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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98화 (198/200)

§ 198화. 어차피 이게 끝이잖아. (2)

퍼서석-!

히로시가 황급히 몸을 돌리면서 자신을 향하는 크루즈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회피했고.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크루즈의 무릎 부분을 단검으로 콕 찍었을 때다.

쿠구구궁-!

균열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주로 로버트 윤이 능력을 최대치로 발산할 때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왜 내 무기에서……?”

로버트 윤이 자신의 무기에 무언가를 적용시킨 것은 확실하다.

다만, 육안으로 그 차이점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며.

그저 자신의 무기에 자력일지 중력일지 모르는 힘이 있다는 것만 느낌으로 알아차렸을 때다.

자신을 급습하던 크루즈가 잔해로 변한 그 위치를 확인한 순간.

“이건…….”

어느 거대한 발톱을 가진 짐승이 허공을 긁은 것처럼, 히로시가 검격을 낸 자리에 쭉 찢어진 균열이 생겨났다.

“어때?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쓸 만한 것 같지 않아?!”

로버트 윤은 여전히 낙하하는 메테오들을 소멸시키며 히로시에게 소리쳤다.

“이거 형이 한 거예요?!”

“그럼 누가 했겠어!”

“……무슨 효과인 거죠?! 왜 제가 무기를 휘둘렀을 때 검격을 따라 균열이 생기는 거예요?”

“그 균열. 계속 그어 봐.”

로버트 윤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낙하하는 메테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기에 슬슬 버거웠기 때문이리라.

히로시의 상황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점점 더 불어나는 크루즈의 수.

그리고 자신에게 돌진하는 크루즈들.

그 크루즈들의 공격을 피하고, 그 과정에서 반격을 가하면서도.

히로시는 단 한 가지는 잊지 않았다.

바로 로버트 윤이 말한, 균열을 그어 보라는 조언이었다.

쭈욱-!

쿠구궁!

쿠구구궁!

이미 벌어진 균열에 검격을 더하자 균열에서는 더욱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쭈욱-!

쿠구구궁!

콰과과과광-!

균열을 몇 번 더 긋자.

이번에는 더욱 큰 소리로 변했다.

“히로시!”

때를 기다렸다는 듯, 로버트 윤이 딱 그 타이밍에 그를 불렀다.

“왜요! 바빠 죽겠는데!”

“그 균열을 이용해. 내가 너까지 신경 쓰기가 힘들어서, 안전장치를 네 무기에 만들어 놨다고 생각하면 돼.”

“균열을…… 이용해……?”

“궁금하면 계속 그어 봐.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네가 직접 보는 게 낫겠지.”

그건 히로시도 동감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균열을 향해 단도를 그어 내리자.

꾸그극!!

균열이 완성되었다.

히로시가 그어 낸 균열은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동그란 구체 형태로 나타났고.

드드드드드.

동시에 자력일지 중력일지 모르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사방으로 분출시켰다.

그런데 히로시는 그 강한 힘에 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이 알 수 없는 힘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히로시를 아군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균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무수히 쏟아지는 메테오 다발과.

그들을 포위하는 크루즈들이었다.

“로버트 형, 이건……!”

“네 무기에 내 압축 능력을 최대치로 압축해서 넣어 놨다. 그 탓에 네 검격을 따라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을 계속 그어 터트리면.”

“저렇게 된다?”

“그렇지.”

압축을 압축한다.

말장난 같은 말이었지만, 그 위력을 실제로 본 히로시는 대단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압축에서 해방된 균열 하나가 생성되었을 뿐인데.

상당수의 크루즈, 그리고 메테오까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능력이라면 윤도원이 벨로스와 결판을 지을 때까지 크루즈 무리 사이에서 버티는 것이.

절대 허황된 일이 아니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로버트 윤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이걸 제 덕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래.”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동안 나는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썼거든. 그런데 넌 다르잖아? 네가 가지고 있는 너만의 3개의 초식. 그런 식으로 나도 내 능력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 봤거든.”

로버트 윤을 살리기 위해 히로시가 보였던 3개의 초식.

닌자의 발걸음.

숨겼던 동료.

아수라의 팔.

