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어차피 이게 끝이잖아 (4)
이젠 급기야 도로시가 직접 한쪽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자신의 몸을 찌르기 편하도록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 주겠다는 살신성인의 자세다.
“잠깐……. 지금 그 몸, 벨로스가 도로시 너의 탈을 쓴 게 아니라…….”
[네, 지금 순간은 온전한 제 몸입니다. 벨로스의 힘이 약해진 덕분에 제가 완전히 벨로스의 몸을 장악한 거니까요.]
“그럼, 내가 지금 찌르게 되면…….”
[전쟁은 끝나죠.]
내가 지금 그걸 물어본 게 아니란 걸, 도로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벨로스는 몸체가 없는 크루즈입니다. 검의 형태로 존재할 뿐. 생명체가 그 검을 쥐게 되면 검을 쥔 생명체 자체가 벨로스가 되는 형태죠. 제가 벨로스의 몸에 있으면서 알아낸 정보입니다.]
정말 벨로스는 기생충이 따로 없는 형태였다.
“그럼…… 도로시 네가 벨로스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단 건…….”
[제 특기인 변환으로 벨로스의 그 특징을 저도 똑같이 따라 한 거죠. 그러니까 드래곤의 가호를 전부 받은 수행자, 어서요!]
도로시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정말 남은 시간 얼마 없으니, 어서 자신의 몸을 찔러 이 전쟁을 완벽하게 끝내자는 확고한 의견이었다.
나 역시 이성은 도로시의 의견에 동감하는 중이지만…….
감성이 문제였다.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은 여전히 이성이 나간 흑염룡을 쳐다봤다.
[엄마는 살아 있어……. 아직 살아 있었어…….]
아직도 그 소리를 중얼거리는 중이다.
지금 제 앞에 가짜 도로시가 아닌.
진짜 도로시가 나타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수행자,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냐고 물었죠?]
“무슨…….”
[린느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분명 제 기억 속 린느의 마지막 표정은 암울하고 절망적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생기가 있군요. 이 역시 전부 수행자 당신 덕분이겠죠?]
도로시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전 대정령으로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이 전쟁을 완벽하게 끝내겠다.
그러니 드래곤의 가호를 전부 받은 나에게 그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나 역시 시간은 더 끌 수 없는 노릇.
발톱의 가호를 꽉 붙잡았다.
[고마워요. 결단을 빠르게 내려 줘서.]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도로시.”
[최대한 간결하게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인데…… 작별 인사 안 해도 돼?”
내심 난 그게 걱정스러웠다.
정말 도로시는 이제 영영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최소한 자신의 혈육과 작별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도로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사이인데 괜히 얼굴을 보여 주면, 그게 더 린느의 앞을 슬프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행자 당신에게 부탁한 거예요. 저의 빈자리를. 여태껏 해 왔던 것처럼. 잘 채워 주세요.]
“나 참…… 이게 부모의 마음이란 건가.”
그래, 도로시 너의 뜻이 그렇다면.
나 역시 더는 고집부리지 않으마.
난 이제 발톱의 가호를 하늘로 향해 번쩍 들었다.
“나중에 내 꿈에 찾아와서 날 괴롭히면서 말 바꾸면 곤란해?”
[재밌는 분이군요, 린느의 얼굴에 왜 생기가 있는지. 저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아요.]
하늘로 뻗은 발톱의 가호.
이것이 이제 땅으로 향해 낙하하면 자신이 죽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도로시는 마지막까지 웃어 보였다.
“고맙다, 도로시. 이 난해한 전쟁을 쉽게 만들어 줘서.”
[제가 할 소리죠.]
[이것들이 감히……!]
그리고 벨로스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었다.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면서, 검을 어떻게든 휘둘러 나를 베려는 움직임이었지만.
[벨로스, 어차피 끝났어. 네 몸 구석구석 전부를 내가 철저하게 망가트렸으니까!]
