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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7화 (7/141)

< -- 7 회: 1> 전초전. -- >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다 작정하고 내지른 어퍼컷에 턱만 깨지는 걸로 끝났으니 육체의 방어도도 생각보다는 있는 수준. 일격사하지는 않을 테니 응혈과 용혈로 상대가 누가됐든 시간 끌기 정도는 가능하다. 거기다 <헌혈과 수혈>. 상대의 기술을 직접 맛보고 되돌려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인 셈이다.

이건 ‘죽지 않고 상대의 수를 파악하고, 기왕이면 적을 쓰러뜨리고 돌아와야 하는 전초전’의 역할에 딱이다.

동시에 이성아는 본인의 역할도 매우 적당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녀는 육체가 강하며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술인 복싱을 익히고 있다. 오감이 무척 예민하여 <오감예민>의 특기와 무장으로서의 육체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상대는 이성아를 보면서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성아에게는 어떤 장점도 없다. 안미희와 같은 현란한 특기도, 조건이 필요하지만 조건이 완성된 후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수단도 없다. 그냥 터프하고 힘 센 사람. 이성아는 그제야 자신이 전초전을 열 말로서 뽑힌 이유를 알았다.

‘나의 주인님, 흑공자께서……너무나도 영리하셨기 때문에!’

이성아는 목이 부러진 와중에도 푸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성아를 만난 적은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튼튼하고 힘이 세고 무술을 익히고 있더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이쪽의 패가 노출이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전략 게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손쉽게 소모할 수 있는 병력처럼, 아무런 능력도 없이 생산되자마자 적진에 달려들어 적의 위치나 전략을 알아내는 알보병. 그것 뿐. 이성아의 주인인 흑공자의 취향과 전략 따위 알 수도 없는 노멀한 병력이다.

상대는 생존의 대가인 안미희를 통해서 ‘그 어떤 상대라도 돌아올 수 있게끔’ 했다. 안미희는 전초전을 여는 말로서 매우 적합하다. 어떤 적에게서든 한 방 먹이고 살아돌아갈 수 있는 특기가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성아는 안미희에게서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안미희의 주인인 백공자는 ‘일개 폰에 많은 가능을 쏟고 있으며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고 이용하려는 부류이고, 폰의 소모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다’는 것을.

이성아는 안미희의 공격을 버텨냈다. 목이 부러진 상황이다. 보통은 쇼크로 죽어야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만하다. 이성아의 주인인 흑공자는 사람을 해체하는 것으로 성욕을 해소하는 사디스트다. 이성아는 열 차례도 넘게 잔인한 도륙을 당했고 고통 속에서도 쾌락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엉망이 된 육체를 본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느린 재생이 그것인데 해체한 이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흑공자는 느린 재생을 그의 여자 모두에게 달아둔 것이다. 목은 부러졌지만 곧 재생이 된다. 느린 재생이지만 죽지는 않는다. 덧붙여 안미희의 공격도 버틸만했다.

안미희의 육체능력은 별 거 아니고 누군가를 향해 치명적인 부분을 강력한 힘으로 때릴 수 있는 기술도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피를 이용해 <용혈>로 녹이는 것뿐이지만 이성아는 몇몇 개는 버텨내고 몇몇 개는 바닥을 굴려 흙먼지를 일으켜 방어해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이성아는 조급해하며 달려온 안미희를 향해 ‘똑바른 시선으로’ 마주했고 안미희의 눈을 후려쳤다. 안미희의 얼굴이 진흙처럼 뭉개졌다.

“멋진 반격이었어. 그러나 내게도 무기가 하나 있지. 나의 주인님께서 제 아무리 소모품도 하나쯤 수단이 있어야 한다며 달아준 거야. <분쇄>라는 건데.”

이성아는 낄낄 웃으며 안미희의 머리에 때려 넣은 주먹을 떼어냈다.

“하루에 한 번이지만 내가 ‘때린 것을 분쇄’할 수 있지. 산산조각 말이야.”

안미희의 얼굴에 하얀 빛의 구체가 서렸다. 마치 동그란 모양의 포탄을 빛으로 뭉쳐놓은 것 같았다.

안미희가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그녀가 폭발했다.

피육이 산산조각나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성아는 후련하다는 표정이 되어서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승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휴대폰이 조금 뭉개졌긴 하지만 전화를 거는 기능은 무사했다. 전화를 걸고 수신음이 들린다.

“흐음. 이렇게까지 부서졌는데 별 다른 일은…….”

