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1 회: 3> 배고픔. -- >
‘철가면’은 가면 속에 내장된 통신기구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보냈다.
상대가 장군이라고 말했고, 굉장한 위력을 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를 장군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가 부족하다. 이를테면 압도적인 위험함. 장군은 수만, 수천만의 무장 중에서 하나가 된다. 일반 무장이 보통의 사람 수백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강한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
철가면은 광신장군 카르나에게 달려들었다. 장군이라는 말에 긴장했지만 사실 겨뤄본 결과 그리 대단한 적수는 아니었다.
카르나는 접근전을 강요하는 철가면을 쉽사리 떼어내지 못했다. 갑옷을 입고 있고 극도의 고온을 다룰 수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이다.
철가면은 가면을 쓴 채로 물리적, 화학적인 타격을 입으면 그에 대한 내성을 쌓을 수 있다.
<철가면>이라는 이름에 맞는 특기다.
철가면을 쓴 채로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은 채로 타격을 입고 고통을 당하면 그에 대한 공격에 대단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그건 카르나의 화염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현 상황을 제공했다. 몸이 타고 살이 익는 그런 고통을 이미 그녀는 철가면을 쓴 채로, 말 한 마디도 없이 고통 속에서 버텨냈다는 것이다.
카르나가 가까스로 철가면을 떼어내고 최초 싸우기 전의 포지션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갈색 피부가 짙은 주름을 그리고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철가면은 기괴하게 생긴 검을 역수로 쥐고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장군이 아니다.
다만, 파괴력만큼은 장군급에 도달해 있다.
카르나가 차지한 말은 비숍. 곧 승정(僧正).
철가면의 머릿속에 대강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압도적인 파괴력은, 즉 건물 1층을 초열지옥으로 만들어 지지대를 녹여버리고 건물 하나를 붕괴시켜버리는 강대한 힘은 무장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할지라도 지금 흑공자와 백공자가 가진 전력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둘만 남은 후계자쟁탈전에 참여할 때 겨우 말을 대신할 한 명의 무장과 두 개의 셀, 두 개의 무구와 세 개의 권능만을 가진 채 킬 더 킹에 참여했으니까. 한 명의 무장은 각기 장기의 포인 측천과 체스의 퀸으로 결정, 이후 셀과 무구로 무장을 늘려도 ‘이제 막 무장이 된’ 부류이기 때문에 약하기 짝이 없을 터였다.
이런 파괴력은 오랫동안 단련하거나 혹은 장군의 셀을 이용하여 장군의 특기를 보유한 이들이나 가능할 정도.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무장의 힘도 적당히 있겠지만, 이 압도적인 범위와 파괴력은 비숍의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체스의 비숍. 승정. 폰이 육박전을 중시하고 대체적으로 쪼잔하게 싸우는 부류라면 비숍은 대각선이 나오는 한 어디든지 같은 색깔이 있는 곳으로 달릴 수 있다. 비숍이라는 이미지 상 마법 같은 것을 쓸 수 있다는 이미지도 있다.
마법, 아니면 주술. 그것도 아니라면 신비한 이능. 그와 비슷한 종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카르나는, 비숍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장군이라고 칭해도 좋을 힘을 얻었다.
‘비숍의 힘으로 파괴력과 범위를 손에 넣었어. 일반 무장인데 말이지.’
철가면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카르나가 거리를 벌리더니 안정을 찾고는 황금갑옷을 입은 채로 황금창을 찔렀다. 빠르다. 전력을 다해서 피하지 않으면 찔린다. 화염에 내성이 있다고 해도 칼에 찔려 난도질되면 죽는 건 같다. 전력을 다해 피하면서도 철가면은 생각을 정리했다.
‘갑옷이 문제인걸. 갑옷은 무구일까?’
무장, 혹은 장군이 사용하던 무기. 혹은 신체 일부.
그것을 사용하고 장착하면 무구를 사용하던 이의 기억이 흘러 들어와서 특기의 사용이 수월해지고 같은 종류의 특기를 사용하면 위력이 오른다. 혹은 특기의 질과 방향을 바꿀 수도, 무기로서 사용하여 강력한 힘과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황금갑옷.’
카르나가 입고 있는 황금갑옷은 강해 보인다. 철가면은 가까스로 상대에게 근접하여 역수로 뒨 칼을 전력으로 찔러넣었다. 카르나는 심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방비하거나 피할 생각 없이 창을 회수하여 철가면에게 휘둘렀다.
-깡!
-까앙!
철가면의 머리를 창이 후려치는 소리. 그리고 카르나의 심장에 찔러넣은 칼이 황금갑옷에 밀려나오는 소리. 두 개가 나란히 울려 퍼졌다.
‘역시.’
철가면은 생각을 완전히 정리했다. 통신장비가 고온 때문에 맛이 가서 가면 내부에서 눌러 붙었다. 그래서 흑공자에게 통신을 전할 수는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한다면 흑공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철가면은 가면 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철가면이 고개를 떨치자 창으로 후려친 타격이 살을 찢어놨는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타격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면 머리가 깨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무장의 셀을 카르나의 것으로, 무구 또한 카르나의 것으로. 말인 비숍의 힘으로 강화하여 장군이라고 자처했구나. 위력도 강하고 범위도 넓고 방어력도 뛰어나니까. 확실히 몇몇 부분은 장군으로 착각할만한 요소가 있어. 속을만한걸. 멋진 생각이네. 하지만 그럴 시간에 기초능력을 좀 쌓지 그랬어. 하핫.”
“닥쳐라.”
카르나가 분하다는 듯 외쳤다.
그녀는 분명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패였다.
