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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6화 (6/141)

< -- 6 회: 1> 전초전. -- >

“쿨럭, 제법인데요.”

심장이 꿰뚫리고 구멍이 난 가슴을 쓰다듬던 그녀가 연신 피거품을 게워내며 피를 쿨럭였다. 반격 따위 했을 리가 없는 모습이다. 심장을 이렇게 쉽게 내준 것은 그 정도 내줘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까? 이성아는 조금 관찰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안미희는 양손으로 가슴의 구멍 난 곳을 가렸다. 주변의 피가 몽실몽실 떠오르더니 뻥 뚫린 가슴을 향한다. 그 핏물이 붉은색의 막을 치는가 싶더니, 살을 만들어냈다. 약 15초. 그 정도만에 안미희는 사라진 몸을 구축해냈다. 그녀의 옷은 주먹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구멍이 난 채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핏물……?”

안미희의 주변에 잔뜩 쏟아져 있던 핏물이 꽤 많이 사라졌다.

우선 입에서 쏟아내고 있던 핏물의 흔적도 없고, 손이며 옷자락에 묻어있던 핏물이 싹 빠졌다. 그리고 일부, 바닥을 적시고 있던 핏물조차도. 이성아는 금방 상대의 능력을 파악했다.

안미희는 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핏물이 있으면 몸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 사라진 육체조차 수복할 수 있다.

폰의 능력치고는 제법 괜찮다. 그러니 굳이 여덟 명이나 되는 남자를 쳐 죽이고 기다렸던 것이리라. 머리카락이 잘려 허공에서 너풀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이성아가 안미희의 가슴을 꿰뚫은 주먹을 뺄 때 딸려 나온 핏물. 그 핏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여 이성아의 머리칼을 끊었을 것이리라.

이성아는 상대의 능력을 깨닫고 실소했다.

“대단할 건 없군. 역시 폰이네”

그 정도라면 이성아가 상대하는데 문제는 없다.

결국 주변에 피가 있으면 회복능력이 생긴다, 덧붙여 머리칼 정도는 끊을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하니까.

이성아가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애초에 이성아는 아마추어 복서였던 사람이었다. 거기에 균등하게 신체능력이 수십 배 향상되었다. 그런 그녀는 사람을 살해하는데 최적화된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하려 마음먹는다면 군대가 나서기 전까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수 있다. 최소 수백, 수천의 사람이 그냥 죽어나갈 것이다. 그녀의 주먹은 잽으로도 사람의 머리를 부순다.

이성아가 재차 거리를 좁힌다. 그녀는 주먹을 휘두르는 안미희의 공격범위를 고갯짓 한번으로 피하고는 안미희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이성아는 그 눈매만큼이나 싸늘하게 비웃었다.

“어설프긴. 이래서 초보는 안 된다니까.”

안미희의 D컵 양가슴 사이, 골짜기 가운데를 향해 손을 밀어 넣으며 어퍼컷. 쳐올린 주먹에 명중당한 안미희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뼈만 부러진 것이 다행이다. 폰이라고는 해도 제법 육체가 튼튼한 모양이다.

킥킥, 속으로 웃으며 이성아가 몸을 살짝 뒤로 옮겼다. 복싱은 일단 거리가 영이어서는 제대로 된 주먹이 날아가지 않으니까 약간의 거리를 벌린 후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다. 턱이 완전히 뭉개져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고개를 젖히는 안미희를 바라보며 이성아는 이겼다고 생각했다. 마무리로 그녀의 척추를 끊어놓으면 승부는 완료.

이성아가 마무리를 지으려던 때였다.

오한. 공포.

그리고 고통.

오한은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오감을 넘어선 육감이 불안을 느낀 것일 테니까.

공포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특기가 몇 개나 되는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으니까 무언가, 기습이 온다면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도대체…….

이성아는 머리통이 휘둘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아, 그건가.

그녀가 스웨이로 공격을 피했을 때였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끊겨 허공을 날아다니던 모습을 떠올린다. 피를 뭉쳐서 재생을 할 수 있다는 정보는 눈으로 확인. 그리고 머리칼이 잘려나간 것으로 보아 피로 약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렇다면 공격을 하며 신체에 묻은 상대의 피는 과연 공격이 가능할까?

깨닫기 무섭게 이성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핏물이 안미희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춤을 추듯 흔들린다. 핏물과 살덩이가 이성아의 몸을 향해 쏘아지고 이성아는 스웨이로 몸을 젖히면서 등으로 벽을 부수고 공격을 피했다. 안미희의 핏물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이성아를 향해 날았다.

“그륵, 극, 크르르르…….”

고개를 젖히고 피를 뿜어내던 안미희가 기괴한 소리를 냈다.

안미희는 코밑까지 쳐들어온 고통에 신음하며 양손을 휘둘렀다. 이성아를 공격한 핏물을 제외하고도 핏물은 계속 솟아나고 있었다. 턱이 날아간 얼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한데 뭉치더니 그녀의 엉망이 된 얼굴을 덮는다. 잠시 후 안미희는 뽀송뽀송해진 얼굴로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웃음 그대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흐, 이건 <응혈>이라고 하는 특기랍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피든 타인의 피든, 피만 있으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요. 저는 생각했어요. 상대와 싸워야 하는데 싸울 재주가 부족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싸움질을 배워야 하나? 무기를 휘둘러야 하나? 나의 주인님은 이런 제게 훌륭한 수단을 가르쳐주셨답니다. <응혈>과 <용혈>이라는 거지요.”

한미희가 안경을 쓸어 올리다 인상을 썼다. 어퍼컷을 맞은 그녀의 얼굴에 달려있던 물건이니 안경은 정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알이 다 깨지고 안경테도 엉망이 되었다. 이래서 안 보였던 거구나, 탄식하면서 안미희가 말을 이었다.