상대가 수신음으로 지정해놓은 최신가요를 들으면서 흥얼거리던 이성아가 말을 멈췄다. 그녀가 산산조각 낸 피와 살덩이가 하나를 향해 뭉치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돼. 겨우 폰 하나에……?”

폰 하나에 특기를 몇 개나 박아 넣는 거지? 특기란 무장과 장군이 지니는 특수한 능력.

당연 특기는 무장의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특성을 결정짓는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특기를 얻기는 어렵다. 무장으로 나면서 얻는 특기도 있고 이미 특기를 가진 이에게서 특기를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킬 더 킹이라는 게임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매우 드문 것이다.

몸이 산산조각 났는데도 피와 살덩이가 뭉치는 특기는 겨우 폰 따위에 붙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폰이……아니었나?”

때마침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성아의 주인님에게 건 전화지만 당연히 주인인 흑공자가 받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지?”

“전초전이 벌어졌고……이긴 줄 알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냉막한 여성의 목소리에 이성아가 주눅이 들어 대답했다.

“이긴 줄 알고? 무슨 의미지?”

“주인님께서 제게 주신 특기인 <분쇄>를 통해서 상대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그런데 산산조각난 피와 살덩이가 하나로……합쳐지고 있네요.”

“상대의 종류는?”

“폰……으로 추측했습니다. 약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건……특기가 최소한 세 개였습니다.”

이성아가 혼란스러운 나머지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그 사이에 계산을 끝낸 듯 빠르게 말했다.

“돌아오도록. 덧붙여 바로 오지는 말고 몸을 완전히 씻고 오도록. 피와 살점이 조금도 묻어 나와서는 안 된다. 추적을 피해라. 옷도 새것을 입어라. 속옷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상장(象將).”

번뜩, 눈을 부릅뜨고 이성아가 말했다.

확실히, 상대는 이제 폰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정도다. 산산조각난 피와 살덩이가 합쳐지고 있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알 수 없다. 그녀의 파편과 혈액 따위가 옷에 묻어있을 경우 그 피와 파편의 위치를 추적하여 아군의 장소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아는 과연 코끼리 형상의 말, 상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판단이라고 감탄하면서 돌아섰다.

안미희의 생존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성아는 할 만큼 했다. 다음은 더 나은 솜씨와 특기를 가진 이에게 써야할 것이다.

“ㅤㅌㅞㅅ.”

이성아가 한군데로 뭉치고 있는 안미희의 파편을 향해 침을 뱉었다.

경멸스러운 시선을 감추지 않은 그녀는 곧 골목을 떠나 엄한 사람을 기절시킨 후 그의 옷을 가로챘다. 남자 옷이었지만 이성아에게는 별 문제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편이었으니까. 무장이 된 후 그녀는 체격이 더 커졌고 더 예뻐졌으며 더 강해졌다. 그리고.

“게임의 일면이었네요. 어떠셨나요?”

소녀가 물었다.

“……이게 너희들에겐 한낱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으으응. 너희들이 아니죠.”

소녀, 잭 더 리퍼가 느긋하게 말했다.

“우리들이죠. 시현님도 이제는 이쪽, 왕이 되었으니까요.”

실로 길가다가도 몇 번이나 돌아볼 미청년, 새로이 태어난 이시현이 눈가를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눈썹을 덮을 듯 긴 옅은 잿빛의 머리칼 사이로 우수에 찬 눈을 한 장발의 미남이 한숨 쉬듯 말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이게 ‘가장 약한 말’인 폰과 졸이 벌인 싸움이라는 거잖아.”

“폰인지 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요. 네. 애송이들이죠. 그래서 치열했고요.”

잭 더 리퍼가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잭 더 리퍼가 가져온 테이프를 틀었더니 CCTV의 화질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영상이 벽면을 채웠다. 흑공자의 졸인 이성아와 백공자의 폰인 안미희의 싸움을 찍은 초고화질 비디오는 프로젝터를 통해서 이시현과 잭 더 리퍼의 눈앞에서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며 비추어졌다.

“이런 전투는 흑, 백공자를 제외한 이들에게 전해지죠. 더 높으신 분들이 보고 즐기라고 촬영하는 거거든요. 어떤가요?”

이시현은 망연자실 영상을 바라보다 어깨를 늘어뜨렸다.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졌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위해서 왕권이 있으니까요. 우선 ‘사회적 지위가 높은’, 혹은 ‘굉장히 부유한’, 그것도 아니라면 ‘쌓인 명성이 충분한’ 이를 장군으로 만들어 곁에 두는 게 좋겠죠. 장군이 되기 전의 부와 권력 또한 시현님의 것이 될 테니까요. 물론 그 세 가지 요소는 새로이 태어난 이시현님께 이미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기대치가 같다면 쓰레기 같은 처지의 여자보다는 상황이 좀 더 나은 여자가 낫지 않을까요?”