흑공자에게 현재 측천 및 두 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측천이 없기에 카르나 정도의 파괴력으로 다른 잡다한 말들을 쓸어버리고 천원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백공자는 실제로 카르나를 만들어 보냈다. 그러나 철가면은 버텨냈다. 카르나가 자신 있어하는 고온에 땀만 조금 흘리고 말 뿐이다.
그녀의 특기인 <철가면>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가진 장기의 패 중 하나, 말(馬)의 힘 때문이기도 하다.
흑공자는 말 마(馬) 자를 마귀 마(魔)자와 동음이의어로 판단하고 악마 속성을 부여했다. 즉 신의 이름을 가졌거나 신적존재, 혹은 신에 해당하는 힘에는 <철가면>의 특기로 쌓인 내성조차 뚫어버리고 원천을 타격할 수 있는 반면, 신이 아닌 부류에게서는 공격이 감소하는 능력.
측천의 포가 여성을 주춧대 삼아 남성에게 공간이동하는 것이 패의 힘이라면 말은 트릭스터 같이 일장일단이 있는 능력이었다.
카르나는 분명히 신의 아들일 터였다.
인도신화에 나오는 일신 수르야의 아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인 일천의 가호를 받아 황금갑옷을 전신에 두른 채 성장했다는 이였다. 그가 등장하는 신화에서는 악역으로 등장했지만, 그 악역의 일상은 보통의 사악한 적이 아니었다.
영웅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키고 따랐던 전사.
공격 하나하나에 신성이 실력 있고 영웅과 신의 힘 모두를 사용할 수 있을 장군의 힘은, 그 이름을 사용하는 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상 카르나가 정말로 그 이름이 지닌 힘을 낸다면 철가면은 타죽었을 것인데.
그렇다는 말은 카르나라는 이름도, 능력도 가짜다.
철가면은 상대를 조롱했다.
“으득.”
카르나는 가면 속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자신의 정체가 들켰다는 것을 알았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단지 그것 뿐. 장군 급에 이르는 파괴력을 내는 술법을 통해 장군으로서 완성되었다는 걸 보여 승리를 가져가려 했다. 백공자의 생각은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카르나의 힘으로는 상처를 입히는 것조차 어려운 상대가 적이 되었다.
철가면이 그리 대단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철가면을 뚫어낼, 카르나에게는 부족했다.
가면을 쓴 여성의 외형. 가면이 철이라는 것에서 상대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철가면. 아마도 지금 카르나가 쏟아내는 공격과 화염에서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철가면의 특기일 것이다. 마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대로는 카르나가 힘을 온통 쏟아내고는 패배할 지도 모른다.
그건 곤란했다.
‘하는 수 없지.’
카르나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약하다. 철가면의 특성 때문에 이득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대로 가면 수치도 겪고 패배도 겪는다.
백공자의 눈에 띄고 싶고, 종국엔 그의 장군이 되는 걸 꿈꾸던 카르나는 두 번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가 힘을 집중했다. 입고 있는 황금갑옷은 철가면의 공격을 능숙하게 막아냈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철가면이지만, 상대의 방어력이 너무 뛰어나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카르나는 힘을 모았다. 의식적으로 행하던 방어동작도 멈춘 채 온 몸을 당기며 집중하는 모습에 철가면은 낭패의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카르나는 집중한 힘을 한 번에 쏟아 부었다.
“……수르야.”
불길의 덩어리.
그곳에서 생겨난, 라운지 전체를 채울 구형의 태양.
“내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군. 그렇지만 나는 이번은 나의 패배라고 지껄이며 다음에 보자고 도망칠 수 없어. 그러니…….”
카르나는 철가면을 향해 서슬 푸르게 노려보며 외쳤다.
“깔려죽어라.”
카르나가 1층 라운지 전체를 덮어버릴 구형의 태양을 건물을 받치는 기둥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1층의 모든 건물과 벽과 도구가 사라졌다. 끓어올라 솟구친 용암에 산 정상에 있던 모든 것이 녹아 문드러진 것처럼. 미쳐 넘치며 타오르는 인공태양에 의해 1층의 벽과 기둥이 엿가락처럼 녹아내렸다.
그리고 빌딩이.
태양호텔의 1층이 사라지자 2층부터 1층으로 내려앉았다.
완전히 깔아뭉개려는 것이다.
철가면은 불꽃 속에서 망연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젠장.”
정말이지 파괴력은 장군급이라고 할 만하군.
게다가 카르나가 사용할 법한 불꽃의 힘을 비숍의 능력을 빌려 사용하는 걸 보면 불꽃을 붐을 수 있는 힘도 있는 것 같고. 평범한 일반무장이지만 비숍의 능력과 황금갑옷이 더해지니 그녀는 정말 한 분야에서만큼은 장군인 카르나를 연상케 했다.
“썩을.”
호텔 안에 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철가면은 그런 걸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무시할 수 있다고 해도 저런 건물이 깔리면 살아남기 어렵다. 카르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원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눈에 띄는 황금갑옷의 빛도 없는 걸 보면 일반인으로 위장하려는 모양이다. 일반인으로 위장해서는 천원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든 시점에서 점령은 무리다.
천원점은 태양호텔. 그러나 이제 호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하아…….”
철가면 역시 전력을 다해 달아나면서 천원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내게 승리를 주기 싫다고 퀘스트를 날려버려? 과연, 쓰레기다운 주인을 섬기는 쓰레기 같군. 내가 여기에 있을 수도 없잖아. 난 너무 유명인이니까.”
행방불명된 프리마돈나는 너무 유명하고 이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많이 곤란해진다.
철가면이 달아나는 것과 동시에 1층이 완전히 녹아 사라진 태양호텔이 그대로 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