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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29화 (29/141)

< -- 29 회: 3> 배고픔. -- >

그는 눈을 뜨고 SP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외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군.”

“저는 여자이기 전에 SP입니다. 회장님을 지키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어떤가? 그의 외모에 대해서.”

“굉장합니다. 정보에 의하면 조금의 성형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제가 살아오면서 본 가장 완벽한 미남입니다.”

“그런가.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SP가 짐짓 의문을 제시했다.

“며칠 전 자네가 없을 때 영국에서 하얀 녀석이 왔더군.”

“하얀 녀석입니까?”

“머리는 금발에, 사내놈인데도 등을 덮고, 파란 눈에 하얀색 정장을 걸치고 있는 녀석이었지. 젊었지만 대단한 미남이더군. 그래, 이시현이라는 이 녀석보다도 미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말이지.”

이만한 미남이 또 있다는 말에 SP는 약간의 흥미를 가졌다. 물론 그뿐인 이야기였다. 영국에 사는 하얀 녀석이 있든 없든 알게 무언가.

“그 녀석은 영국 제일가는 석유재벌의 자식이더군. 진짜 자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한 지위에 걸맞은 녀석으로 보였어.”

“석유재벌이라고 하시면…….”

국내에서 거두는 세금보다 많은 양의 돈을 벌어들인다는 초공룡기업. 그 기업 하나가 국가 하나에 맞먹는다는 그런 곳을 운영하는 쪽의 자식이 찾아왔다고?

“그 녀석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완전히 양놈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완벽히 하더군. 지식수준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베짱이 있어.”

“네.”

“이시현이라는 놈은 그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주희님과 약혼시킬 생각이십니까?”

“네가 본 것대로라면 우리 쪽에 끌어들여도 좋을 인재겠지. 물론 나름의 시험은 해봐야겠지만, 시험에서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주희, 그 녀석이 그렇게 목매다는 남자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쩐지 기대가 되는군.”

“기대입니까.”

“그래. 기대야. 그 하얀 녀석과 맞먹을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 말이지.”

하얀 녀석.

스스로를 샤를이라고 말했던 자.

영국에서 왔다면서 프랑스 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웃기는 녀석이었다.

사람을 하루에도 수없이 보는 회장도 이 녀석은 진짜다, 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자. 하얀 녀석, 그 반만이라도 이시현이 따라와 준다면 주희의 남편으로 낙점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아니, 그룹의 사업 하나를 떼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시현은 20대의 나이에 자산이 100억에 이르는 재단의 우두머리다. 100억 따위,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글쎄……아무 것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빨리 진짜로 만나보고 싶군.”

“순순히 따를까요.”

“따르게 만들어야지. 아무리 젊은놈들이 크다고 해도.”

회장은 노인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경험은 부족할 테니까.”

태양호텔은 태양그룹이 만든 호텔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급 호텔이었다.

그런 호텔에 황금의 갑옷을 입은 여성이 나타난 것은 30분 전. 도대체 무슨 복장을 저런 걸 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쯤 여성은 카운터에서 싱긋 미소 지었다.

검은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길게 늘어뜨리고, 심홍색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초콜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전신을 뒤덮는 황금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나 허리, 엉덩이의 굴곡은 드러났다. 그 갑옷이 터무니없이 정교하게 짜여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주변은 낙일의 그것처럼 주황색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신기한 여자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던 이들 앞에서, 그녀는 말했다.

“아그니스트라.”

마치 화살을 겨누는 시늉을 하던 그녀의 가슴 앞에서, 불꽃의 화살이 생성되자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빠앙, 사람 셋이 그대로 타버리고 죽음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핫!”

여성이 깔깔 웃었다. 비명. 절규. 당황. 공황.

그 속에서 그녀가 양손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낙일의 빛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주홍빛의 태양 같다. 그런 열기에 이글거리는 구체를 들어 올린 그녀가 바닥에 내리꽂았다.

-드드드드드드드득.

“사라져라!”

호텔이. 그만큼 크고 튼튼한 건물도 없을 것 같은 호텔이 1층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극고온의 불꽃덩이가 지반을 녹이고, 지반이 녹아들어 기둥이 휘자 급격히 붕괴했다.

“천원(天元) 획득!”

초열지옥이 된 1층 라운지에서 황금의 갑옷을 입은 여성이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런 그녀를 향해 대꾸하는 이가 있었다.

“닥쳐.”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칠흑의 슈트로 굴곡진 몸을 감싸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완연히 드러난 몸매만으로도 그녀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매력에 황금갑옷을 입은 여성이 홀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삐뚜름하게 한 채 그녀가 말을 비꼬았다.