벨로스가 몸을 심하게 떠는 이유도.
지금 이 순간에도 도로시가 철저하게 벨로스를 견제하고 있어서였다.
“벨로스.”
이제 벨로스에게 완벽한 사형 선고를 내릴 때다.
“너랑 나랑 2회차가 있다면. 그건 저승에서 하자고. 먼저 가서 기다려.”
[미개한 인간과 시오스들이 감히 나를……!!]
“그래, 그 미개한 존재들에게 필멸을 당해 보라고.”
후웅-!
그리고 난 발톱의 가호에 온 심을 실어 내리쳤다.
[고마……워요.]
마지막, 귓가에 울린 도로시의 감사 인사였다.
[끄아아아아악!!]
발톱의 가호로 몸이 절단되자, 도로시의 몸 이곳저곳에 깨진 거울처럼 빗금이 쳐졌고.
그 빗금에서 프리즘과 똑같은 색이 뿜어져 나오며 전신을 파쇄했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아아아앙-!
거대한 프리즘의 폭발이 일어나며, 나도 덩달아 정신을 잃게 되었다.
***
툭, 툭.
툭툭툭.
볼을 간지럽히는 촉감.
“형! 도원이 형! 방금 분명히 손가락 꿈틀거렸는데?!”
그리고 히로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도원! 정신이 든 거야?!”
이번엔 로버트 윤의 목소리.
“혀엉…….”
소심한 정다훈의 목소리도 들렸고.
“이 오빠 왜 여태 자고 있는 거야, 도대체…….”
이건 나와 늘 티격태격한 신보미의 목소리.
“도원아? 이제 일어날 때 됐잖아? 지친다.”
이지은의 목소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야! 언제까지 나자빠져 잘 거야! 얼른 안 일어나?! 손가락 움직였다며!]
흑염룡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퍼억!
“끄억……!”
명치를 누가 작정하고 때렸는지,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깨자.
“오! 일어났다!”
나를 반기는 목소리들이 덮쳤다.
그런데…….
“어라?”
순간적으로 내 코가 잘못됐나 싶었다.
알콜 짙은 이 냄새.
그리고 온통 새하얀 조명과 커튼만 보이는 이곳.
병원이었다.
“……뭐야? 왜 병원에……?”
“이제야 일어났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이제야 일어나다니…….”
로버트 윤이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나 왜 병원에 있는 거예요……?”
“그야 당연히. 의식 불명 상태였으니까 병원에 있었겠지?”
“엥……? 의식 불명? 그게 무슨 소리……. 나 방금 벨로스랑 결판냈는데.”
“하하하하! 방금?”
그런데 로버트 윤이 호탕하게 웃었다.
설마 내가 꿈을 꿨다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이들의 반응을 보면 절대 내가 꿈을 꾼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다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걸까?
“왜 그렇게 웃어요……? 드디어 시오스랑 크루즈의 전쟁이 끝났는데.”
“그래, 네가 멋지게 끝냈지. 드래곤한테 다 들었어. 어떻게 전쟁이 끝나게 됐는지.”
“그런데 왜?”
“문제는 말야, 방금이 아니란 거지. 왜 혼자 시간이 6개월 전에 멈춰 있어?”
“……뭐요?!”
6개월……?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6개월이나 의식을 잃었던 상태라고요?!”
“응.”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프리즘의 폭발에 휘말려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겼지. 어쨌든.”
이제 로버트 윤은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깨어났어. 이제 평화롭고 이질적으로 달라진 세상에 적응해야겠네?”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대는 로버트 윤이었다.
“아, 참고로 나 귀화했다. 앞으로 내 이름 윤선우야.”
“아니, 형이 귀화를 했건 뭘 했건, 내가 별로 신경 쓸 건 아닌데. 달라진 세상에 적응해야 된다는 거. 무슨 뜻이에요?”
로버트 윤의 귀화 소식보다 난 그게 더 궁금하다.
