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회: 2> 첫 퀘스트. -- >
“퀘스트가 해결됐군.”
밤늦은 시각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호텔에 투숙한 이시현은 조금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 그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홀로그램은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고 있었다. 처음 퀘스트를 수락했던 것처럼, 이제는 완료의 란에 손가락을 얹자 홀로그램이 팟, 소리가 나게끔 산산조각 흩어졌다.
그리고 부서진 빛의 파편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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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킹을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퀘스트를 무사히 마치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떤가요. ‘이시현’님. 그 몸에는 만족하셨나요?
군주의 세포로 변화된 그 육신을 여러모로 활용하세요.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다 과거의 버릇을 버릴 필요도 있으니까요.
첫 번째 퀘스트 ‘그녀에게 초대받고, 안고, 쾌락에 잠기게 하세요’는 즐거우셨나요?
그리 어렵진 않았겠지만, 첫 시작은 중요한 법이지요.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데 만족하셨다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퀘스트는 계속됩니다.
잊지 말고 확인해주시고, 이하의 보상을 통해 기반을 마련하세요.
퀘스트 완료 보상: 자산 100억의 유령재단.
수락을 누르자 네모난 창이 떴다.
[재단의 이름을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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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시현재단.”
[잘 만들어졌습니다~.]
100억의 금액이 예치된 재단이 만들어졌다.
첫 번째 퀘스트. 고작 한 번의 퀘스트만 했을 뿐인데 자산 가치 100억의 재단이 이시현의 것이 되었다. 이시현은 손 모양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허공을 짚었다. 허공에서 펄럭이며 떨어지는 서류가 하나.
무장이나 장군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서류를 꺼냈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에게는 손짓이나, 마우스 클릭 질과 다름없었다.
시현재단이라는 것이 그의 것이 되었다.
이후에도 홀로그램은 재단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재단이 위치한 곳은 필리핀. 세금포탈의 근원지 취급을 받고 있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모르지만, 잭 더 리퍼의 설명이 있었던 바 이시현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초대받고, 그녀를 안고, 그대로 질내에 사정했다. 그것만으로 100억이 생겼다.
기가 막힌 일이다. 겨우 그것 뿐. 그런데도 100억이다.
그나마 이것도 게임에 들어가기 전 초보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보상 같은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서 레벨 1에 퀘스트를 받아 ‘너덜너덜한 가죽상의’ 같은 걸 받는 것과 동급이라는 말이다.
[어스 엠파이어].
이 이름을 가진 제국은 도대체 얼마만큼 크기에 이런 것이 가능한 걸까.
새삼스레 게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이시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곧 자신의 옆자리에서 평온하게 잠든 여성을 바라보았다.
강주희.
올해 25세의 여자. 처녀자리라고는 하지만 처녀는 아니었다. 물론 이시현 또한 동정을 잭 더 리퍼에게 내던지듯 던져버렸으니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녀의 이름과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태양그룹의 회장 강의곤의 영애라는 사실.
재계서열 7위, 유통시장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으며 태양의 이름을 붙인 마트도 운영하여 굉장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여러 가지 기업을 죄다 가족에게 나누어주어 공룡으로 성장한 기업의 회장. 그런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은 제법 의미심장했다.
그런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여자’가 자신을 불렀다.
셔츠 하나에 백만 원짜리 옷을 사 입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칼질 한 번 당 15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썰었고, 철저한 회원제인 바에서 1946년산 맥켈란을 마셨다.
그리고 은근히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녀는 하룻밤의 섹스를 요청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한 태도였고 이시현은 65만 원짜리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그러마하고 답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그녀의 카드로 방을 빌렸다. 이어 다른 서비스는 필요 없이 황혼이 무르익었을 무렵부터 침대에서 그녀와 성교를 나누었다.
일곱 번.
이시현이 그녀의 자궁에 정액을 뿌린 횟수.
그리고 열네 번.
강주희가 절정의 쾌감에 오른 횟수.
네 번째에 강주희는 그만해달라고 소리 높여 사정했고, 일곱 번째에는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열 번째에는 혀를 내밀고 눈을 반쯤 뒤집은 채 침을 줄줄 흘리며 육변기가 되어서 이시현의 움직임에 맥없이 따르기만 했다. 이시현은 봐주지 않았다. 그는 경험이 적었지만 잭 더 리퍼라고 하는 여자와의 단련으로 매우 실력있는 난봉꾼이 되었다.
