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3 회: 3> 배고픔. -- >
이시현은 두 개의 권능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강주희에게 몇 번이고 써 먹은 [군주의 권위].
본래 여성의 체내에 정액이 있을 때에만 세뇌작업을 할 수 있다.
<세뇌>권능. 등급은 가장 낮은 A급으로 여성의 체내에 정액이 있을 경우 사흘간 세뇌작업을 걸 수 있는 능력이다. 여러번 세뇌를 걸면 이윽고 세뇌에 적응하여 정액 없이도 세뇌를 걸 수 있게 되지만 그건 부차적인 능력에 불과하다.
허나 하지만 황금의 침에 의해 모든 능력이 강화된 그는 세뇌를 B급까지 강화할 수 있었다.
황금의 침으로 격발된 일시적인 경우겠지만, 그 덕분에 굳이 정액이 아니라 타액을 전달해주기만 해도 목숨의 경각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뇌를 걸 수 있었다. 여성 SP가 물러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방금 이시현이 입을 맞추고 그녀를 당황하게 했기 때문에. 타액을 건네고 그러다 그녀에게 혀를 깨물여 피를 봤기 때문에. 그녀는 B급으로 향상된 [군주의 권위]에 의해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이시현의 세뇌에 이미 걸린 상태이므로!
이시현은 머리가 퉁 하고 바닥을 찧을 것 같은 회장의 뒤통수에 손을 끼워 넣어 만에 하나 있을 부상을 방지했다. 그리고 침을 꺼내 목표한 부위에 겨냥하고 찔러 넣었다. 푹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이 들어간 침.
여성 SP는 아직도 자신이 물러난 이유를 알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너 이 자식……!”
“닥쳐줘.”
이시현의 말은 부탁처럼 들리는 명령이었다. 여성 SP는 말 그대로 닥쳤다. 끄응, 소리를 내긴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리고 SP와 이시현이 바라보는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다.
파리한 안색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차가워지던 체온도 따스해진다.
이시현이 말했다.
“갈빗대 사이를 꿰뚫은 이걸 뽑아야 해. 진통제……당연히 없겠지.”
이시현은 손수건을 뭉쳐서 회장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회장의 몸에 박힌 뾰족하게 솟아난 조각을 붙잡았다. 으직, 손가락 사이에서 나무 조각이 짓뭉개지는 소리다. 단단히 고정되었음을 촉감으로 느끼고, 한 번에 뽑았다.
“으으으읍!”
고통에 신음하는 회장의 신음소리는 뭉쳐 입에 넣은 손수건에 의해 막혔다. 강주희의 팬티를 뭉쳐 그녀의 입안에 밀어 넣었던 경험이 이런데서 활용되었다.
이런 걸 배워두길 잘했지, 이시현은 과거 자신이 강주희에게 했던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피와 살점 일부가 달라붙은 나무파편을 저 멀리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넥타이를 풀렀다. 왜 풀지? SP가 의아해할 때 그는 넥타이로 구멍이 난 부분을 쑤셔넣었다. 그리고 재차 황금의 침을 찔러넣었다. 격심한 고통에 몸을 덜덜 떨며 바지를 오물로 적시된 회장이 축 늘어졌다.
“죽진 않았어. 버틸만한 체력은 이제 생겼거든.”
이시현이 여성 SP를 가리켰다.
“당신, 회장님을 업어. 그리고 빠져나가.”
“그러긴 하겠지만……저곳은 너무 좁아.”
이시현이 들어온 벽을 바라보며 SP가 말했다. 이시현은 우선 업어, 턱짓을 한 후 벽 앞에 섰다. 그리고 손바닥을 편 채로 다시 한 번 벽을 쳤다.
벽이 으지직 소리를 내더니 우수수 부서졌다. 기둥이나 위태하게나마 공간을 만들고 있던 안정성까지 훼손한 것은 아니었다. 벽이 마른 점토 부서지듯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마침내 약간 새어 들어오는 빛을 쬔 SP는 이시현을 쳐다보며 믿기 어렵다는 시선을 보냈다. 이시현은 타격이 이상했는지 벌써부터 붓기 시작하는 손목을 바라보며 잇소리를 냈다.
“썩을……강해지면 뭐해. 무술의 무 자도 모르는데…….”
회장을 업은 여성 SP가 이시현을 돌아보더니 신음했다.
“당신……이시현……정말로 사람?”
이시현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성 SP는 주춤거리면서 물러났다. 어느새 막힌 벽에 등을 기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꼴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생각하는 게 아플 정도로 꼬인 개족보에 빌어먹을 인생 끝에 무술을 단련하고 경험을 쌓아 SP가 되었다. 그리고 태양그룹 회장의 SP가 되었다. 그 이후 그녀에게 남성의 위압감, 두려움은 먼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꼴을 보면 완전히 한숨이 나올 정도가 아닌가.
“인간 아냐.”
여성 SP의 눈이 커졌다.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고?
“종마. 색마. 뭐 내게 안긴 여자들은 그렇게 말하더라고. 넌 인간도 아냐, 그렇게. 넌 어떻게 생각해?”
여성 SP는 그제야 농락당한 것을 알고 머리를 들이박았다. 회장을 업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시현이 휙 하고 피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자신이 깨부순 벽을 가리켰다.
“나가자고. 위태위태 해. 이곳도 이제 허물어질 거야.”
여성 SP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의식을 잃은 회장은 그녀에게 짐덩이처럼 보였다. 이시현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 여자……꽤 괜찮지 않나?
세뇌는 아직까지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고.
“멈춰. 그리고 앞으로 1분간의 기억을 잊어. 그동안 너는 인형처럼 침묵해.”
