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0 회: 4> 제로 섬. -- >
이시현은 가볍게 걸음을 옮겨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동생의 머리를 걷어찼다. 마치 축구공을 걷어차는 듯한 동작이었다. 일격에 우직, 소리가 나며 코가 패이고, 이빨이 우수수 날아가고 고개를 젖힌다. 핏물이 범람한다. 이시현의 고급 구두에도 피가 묻었다. 상대는 꾸엑,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는 실신했다. 그의 바지 한복판이 젖어들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홰를 치든 정당방위로 풀려날 수 있을 텐데.”
이시현이 고개를 내밀어 형님을 내려다보았다.
“너네들은 죄다 구속일걸?”
킥킥, 하고 웃기까지 했다.
“여자애를 잡아다가 성폭행을 해서 받는 벌 보다 나를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너희들 모두 징역을 살게 될 확률이 높을 거야.”
남은 네 명의 양아치, 조폭? 그들이 학을 뗀 표정이 되었다. 형님은 자꾸만 아래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죽어가고 있었다. 최소한 그가 보기엔 그랬다. 얼마나 압도적인 힘으로 걷어차였는지 얼굴이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되었다.
“때려봐.”
이시현이 말했다.
“때려보라고 병신아.”
그리고 재차 도발했다.
형님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남은 동생들의 표정에 분노가 드리웠다. 이시현은 킥킥 웃었다. 이제 함부로 날뛴 동생은 여기에 없었다. 이시현에 대해 약간의 경의를 가지게 된 이들만이 남았다.
이시현이 그들의 한계를 측정이라도 하려는 듯 명령처럼 말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앞으로 여기에 오면 너네들 전부 구속.”
목을 휙 하고 긋는 시늉을 했다.
“알았어? 꺼지라고.”
그게 이시현에게 가진 그들의 경의를 깨부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 높지도 않았던 한계의 선이 대번에 끊어졌다. 형님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은 비수. 단검이라고 하기엔 멋이나 장식이 조금 부족한, 소위 말하는 사시미 칼이었다.
악독한 표정. 그리고 각오한 표정.
이시현은 그가 양손으로 쥐고 찌르는 사시미 칼에 허리가 찔렸다.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시현은 그것에 찔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낯설지 않다. 이 감각은 분명히 자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최초의 부상을 겨우 이런 놈들에게 입었다는 점.
칼이 찔린 후 이시현은 주춤 하고 물러섰다.
칼을 찔러본 경험이 많은 듯 형님은 떨어지려는 이시현에게 달라붙었다.
두 번 찔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른쪽 옆구리가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이시현은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시현은 물러나면서 칼에 찔린 상처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발을 들었다. 형님의 손을 걷어찼다. 이시현의 각력은 반죽음이 된 동생의 얼굴로 증명이 되어 있는 상태. 손등에서 우직 소리가 나고, 쥐고 있던 사시미 칼이 떨어진다.
“크흑!”
상처가 난 쪽은 이시현이지만, 고통의 신음을 터뜨린 것은 형님 쪽이었다. 손등을 구두코에 얻어맞은 그는 손의 뼈가 박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손을 감싸쥐었다. 이시현이 오른쪽 옆구리를 손으로 감쌌다. 피가 흘러나왔다.
SP가 급히 달려와서 이시현의 앞을 가렸다.
동생들 또한 형님의 분투에 용기를 얻은 듯 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단미애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느닷없이 일어난 칼부림.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핏물. 폭력의 현장 앞에서 그런 것을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을 여성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때 끼이이익, 소리와 함께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급격하게 달려온 그 차량은 한 바퀴 턴을 한 후 바닥에 타이어의 스키드마크를 새긴 후 멈춰 섰다. 경찰차였다. 하지만 경찰차라기에는 다소 컸다. 마치 시위 진압을 위한 군경찰, 혹은 전투경찰들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깡패들이 잇소리를 내며 소독약 맞은 거미 떼처럼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잽싸게 뛰쳐나온 단발머리의 여성은 진압봉을 들고 그들을 하나하나 후려쳤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속도였다.
