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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24화 (24/141)

< -- 24 회: 3> 배고픔. -- >

여유를 찾은 백공자가 ‘그녀’를 불렀다.

게임의 종류를 체스로 선택했을 때 단연코 제일 처음 퀸의 자리에 앉힌 여성.

게임을 시작할 때 백공자를 따르는 대부분의 여성들을 내버려두고 와야 했지만 가장 강력한 팻감은 가지고 왔다. 그녀는 당연히 체스의 말 중에서 가장 강력한 퀸이 되었다.

장군이 퀸이라는 사실은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인데, 거기다 퀸이라는 특성 상 그녀는 ‘킹’을 제외한 모든 말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백공자 휘하 여성들의 특기를 죄다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공자가 불러낸 퀸은 측천과 맞서 싸웠다.

측천 또한 퀸과 마찬가지로 장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같은 장군이었지만 한때 ‘황제’의 것이었다는 과거가 있었다. 측천은 장군끼리의 사투를 벌이면서도 백공자를 공격 범위에 넣는 재주를 부렸다. 그렇지만 이곳이 적의 진지임은 명확했고, 기타 다른 말들이 닥쳐들면서 백공자의 죽음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측천은 달아났다. 그녀는 나타났던 것처럼 사라지면서 백공자에게 엿을 먹였다.

흑공자가 그리 명령했던 것이리라.

백공자는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극심한 손해를 보았다. 무엇보다 손해는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백공자는 즉각 퀸의 능력을 빌려 상대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방법을 깨달았다.

백공자가 안고 품은 여자들의 흔적을 쫓아 여자를 주춧돌 삼아 목표인 백공자 앞으로 닥쳐든 것이다. 퀸은 무서운 활용법이라고 이야기했고 백공자 또한 그렇다고 납득했다. 백공자가 여자를 안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안으면 여자는 포의 주춧돌이 되어 익스프레스로 측천을 백공자 앞으로 배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고 안지 않을 수도 없다. 겨우 그런 위협 때문에 생활패턴을 바꾼다는 건 백공자의 성격상 말도 안 되는 일이므로.

백공자는 흑공자의 도발로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라도 네놈의 여자를 통해서 너를 저격할 수 있다’

그 사실이 뜻하는 바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네 여자에게 정액을 싸지르지 마, 병신아. 고자처럼 살라고.’

그런 식으로 이해한 백공자는 도리어 그것을 이용해주기로 했다.

“좋아. 한 번 해보자고. 병신아.”

이용해주리라. 이용해주겠다. 흑공자 게인, 그런 놈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게 해줄 것이다. 이쪽에 다소 손해가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상처도 입었지만 이 정도는 게임을 하면서 몇 번이나 겪은 일이다.

퀸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뼈아팠지만 어차피 이쪽의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퀸은 히든카드로 숨겨두는 게 좋지만 사실상 드러난다고 해도 큰 피해는 오지 않는다. 흑공자놈은 착각하고 있었다. 비밀이 들통나는 것만으로 전투력이 깎일 거라고. 백공자는 그 점까지 노려서 히든카드로 써먹으려고 했다. 정체가 들통났지만 피해는 크지 않았는데 대신 조커로서의 활용은 불가능해졌다.

백공자 샤를은 우아한 검미를 찌푸리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골목 어딘가. 그가 만들던 진지에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이름 따위는 잊어버렸다.

그 여성은 백공자의 깊은 최면을 통해서 자신이 ‘무장’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퀸의 특기를 통해서 육체도 무장 수준까지 강화되어 있다. 얼굴도 많이 예뻐졌다. 백공자가 잠시 고뇌하다 안아 볼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백공자의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의 처녀를 빼앗고 몸의 다른 구멍마다 정액을 갈기고 희롱해댄 것은 맞지만, 현재 그녀의 자궁속에 들어있는 건 다른 놈의 정액이다.

수준은 낮고 그럴 필요에 의해 안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여자를 남에게 주는 것은 아깝다. 아까운 정도가 아니라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짓이다. 어스 엠파이어의 남성들은 자신의 것이라면 쓰레기조차도 남 주지 않고 안고 다닐 사람이니까. 하지만 백공자는 다른 방식으로 아까움을 해소했다.

“여자에게 뿌린 나의 정액을 추적하여 나에게 날아온다고? 정액탐구자가 되어서 좋겠군. 그럼 계속 날아다니게 해주지.”

마법으로 생성된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백공자가 이죽거렸다.

