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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49화 (49/141)

< -- 49 회: 4> 제로 섬. -- >

암산을 하라고? 이시현은 또르르 눈을 굴려 숫자를 읽었다. 그리고 해답을 도출했다.

이시현은 자신의 몸이 강하다는 것, 잘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리하다는 것도 알았다. 금방 해답이 나왔으니까. 문득 이시현은 자신이 아련하게 기억하고 있는 지식, 즉 원주율을 구하는 공식을 생각했고 연산했다. 3.14에서 이어지는 소수점 2만 자리까지 구하는데 얼마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계산을 하다 그만둔 것은 이럴게 아니라 다중연산을 하면 훨씬 더 빠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시현은 즉각 복수연산을 시작했다.

머리 굴리는 속도가 생체 컴퓨터와 같은 수준임을 이시현은 깨달았다.

이게 ‘하늘의 황제’를 토대로 한 육체인가.

생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정상에 위치하여, 홀로 세계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자의 육체는 계산능력 또한 출중했다. 물론 연산능력만이 뛰어날 뿐, 이시현은 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식이나 지혜는 매우 부족했다. 물론 책을 읽는다거나 해서 이해를 하게 된다면, 그의 지식은 상당히 뛰어날 것이다.

이시현은 문득 자신과 부딪치자 낙염처럼 날아가 쓰러지던 소년을 떠올렸다. 그는 아마 하늘의 황제가 아닌 다른 황제 쪽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나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시현은 홀로그램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YES를 슬쩍 누른다.

앞에서 차량을 운전하는 SP에게는 허공에 손짓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이시현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시현은 전화를 꺼냈다.

“어디에 계십니까.”

단미애에게서였다. 단미애가 받아들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주변에 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웃는 듯한 뉘앙스의 남자 목소리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뭐야 이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시현이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곁에 누군가 있습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데……오늘 오실 건가요?”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었다. 분명 무슨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그 사단이란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이시현은 약간의 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했다. 세상 경험이 짧은 것도 이해가 되고. 이시현은 아주 잠시 후 홀로그램의 내용을 떠올렸다.

위해를 가하려는 이에게 응징을 가하겠다.

그런 내용의 홀로그램이었다.

이시현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이들에게 처벌을 내려도 좋다고, 이시현은 승낙했다. 아마도 그런 이들일 것이다. 이시현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홀로그램은 그와 같은 결과를 도출한 모양이었다.

단미애를 핍박하고 위협하는 이들 앞에서, 이시현이 그들을 막아주기를.

그리고 그렇게 막아서는 이시현의 앞에서 그들이 위해를 가하려 하고.

홀로그램은 그 시점에 처벌할 생각일 터였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조금만 빨리 가줘.”

여성 SP의 심기가 언짢아보였다.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그녀 자신에게는 영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질은 들었는지 그렇게 했다. 벤츠에 올라타 승차감이 무척 편안했다. 그런 중에도 속도를 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시현은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제가 찾아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저, 정말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상황은 대강 알았어요. 괜찮아요.”

이시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끊었다. 이시현의 얼굴이 굳어있는 것이 SP에게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드물게 그녀 쪽에서 먼저 질문을 해왔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마도. 회장님, 음 영감님이라고 해둘까.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폭발이 일어나서 접촉사고가 발생했지. 차량수리 보상 문제로 찾아가는 길인데, 소음이라고 할까.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남자들 비웃는 소리가 좀 들렸어.”

“남자들?”

“‘그런 상황에서도 남자 전화가 오나보지.’ 혹은 ‘숨겨둔 애인이냐?’ 뭐 이런 식의.”

SP는 입을 다물었다.

SP는 이시현보다 나이도 많아 보였고 경험도 풍부할 것 같았다.

인생 경험. 이시현은 솔직히 과거의 자신이 뭔가를 했냐고 물으면 사기 맞고 인생을 마쳤다, 그 외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SP가 말했다. 질문도 놀라운데 제안을 던졌다.

“사람을 좀 부를까요?”

“괜찮아.”

이시현은 대답했다.

“이쪽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게 있거든.”

“이쪽?”

이시현은 미소 지으며 대답을 거절했다.

차량은 아까보다도 빨리 달려 목표한 곳으로 향했다.

단미애는 예상 이상으로 낡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 초라하긴 했다.

딱 봐도 경호원으로 보이는 SP가 모는 차량과 거기서 내린 사람이 한 명.

사전에 연락을 해두었기 때문에 단미애는 집에 있었다.

언젠가 이시현이 살았던 집보다는 나은, 하지만 지금 들어가서 살라면 들어가기 꺼려지는 집. 손님을 맞이하기 부끄러운 집에서 나온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다가 머뭇거린다. 옷도 나름 깔끔한 걸 차려 입었지만 빈티가 보인다.

이시현은 한때는 그런 거라도 부러웠던 자신을 떠올리며 싱긋 웃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도 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하군요. 갑자기 찾아와서.”