“이건 직접 보여 주는 게 편하겠지.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로버트 윤은 조용히 병실에 있는 TV를 틀었다.
그리고 TV 속에는 흑염룡의 모습이 나왔다.
§ 에필로그 : 공존의 시대
TV의 뉴스 속보 속에서 흑염룡이 등장했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늘 오전. 드디어 인간과 정령의 공존 협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인간 측 대표 윤도원 씨는 현재 의식불명인 탓에 한국 협회 장길수 협회장이 대리인으로 협상에 참석, 정령 측 대표는 린느란 이름을 가진 정령이 참석하여 성공적으로 협상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속보에선 장길수와 흑염룡이 서로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란히 악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어?
“흑염룡이 어떻게 TV에 나와?!”
“그냥 보기나 해.”
「협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캐나다를 지구상에서 지우고, 미국의 국토 3분의 2를 소실시킨 인류의 재앙적인 존재. 크루즈와 같은 존재가 다신 나올 수 없도록 지구에 온전한 키스톤을 재건하고, 인간과 정령이 지구 아래에서 함께 지낸다는 내용입니다.」
“……뭐?!”
“쉿. 놀라긴 일러.”
「키스톤의 위치는 이번 전쟁 극복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간 측 대표, 윤도원 씨가 속한 한국으로 중앙 의회에서 합의. 정령 측도 그 조건을 받아들여 헌터 협회 지부에 키스톤을 세웠습니다.」
실제로 영상에는 한국 협회 건물이 나오고.
그 중앙에는 재건된 키스톤이 우람한 모습을 뽐내며 등장했다.
「본래 정령은 주인의 눈에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지구에 키스톤이 존재한 덕에. 일반인들 눈으로도 정령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흑염룡이 TV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지구에 키스톤을 재건하면서, 이제 지구에 있는 모두가.
정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정령은 인간에게 적정 수량의 초월석을 제공하기로 했고, 그 초월석을 이용해 우리 인류는 자원 뻥튀기 기술을 재건할 수 있게 되어, 이른 바, ‘윈-윈’ 협상이 되었습니다. 대신 정령 측 대표 린느 정령이 당부의 말씀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인터뷰, 같이 보시겠습니다.」
아나운서의 설명이 끝난 뒤.
이제 흑염룡 혼자만 화면을 독차지했다.
「아, 음! 음! 지금 말하면 돼요?」
방송이 익숙하지 않은 흑염룡. 상당히 어색한 티가 역력했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지만, 흑염룡은 차분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단…… 인간들에게 죄송하단 말씀 먼저 남기겠습니다. 크루즈와의 관계는 저희 시오스의 사정이었는데, 인간계까지 끌어들이게 된 일이니까요. 그 일을 사죄하는 의미로 앞으로 초월석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기고 싶은 당부의 말씀은…….」
흑염룡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인터뷰를 다시 이었다.
「앞으로 정령도 지구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정령과 마주치면 그냥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 그거면 돼요. 저희 정령도 인간과 협력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어요.」
그 인터뷰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기특하네, 흑염룡.”
그리고 그 말을 한 순간.
TV 속 흑염룡이 말했다.
「아! 참! 이거 엄청 중요한 거! 제 주인은 저를 흑염룡이라고 부르거든요? 근데 절대 저 흑염룡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제 이름은 린느예요! 엄연히 저도 이름이 있다고요!」
그렇게 흑염룡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그런데 나 의아한 게 있는데?”
하지만 결정적으로 난 이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가.”
흑염룡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인간과 정령의 공존 합의. 사람들이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고……?”
이게 가장 수상했다.
뉴스에도 나올 정도면…… 상당수의 인간이 정령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너 휴대폰 꺼내서 캐나다 검색해 봐.”
흑염룡은 간단한 답만 내놨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휴대폰을 통해 캐나다 세 글자를 검색하자.
“……와.”