이시현은 입술을 핥고는 여성 SP의 뒤에 섰다. 그녀에게 깨물린 혀가 재차 아파왔다. 그녀는 목각인형처럼 멈춰 섰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시현이 그녀의 뒤에 서서 옷 위로 유방을 눌렀다. 브래지어 위를 강하게 누르다 강주희에게 했던 식으로 가슴 위로 올려버렸다. 그리고 도드라진 유두를 양손가락으로 잡고 꾹 눌렀다.
“으흑!”
“소리 좋은데.”
이시현이 그녀의 유방을 짜듯이 힘껏 눌렀다. 그녀가 몸을 배배꼬면서 턱을 들었다.
“으흐흑!”
“감도도 좋고. 훗, 마음에 들었어.”
이시현은 그녀의 입술에 재차 입을 맞추고, 타액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가슴을 주무르다보니 벌써 1분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이시현은 “으음?” 소리를 내면서 제정신을 차리는 그녀의 뒤에서 느긋하게 걸었다. 그녀는 갑자기 가슴위로 올라간 브래지어의 감촉을 느끼고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유두가 꼿꼿이 선 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앞서 1분간의 희롱을 눈치 챌 수 없다.
이시현은 어색한 동작으로 브래지어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그녀의 노력을 보면서 조롱했다.
“응? 뭐야. 그 동작은 주희가 브래지어가 올라갔을 때 맞추는 것과 비슷한데.”
“닥쳐.”
“이런, 진짜군. 뭐하다가 올라가는 거래. 하핫.”
이시현은 앞서 걸음을 걸으며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
“오, 젖꼭지도 솟아있네. 무슨 생각한거야, 아가씨는? 아, 내가 좀 생기긴 했지. 둘만 남으니 흥분한 거야? 회장님도 뒤에 업고 있는데? 회장님 의식 잃었다고 나 유혹하는 건가? 아, 종마 색마 소리를 듣는 나보다 더하네.”
“닥치라고 말했다.”
붉어진 얼굴로 여성 SP가 고함질렀다.
이시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시현과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호텔 주변은 소방차와 구급차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장을 긴급히 실어 나르는 구급차를 보았다. 이시현은 눈물을 흘리며 안겨오는 강주희를 보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믿길 잘했지?”
“응, 자기! 자기는 정말 우리 아빠의 구세주야! 오늘 하루 해달라는 거 뭐든지 해줄게! 그리고 아빠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응!”
황금의 침을 보상으로 주었을 때 이런 일까지 상정했던 걸까. 퀘스트를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면 정말이지 똑똑한 사람이다. 아니 미래예지 같은 걸 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잘됐지.”
신체능력의 강화.
이시현은 다섯 번의 사용제한 중에서 세 번을 사용하고, 두 번 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된 황금의 침을 조심스레 품에 넣었다. 태양그룹 임원들이 모여있다가 여성 SP의 말을 듣고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시현은 주희를 옆구리에 끼고 악수를 받았다. 여성 SP는 이상하다는 시선을 거듭 던지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을 구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치료까지 하여 구급차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동 전원 감사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개미떼처럼 모인 기자들도 이쪽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시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싱긋 웃었다.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해야죠. 다행히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다행이지만요. 그럼 갈까?”
“어딜?”
“약속 파토 났으니, 시간 때우러. 뭐든지 한다고 했잖아? 그럼 뭐든지 해야지?”
강주희가 와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응!”
***
흑공자와 백공자는 퀘스트가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안녕 멍청이들.>
천원이니 뭐니 하는 걸 믿었나요? 체스와 장기가 진행되는데 바둑판의 룰을 적용한다면 당연히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뭘 그렇게 다 믿고 다니나요. 호구인가요 등신들아. 혀 깨물고 죽어. 유서도 쓰지 마. 이 병신아.
흑공자는 기가 막혀 입술에 피가 배도록 이를 악물었고 명백히 기분 나쁜 분노를 쏟아냈고 백공자는 값비싼 글라스를 던지고 주변 것들을 산산조각 부쉈다.
그럴 것이 그런 것을 믿어서는 곤란했던 것이다.
새삼스레 너무 상대를 꺾는데 흥분했다고 이해했다. 물론 그런 이해보다도 훨씬 분노가 강해서 열이 올라 있지만. 체스와 장기로 킬 더 킹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필 천원을 점령하라니. 의문은 있었지만 이유가 있어 천원점을 지칭하고 태양호텔이라는 거물급 호텔을 파괴하라는 퀘스트를 준 것일테다.
그렇게 믿고 공들여 키운 말을 보냈더니 뭐 어째?
의심하는 게 맞다고? 이제와서 거짓말이었다고?
마의 소식이 없다.
죽지 않았다면 돌아올 테지만, 최소한의 정보는 상대에게 넘어갔다고 봐야한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것은 그 따위 퀘스트를 던져준 정체모를 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조금은 냉정을 찾자.”
이미 지나간 일을 화내봐야 소용은 없다. 세상은 게임처럼 에디터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그런 권능을 가진 군주들도 있지만, 흑공자는 아니었다. 물론 백공자도 그런 권능은 없었다.
“그래도 화는 나는걸.”
어쩔 수 없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난 놈인줄 알고 살아오던 이들이 농락당했으니까.
“분명한 건……나의 이 당황을 보고 즐기는 놈들이 있다는 것. 장군의 셀이 진짜로 제공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런 결과를 노리고 거짓말로 주겠다고 내걸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조롱하려고 하는 존재는 있다는 거다.”
흑공자가 서늘하게 웃었다.
“용서 못하지.”
누가 감히 나를 내려다본다는 거지?
“반드시.”
“절대로.”
“죽여주마.”
“찢어발겨버리겠어.”
흑공자와 백공자가 같은 의미의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