스스로를 백공자의 무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녀는 명백히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혹여 누군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행동했다.

진지를 세워 도시 전체를 대규모로 감싸 백공자의 지배영역으로 만든다.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움직이던 그녀는 이윽고 발굽이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의 인기척이, 저쪽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녀가 자세를 잡는 것을 보며 백공자는 가늘게 웃었다.

그가 바라보는 홀로그램 속에는 여성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군. 꽤 돌아서 왔는데?”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셋.

한 명은 복서로 졸의 자리를 담당한 이성아였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숏 컷의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에 탱크탑과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육박전에 능할 것으로 보이는 여성.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졸처럼 보였다.

그리고 포의 자리를 차지한 여성이 있었다.

측천.

이길 순 없더라도 지는 싸움도 하지 않는, 실로 기묘한 특기를 많이 가지고 있고 굉장히 다재다능한 장군. 홀로 장군 셋을 맡아 상대하면서 이기진 못해도 지지 않았기에 역시 황제의 장군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흑공자 전력의 9할 9푼짜리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화려한 궁장을 입고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 복식에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에 손을 얹고는 느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인을 잘못 만난 불운을 동정하지. 그러니 죽도록 해.”

측천이 비단신을 신고 소리없이 걸어왔다. 백공자가 품었던 여성이 전투의 준비 자세를 취했다. 백공자의 퀸이 직접 전수한 무예의 일환이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날렵한 검이 생성되었고 그 검을 꿰듯이 쥔 여성이 멍한 눈으로 세 명을 응시했다.

“펜싱?”

아마도 그런 종류의 검술.

조금 의아해하긴 했지만 측천이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측천은 가짜 무장을 향해 정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정거리에 닿는 순간 가짜 무장이 검을 찔렀다. 정말이지 빠른 속도였다. 바람이 밀려가고, 검끝은 빛이 되어 측천의 심장을 향해 찌른다. 하지만 측천은 막아냈다. 아니,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폭 좁은 검의 검면을 양손가락으로 잡아내고 쨍강, 소리를 내며 부러뜨린 후 가짜 무장의 앞까지 한 번에 들어왔다.

홀로그램으로만 봐도 기가막할 정도의 기교. 여성이 당황하기도 전에 측천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후려쳤다. 가짜 무장이 튕겨 날아간다. 벽에 틀어박히고 끅, 끅 하고 임종직전의 신음을 토한다. 일격.

어지간한 사람은 한 방에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측천에게는 한 방에 묵사발이 났다.

“과연 격이 다르군.”

기식이 엄엄한 가짜무장을 내려다보며 측천이 양손을 벌렸다. 이성아와 이름 모를 여성이 그 손을 잡았다.

“하.”

그녀가 다른 여성의 손을 붙잡는 것을 보고 백공자는 감탄했다.

“그런가. 그런 사용법이 있었군. 하긴, 이건 완벽히 그런 룰을 따르는 게임이 아니니까!”

흑공자의 말 중 하나인 포는 여성의 몸속에 든 남성의 흔적을 쫓아 공간이동할 수 있다.

측천이 목욕을 즐기던 백공자 앞에 나타났던 이유도 그 능력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것이, 공간이동할 조건을 갖춘 포를 다른 말이 붙잡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의문의 해답을 홀로그램은 보여주고 있었다.

측천의 손을 붙잡은 흑공자의 말 두 마리가 측천의 공간이동에 묻혀 함께 사라졌다.

홀로그램에 남은 것은 곤죽이 되어 죽어가는 가짜 무장 하나 뿐.

흑공자 측이 백공자의 ‘말’로 생각하고 있을 여성뿐이었다.

측천은 여성을 매개로 하여 포의 능력을 사용, 그대로 여성의 몸에 든 정액의 주인을 찾아 순간이동 했다. 그녀와 손을 붙잡은, 즉 이어져 있는 두 명의 여성과 더불어.

당연히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백공자가 없다. 당연한 거겠지만 백공자는 여성의 대부분을 범하되 자궁을 범하면서 사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자궁에 든 건 다른 이의 정액이다. 물론 그 정액의 주인은 살아있지 않다. 필요에 의해서라고는 하지만 백공자가 ‘자신이 품었던 것’을 건드린 놈을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시체는 좋은 곳에 보내두었다. 그 좋은 곳이란 가장 엄중한 대처가 요구되는 핵실험 발전소였다.

측천은 기묘하게 얽힌 공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측천은 이를 악물었다.

“대강은 알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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