어떻게 인간들이 정령을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된 것인지 단번에 알았다.
[정령들의 힘을 이용해 캐나다를 복원하다]
[소실된 미국 영토 3분의 2도 복원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다시 살아나…]
내가 의식을 잃었던 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캐나다와 미국 영토 전부 복원.
게다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
“아, 그건 조금 복잡한 얘기인데. 드래곤님이 전쟁도 끝났고 자신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면서…….”
흑염룡은 그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시오스의 수호신 드래곤.
크루즈와의 전쟁이 끝이 났으니, 이제 자신이 존재할 이유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계를 끌어들이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니,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크루즈에게 죽은 억울한 사람을 다시 살리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드래곤의 희생과 시오스의 협력으로 크루즈에게 죽은 사람을 되살렸고, 더불어 지구상에서 잠깐 사라졌던 캐나다와 미국 본토를 복원하면서.
이제 인간들도 시오스를 욕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그들과 공존하는 방향을 택하게 된 것이다.
바로 키스톤을 지구에 재건할 수 있게만 해 준다면.
초월석은 얼마든지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서로 잃을 것 없는 완벽한 협상이었다.
“그럼 드래곤은…….”
“이제 없어. 드래곤님이 사라지기 전에 말씀하셨어.”
“뭐라고?”
“인간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또 인간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고.”
“그래? 잘 지킬 수 있지?”
“물론이지!”
흑염룡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아, 참, 흑염룡, 혹시…….”
“응, 왜?”
난 순간 “너희 어머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뱉을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분명히 이건 나와 도로시와의 약속이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그렇게 얼버무렸다.
***
“우리 회사 VVIP 고객님, 이렇게 보게 되네요.”
난 지금 신동원을 만나고 있다.
내가 깨어났단 소식을 뒤늦게 접한 신동원이 식사나 함께 하자며 날 불렀고, 덕분에 나는 태강그룹에 왔다.
그런데 내가 알던 태강그룹과는 너무 달랐다.
기존의 태강그룹은 빌딩 하나였지만.
지금은 과장 보태서 한 동(洞)을 전부 차지할 정도로 태강그룹이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공장 부지도 아닌 그룹 본사가 이 정도로 거대해진 것이 이상했다.
바로 태강그룹은 소위 말하는 글로벌 기업.
1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웬만한 나라의 1년 치 예산과 맞먹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글로벌 대기업이 된 것이었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크게 된 게 다 고객님 덕분인데. 제가 식사는 대접해야죠.”
그것이 나를 부른 이유였다.
“……고작 6개월 사이에요?”
도대체 뭐가 있었길래 6개월 사이, 한국을 대표하던 대기업이.
이젠 지구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된 걸까.
“51구역에서 회수한 키트요. 그거 분해해서 분석하고, 어떤 키트인지 알아낸 덕이죠.”
“아! 그거! 그거 정확히 뭐였어요?”
나도 상당히 궁금했다.
“사람 몸에 마이크로 칩을 심는 거였더라고요.”
“칩을 왜……?”
“저희가 분석한 바로는, 그 칩이 심어지면 그 사람의 혈액형은 물론. 생활 패턴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는 칩이더라고요.”
“51구역 연구진은 왜 그걸 저한테 심으려고 했을까요?”
“그건 정확히 모르죠. 저희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51구역에서 이 기술력은 전부 넘길 테니. 자신들의 의도는 세상에 꺼내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구린 게 있었으면 이런 거래까지 했을까.
아무튼, 신동원은 그 거래를 수락했고. 대신 회수한 키트에 들어간 기술력을 태강그룹에서 이용했단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용했길래 글로벌 대기업이 되었어요?”
“칩을 의료용으로 허가받아 사용하게 됐어요. 주로 노인이나 성인병 위험이 있는 중년층들 대상으로요.”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칩에 대해서 정확히 고지하고, 그럼에도 몸에 심고 싶은 사람은 몸에 심었죠. 휴대폰과 연동 기능을 넣은 채로.”
