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37화 (37/141)

< -- 37 회: 3> 배고픔. -- >

“담배 좀.”

“그러도록 하지.”

여의사는 담배도 피는 모양이었다. 회장 앞에서 양해를 구한다고는 해도 담배를 피우다니, 정말 높은 신분인 모양이다.

이만한 병원의 원장이라고 하면 돈은 물론이고 학계에도 엄청난 인맥이 있을 테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후광이 장난이 아닐 터였다. 이 사회는 인맥으로 돌아가니까.

태양그룹의 계열사를 하나 맡게 된 것도 회장과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 아닌가.

“아까 그 애송이입니까.”

“애송이? 하핫. 스무 살에 불과하지만 말이지.”

“애송이 맞네요. 여자 냄새 풀풀 풍기고 다니던데. 훗, 얼굴값을 하는군요.”

“원장은 생각 없나?”

약간의 웃음소리와 이후 여의사의 냉랭한 말이 이어졌다.

“제 주인님이 그런 걸 용납할지 모르겠군요.”

“음……. 원장의 성벽이 이상한 모양이군.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네. 그만두죠. 그런데 그 사람 관심 있나요?”

“음? 내 딸의 사위될지 모르는 녀석이라서 말이야.”

“그거 안됐군요.”

“안됐다니?”

이시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뭐가 안 됐다는 거지? 게다가 주인님? 저만한 여자가 쓸 표현이 아니다.

저런 여자를 안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하다니. 그리고 안면이 있을 게 확실하지만 태양그룹의 회장 앞에서 저런 농담을 하는 것도. 이시현은 저 여의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흥미가 완전히 떨어졌다.

저런 여자는 완전히 사양이었다.

그럼 강주희나 안아볼까? 오늘은 어떻게 해볼까. 무엇이든 시킬 수 있는 그녀를 건드리고, 그녀에게 주인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 주인님 놀이나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걸음을 옮겼다. 아, 자지가 선다. 바지를 정리하면서 떠나려던 시점이었다.

황금색의 가루가 허공에 떠올랐다. 갑자기 퀘스트인가. 저 여자를 안아라, 뭐 이런 걸까. 가볍게 생각하던 이시현이 끔찍한 얼굴로 굳어버렸다.

===

<킬 더 킹을 즐겨주시는 분들께>

다섯 번째 퀘스트입니다.

킬 더 킹의 세 번째 플레이어 이시현님.

상대의 말이 당신을 눈치 챘습니다.

네, ‘말’입니다.

이름은 김유나. 나이 29세. 흑공자 게인의 ‘사(士)’로서 <심처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심처 등급은 D. 죽은 이의 육체가 70% 이상이 붙어있다면 소생의 법을 통해 떠난 영혼을 되돌려 살리고, 육체마저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심처입니다.

심처는 자신과, 그에 근접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신전(神殿)과, 주변 영역을 바꾸는 성역(聖域)이 있습니다. 이 병원은 김유나의 심처로 성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녀의 완벽한 지배영역이자 흑공자를 지키는 성역의 역할을 합니다.

그녀가 흑공자와 연락하여 ‘굉장히 비범한 인상에 육체를 갖춘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될 경우, 당신을 탐색하게 될 것이고 세 번째 참가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면 게임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퀘스트: 그녀가 들은 기억을 지우고 평소와 같이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하라!]

[퀘스트 카운트: 00:04:00]

[퀘스트 완료 보상: 심처부여능력]

[퀘스트 실패 대가: 당신의 정체가 두 명의 참가자에게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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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이시현이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SP가 놀라 막았지만 이시현은 잽싸게 피했다.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이시현의 눈을 향해 메스가 찔러왔다. 이시현이 기적적으로 피했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눈 밑, 뺨의 일부가 길게 베어져 나갔다. 지독한 고통. 살이 완전히 베였다.

김유나가 손가락으로 메스를 쥔 채 이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들었나?”

“아니.”

“들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데. 이야기를 안 꺼냈으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이시현이 살이 벌어지며 비로소 피를 콸콸 쏟아내는 피부를 느끼며 전율했다. SP들이 기겁하여 그들 사이를 달려든다. 김유나는 흥, 인상이상으로 차가운 코웃음을 치더니 달아났다. 달아나게 해선 안 돼. 이시현이 뺨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신음했다.

