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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32화 (32/141)

< -- 32 회: 3> 배고픔. -- >

이시현이 도착했을 때 본 것은 1층이 완전히 사라진 호텔과,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극한의 지옥과 같은 모습이었다. 재난 그 자체.

“아, 아빠아아아!”

그리고 강주희의 비명소리. 이시현은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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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킹을 즐겨주시는 분들께>

네 번째 퀘스트를 무사히 마치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스 엠파이어] 소속의 플레이어 ‘이시현’님.

이미 싸움은 끝났습니다. 흑과 백의 싸움은 누구 하나 승리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싸움의 결과만이 남아 있습니다만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태양호텔은 ‘천원’이라고 불리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 거점에서 타 세력이 없는 채로 3분동안 자신의 무장, 혹은 말이 머물게 되면 천원을 소유하게 됩니다. 보상으로는 장군의 셀이 지급됩니다.

이미 그 퀘스트를 받았던 흑공자와 백공자는 무장을 보냈으며, ‘이시현’님이 도착하기 전 사투를 벌였고 둘 모두 자멸했습니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현재는 아무 세력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때가 기회입니다.

제 3의 위치에서 이득을 취하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이곳은 ‘천원’이라고 불리는 거점입니다.

흑공자와 백공자 모두 천원을 차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보상이 크기 때문이죠!

퀘스트 완료 보상: 황금의 군주 제작 <황금의 침>.

===

퀘스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함정이군.’

거점의 이름이 천원이라니, 체스와 장기로 킬 더 킹을 벌이는 흑백 양측은 의구심을 품을만 하다. 만에 하나 이시현이 이곳에서 ‘자신의 말’을 이용하여 거점을 점령한다면 어떻게 될까. 흑과 백은 제 3자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고 그들의 기민한 정보력과 인간 같지 않은 잔인함으로 상황을 파악할 것이다.

이시현은 장군의 셀을 얻을지 몰라도 흑과 백 양측의 적의를 사 대번에 파멸한다.

다행히 강주희는 자신의 말이 아니다.

‘다행이야.’

그는 곧 절규하는 강주희를 대신해 걸음을 옮겼다.

“내가 구해오지.”

“아, 아빠를?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데?”

“네 자기를 한 번 믿어봐.”

이시현은 어느새 속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황금의 침을 꺼내어 자신의 경동맥에 눌렀다.

네 번째 퀘스트는 흑과 백이 벌이는 싸움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싸움을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싸우고 난 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녀들의 마무리를 위해 움직일 때였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황금의 침이 제공되었고, 그 능력을 확인한 이시현은 침을 즉각 사용했다.

침을 찔러넣은 부분에서부터 꽈득, 꾸득. 근육이 전투적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심장박동이 세 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주변에 울려퍼지는 소음이 극에 달한다. 반경 3km내외의 모든 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강주희와 같은 냄새가 나는 이가 건물 속에 있는 것이 느껴진다. 죽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흥.”

코웃음을 치며 이시현이 뛰어들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잽싸게 달려간 그는 마그마로 끓어넘치는 바닥의 잔해를 밟으며 쾌속으로 뛰쳐나갔다.

***

지독한 열기. 그리고 무시무시한 파괴의 현장.

하지만 겁이 나지 않는다.

이 몸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몸을 강화하는 이 바늘을 얻었기 때문일까. 이시현은 둘 다라고 생각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황금의 침을 받았을 때 그 침의 사용방법과 효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이시현은 즉각 폐허를 헤쳤다.

그의 초월적으로 강화된 감각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유추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주변 모든 상황을 기억하고 대조하고 평가하고 사고하는 감각은 매우 새로웠다. 마치 머리에 더듬이가 달린 것처럼, 굉장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1층이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는 1층에서 지독한 열기가, 주술 같은 것으로 펼쳐져 1층을 지탱하고 있는 벽과 기둥을 죄다 녹였기 때문에. 홍수가 일어나도 좀처럼 없을 그런 천재지변이, 아니 인위지변이 벌어진 것이다.

흑공자와 백공자가 태양호텔에서 싸웠다.

그들이 만들어낸 말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이다. 이런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면 장군이 참전할 걸까?

잭 더 리퍼의 말도 안 되는 시간 되감기 능력을 보고서, 장군에게는 어떤 일도 불가능함이 없으리라고, 이시현은 생각했다. 물론 잭 더 리퍼의 그것은 이시현이 생각하는 것과 꽤 괴리가 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1층이 사라졌다. 그러니 2층에서부터 호텔 전체가 가라앉은 것이다. 1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2층, 3층 대부분이 죽었다. 아예 햄버거 패티처럼 깔려서 시체조차 찾아볼 수 없다. 1층이 사라지고 젠가의 피스가 흐트러지듯이, 아래에서부터 극심한 붕괴가 일어났다.

