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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43화 (43/141)

< -- 43 회: 4> 제로 섬. -- >

주변의 공간이 사라진다.

그리고 경매장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는 경매장. 그 안으로 이시현의 감각 일부를 전자화하여 옮김으로서 그는 완전히 경매장 안에 들어와있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 낮게 울려퍼지는 교향곡. 공기는 달콤하기 짝이 없고 공기는 매우 맑다.

헐떡이는 소녀의 소리가 유달리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경매진행자의 웃음이 잘 보인다.

“최고의 경매장 지르도다, 그곳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로열 지르도다에 오신 여러분들게 인사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상품이 보이십니까? 네, 장군입니다. 굉장한 장군이지요. 황금의 군주께서 가지고 있는 장군으로 이름 높은 레프리콘을 알고 계시지요? 그 장군이라고 합니다. 이번 ‘원정’에서 거둬들인 장군 중에서 한 명이 바로 지르도다에 들어왔습니다!”

어디선가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시현이 알고 있는 이의 소리였다. 교실에 있는 군주 중 한 명의 그것이었으니까. 마성의 군주. 그렇게 불리는 소년이 두 명의 여성을 낀 채로 궁시렁거렸다.

“레프리콘? 젠장, 황금이 가지고 있잖아.”

“그러게. 왜 여기까지 온 줄 알겠군. 저걸 가지는 즉시 황금놈이 1대1 매치를 성사시키겠지. 썩을.”

장군 타오티에에게 업혀왔던 고대의 군주도 덧붙였다.

이시현은 두 명의 군주가 왜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는지 이해했다.

아마도 레프리콘은 황금의 군주라는 이가 데리고 있는 장군인 모양이다. 그리고 번호가 붙어있지 않은, 즉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장군. 어지간한 장군에 비해 ‘약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한 상황이겠지만, 황금의 군주는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는 듯 했다.

누군가가 좋다며 레프리콘이라는 이름을 장군에게 붙여줄 경우 황금의 군주가 “너의 장군을 쳐 죽이는 게 나의 즐거움!”이라면서 자신의 레프리콘으로 같은 이름을 지닌 장군을 죽여 버리는 듯 했다.

이런 식의 방해도 있을 수 있구나.

이시현은 허탈해져서 깊은 한숨을 토했다.

장군이 나왔지만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지르도다의 경매진행자도 열심히 떠들다가 아무런 호응이 없자 예상했던 셀보다도 낮은 가격을 내밀었다. 이시현 또한 별반 생각이 없었다. 그때였다. 교실에 있어야 할 리퍼가 이시현의 옆에 나타났다. 그녀 또한 이 경매장에 오감의 정보를 보내어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현님. 가격이 말도 못하게 저렴한데 사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말을 들어보니……그대로 사냥당할 것 같은데?”

“응. 확실히 그러네요. 황금의 군주, 이 사람은 정말 성격이 고약하니까요. 일부러 황금으로 함정을 깔고 다이아몬드로 사람이 함정에 빠지는 즉시 깔아뭉개는 사람이죠. 그야 그렇겠지만요.”

잊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리퍼가 빙긋 웃었다.

“시현님은 어스 엠파이어에서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시현이 눈을 크게 떴다.

“시현님은 장군만 사서 사냥당하기 전에 그대로 본래 게임을 벌이는 곳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장군을, 킬 더 킹에 참전시킬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저렇게 유명한 이름을 가진 장군이 되어서 목숨이 위험하다면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장군의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특성과 성향, 이름마저도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있답니다.”

……그거다!

이시현이 감탄했다.

리퍼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아니지만 안내자로서 그의 스킨십을 허용했다. 멋쩍어하면서도 기뻐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 녀석은 반드시 내가 가져야 해.

잭 더 리퍼에 대한 소유욕을 한층 키워나가며 이시현이 딜을 했다.

***

“씨발새끼.”

이시현이 중얼거렸다.

이시현에게는 아득히 이득인 경매.

하지만 이시현이 기운차게 딜을 하자, 즉각 성격 꼬인 누군가가 ‘너의 불행은 나의 즐거움!’이라면서 경매에 붙을 붙였다.

‘개자식아!’

한계가 빠듯한 이시현이 억지로 어떻게 올렸다가 결국 한계를 오버, 그에게 뺏겨 버렸다. 대화명도 기억했다. ‘뒷치기의제왕’. 지가 먹어봤자 쓰지도 못할 걸, 남이 먹으면 기뻐한다는 이유로 돈과 시간을 다 써가며 빼앗은 쓰레기 같은 자식이다.

“대화명을 보아하니 반역의 군주네요. 원래 저렇습니다. 저분은 저게 삶의 즐거움이거든요. 파탄왕께 개기다가 자지 털까지 다 털린 다음 좀 달라졌다 싶더니 아직도 저러네요.”

반역의 군주. 이름만 들어도 뒷골이 아파온다.

내 반드시 군주가 되면 저 자식의 뒤통수를 까버리겠어. 이시현은 흑공자와 백공자가 하는 게임인 킬 더 킹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탐닉의 군주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했다.

