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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19화 (19/141)

< -- 19 회: 2> 첫 퀘스트. -- >

“누가 양아치야!”

이시현은 예민한 감각으로 빌딩 문쪽에 붙어 이곳을 주시하는 남민아의 시선을 느꼈다. 팔랑 손을 흔들어준 이시현은 제일 앞에 선 여드름 덩치를 손가락질했다. 거만한 태도. 경비원들은 이시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막아보려 했지만 이시현이 싱긋 웃으며 돌아가라는 시선을 던지자 엉거주춤 물러섰다.

기가 눌렸다. 여드름 덩치는 이런 남자가 세상에 다 있구나 생각했다. 미모도, 돈도, 분위기도, 키도, 패션도 완벽한 사람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눌릴 수는 없었다. 이미 눌렸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음. 갑자기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군. 아, 생각났다.”

이시현은 발을 걷어찼다.

빠각, 소리가 들렸다.

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

여드름 덩치는 이시현이 발로 걷어찬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무릎 아래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어?”

뼈가 부러졌다. 빠각, 하는 소리는 뼈가 부러진 소리였다.

이시현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올려다보는 여드름 덩치를 향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나오는 주연의 미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매우 부드럽고 우아했지만 터져나온 웃음소리는 광포하기 짝이 없었다.

이시현은 주저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여드름 덩치가 허공에 떠서 모여있는 학생들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리고 실신했다. 얼굴이 반쯤 들어간 듯한 모양새에 앞니 여덟 대가 나가고 피를 줄줄 흘리고 있다. 이미 실신해서 몸을 움찔거리고 있다.

이 육체는 군주의 세포를 통해서 강화된 어스 엠파이어인의 것이다. 어스 엠파이어의 남성들이 힘이 세거나 매우 튼튼하거나, 무장과 장군처럼 무기마냥 위력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격차가 있다. 더욱이 이시현이 사용한 군주의 세포가 제국 삼황제 중 무력제일인 하늘의 황제의 세포라 한다면.

“내가 하는 이건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지. 아 무서워라. 몇 명에게 다굴맞는 거야.”

뭐 놈들이 수류탄이나 기관총 같은 거라도 꺼내와서 갈기지 않는 한 이시현이 목숨의 위협을 받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시현은 상큼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바퀴벌레 떼처럼 달아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털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겁도 많아서는……하.”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몸을 떨지만 도망은 치지 않는 이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뒤통수를 붙잡고 힘껏 당겼다. 아래로 딸려오는 그의 머리를 향해 뾰족하게 세운 무릎을 올려 여드름 덩치의 얼굴과 비슷한 꼴로 만들어주었다. 이시현은 피가 튀지 않도록 가볍게 피하고서 다른 한 명의 소매를 잡았다.

뱀, 혹은 벌레, 그것도 아니라면 벌. 그런 종류가 다가오자 몸을 흔들며 피하려던 소년이 이시현에게 딸려왔다. 이시현은 그대로 양손으로 그를 붙잡고는 허공으로 던졌다. 2m가까이 날아오른 그가 나뒹굴었다. 제대로 된 낙법을 못해서 그대로 머리와 무릎을 땅에 처박고 숨 넘어가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이시현은 서른 명 가까이가 몰려왔지만 세 명을 쓰러뜨리고 나자 남아있는 게 하나 뿐인 현실을 개탄했다. 그리고 그 하나에게 교훈을 내려주기 위해 척척 걸어갔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일진으로서 또래의 다른 소년들에게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던 이가 울고 있었다.

“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시현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다, 다시는……끄아아아아아아아악!”

어깨뼈가 부러진다. 이시현의 악력에 붙잡힌 그의 어깨가, 근육부터 찢어지고 있었다. 이시현은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다. 이시현은 한없는 고통에 무릎을 굽히면서 점점 자세가 작아지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가 아니지.”

이시현은 양 무릎을 꿇고 피로 물든 어깨를 부여잡으면서 질질 짜는 그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답했다.

“다시는 못 그럴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거야.”

이시현이 톳, 소리가 나게 뛰더니 그의 머리를 사커 킥으로 걷어찼다. 물론 조절은 했다. 두개골이 척추에서 떨어져나가 머리통만 굴러다니게 만들어 현실을 그로테스크 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으니까. 여기가 사라예보 반정부군 대치장소도 아니고 사람 머리 뽑아서 축구할 건 아니잖은가. 쭈욱, 하고 뒤로 밀려나간 소년은 그대로 실신했다.

