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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97화 (197/200)

§ 197화. 어차피 이게 끝이잖아 (1)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크루즈.

아니, 크루즈들.

그러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크루즈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공격받았을 때 크루즈의 모습을 기억한다. 외형은 사람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피부가 숯덩이처럼 검었고, 핏줄처럼 용암 줄기가 피부 위를 흐르던 모습.

그런데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크루즈는 그런 크루즈와는 격이 달랐다.

일단 몸체부터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상당히 거대했으며, 나와의 높이 차이를 헤아리자면 건물 2층 높이를 바라보는 듯했다.

게다가 외형 역시,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가분수처럼 몸과 머리가 비대하게 컸다.

히어로 영화에서 나오는 검은 헐크.

그렇게 보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 헐크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몸집.

그에 반해 하체는 상당히 부실했다.

부실하단 것도 어디까지나 거대한 상체에 비해서 그렇게 보인단 것이었지, 절대적인 의미로 부실하단 건 아니었다.

[윤도원, 정신 차려. 저 크루즈…… 드래곤님의 기억 속에서 본 적 있지?]

흑염룡이 나를 가이드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네…….”

드래곤에게 정신의 가호를 받았을 때.

드래곤의 기억 중 하나를 내게 보여 준 일이 있다.

바로 벨로스가 어떤 녀석인지 설명하기 위해.

그때 봤던 크루즈와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었다.

“그렇다면 저 크루즈는……?”

[크루즈 중에서도 최상위 크루즈. 벨로스의 근위대.]

이미 히로시와 로버트 윤은 근위대보다 한 단계 낮은 크루즈 경호대와 마주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경호대를 넘어.

벨로스의 근위대라는 최상위 크루즈가 내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로버트 형이 그 발걸음 소리를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한 이유도…….”

“경호대와 싸울 때. 멀미가 날 정도로 들었던 발걸음 소리니까.”

그렇다면 경호대와 근위대.

두 상위 크루즈의 공통점은 거대한 몸집을 가졌단 뜻이 됐다.

“경호대도 저렇게 몸집이 컸습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지금 마주하는 근위대가…… 훨씬 더 크군.”

“그렇단 말이지…….”

난 곧장 드래곤에게 받은 발톱의 가호를 꺼내, 검으로 변형시켰다.

“차라리 잘됐네.”

[잘됐다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긴 벨로스의 영역이라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벨로스와 싸우게 된 꼴이라니까?!]

흑염룡이 절규하듯 말했지만.

난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기에 뱉은 말이다.

“그래서 뭐? 어차피 이게 끝이잖아?”

[……뭐?]

“이것만 넘으면. 더 넘을 산은 없잖아? 안 그래?”

생각을 바꾸자.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크루즈의 끝판왕, 벨로스와 싸우게 된 일이 큰일이라고?

아니다.

어차피 준비는 많이 했잖아?

아이슬란드에 정화석을 세웠을 때부터.

그리고 정화석이 내뿜는 프리즘의 영역이 넓어지면, 내가 직접 벨로스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처음부터 그랬고, 그것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전부 생략되고.

우린 마지막 단계로 오게 된 것이다.

바로 벨로스 덕분에.

그리고 크루즈와 시오스의 전쟁을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이곳이 정상이다.

더는 오를 곳도 없기에. 정상을 정복했다면 각자 휴식을 취할 집으로 향하는 하산만이 남았다.

그 하산을 위해서.

정상에 우리의 깃발만 꽂으면 된다.

난 이제 나의 동료들.

히로시와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다들. 각오 됐죠? 비록,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때. 윤도원, 크루즈들은 나랑 히로시가 맡을게, 넌 벨로스에게만 집중해.”

로버트 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맞설 자세를 취했다.

“난감한데.”

하지만 히로시는 어딘가 자신감이 없었다.

“왜 그래?”

“제가 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네 무기. 어떻게 생긴 건데.”

“쿠나이 하나랑 날이 초승달처럼 휜 단도요. 검날은 밑으로 향한…….”

쿠나이는 나도 뭔지 안다.

일본의 닌자 문화를 몰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중 닌자를 소재로 한 인기 애니메이션 하나가 있었으니까.

명색이 중증 중2병 출신인데, 그 애니메이션을 모르면 섭하지.

곧장 내가 가진 능력인 만물을 이용해, 내가 아는 쿠나이와 똑같은 것을 하나 뚝딱 만들어 줬다.

“받아.”

그리곤 히로시를 향해 던졌다.

“오!”

날아오는 쿠나이를 한 손으로 멋지게 받은 히로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흡사 로봇 만화에서 로봇이 합체하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날이 휜 단도?”

“네!”

대충 어떤 이미지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만물을 이용해 그대로 만들어 주자.

