 만지다가 붕대의 감촉에 기겁했다. 하나둘씩 의식을 찾는 이들도 머리에 붕대를 싸매고 있었다. 형님은 그 붕대를 바라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붕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머리에 폭탄을 장착했습니다. 붕대를 풀면 폭발합니다. 확인을 위해 풀어보는 것을 말리진 않습니다.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참을 수 없는 오한이 그들의 정신을 살짝 울렸다.
“여기는 어디냐. 그리고 우리는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걸까. 붕대를 풀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이지만 풀 수는 없었다. 풀어서 일어날 사태가 ‘만약에라도 있다면’ 폭발할 테니까. 머리가 폭탄과 함께 폭발한다는 확증은 없지만, 터지지도 않는 폭탄을 장착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겁을 먹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어디선가 확성기 비슷한 것으로 키운 소리가 들렸다.
“제로, 섬, 게임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뒤를 이었다.
“제로 섬 게임은 참여하신 분들 중 한 분만이 이 건물에서 나갈 수 있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승자는 생명을 얻어서 살아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패자는 죽습니다. 그리고 승자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음침하면서도 기괴한 소리. 그 소리는 듣는 이를 한없이 불쾌하게 만드는 더러운 마력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신들 중 한 명의 붕대를 제거하세요. 카운트는 5분. 두 명의 붕대를 제거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미친놈!”
고함을 지르는 형님과 동생들의 소리를 뒤로 한 채.
“크키키키쿠쿠키키키히히히히히히하하하하하하히크크크키카!”
“키키쿠쿠키키키히히히크히히히히!”
“꺄하하하하하핫! 꺄아아아아하하하!”
따라하려해도 할 수 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빨리 죽여! 죽이라고!”
수없이 많은 이들의 함성소리가 뒤따랐다.
공포.
지독한 공포가.
몸을 에는 한기와 함께 그들의 머릿속을 울렸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아참. 5분 내에 제거하지 못하면 여러분들 머리에 장착된 폭탄 모두가 카운트되어 터집니다. 그리고 팁을 하나 알려드리지요. 제한 시간인 5분은 [이 게임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닙니다].”
심장이 울린다.
절망이라는 감정이, 어느 덧 공포와 뒤섞여 그들을 광란으로 이끌어간다.
“이 게임에서 5분을 빠듯하게 쓰면 다음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끝나서 터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
확인사살을 하듯이.
그 소리는 고막마저 터뜨릴 것 같은 괴음을 내지르며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이시현은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형님의 말씀에 의해 겁에 질렸으면서도 누구 하나 타인의 붕대를 풀지 않고 버티는 그들의 모습을. 이시현은 너무 재미없어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강제적으로 형님의 머리가 터지는 걸 목격했다.
지독하게 그로테스크했다.
저게 현실로 일어나는 일일까.
말이나 되는 건가?
이시현은 위해를 가하는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칼침까지 맞았지 않은가. 그들의 고통이 가혹해지리라 생각하며 상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응징을 당하길 바랐다. 그들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저건 좀 아니지 않은가.
“형니이이이임!”
“지, 진짜로 터졌어! 이 미친놈들!”
“미쳤어, 미쳤다고!”
형님의 사망. 그것이 안겨준 사실은 무거웠다.
절규하는 이들을 앞에 두고 사회자는 여전히 웃음 섞인 소리로 화답했다.
“자, 그럼 두 번째 게임으로 넘어가지요. 1분 만에 한 명의 머리 붕대를 풀 수 있다면 세 번째 게임으로 갑니다. 하지만 못 풀면? 네, 두 번째 게임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 게임을 하면 얼마나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겁을 먹었지만 누구 하나 버린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형님이 죽었지만 동생들 사이에서 아직 와해가 일어나진 않았다. 아니, 이기적이 되기엔 상대가 주는 공포가 너무 강해서 뭉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1분 동안 갈등은 했지만 누구 하나 머리의 붕대를 푼다는 생각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아쉬워하며 사회자가 말한다.
“두 번째 게임을 하고 싶다니, 곤란하군요. 그렇다면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게임은 톱니바퀴 넘기!”
어마어마한 굉음을 일으키며, 콘크리트나 철강을 자르기 위해 사용되는 톱니가 수두룩한 공간. 그 공간에 동생들은 놓여 있었다.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 그리고 그것들이 절묘하게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카운트 시작! 10초 내로 한 명씩 출발하시길!”
“미친놈!”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공간. 수 센티미터의 강철도 자르는 공업용 톱니가 끝없이 회전하는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어떻게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은 있다. 아마 몸을 잘 제어하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해도 몸이 갈가리 찢겨나가고, 조밀조밀 연결된 곳에서 지옥과 같은 고통을 연속적으로 겪으며 시체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절규했다. 하지만 나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서 째깍째깍 울려퍼지는 신호.
형님의 머리가 폭발한 것처럼, 그들의 머리에 심어진 폭탄이 터진다는 신호. 선두의 한 명이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다 9초가 되었을 때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목숨을 거둘 장애물 앞에서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던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엎드린 채 기었다. 허리 높이에서 회전하는 톱니. 그것을 넘어가는 건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그는, 동생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이동했다.