잭 더 리퍼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온화한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몇 가지 조언을 더 했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퀘스트가 주어질 거예요. 그 중에서 무구(武具)를 주는 거라면 꼭 챙겨두길 바래요. 무구는 무장을 강화할 수 있는 드문 요소거든요.”

“그러나 무구와 권능(權能)이 동시에 주어진다면 권능을 반드시 얻어야 해요. 그건 무장과 장군처럼,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규격의 차이이니까요.”

“셀도 모아두는 게 좋겠죠. 화폐로 쓰이는데다 직접적으로 무장을 강화할 수도 있거든요.”

“권능은 저희들의 왕, 제국 어스 엠파이어의 군주들만 지니는 강력한 힘의 발현입니다. 말 그대로 말하면 이루어지는, 세계개변을 가능케 하는 힘이니까요. 그러나 온전한 권능이 주어지는 일은 없겠죠. 권능을 한 번, 혹은 몇 번 쓸 수 있도록 권능의 파편만이 주어질 거예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승패를 바꿀 수 있답니다.”

연속해서 몇 차례나 말을 이은 잭 더 리퍼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이 좀 길었을까요? 안내자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잭 더 리퍼가 프로젝터에 떠오른 영상을 껐다.

“사라진다고?”

이시현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잭 더 리퍼.

그녀의 주인인 탐닉의 군주가 내린 명령을 따라 이레귤러를 찾아 온 여성.

그녀는 이시현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인이 있는 몸으로 다른 남자, 즉 이시현에게 그 매력적인 몸으로 온갖 기교를 다한 쾌락을 안겨준 은인과도 같은 여성이었다.

그녀가 떠날 것은 당연했지만, 떠나야 하는 시간이 하필 지금이라니…….

잭 더 리퍼는 이시현의 눈에서 아쉬움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랐다. 그녀가 사는 ‘세상’에서 이런 아쉬움을 보이는 남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조금 놀랐을 뿐 미련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진정한 주인은 이시현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버려진 개처럼 본인에 대한 아쉬운 마음 가득한 시선을 보고는 약간의 마음이 동하여 생각지 않았던 조언을 던지고 말았다.

“절 가지고 싶으신 건가요?”

“그래.”

“그렇다면 승리하세요. 흑공자와 백공자. 어느 누구 하나 만만치 않지만 시현님도 강해졌답니다. 파격적인 아이템인 왕권도 존재하죠. 앞서 보았던 이들은 무장. 1억 명 중 장군이라는 이름의 한 명을 제외한 전부. 희소성 따윈 제로죠. 왕권은 일 억 명 중 한 명을 만들 수 있는 저희들에게도 대단히 귀한 보물. 거기다 초보자인 시현님을 위해 여러 가지 퀘스트가 존재하고, 그 퀘스트를 달성하면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할 수도 있어요. 혹여 왕권을 더 얻거나, 혹은 현존하는 장군 중에서 한 명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잭 더 리퍼는 생긋 하고 웃었다.

“그때 저를 택할 수도 있겠네요. 처녀도 아니고 섬기는 주인님도 있지만 그래도 필요하다 하신다면 살인장군(殺人將軍)으로서 도울 수도 있겠죠.”

이시현은 이 상황을 말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응, 하고 이시현은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를 잡아채고 가느다란 목에 짙은 입술자국을 남겼다. 키스마크를 남긴 후 선언했다.

“그 키스마크가 사라지기 전까지 꼭 너를 부를게. 약속해.”

“후훗, 약속이라는 건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인생이란 정말 마음대로 흐르는 거니까요. 하지만 기대하고 있을게요. 부디 전승하시길.”

잭 더 리퍼가 슉 하고 사라졌다.

이시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단호한 얼굴에 미련은 없었다.

이시현의 눈앞에 그만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 떴다.

<킬 더 킹을 처음 하시는 분들께>

첫 퀘스트입니다.

[어스 엠파이어]의 주민으로 다시 태어난 절대적인 행운을 부여받으신 회색 플레이어 ‘이시현’님.

어스 엠파이어의 매력을 충분히 맛보아 주십시오. 어떤 여자라도 좋습니다. 그녀에게 초대받고, 안고, 쾌락에 잠기게 하세요. 이 세계에서 당신은 독보적입니다. 즐거움을 누리세요.

퀘스트 완료 보상: 자산 100억의 유령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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