“가속. 그저 빠르게 움직이는 건 보잘것없는 능력이잖아? 그런데 넌 너만의 스타일로 강력한 능력으로 발전시켰지. 나도 너처럼 따라 해 봤을 뿐이야.”

확실히 히로시가 가진 3개의 초식은 그저 빠르게만 움직이는 신속이란 능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윤이 새롭게 선보인 이 능력은.

히로시의 머리로 생각했을 때, 의문점 하나가 들었다.

“저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 거지만…… 형은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있지. 그렇게 숨기지 않으면, 크루즈를 비롯한 적들이. 가만히 맞아 주겠어?”

로버트 윤이 이런 식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혼자서 크루즈를 상대할 때였다.

지친 상태에서 크루즈를 압축하여 소멸시키려고 했으나.

자신의 능력에 맞은 크루즈는 피격 부위인 팔을 스스로 자르며 압축에서 벗어났다.

즉, 자신의 의도를 미리 읽혀 버렸기에 아무리 압축 능력 자체가 강하다고 한들.

피하기 너무 쉬운 구조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히로시처럼 몸놀림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낼 수 있던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빠른 히로시의 몸을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개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이번에 처음 선보인 그의 발전이다.

이제 다시 히로시와 로버트 윤은 서로 등을 맞댔다.

“더 할 수 있죠, 형?”

“물론이지.”

이렇게 버티면 된다.

나머지는 윤도원이 알아서 해 줄 거니까.

그 생각이 서로 일치한 순간.

둘은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이 능력. 상당한데 멋진 이름 필요하겠어요.”

“이 전쟁 끝난 다음에 네가 지어 줘라. 내 머리로는 모르겠으니까.”

“오호, 그거 꽤 쏠쏠한 제안인데? 어떤 이름을 지어도 그대로 사용하기, 약속한 겁니다?”

“너무 유치하면 내가 힘들 것 같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러지.”

“좋아요!”

“그럼 이제 나랑도 코드가 맞는 건가? 네가 윤도원과 코드가 맞는다고 한 것처럼.”

“뭐야, 그걸 또 속에 담아 뒀어요?”

“집중이나 하자.”

둘의 조직력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

[윤도원! 윤도원! 정신 차려!]

어둠 속에서 들리는 흑염룡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 눈을 떴다.

“아……!”

잠시 잠에 빠진 것 같았다.

황급히 눈을 떴지만, 여전히 몽롱함이 내 몸을 덮쳐 왔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곧장 파악했다.

“이건……”

익숙하다. 이 어둠.

익숙하다고 해서 포근하거나 그런 게 아니다.

이 어둠이 익숙하다고 한 이유는.

내가 최초로 크루즈를 마주쳤을 때.

더스티를 만났던 그 던전.

그때의 어둠과 완벽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난 분명 벨로스한테 찔렸는데.”

그런데 몸에는 어떠한 자상은 물론, 출혈의 흔적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벨로스가 나를 공격한 것은 내 신체를 상해하기 위함이 아닌.

알 수 없는 이곳으로 나를 끌고 와 1대1로 대면하기 위함이란 뜻이었다.

이미 벨로스는 양산부에서 잿빛의 던전으로 우리를 끌어들였음에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온통 어둠으로 점철된 이곳으로 나를 불렀다.

[크크크큭, 이 영역에 온 순간. 시오스의 대정령. 너는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 거야.]

그리고 벨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흡족한 그 목소리.

그와 동시에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어둠이 걷히면서, 어둠 속에 파묻혔던 배경이 뚜렷하게 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잿빛의 잔디.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잿빛의 나무.

심지어 생기도 없어 손으로 만지면 그대로 부서져 가루가 될 것만 같은 자연의 모습이 펼쳐졌다.

[우리의 고향이…….]

흑염룡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향.

그렇다는 것은…….

“이곳이 시오스의 세계……?”

이미 완전히 크루즈에게 점령되어 크루즈의 특징인 잿빛으로 변한 자연의 세상.

하지만 이상했다.

고작 벨로스에게 찔린 것만으로 갑자기 나와 흑염룡이 시오스의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고?

아니, 애초에 벨로스가 스스로 이 정도의 공간 이동이 가능했었다면.

왜 그토록 힘들게 우리를 유인했던 거지?

이런 의문을 혼자서 하고 있을 때.