SP는 안타깝게도 이시현의 상처를 보고 스카프를 꺼내 찔린 곳을 감싸던 터라 그녀가 깡패를 제압하는 과정을 볼 수 없었다. SP와 이시현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머리가 깨진 듯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실신하고 있는 네 명의 깡패와, 그 압도적인 힘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님의 모습뿐이었다. 피에 젖은 진압봉을 든 여성 경찰이 싱긋 웃었다. 그녀가 팔을 들었다. 그리고 형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후려쳤다.
털썩, 쓰러지는 그들을 질질 끌며 차량 안쪽에 밀어 넣는다.
다섯 명의 양아치를 집어넣은 여성은 수고하세요 하고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사라졌다.
SP가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저거 뭘까요?”
이시현은 나름대로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건 제대로 된 경찰은 아니라는 거지.”
그렇게 대꾸한 이시현이 무릎을 꿇었다.
처음 느껴보는 지독한 고통이다. 양아치라고 말해도, 조폭이었던 탓인지 확실히 사시미 칼을 찔러 넣고 그 안에서 휙 하고 돌리는 것까지 끝냈다.
SP는 창백해지는 이시현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빠르게 떠내들었다.
119에 신고를 하는 것은 물론 단미애를 바라보며 임시로라도 응급조치를 하기 위해 의약품의 준비를 부탁했다. 단미애가 반쯤 넋이 나가 있다가 급히 집 안쪽으로 향했다.
이시현은 눈을 감았다.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모두 자연 상태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니, 후대에는 자연 상태로 태어난 것이 맞지만, 근간이 되는 선조들은 그렇지 않다.
고고하고 오만하게 하늘에서 걸어 내려온 하늘의 황제.
녹슬고 삐걱거리는 톱니바퀴 인형에게 안겨 올라온 죽음의 황제.
인류의 요람이라는 우주선을 거꾸로 세워 탑을 만들고 두 황제를 부른 만물의 황제.
생물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세 명에서부터 어스 엠파이어의 서력은 시작되었다.
누구 하나 분전하지 않은 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 노력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질되긴 했지만, 자식들은 세 황제의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 끝에 황제들의 권능 일부를 받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왕이자 군주로서, 민족을 이끌었고 지배영역을 행성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고 끝없이 펼쳐나갔다.
세 황제의 시술을 받고 만들어진 선조. 그리고 그들의 유전자와 권능을 안전하게 이식받은 후손들.
그런 이들은 많은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신을 강화하고, 세상을 바꾸고, 죽음조차 능멸할 수 있는 힘. 신에 이르는 그 힘과 지식과 기술은 세 명의 황제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강대한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시현의 머릿속이 전한다.
고통은 살아있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그리고 고통이 만들어내는 분노는 곧 목적이 있든 없든, 무지막지한 폭력을 부른다.
이시현은 아주 조금의 시간동안 꾼 꿈에서 분노, 그리고 방향성을 읽었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죽음이라는 영역을 이미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죽는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 싫다. 그래서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한때는 권능이었지만 이제는 일반적인 능력, 육체의 활용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기술을 터득했다.
생존감각.
짐승들이 지닌다는 육감과 마찬가지로,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 또한 감을 지니고 있었다.
생존에 특화되어 있는 반면 이득이나 뭐 그런 성향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지만, 효율만큼은 확실했다.
이시현의 머릿속은 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칼에 찔린 이유도 전한다.
칼침을 맞은 곳이 아프다. 아픈 이유는 두 번 다시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감을 믿고 신뢰하라는 의미에서.
그걸 피했다면 ‘형님’은 훨씬 더 분노해서 휘둘렀을 것이고,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정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들 대부분은 상처가 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겠지만, 이시현의 경우에는 좀 상처가 나서 상관없었다. 그 감이 말하고 있었다. 때로는 필요할 때 싸워서 상처를 입는 게 승산에 도움을 줄 때가 있다고.
“맞는 말이야.”
이시현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