그리고 열세 번째에는 정신붕괴에까지 몰렸고 아우성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복종했다. 본인의 보지를 드나들었던 자지를 쪽쪽 빨아 청소한 후 노예선언을 했다. 실제로 노예가 된 것은 아닐 테지만 그의 정력과 육체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테크닉이야 리퍼에게 단련 받았다고 쳐도 정력과 육체의 능력은 또 다른 개제였으니까.
“흠.”
100억에 이르는 금액을 보유하고 운용하는 재단의 주인이 되었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별세계 사람을 안고 희롱하며 주인이 되었다.
그저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 뿐이지만 과거의 이시현은 상상할 수 없는 하루를 겪었다.
딱히 노력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단순히 머물던 곳을 나왔고 상대의 요청에 따라 허리를 흔들었을 뿐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스 엠파이어]의 참가자에게는 당연히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게임은 무섭다.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찰나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혜택을 완연히 얻은 후 흑과 백을 쓰러뜨리고 승자가 된다.
겨우 후계자들의 싸움이다. 게임의 참가자에 불과한데도 이만한 혜택이다.
그들의 지배자라는 ‘군주’가 된다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군주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위치를 빼앗을 것이다.
왕의 자리를 빼앗는 게임.
왕좌의 게임은 목숨을 걸 가치가 있었다.
크크큭,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소리를 애써 억누르려 하지 않고서 이시현은 손을 내밀어 강주희의 유방을 움켜쥐었다. 그의 이빨자국과 입술자국으로 멍이 든 유방은 흉했지만 보기 싫지는 않았다.
실신하듯 잠들었다가 편안한 숙면으로 접어든 강주희가, 퉁퉁 부어오른 유방이 아픈지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신문을 읽던 이시현의 뒤에서 목을 감은 강주희가 까르르 웃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자산 가치 과소평가된 잉여자원.”
“요즘은 잉여자원이 이정도로 잘났나? 나 허리가 빠진 거 처음이었어. 알아?”
“허리만 빠졌을까.”
이시현이 느긋하게 대꾸하고는 신문을 접었다. 강주희가 목에 매달려서 재잘거렸다.
“아, 정말. 끝내줬어. 정말이지 그런 밤은 처음이야.”
“끝내주는 사람인 건 맞지.”
이시현은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그런 식으로 네가 경험이 많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거라면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응? 아, 화났어?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
“주변 사람의 기준에서 나는 빠져있지. 그럼 슬슬 일어나볼까.”
강주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딜 가려고?”
“어딜 가냐니.”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시현이 대답했다.
“돌아가야지.”
“자, 잠깐만…….”
그런 말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강주희가 더듬거렸다.
“나랑 같이 살 거 아니었어?”
“같이 살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냐.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에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거냐?”
“그, 으……아, 아니. 나랑 같이 있으면 잘해줄 건데. 엄청 잘해줄게. 응, 나 돈 많아. 진짜로. 어제 차 좋았지? 그거 줄게. 카, 카드도 필요해? 여기 내 카드 있어! 이거 줄게!”
허둥지둥거리면서 그가 떠나려는 걸 막으려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시현은 정말로 이 몸의 스펙에 감탄했다.
이런 여자가 간이고 쓸개고 빼줄 듯이 한다. 물론 외형에 이끌려 유혹해왔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를 실신으로 몰아가면서 느꼈던 감정은 지금 이런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정이었는데 말이지.’
VVIP에게만 발급되는 블랙카드를 내밀면서 끌어안는 강주희를 바라보며 이시현은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강주희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게 해줄게. 게다가 나 괜찮지 않았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드라이브도 가자. 응?”
“그러지 마. 서로 좋았잖아. 좋게 끝내야지. 옷을 챙겨준 건 고맙지만 관계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
“아니야! 아, 아니. 관계는 맞는데……나랑 사귀어. 응?”
“글세. 어쩔까.”
이시현은 턱을 괴고 강주희가 하는 꼬락서니를 내려다보았다.
강주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졌던 오만함을 어디다 내다버렸는지, 정부에게 모든 걸 주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몇 번이나 난감하게 하고, 그녀에게서 부탁의 말을 들어내고, 옷을 벗기게 하고, 알몸으로 춤추게 했다.
강주희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이시현이 떠나는 것이 그만큼 싫었던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몸이 가진 마력이 그녀의 사고체계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을 노예로 부리며 복속시키고, 그녀들을 깔개로 사용하며 지배하는 [어스 엠파이어]. 그 남성의 육신을 가진 이시현은 정말로 만족하면서 거드름을 폈다.
“생각해보지.”
활짝 웃는 강주희를 생각해보면 그리 거드름도 아닌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