“뭐지, 이 쓰레기는?”

“나? 쓰레기 수거할 사람이다.”

가면을 쓴 여성은 대답했다. 허공에 손을 뻗자 기이한 칼이 생겨났다.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태연히 걷는 것은 입고 있는 슈트의 힘일까, 아니면 그녀 본연의 힘일까.

1층 라운지를 초열지옥으로 만든 여성이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킥킥 웃었다.

“그거 대단하군. 그 뚫린 입만큼 재주가 뛰어날까? 소개하지. 나는 샤를님의 비숍.”

그녀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녀의 황금갑옷이 반짝이고 몸을 휘감은 주황색의 색이 더욱 짙어졌다.

“장군이다.”

뒤에 나타난 여성, 슈트를 입고 있는 여성은 장군이라는 표현에 몸이 굳었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떨지도 않았다. 충격은 컸지만 가면으로 어떻게든 가릴 수 있었다.

장군이라고? 백공자 샤를은 벌써 ‘가져온 장군 하나’에 또 새로운 장군을 만들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정말로 장군인가? 아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퀘스트는 나름 공정할 것이다. 여성을 무장으로 만들 수 있는 무구를 몇 개나 얻고 특기를 얻을 수 있는 셀도 여럿 구했지만 그걸 다 합쳐도 장군을 만드는 건 무리다.

이 주변을 이렇게 만든 것을 보면 장군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장군과 같은 압박은 느껴지지 않는다.

초식동물이 물을 마시고 있는데 뒤에서 티라노가 다가와서 침을 머리위에 뚝뚝 흘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전율. 온 몸의 유전자가 도망가라고 외치고 해체될 것 같은 극도의 불안함.

적의서린 장군을 마주한 이가 느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허나 장군이라고 밝힌 이에게서 그런 전율을 느낄 수가 없다. 이쪽의 장군인 측천이 장군 중에서도 강한 편이라 비교하긴 어렵지만 황금갑옷을 입은 여성, 비숍에게서 장군으로서의 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장군끼리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적에게서 장군은 ‘퀸’ 뿐이라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측천이 ‘다양한 특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장군이라면 적인 퀸은 ‘다재(多才)하게 보이는 특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럼…….

“넌 소개 안 해?”

황금갑옷을 입은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고 물었다. 그녀는 가면에 손을 얹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는 마(馬). 장군이라고 구라치는 년을 청소할 수거인이다.”

“포도 아니고 차(車)도 아닌 마? 겨우 그까짓 포지션이 나를 막겠다고?”

황금갑옷의 여성이 안면을 비틀었다. 그러더니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깔깔 웃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도록. 암, 그러면 시작해볼까. 응?”

황금갑옷의 여성이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검은색의 창이 허공에서 생성되어 황금갑옷의 여성의 손에서 우악스럽게 쥐어졌다.

“너도 천원을 노리라는 퀘스트를 받고 왔겠지? 처분해주마. 사인은 그거다.”

황금갑옷의 여성은 갑옷을 입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움직여 가면의 여성 코앞까지 접근했다. 가면의 여성이 거리를 벌리려했지만 그보다 조금, 황금갑옷을 입은 여성이 빨랐다. 창을 가면을 쓴 여성의 가슴을 향해 꿰찔렀다.

“너의 사인은 나야.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내 이름을 말해주거라. 내 이름은 카르나.”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광신장군(光神將軍) 카르나다.”

“신명(神名)을 가지고 있어? 그거 잘됐군.”

가슴이 꿰뚫리는 것과 동시에 창에서 타오르는 불꽃. 온 몸이 불꽃에 뒤덮인 여성은 가면 속에서 소리 높여 말했다.

“신을 죽이는 마(魔). 나는 마(馬)의 위치를 얻은 마(魔)이니, 죽어라!”

불꽃 속에서도, 가슴을 꿰뚫리고도 가면의 여성은 움직였다. 마치 불꽃에 면역인 것처럼. 그녀는 몸을 점토처럼 만들어 창을 몸에서 떼어내더니 그대로 카르나의 목을 기괴한 검으로 후려쳤다.

카르나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황금갑옷의 보호인지, 갑옷에서 솟아난 주황색의 후광에 가면의 여성이 내지른 타격이 거의 무로 돌아갔다. 가면의 여자가 저도 모르게 탄식하며 몸을 젖혔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상한데?

뭐가 이렇게 굼뜨지?

장군이 맞는 건가? 아니,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장군을 자처한 이상…….

잠깐만. 이 여자 이렇게 상대하기 쉬운 건가? 가면의 여자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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