바라보는 동생들. 동생들 사이에서 얕은 환호가 울려퍼지는가 싶더니 그것은 곧 절망으로 바뀐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수평으로 서 있던 톱니가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피가 튄다. 살이 튄다. 뼈가 부러진다.
절규가 뒤를 잇는다.
“와하하하하하하!”
“까르르르르르!”
“푸핫핫, 으하하핫!”
지독한 호러 쇼를 보면서 웃는 사람들의 목소리.
카메라도 없고 촬영장치도 없지만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이 지독한 호러 쇼를 지켜보고 있다. 웃음을 터뜨린다. 10초가 다시 카운터 된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버린 시신을 앞에 두고 동생들은 눈물을 흘렸다. 10초가 되었지만, 두 번째 동생은 움직이지 못했다. 톱니는 사람을 살해한 후 위아래로 거듭 움직이고 있던 탓이다.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그런 생각으로 주저하던 그는, 이 쇼를 관리하는 이들의 자비심에 기댔다.
물론 자비는 주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폭발했다.
남은 것은 남자 두 명 뿐. 두 명의 동생은 추하게 울면서 절규했다.
쇼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재차 카운터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거냐! 뭘 잘못했다고 이런 짓을 시키는 거야!”
동생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사회자가 대답했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을 건드린 심판입니다. 물론 무엇보다 우리가 즐겁기 위해 이런 게임을 제시하는 거지만요. 이런, 겨우 두 번째 게임인데 그렇게 겁을 먹다니.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하는 수 없군요. 선택권을 드리지요. 서로를 죽이세요. 그리고 한 명만을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낙심하며 하는 사회자의 말에 주변에서 메아리치듯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재미없어, 이런 것 때문에 셀을 제공한 게 아니라고.”
“서로 죽이는 건 재미 없단 말이야!”
“좀 더 재미있는 게임 보여줘!”
사회자가 말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단 말이에요. 아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머뭇거리는 게 당연하겠지요. 워낙 겁쟁이들이니 이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두 명의 동생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품속의 칼을 꺼냈다.
“시발.”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홰를 친다. 죽인다.
머리가 터지는 것보다, 온 몸이 난도질 되는 것보다 안면이 있는 서로를 죽이는 게 덜 고통스럽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한 명이 남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귀와 같은 눈동자를 가지게 된 동생이었다.
복수의 마음과 공포의 마음, 둘 모두를 가진 그가 올려다보았다.
“씨발 새끼들아! 나가게 해줘!”
사회자가 말했다.
“오, 유일한 생존자님, 결국 가장 친한 이를 죽였군요! 그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죽였어요! 핫핫, 좋아요. 그 목숨, 그 가치 있는 목숨을 살려드리겠습니다. 출구는 저쪽입니다.”
멈춰있던 톱니가 동시에 회전한다. 톱니로 이루어진 것들이 기계 팔을 달고 생존자를 향해 모여든다. 눈이 커진다. 사람을 죽였다는, 자신이 살기 위해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악마와 같은 시선을 가진 그는 대번에 겁을 먹었다.
톱니들 너머로 문이 열려 있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에는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싱긋 웃고 있었다.
“출구는 이쪽입니다. 오세요.”
톱니가 동생에게로 가까워진다.
동생이 눈물을 흘렸다.
톱니가 모여든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이시현은 입술을 악물었다.
어스 엠파이어.
이 세계가 악의 제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문명들을 파괴하고 흡수하며 노예로 만든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주에서도 터무니없이 강대하다고,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이시현은 그리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미국과 같은 쪽이겠지. 그런 부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이 어스 엠파이어식 ‘게임’이다.
이시현은 어질거리는 기분과 구토하고 싶은 기분과 절망하고 싶은 기분 모두를 느꼈다.
“이 세계는…….”
사회자가 통한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게임, 제로 섬 게임의 승자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사회자가 곧 히죽 하고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실버 햇. 입고 있는 벨벳 정장과 잘 어울리는 모자였다.
“하지만 5분 후, 15명의 또 다른 죄인이 찾아옵니다. 게임을 즐겨주시는 여러분. 5분간 휴식을 가지겠습니다.”
이런 일이 한 시간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난다.
그것을 사회자는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희생자를 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15셀을 입금하여 드리겠습니다. 소정의 금액이지만 받아주시길. 또 희생양을 찾으면 저희 쪽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공한 이시현에게도 대가를 선물하며 다음 희생자를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세계는…….”
이시현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정말 너무 나쁘잖아.”
장점만을 취득하며 즐겨온 이시현의 앞에, 어스 엠파이어의 진면목이 드러났을 때.
이시현은 격한 혐오감과 절망과 공포를 함께 느꼈다.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그는 아주 깊숙한 곳에 잠긴 어떤 감각을 깨우쳤다.
이 ‘게임’의 승자가 되면 저런 곳의 귀족이 된다고?
속이 메스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