“사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누가 사위예요, 누가. 그보다 적입니다.”

“적? 갑자기 무슨 소린가. 잠깐, 적이라고? 원장이?”

“네! 그 두 놈을 섬기는 여자라고요.”

“섬긴다고? 두 놈을? 희고 검은?”

“검은 쪽!”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 이시현이 달렸다.

정말이지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김유나가 더 빨랐다. 그게 아니면 김유나가 남들이 모르는 길로 달렸다던가. 병원에서는 휴대폰이 사용금지이며, 그녀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녀의 채취를 생각해보면 흑공자는 곁에 있다. 흑공자의 무장인 김유나가 다른 남자의 정액을 자궁 깊숙한 곳에 채워 다닐리는 없을 테니까!

이시현이 황금의 침을 꺼냈다. 그리고 목을 찔렀다.

쿠득!

핏대가 선다.

온 몸이 타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메스에 근육까지 베였던 상처가 단순에 낫고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고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빛이 강해지고, 허공에 떠 있는 먼지들이 선연히 눈에 비치며 귓가에 1층부터 12층까지, 어마어마한 소리들이 잡다하게 들려온다.

치열하게 가동하는 두뇌.

그리고 한 번 맡아본 바 있는 그녀의 채취.

“5층.”

태양그룹의 회장인 강의곤이 입원해 있는 곳이 7층이었다. 벌써 2층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달리고 있다. 터무니없이 빠르다. 게다가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느긋하게 걷는 등으로 이상하다는 생각마저 죽이고 있다. 안 돼, 이래서는.

이시현은 입술을 악물었다.

[퀘스트 카운트: 00:03:21]

40초나 지났다. 이시현은 이제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황금의 침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강주희를 무장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억울해 미칠 것 같았지만 이번 퀘스트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절대로 안 된다. 이시현은 재차 황금의 침을 들고 힘껏 목에 꽂아 넣었다.

-꾸득꾸득.

-뿌드득.

-쯔카카카칵.

한 번 개화한 육체가 두 번째의 개화를 연속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미 활짝 피어버린 꽃이 그 우아함을 더하고 잎을 훨씬 넓게 피우며, 향기를 짙게 만든다. 적외선과 자외선이 시야에 비치고, 7km밖의 냄새조차도 코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 소리마저 들리기 시작한다. 발을 밟을 때마다 사이코매트리가 되어 기억들이 떠오르고 수십 개의 분할사고가 그의 뇌리에서 가장 좋은 결론을 도출한다.

‘무장’.

이게 바로 ‘제대로 된 무장’의 상태라는 것도 깨닫는다.

무장이란, 장군이 되기 전의 여성조차도 이 정도의 능력을 상시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포, 경악, 그리고 환희. 이시현이 크라우징 스타트처럼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호흡을 길게 하여 숨을 한껏 들이키더니 그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폐에 가득 찬 숨. 마음 같아서는 10분도 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온 몸의 근육을 제어한다. 뼈가 바스라질 것 같다. 심장이 터무니없이 빠르게 피를 펌프질하고, 실핏줄이 도드라진다.

-우득우득.

-꾸드드득.

여성이자 무장. 무기이자 병기로서의 힘.

황금의 침, 황금의 군주가 나노머신이 존나게 열심히 몸을 굴려 주인을 강화시켜주는 점을 이용하여 <프롤레타리아가 수드라>라고 표현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프롤레타리아든 수드라든 노예 이하의 계급인 게 틀림없고, 그들을 대칭한 나노머신은 이시현의 몸을 한껏 강화시키며 죽어갈 것이다.

즉 시간제한이 있다.

[퀘스트 카운트: 00:03:03]

3분 3초. 목표 검색.

[퀘스트 카운트: 00:03:02]

3분 2초. 목표 확인.

[퀘스트 카운트: 00:03:01]

3분 1초. 목표 추적.

-타앙!

2층이라는 거리가 4초로 줄어든다. 최소 400m를 달렸는데 어느새 눈앞에 하얀 가운을 걸친 여성, 김유나가 매스를 양손으로 비스듬히 쥔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눈을 찔러오는 매스, 피하며 그녀의 턱을 향해 주먹을 꽂아넣는다. 턱이 약간 스쳤지만 김유나는 고개를 젖혀 피해냈다.

씨발, 이게 말이 돼? 공격속도가 0.02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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