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어차피 이게 끝이잖아 (3)
[키킥, 뭐야? 전투 능력은 하찮은 인간이라고 여겼는데. 생각 외로 꽤 하잖아?!]
벨로스가 도로시의 목소리로 나를 농락했다.
실제로 벨로스의 공격은 차마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마치 벨로스가 히로시의 신속 능력을 사용한 것처럼.
핏-!
티딕-!
뻐억-!
아니,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대응도 할 수가 없다.
난 서 있는 채로 벨로스에게 이미 몇 군데를 공격받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비늘의 가호 덕분에 피부만 조금 얼얼할 뿐, 출혈을 비롯한 부상은 나타나지 않았단 것이다.
[우리 엄마가……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던 거야…… 살릴 수 있어…….]
여전히 정신이 나간 흑염룡은 그 말을 중얼거릴 뿐이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있어 다오.
엄마를 공격하지 말라며 나를 방해하는 것보단 백배 나으니까.
‘내가 너의 이성을 되찾아 주마, 흑염룡.’
어차피 저건 도로시가 아닌 벨로스다.
하지만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이 전쟁을 끝내는 건 오직 내 역량에 전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딕-!
뻐억-!
벨로스의 보이지 않는 맹공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쩌적-!
비늘의 가호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 맞으면 안 된다.’
이대로 맞고만 있으면 내가 완벽하게 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광속으로 움직이는 저 벨로스를 어떻게 대응할까?
‘히로시…….’
히로시가 먼저 떠올랐다.
히로시라고 하면 광속의 대명사.
그리고 내게는 드래곤의 가호만이 있는 게 아닌, 만물이라는 능력까지 존재한다.
난 곧장 만물을 이용해 히로시의 능력을 그대로 따라 했다.
‘보인다…….’
도로시의 탈을 쓴 벨로스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역시, 벨로스는 히로시가 가진 신속의 능력을 이용하던 중이다.
어째서 벨로스가 이제 시오스의 능력까지 사용하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미 시오스의 고향까지 크루즈에 완전 점령되었다.
시오스들도 키스톤까지 점령당하면 정말 모든 게 끝이기에.
키스톤을 조각내어 인간계로 보냈고, 그 조각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를 배치한 것.
그게 우리가 말하는 초월석이다.
초월석은 전부 키스톤의 조각.
시오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크루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안전한 땅을 찾아 인간계로 퍼트렸던 초월석을 전부 합쳐, 키스톤을 재건하는 일.
그러나 시오스조차도 정확한 수량을 모를 정도로, 밤하늘의 별과 비슷한 숫자를 가진 키스톤 조각인 초월석.
이미 크루즈가 시오스의 고향까지 점령했으며 나아가 벨로스의 손에 의해 상당수의 시오스 정령도 희생되었다.
보아하니, 벨로스에게는 흡수 능력이 있는 듯하다.
자신이 죽인 시오스의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흡수하는 것 말이다.
벨로스가 흡수한 능력 중에는 분명 히로시의 신속과 비슷한 능력도 있을 것.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 빠르게 공격하던 것이다.
“이제야 눈높이가 맞군.”
하지만 나 역시 만물을 이용해 히로시의 능력을 그대로 따라 한 덕분일까?
벨로스의 움직임이 전부 다 눈에 훤히 보인다.
벨로스의 시간만 느리게 움직이는 게 아닌.
이제 나의 시간도 느리게 움직이기에 벨로스에게 흐르는 시간과 정확히 속도가 맞았고.
그 덕에 서로 신속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정상적인 속도로 보인 것이다.
‘싸움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 없다. 벨로스를 일격에 잡을 수 있는 무언가…… 없을까? 일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무언가만 있으면 된다.’
난 벨로스와 맞서며 머릿속으로는 그것만을 생각했다.
카앙-!
캉!
벨로스의 검과.
내 발톱의 가호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작을 불꽃이 일렁였고, 벨로스는 그때마다 나를 조롱했다.