“<응혈>은 상대의 피와 나의 피를 약으로 쓰는 것. 몸을 치유하지요. 공기에 닿은 핏물을 몸에 덮거나 상처부위에 칠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거든요. <용혈>은 혈액형이 다른 이들끼리 섞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죠. 이를테면 공격이랄까. 전 결국 얻어맞든 어디가 부러지든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든 상관없다는 거죠. 충격에 기절만 하지 않으면 되는데……그건 자상한 나의 주인님이 통제할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안미희가 빙그레 웃었다.

“충격을 전달하는 감각을 제거해주셨거든요. 산산조각 몸을 해체해서 줄기를 뽑아내는 감각은 매우 기이했답니다.”

안미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쓰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이유는 어퍼컷의 충격 때문에 뇌와 세반고리반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안미희의 말대로라면 충격 때문에 쓰러진 건 아니다. 그것을 느낄 감각과 신경이 사라졌으니까. 잠시 앉아서 자신이 사용한 능력을 설명한 안미희는 시간이 되어 진정되자 경쾌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안미희는 재차 쓰러졌다.

안미희의 피에 대해서 효과를 정확히 감지한 이성아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본인이 허문 벽에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흙먼지와 피안개로 범벅이 된 이성아는 벽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동시에 핏발이 설만큼 움켜쥔 주먹으로 안미희를 후려쳤다. 안미희처럼 피로 회복할 특기가 없는 그녀는 살이 찢어지고 머리카락이 난도질이 된 상황에서 이를 드러내면서 살벌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어. <용혈>이라는 말대로 그냥 피와 닿은 육체를 녹이는 정도더군. 뭐 덩이째로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테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 해. 흙먼지와 접촉해서 피를 많이 잃은 것도 있고. 닿는 것 모두를 녹이는 거니까 내 선택은 탁월했어. 몸을 덮은 흙먼지 때문에 내게 붙은 핏물의 양이 적었거든.”

이성아의 말대로였다. 이성아는 안미희의 피에 살점이 녹고 머리칼이 끊어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부상의 정도는 적었다. 핏물이 이성아를 덮기 전 이성아가 뒤로 물러나며 부순 벽의 흙먼지가 먼저 방패처럼 핏물을 막았던 탓이다.

흙먼지를 녹이고 그 안의 이성아에게 닿은 피의 양은 적었고, 그로 인해 이성아는 별 다른 고통 없이 상대의 약점을 알 수 있었다.

“주인에 의해 몸이 해체되어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절개되었다고 했지? 고통? 아니 충격이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 그렇게 몸이 해체된 건 너 뿐이라고 생각하나? 아냐.”

그녀가 무장이 되면서 겪었던 경험은 이 이상한 적의 특기에도 당황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나의 주인님은 말이지, 조금 취향이 독특하셔서 여자를 품을 때도 일반적으로 안거나 하지 않아. 언제나 피를 보고 대단히 살벌한 성교를 즐기시지. 넌 해체 된 게 몇 번이지? 난 열 번쯤 되는데.”

살벌한 주인의 성향을 말하며 이성아는 주먹 쥔 손을 폈다. 안미희의 목을 움켜쥔 그녀는 그대로 조였다.

“네년에게 상처를 입히면 핏물이 흘러나오겠지. 그리고 그 핏물을 어떻게 움직여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겠지. 그렇다면 간단하지. 피가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너를 완전히 부수면 되는 거거든.”

“꺽, 컥, 꺼헉!”

압착기로 목을 조이는 느낌이 이런 걸까. 목이 졸리는 안미희의 눈동자가 눈꺼풀 쪽으로 향한다. 눈이 뒤집히고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다. 안미희의 길고 고운 목이 한주먹만큼 좁혀드는데 상대의 목숨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태도다.

이성아는 점점 힘이 빠져 늘어지는 안미희를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예상외로 ‘특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워낙 같잖은 특기였기 때문에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체스와 장기가 붙으면 당연히 장기가 이기지. 왜냐고? 나의 주인님이 그러길 원했으니까. 그러니까 뒈져.”

이성아가 마무리 하듯이 목을 움켜쥔 손을 꺾었다. 안미희의 목이 꺾였다. 동시에 이성아의 목도 꺾였다.

“어?”

이성아가 바라보는 풍경이 90도로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각, 하고 목이 부러진 것 같다. 뭐야. 어? 목 아래의 감각이 사라지는 듯 하다. 당연히 목에 격심한 부상을 입으면 당연히 목 아래의 신경이 손상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당연한 결과다.

“그거 아나요……? 헌혈을 열심히 한 사람은 말이죠. 대가를 받아요. 언젠가 자신이 수혈이 필요할 때 헌혈증을 가져가면 남의 피로 교환해주거든요.”

이성아의 귀는 목 아래에 있지 않으므로 너무나도 자세하게 들렸다.

“<헌혈과 수혈>이라고 하죠. 열 명이나 헌혈해(죽여)야 겨우 한 번 수혈을 받을(되돌릴) 수 있지만 쓸만한 특기죠.”

이성아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그러니까 이건……. 안미희가 본인이 당했을 충격을 반사, 아니 되돌려서 이성아에게 옮긴 것이다. 헌혈과 수혈이라는 표현대로. 열 명의 사람을 죽이면 한 번 자신의 상처, 혹은 상태를 되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안미희, 이 미친 여자는 얼마나 기괴하게 싸우는 여자인가.

아니, 이걸 싸운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아.’

이성아는 안미희의 특기를 떠올리고는 현재의 상황에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다.

<응혈>로 재생을 하고 <용혈>로 상대에게 반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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