이시현은 눈을 감았다. 먼지와 가루가 눈을 찔렀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은 채 청각만을 의지해서 걸었다. 비명, 절규, 살려달라고 우짖는 단말마. 하지만 그런 소음 속에서도 이시현은 자신이 원하는 이의 소리를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네. 도대체 무슨 일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계십니다. 잠시만……윽, 흐윽.”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 그리고 조금 많이 졸리고…….”

“회장님. 이렇게 가시면…….”

위험한 수위군.

한 방에 죽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화를 들어보면 조금이라도 지체해선 곤란했다. 부서진 곳을 파헤치고 최단거리를 향한다. 수백 킬로그램이 넘을 것 같은 콘크리트 벽을 내던지고, 철근을 치워가면서 움직이길 수 분.

앞을 가로막은 벽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가 장을 뻗는다.

주먹질을 하는 것이 옳았을 터. 하지만 어쩐지 이 몸의 직감이 주먹질보다는 손바닥으로 밀 듯이 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일렀다. 머리에 더듬이가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그 더듬이가 전해주는 직감을 믿자.

손바닥 주위 직경 1m 정도의 구멍이 뻥 하고 뚫리고 벽이 맞은편으로 떨어진다. 이시현은 그대로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핸드폰의 플래시 라이터로 조명을 밝히고 있는 이가 보였다. 정장에 부서진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회장의 경호원. 시큐리티 폴리스(Security Police)를 줄인 말로 SP라고 불리는 경호원이었다.

“누구냐!”

갑자기 쳐들어온 이시현을 향해서 하나 남은 경호원이 외쳤다.

이시현이 대답했다.

“워워, 이 들이대지 마. 회장님이 찾으려 했던 사람이야.”

“뭐?”

“강주희와 함께 온 남자라고 하면 되겠지. 그보다 머리가 깨지고 갈비뼈 사이로 나뭇조각도 꽂혔으니 곧 죽겠군.”

“닥쳐!”

“내가 치료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을 경호하는 SP중에서 여성이 있다니 실력이 그만큼 대단한 걸까. 몸에 딱 맞는 까만 정장을 입은 그녀는 부서진 선글라스를 치울 생각도 못하고 신음했다. 이시현은 가볍게 놀라며 황금의 침을 빼들었다.

“나는 침술사다!”

“……나는 의사다, 뭐 이런 걸 이야기하려는 거냐?”

“그리고 마법사지. 여러분들이 조용히 해주고 비밀을 지켜준다면 죽어가는 회장님을 살릴 수 있어. 후유증 없이.”

“무슨 개소리야! 네가 뚫은 저 벽으로 회장님을 모시고 가서 얼른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단 말이다!”

“그 이전에 회장님은 죽어가. 벌써 숨쉬기도 힘들어진 것 같은데.”

회장이 그때 입술을 파들파들 떨면서 노인의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누구……그인가…….”

“회장님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맞습니다. 그보다 아직 정신이 깨어있으니 묻겠습니다. 보편적 상식에 몸을 맡겨 죽겠습니까, 기상천외한 발상을 통해 살아나겠습니까.”

회장이 죽어가면서도 파리한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선택은 두 번째지.”

“……뭐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승낙으로 알지요.”

이시현은 SP보고 떨어지라고 눈짓했다. 핸드폰의 빛을 통해서도 이시현의 눈짓은 충분히 전해졌다. SP는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회장의 뒤통수를 손바닥 위에 얹고 무릎 꿇으면서 이시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과 굉장히 사이가 좋은, 아니 뭔가 관계가 있는 여성처럼 보였다.

그녀는 불확실한 것을 강요하는 이시현을 노려보며 죽어가는 회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회장은 SP들의 필사적인 보호아래 즉사에서는 피했지만 몸 곳곳이 돌에 찍혔고 흙먼지를 뒤집어 썼다. 한 명을 제외한 SP 전원이 죽은 것치고는 양호했지만 딱 봐도 회장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런 이에게 침을 놓아서 살리겠다고 말하는 게 믿기 어렵다는 건 확실하다.

이시현은 일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척척 걸어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우, 우웁. 우……우으으흐앗.”

“아, 혀를 깨무네. 정말 이런 여자가 있군.”

이시현은 피가 맺히기 시작하는 자신의 혀를 내밀고 소매로 훔쳤다. 얼굴이 새빨개진 여성 SP가 분노에 찬 시선을 던졌다.

“개자식, 뭐하는 거냐!”

“뭐하냐고? 보면 몰라?”

이시현은 킥 하고 웃었다.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잖아!”

여성 SP는 물러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여성 SP가 물러날 이유는 없다. SP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이시현을 처음 보는 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 겨우 침 하나로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건 명확하기에. 그러나 여성 SP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회장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황금의 침 때문이지.’

네 번째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한 황금의 침.

사용횟수는 고작 5회에 불과하지만 목표한 부위에 찔린 생물은 모든 능력이 강화된다. 신체능력, 사고능력, 가속능력 같은 것을 포함해 특수한 능력까지도.

그렇다.

특수능력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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