[잡념이 가득해 보이는데, 그래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라서.”
[크큭, 꼭 대봐야 아나? 눈으로 봐도 금방 알 수 있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지금이 그때다, 이거냐?”
[얼른 죽어.]
퍼엉-!
벨로스와 검을 맞댄 순간.
벨로스의 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드래곤의 기억 속에서 봤던 그 폭발과 똑같았다.
투두두둑-!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기에 난 대응할 수 없었고, 그대로 타격을 받았다.
비늘의 가호 일부가 뜯어지며, 피부 표면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저걸 가장 조심해야 해…….’
벨로스의 검은 막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검 대 검으로 막으면 폭발로 인해서 막아도 막은 게 아니게 되는 꼴이다.
‘어렵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벨로스와 속도를 맞추는 것은 쉽게 가능했으나, 저 폭발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수행자, 정신의 가호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그때 들린 드래곤의 목소리.
‘정신의 가호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라니……?’
무언가 내게 알려 주고 싶은 모양이지만, 정작 난 드래곤이 하고 싶은 말이 예상도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괜히 내 가호에 순서가 있고, 몸이 준비된 상태일 때만 전수하던 게 아니다. 수행자, 너와 나는 정신이 연결된 상태. 정신이 연결되면, 몸도 함께 연결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행자, 지금 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던가?]
‘그야, 당연히…… 정화석인 상태잖아. 그래서 움직일 수 없고, 네 가호 전부를 받은 내가 너를 지켜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랬지.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었구나.]
‘지금은 도와줄 수 있다니?’
[내 몸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네 몸으로 프리즘을 발산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수행자, 이제 그것을 해 보려고 하는데. 해 봐도 되겠는가?]
‘하지만……!’
[안다. 어차피 벨로스는 프리즘에 내성이 있는데 그게 과연 효과가 있기나 하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정확하다.
시오스와 크루즈의 최초 전쟁에서.
벨로스가 정화석의 프리즘을 뚫는 바람에, 정화석도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했었다.
[프리즘이 벨로스 자체를 막을 순 없어도…… 최소한 검이 가진 폭발의 위력은 최소화시킬 수 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 그 정도만 도와줘도 할 수 있는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생각해 보면, 프리즘이 있다면 크루즈의 메테오도 무력화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크루즈의 메테오보다 훨씬 강력한 벨로스 검의 폭발은 완전히 무력화할 순 없어도, 최소한 그 위력을 최대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젠 네가 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정화석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벨로스와 결전을 벌이게 되었기에,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전에 내가 겪었던 전황과는 명백히 다르지.]
드래곤이 겪은 전쟁에서는 벨로스가 크루즈 무리를 이끌고, 정화석이 있는 장소로 직접 쳐들어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화석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나와 벨로스만 대면한 상태.
따라서 정화석의 프리즘도 온전하고.
그런 정화석을 공격하는 크루즈 무리도 없기에 드래곤은 이제 나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면……!’
다급하게 소리쳤을 때.
[안다. 말 길게 하지 말고 얼른 하기나 하라는 뜻이겠지.]
‘냉큼!’
드래곤은 곧장 실행에 옮겼다.
[프리즘을 수행자, 너에게 보내마. 잘 이용하여 극복하거라.]
그 말과 함께.
번쩍-!
내 몸에서 형형색색의 프리즘이 일렁였다.
그저 섬광이 터지듯 발산되는 프리즘이 아니다.
마치 빛줄기 모양의 오러처럼 여러 갈래의 직선 형태로 번쩍이는 프리즘.
[끄윽…….]
갑작스럽게 터진 프리즘에 벨로스는 미처 대응도 하지 못했다.
꼭 내가 벨로스 검에서 터진 폭발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것처럼.
벨로스도 프리즘 일부분을 맞고 말았을 때.
[크흑……! 뭐야, 이거……! 어째서…….]
자신이 겪었던 프리즘과는 다르단 말이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벨로스는 프리즘에 내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지금 프리즘 일격을 맞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뭔가 치명적인 상태로 돌아간 듯했다.