[린느.]

흑염룡의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목소리에 맞춰 나와 흑염룡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흑염룡과 상당히 닮은 정령 한 명이 서 있었다.

다만 흑염룡보다 확실히 더 성숙한 듯한 느낌이 들고, 장발의 생머리를 가진 흑염룡과 달리.

웨이브 머리를 가진 정령이었다.

[어, 엄마……?!]

‘그럴 리가…….’

벨로스의 몸으로 직접 들어갔다가 그대로 희생당한 흑염룡의 어머니.

원로 정령 도로시.

그 정령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린느? 어서 이리 오렴.”

도로시는 나타나자마자 흑염룡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편히 쉬라는 듯이. 어서 흑염룡에게 달려와 안기라는 노골적인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상해.’

어딘가 이상하다.

왜…… 난 도로시를 보고 있는데 장기의 융털까지 바짝 솟을 정도로 소름이 끼치며 경계가 되는 걸까?

그러나 흑염룡은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엄마……?]

흑염룡에게 있어 어머니란,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존재였을까.

도로시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했다.

[자, 어서. 린느, 이리 오렴.]

게다가 도로시는 같은 말만 하는 중이다.

마치 반복 재생에 걸린 것처럼.

그 순간, 난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나타난 도로시는 진짜 도로시가 아니다.

진짜 도로시는 이미 벨로스의 몸에서 죽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벨로스가 알 수 없는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흑염룡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도로시에게 다가가기 위해 유유히 나는 순간.

텁!

난 흑염룡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정신 차려! 흑염룡!”

그러면서 도로시를 향해 망설이지 않고 검으로 형태 변환을 한 발톱의 가호를 휘두른 순간.

카앙-!

발톱의 가호에서 묵직한 진동이 발생했고, 그 진동은 내 손을 통해 어깨까지 얼얼하게 전달했다.

[킥! 이건 너무 뻔한 방법이었나?]

내 발톱의 가호를 막은 것은 다름이 아닌 벨로스.

도로시는 벨로스를 자신의 무기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든 채로.

내 검을 막은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지, 자. 시오스의 대정령이여. 이 모습이 가짜인 걸 안다 해도 네놈이 과연 나를 공격할 수 있을까? 본래 시오스란 족속은 나처럼 부하를 지배하는 게 아닌. 서로 동료, 친구처럼 지냈기에 유대감이 쓸데없이 애틋하지 않던가?]

난 황급히 도로시를 떼어 내고, 흑염룡을 품에 안은 채로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지금 흑염룡은 내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등장으로 잠시 이성이 날아간 상태다.

심지어 방금 벨로스가 한 말도 듣지 못한 듯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가.”

벨로스도 알고 있는 거다.

시오스의 특징.

내가 흑염룡과 처음 만나고, 시오스에 대해서 알아 갔을 때도 흑염룡은 말했다.

대정령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정령을 부하처럼 다루는 게 아니라 친구처럼 지낸다고.

벨로스는 이 허점을 이용해, 현재의 대정령인 흑염룡을 최대한 자신의 몸에 가까이 다가오게 하려고 했던 거다.

“고작 한다는 게…… 이따위 유치한……”

[이따위 유치한 방법인데도 반은 성공이지. 저 대정령이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니까. 그렇다면 난 너만 없애면 끝나는 것 아닌가? 대정령의 정신이 나가 있는 틈에 말이야.]

지금은 도로시가 계속 말하는 중이다.

심지어 목소리도 벨로스의 목소리가 아닌, 도로시의 포근한 그 목소리 그대로다.

하지만 난 저게 도로시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지금 벨로스는 도로시의 가면을 쓴 채로 연극을 하는 중이다.

“어떻게 한 거지? 환영도 부릴 줄 아는 건가?”

[내가 그런 걸 알려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그리고 도로시의 얼굴이 변했다.

검은 두 눈동자가 메테오처럼 빨갛게 타오르며, 머리카락까지 새빨갛게 변했다.

마치 진화를 한 것만 같은 변화였다.

[너도 어차피 이걸 원하잖아? 제대로 해 보자고. 어차피 둘 중 하난 죽을 거고, 죽는 게 내가 되진 않을 것 같으니.]

도로시가 내게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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