이시현은 그 후 다른 경매장도 들어가고 약간의 물건을 획득한 후 귀환했다. 그리고 다른 특별수업들을 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건전한 수업’에 이시현은 조금 놀랐다.

“원래 수업이 다 이모양인가?”

“그렇진 않죠. 군주분들께서도 억지로 온 이유가 강제로 들어야하는 수업이기 때문이에요. 매우 건전한 수업이거든요. 그리고 다 아는 지식을 재차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고.”

어스 엠파이어의 구성, 방식, 법, 원칙 등등.

그런 것들을 배운 이시현은 죄다 새로운 것 투성이라 기뻐했다. 교사가 알몸으로 교탁위에 올라가 자위하면서 가르치고, 주인 없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지를 빠는 등등의 즐거움이 있었지만 어스 엠파이어에서는  별거 아닌 일에 불과했다.

“보통의 수업만 해도 난교에 뭐에, 장난이 아니지만……그것조차도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태반이고요.”

리퍼의 말에 이 수업이 유달리 건전하다. 이시현은 그렇게 이해했다.

생각보다 허리가 빠질 정도로 하드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알게 된 것은 충분히 있었다. 이 수업에 참여한 것은 꽤나 잘 된 일이었다. 이시현은 경매품으로 받은 도구를 주물럭거렸다.

무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셀. 네 개나 되는 셀 가운데서 두 개가 심처무장을 만들 수 있는 셀이었다.

“무장에도 종류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후후, 그런가요? 바로 장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무장은 나름대로 성장방향을 키워가면서 장군으로서의 발판을 만든답니다. 공격에 특화된 무장도 있고, 방어에 특화된 무장도 있고, 심처를 만들 수 있는 무장도, 마법이나 주술을 사용하는 무장도 있어요. 네, 흑공자와 백공자가 사용하는 말의 기능도 그런 무장을 만드는데 적합하죠.”

공격에 특화된 무장은 전투무장이니 백병무장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방어형으로 길러진 무장은 수호무장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능력 또한 그렇게 성장하고 특기도 그런 유형을 얻는다. 대규모의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도 첨병무장이니 군란무장 같은 지위가 있고, 심처, 즉 결계 비슷한 것들을 사용하는 무장들도 분류가 나뉜다. 물론 완전히 따로 분류되지는 않고, 이런저런 유형이 겹치는 경우가 다소 있다고.

장군의 네 부류.

즉 신, 영웅, 괴물, 개념 또한 크게 네 가지일 뿐. 수십, 수백 가지로 분화되고 혹은 큰 부류에서도 겹치는 일이 다수 있다고 한다. 완전히 하나의 기능만을 가지는 경우가 도리어 극히 드물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무장과 장군조차도 세세하게 특기와 성향이 다르다고 한다. 일례로 리퍼가 죽인 바 있던 다른 잭 더 리퍼의 경우에는 생물의 혼을 볼 수 있는 대신 머리 위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볼 수 있다고 하던가. 추적이 용의한 특기인 건 같지만 사용방법과 종류는 다른 유형이다.

수업은 길었다.

남자들이 다 죽어가듯이 늘어져 있었지만 이시현은 하나하나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간간히 리퍼가 입을 사용하여 성욕을 풀어주기도 했다.

수업이 끝났다.

이시현은 거리를 조금 걸었다.

학교에 사람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집으로 들어가고 거처로 가는 것 뿐. 황혼이 그늘져 갈 때쯤이었다.

“돌아가셔야죠?”

“그래야지.”

언제고 게임에서 승리하면 이곳을 자신이 거닐 일도 있을 것이다. 이시현은 주변을 둘러보고 굉장히 멋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굳게 마음을 가졌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여,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 되겠다.

그리고 덤으로 잭 더 리퍼, 이 귀여운 생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가기 전에 이곳의 식사라도 한 번 하고 가지.”

“음, 딱히 맛있는 거라곤……. 네, 가시죠.”

이시현의 옆에서 리퍼가 안내했다. 학교를 조금만 걸어 지나치자 어느새 거리가 보였다. 학교는 뭔놈의 중국 성곽처럼 길었지만, 학교 바로 옆에 도심이 있던 것이다. 이시현은 성큼성큼 걸어서 걷다가 문득 누군가와 부딪쳤다.

상대가 존재감이 없다보니 그대로 밀쳐버린 것 같았다.

비틀거리다가 소년이 뒤로 넘어졌다. 물론 그가 바닥에 넘어지기 전, 곁에 있던 여성이 그를 안아들어 엉덩방아를 찧는 일은 없었다.

“아, 미안. 괜찮아?”

검은 머리의 소년이었다.

왼쪽 눈가를 머리칼로 가리고 있는, 굉장히 선이 가는 미소년이었다.

남자주제에 이렇게 잡티 하나 없고, 깨끗한 외양이어도 되나. 이시현은 새삼 이들의 외모에 감탄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스 엠파이어 남성들이 다 잘났다지만 특출나게 가련하고 우아하고 젊잖아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리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이시현은 눈치 채지 못했다. 소년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이시현의 손을 바라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고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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