‘드래곤, 벨로스의 상태가 이상한데……? 프리즘에 내성이 있는 것 맞아?’
[……나도 모른다. 분명히 내가 아는 벨로스는 프리즘에 저런 모습을 보이질 않았는데……?]
드래곤 역시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바로 도로시의 가면을 쓴 벨로스의 한쪽 얼굴이.
퍼즐 조각처럼 후두둑 떨어지더니 크루즈와 똑같은, 검고 기괴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반은 도로시의 얼굴.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크루즈의 얼굴.
지금 벨로스의 상태가 그렇다.
심지어, 벨로스가 본색을 드러냈을 때. 검은색이었던 도로시의 눈동자와 머리카락도 빨갛게 변했다.
그런데 지금 도로시의 얼굴 부분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본래의 색인 검은색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반쪽의 도로시 눈동자는 정확히 나를 응시하였고.
반쪽의 벨로스 눈동자는 그런 도로시를 노려보기라도 하듯, 눈동자가 옆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도로시 얼굴 부분의 입이 움직였다.
[린느의 주인. 하나 부탁해도 되겠어요?]
“……도로시?”
난 도로시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지만.
지금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벨로스가 도로시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정말 도로시 본연의 목소리란 것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의 목소리와 똑같이 느껴졌다.
[내 이름도 기억하고, 영광이군요. 드래곤의 가호를 온전히 받은 인간에게 이런 대우를 받다니.]
도로시는 내가 드래곤의 가호 전부를 받았다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신 덕분에 벨로스 안에서 잠들었던 내가 깨어나게 되었군요. 고맙습니다.]
“그 말은…….”
[끄으윽……! 닥쳐라! 닥치란 말이다!]
벨로스가 나와 도로시의 대화를 훼방 놓듯이 발악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벨로스가 저런 조급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지금 벨로스가 의도한 바가 뒤틀렸으며, 이 상황 자체가 벨로스에게 치명적인 상황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이제 도로시가 말했다.
[제 능력은 변환. 벨로스의 몸에 들어온 뒤, 제 의식을 일부러 잠들게 한 뒤. 벨로스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습니다.]
“기생이라고 하면……?”
[벨로스의 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벨로스가 가진 힘을 아주 천천히 빼냈고, 그것들을 인간계로 흘려보냈죠.]
그 순간, 생각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설마, 그럼…… 크루즈와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제가 흘려보낸 크루즈의 힘 중 하나가 다행히 정의로운 인간에게 도달한 모양이군요. 흐뭇합니다.]
역시, 연관이 전부 있었던 현상이다.
도로시는 직접 벨로스의 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벨로스가 가진 힘을 아주 천천히.
벨로스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빼냈고, 그렇게 겨우 빼낸 벨로스의 힘을 인간계로 흘려보냈다.
정말 다행히도.
그 능력은 오문성에게 향했고, 오문성은 그 능력을 이용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식을 잠재웠다는 뜻은……?”
[제 의식이 깨어 있으면 벨로스가 눈치챌 거니까요.]
철저하게 벨로스 몸속에 기생하며 벨로스를 좀먹기 위해 그 오랜 기간.
번데기 속에서 날개를 활짝 펴길 기다리는 나비처럼.
조급해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단 뜻이다.
[제 의식이 이번에 깨워진 것도. 프리즘이 벨로스의 몸에 흘러 들어왔기에. 그 빛을 받아 깨어난 겁니다. 전 이렇게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번쩍-!
이번에는 벨로스의 몸 안에서 프리즘의 빛이 일렁였다.
[자, 지금밖에 없어요. 벨로스가 약해지고, 몸까지 묶은 지금.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예요!]
도로시가 내게 소리치며 눈빛을 보냈다.
난 그 눈빛을 너무도 쉽게 해석할 수 있었다.
어서 검으로 변환한 그 발톱의 가호로.
자신의 몸을 찌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