“네.”

“이건 선물입니다.”

이시현은 가지고 온 음료 드링크를 건넸다.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마땅히 가는 도중에 살 거리가 없었다. 여성 SP는 벤츠 안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어느정도, 그녀는 이시현과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약간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선물을 받아든 단미애의 뒤로, 집에서 기어 나오는 것들이 보였다.

기어 나왔다. 표현은 그랬지만 정말로 기어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어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껄렁거리는 걸음을 하면서 나온 남자들이 다섯이었다.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불량스럽게 차려입고 껄렁한 표정이 얼굴에 박힌 전형적인 양아치. 조폭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었지만 이시현은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들은 이시현을 보고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이시현이 내린 차량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야, 이 차 죽이는데. 이거 벤츠 아닙니까 형님?”

“벤츠 맞다. 상판떼기 졸라 잘난 놈이네. 이거 니꺼가?”

형님이라 불린 이가 이시현에게 물었다. 거들먹거리는 폼이 완전히 버릇이 되어버린 듯한 남자였다. 이시현은 그에게서 싸구려 향수냄새를 맡았다. 그가 은근히 다가와서 이시현을 올려다보았다.

이시현은 키가 컸다.

“니끼냐고.”

이시현은 담담히 대답했다.

“내 거? 아니.”

“아니? 아니이? 야, 이거 겁 대가리 없네. 그 면상 뭉개지면 짧은 말이 좀 길어질끼야?”

이시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 벤츠는 내 것이 아니고 태양그룹 회장의 차야. 시발놈아.”

태양그룹. 전국 어디서나 그들이 만들고 유통한 상품을 찾아볼 수 있는 거대한 그룹. 그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세가 있다. 움찔, 다소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시현은 만족했다. 태양그룹 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대답해서 그런지 뒤에 붙인 욕설은 무시된 것처럼 보였다.태양그룹? 진짜 태양그룹 회장의 차라고? 그럼 이 새끼는 뭔데?

사위? 아들? 아 시발, 좆 됐구나.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서 물러날 시기만을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이시현은 그들이 위해를 가해도 좋고 가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하고 그들을 쫓아 보내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 선 놈의 말에는 조금 놀랐다.

“아니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시발놈이라고 해? 니 죽을래? 혀 짧은 소리 내고 싶나?”

‘형님’이라는 사람이 물러날 시기만을 조율하고 있는데 아랫놈이 나서서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말한다. 그 말에 형님이라는 이도 자신에게 가해진 언어의 폭력을 깨우쳤다. 태양그룹 회장의 차라는 말이 너무 세서 뒷 문장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인상을 썼다.

“한 가지 묻자. 니 뭔데? 겁대가리 없이 그리 주절대는 니는 도대체 뭐고?”

주변의 공기가 좋지 않다.

“알 거 없잖아.”

하지만 이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위해를 가해도 이쪽에서는 막아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처벌도 내릴 수 있었다. 정말로 뒤에 믿을 수 있는 백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다. 이시현은 과거라면 눈도 못 마주쳤을 상대를 앞에 두고서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의 태도에 형님은 다시 머뭇거렸다.

그 또한 인생경험이 풍부한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동생’이 깨닫지 못하는 권력구조라던가 높으신 분들의 힘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건드리면 우리는 망한다. 그런 생각이 뿌리깊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시현이 이렇게 대담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 그런 이들의 비호 때문일 거라고 믿었다. 벤츠 또한 최상급의 클래스에 호화스러웠고, 벤츠에서 내린 정장 차림의 SP도 태양그룹의 회장 차라는 사실에 확신을 더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고를 친 것은 이번에도 동생이었다.

“이기 죽을라고!”

주먹이 날아왔다.

이시현은 어쩔까 고민했다. 맞받아치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걸까? 상대를 바라본다. 상대는 주먹을 휘두르는 가운데 확신의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이 반짝반짝 빛나는 면상을 가진 놈을 후려치면 나도 기분이 좋고 형님에게도 점수를 딸 거야. 그리고 내 주먹은 졸라 아프니까 이 새끼가 엉망이 될 테니 모두에게 기분이 좋은 거야.’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이시현에게는 그렇게 읽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 주먹에 맞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복수도 충분할 것이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이딴 쓰레기에게 맞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형님이 작정하고 휘두르는 것에 맞고 말지.

형님이라는 이도 상양아치지만 동생에 비해서는 그럴듯해 보였다. 정말이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스워 이시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시현은 자신의 얼굴을 향하는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그의 팔을 양손으로 쥐고는 힘껏 비틀며 던졌다.

꽈득, 꾸득, 우드득.

“끄, 끄아아아악!”

팔꿈치 관절이 어긋나며 뒤틀리고, 걸레 짜는 것처럼 팔의 근육이 일그러진다. 동시에 동생의 몸은 허공으로 난다. 이시현은 주먹을 지른 방향으로 날아서 떨어지고는 비명을 지르는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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