“왜요?”
칩을 몸에 심는 것과 휴대폰 연동?
이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궁금해서 물었다.
“말했잖아요, 칩을 의료용으로 만들었다고요. 몸에 칩을 심은 사람은 휴대폰 어플을 통해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당뇨, 암, 심장병 등등. 굳이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받지 않아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실시간으로 즉시 휴대폰 어플을 통해 알려 주는 거죠.”
“오……?”
확실히 노인을 주 타깃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납득되었다.
“그리고 만약 몸에 이상이 있으면 가까운 병원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식단 조절 가이드까지 어플이 다 알려 줍니다.”
“그거 하나 덕분에 6개월도 안 돼서 글로벌 대기업이 됐다고요?”
“저희 태강그룹의 특허라서. 전 세계인의 몸에 칩을 심는 중이거든요. 그 덕분이죠. 아니, 우리 고객님 덕분이지.”
“하하…… 세상 진짜 좋아졌네요…….”
정말 6개월 사이 많은 게 변했다.
“고객님도 심어 드릴까요? VVIP니까 특별히 무료로 해 줄 수 있는데.”
“됐습니다. 너무 건강해서 탈이라.”
정말 진심으로 사양했다.
“아, 그리고 저 이제 본부장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의 실적이 너무 커서 부회장됐어요.”
“이야……! 그럼 태강그룹 부회장님?!”
“네. 제 아버지 은퇴하시면 제가 회장 하겠죠.”
“축하드립니다.”
“축하는요 무슨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덕분에 정말 즐거웠고 앞으로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제 인생 전부가요.”
그렇게 난 신동원과 화기애애한 식사를 즐겼다.
***
식사를 마치고 온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음?”
이상했다.
내가 사는 집은 임시로 사는 집.
예전에 이지은이 빌려준 그 건물이다.
그런데 그토록 한산했던 동네인데.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꽉 찬 것이었다.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면.
이 한산한 동네를 가득 채운 인파는 소위 ‘덕후룩’이라고 불리는 체크 남방에 청바지, 멜빵.
가방까지 메며 체격이 뚱뚱과 통통 사이에 있는 안경 낀 더벅머리들이란 점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피켓을 들고 있었다.
[흑염룡 누나! 날 가져요!]
“설마…….”
그래, 흑염룡이 한 미모 하지.
근데 그 미모가 무려 전 지구인에게 알려지면서.
저런 사생팬까지 생겨난 것이었다.
하긴, 신동원과의 식사에서 들었다.
히로시의 정령이었던 오리가미.
일본에서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 뺨은 몇 대 때릴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다고 하던데…….
정말 오리가미는 일본에서 연예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 한해서는 태강그룹의 휴대폰을 비롯한 신제품 광고를 오리가미가 전속 모델로서 홍보하는 중이라고…….
오리가미의 주인인 히로시는 졸지에 오리가미의 매니저가 되었다고 했지……?
“에휴, 나도 그럼…….”
내 안에 살던 흑염룡.
이제 그 흑염룡은 지구인 전체의 안에 살게 되었다.
“나 참……. 그래도 뭐, 괜찮은 거겠지, 도로시?”
어차피 도로시도 계속 흑염룡 곁에서 잘 부탁한다고 했으니까.
흑염룡의 매니저도 나쁘지 않지.
헌터 인생은 끝이 나고, 이제 흑염룡의 매니저 인생의 시작이란 것을 직감했다.
‘이것도 재밌는 인생이 되겠는데?’
아직 난 변화된 세상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적응 못 할 것도 없다.
여태 늘 그랬던 것처럼 난 적응할 것이고.
세상에 크루즈와 같은 위협이 재발하면, 그때 또 헌터의 인생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흑염룡은 어차피 내 안에 사니까.
인간과 정령의 공존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