이시현은 구두에 피가 하나도 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이시현은 도망을 쳤지만 이런저런 곳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이들을 바라보며 중지를 들었다. 그리고는 경비원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뭘 못 배운 양아치 새끼들이 나를 린치하려고 집까지 찾아오는 거 잘 봤죠? 그래서 정당방위를 한 것도 봤고요.”

경비원들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얼추 이해한 눈치였다.

“그리고 아저씨들 월급에 보너스가 200% 붙을 것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어떤 식으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도 알 테고.”

이시현은 남자가 보아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건물로 향했다.

“그럼 부탁합니다. 아, 이 자식들 일진이라는 것들이더라고요. 혹시나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주세요.”

“맡겨만 두게.”

경비원들이 하나 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피투성이 넝마가 된 일진들을 바라보고 침을 뱉었다.

이시현은 그제야 몸을 내미는 남민아를 바라보았다.

어때, 눈으로 묻는 그를 바라보며 남민아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세상에. 당신……사람 맞아?”

이시현이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존댓말 써.”

“……네 오빠.”

***

어스 엠파이어에서 군주(君主)라는 위치는 초월적인 자리다.

128개의 분류가 되어 있는 이 특권층은 귀족이며, 어스 엠파이어의 모든 부를 독식하고 있다. 그들의 피는 아득히 오래전부터 어스 엠파이어를 지배한 이들, 즉 세 명의 황제에서 나왔다.

하늘의 황제 진천.

만물의 황제 진언.

죽음의 황제 진명.

각기 생물로서 오르기 힘든 지위를 획득하고 그에 따른 권능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인간에 섞어 귀족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권능을 하사했다.

귀족, 즉 군주는 각기 담당한 분야에서 갖가지 이능을 일으킬 수 있었고, 기타 식민지화한 종족들을 지배했다.

어스 엠파이어에는 인간밖에 없다.

‘인류제국’이라는 표현 그대로, 잡아온 모든 노예를 인간화시킨다.

죽음마저 지배하는 이들의 과학기술은 영혼이라는 존재를 마음대로 가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들은 인간의 몸에 다른 종족의 영혼을 접붙여 생명을 이어가게 한 후 그들의 능력과 이적을 빼앗고 인간으로 만들어 노예 삼는다.

귀족, 달리말해 군주.

군주의 호칭을 사용하는 이들은 전원 귀족이라고 보아도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문의 장들은 압도적인 능력과 굉장한 지배영역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환상이 집약된 존재.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심안의 군주(Lord of inward eyes)는 생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물의 모든 화학적인 반응을 읽고 판단할 수 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가공하는 것도 가능. 덕분에 심안의 군주는 같은 귀족이 아닌 한 어떤 생물이라도, 신조차도 화신의 형태로 강림한다면 제어가 가능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어스 엠파이어의 황제조차도 제어할 수 있다고 자처했다가 황제의 선언 한 방에 ‘제어하기 위한 방법’을 잊어버리고 바보가 되어버렸던 건 꽤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어떠한 방법도 잊었고, 그 덕분에 128개의 군주 가운데서도 최정상에 있던 심안의 군주 자체가 최하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그는 10년 가까이를 땅거지처럼 살다가 겨우 화가 풀린 황제에 의해 심안의 군주는 본래의 자리를 찾았다.

전쟁의 군주(Lord of war)는 이름 그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부류였다.

다른 문명세력을 침공하고 모든 자원을 수탈하며 민족 전체를 학살한 후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노예로, 성욕을 채울 도구로 만드는데 앞장선다. 인류가 전쟁을 하며 쌓아온 모든 기술과 전술을 기억하고 있으며 가장 완벽한 전쟁을 수행하는 존재다. 그리고 다른 문명의 역사를 빼앗고 그들의 기술문명으로 발전하여 가장 뛰어난 전쟁수행도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전쟁의 군주는 그렇게 받아들인 기술로는 죽지 않는다.

영웅은 항상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세 황제에 의해 죽음이 거세된 어스 엠파이어의 군주들은 아예 죽음의 공포를 잊었다.

덧붙여 어스 엠파이어의 문명을 지배하는 만물의 황제, 진언의 충복으로 어스 엠파이어의 전쟁을 시작하는 건 전쟁의 군주다.

***

이시현은 두 군주의 프로필을 읽었다.

새삼스레 어스 엠파이어의 기술에 감탄한다.

세 번째 퀘스트를 끝마친 이시현이 두 군주의 프로필을 읽는 이유도 그들의 권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물론 A등급에 불과한 권능으로, 권능 중에서는 가장 수준이 낮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다.

두 군주의 권능을 모두 가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두 군주의 권능 중 하나를 택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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