“오! 좋아요!”

히로시는 대만족했다.

휙-! 휙-!

쿠나이와 단도를 양손에 든 채로, 허공에 몇 번 휘두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사용하던 무기와 큰 차이가 없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우리의 준비가 끝난 순간.

[윤도원, 저길 봐.]

흑염룡이 크루즈 무리 중 한쪽을 가리켰다.

“……저걸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네.”

흑염룡이 가리킨 것은 바로 벨로스.

애초에 벨로스라는 것은 다른 크루즈처럼, 특정한 신체를 가지지 않았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검 한 자루.

그것이 벨로스였고, 시오시도 벨로스의 정체는 정확히 모른다.

이번에도 역시, 드래곤의 기억 속에서 봤던 풍경과 상당히 똑같다.

크루즈 무리 사이를 여유롭게 유영하는 벨로스라는 검 한 자루.

이제 저 검이 특정 크루즈의 몸에 안착하게 되면, 그것이 온전한 벨로스가 될 것이다.

마음가짐은 완벽했지만, 그래도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 대한 긴장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청각이 점자 옅어지는 것처럼 주변에서 들려왔던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벨로스가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닌.

그저 내 몸이 긴장해서 주변의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콩닥. 콩닥. 콩닥.

그러면서 들리는 심장 소리.

귀를 의도적으로 막으면 맥박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내 상태가 그랬다.

“히로시, 로버트 형이랑 벨로스 근위대. 막을 수 있지?”

“물론이죠! 무기도 있고! 이미 한 번 해 봤으니까 무섭지 않아요!”

히로시에게 그저 무기를 하나 쥐여 주었을 뿐인데,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뚫을 듯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

벨로스라고 부르는 저 검이 크루즈의 몸에 안착되지 못하게 하고, 부숴 버린다.

온전한 벨로스가 되기 전에.

완전히 싹을 잘라 버리겠단 생각이었다.

크루즈 무리 사이에 가만히 있는 벨로스.

난 검으로 변형시킨 발톱의 가호를 단단히 쥔 채로.

벨로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찰나의 빈틈.

그 찰나의 빈틈이 보인 순간 거머리처럼 파고들어 절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애초에 저 벨로스가 다른 크루즈의 몸에 안착된 순간.

히로시와 로버트 윤도 위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로버트 윤이 의도한, 내가 온전히 벨로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에.

예민할 정도로 집중하던 그때.

드디어 벨로스가 움직였다.

어딘가로 향하는 벨로스.

나 역시 공중으로 튀어 올라 벨로스의 뒤를 쫓으며, 히로시와 로버트 윤에게 한마디만 남겼다.

“크루즈들은 맡길게요!”

“얼마든지.”

“어렵지 않아요.”

히로시와 로버트 윤은 서로 등을 맞대며 크루즈와 대치했다.

난 그들의 믿음직한 모습을 눈에 담은 뒤, 본격적으로 벨로스를 쫓았다.

어차피 이게 끝이다.

내가 말한 등산.

벨로스를 쫓는 이 길이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

그렇다 보니 두려움보다는 몸이 먼저 나서는 용기가 생겨났다.

‘흑염룡, 벨로스를 상대하면서 유의해야 할 점. 있어?’

벨로스를 쫓으며 흑염룡에게 물었다.

[…….]

그런데 흑염룡은 무어라 답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모르겠어서…….]

‘모르겠다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벨로스가 등장하게 되면 시오스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정화석의 프리즘도 무력화가 되니, 벨로스를 분석하고자 하는 여유 자체가 없었을 것.

“그렇다면. 이제 내가 알아 가면 되겠지.”

어차피 이게 끝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 흐르는 시간을 버티다 보면.

끝에 서 있는 것은 우리가 되어 있을 테니까.

쿠구구구궁-!

하늘에서도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굉음이 일어났다.

메테오였다.

내가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메테오 다발이.

벨로스를 쫓는 나를 요격하려는 심산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후웅-!

그런 메테오를 발톱의 가호로 베며 끝까지 계속 추격했다.

[메테오가 떨어지면…… 히로시랑 로버트 윤이 위험하지 않을까? 프리즘도 없는 곳인데!]

흑염룡의 걱정도 앞섰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인가?

“그건 알아서 하도록 믿어야지. 그러기로 했으니까.”

지금 순간만큼은 우리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각자 맡은 일만 신경 쓴다.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난 낙하하는 메테오를 부수며, 계속 벨로스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상해……. 벨로스가 꼭 나를 어딘가로 유인하는 것 같은데.’

쫓으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벨로스는 크루즈 무리 사이를 비행하는 게 아닌, 오히려 크루즈 무리와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중이다.

나를 유인하고 싶은 곳이 있던 건가?

아니면 메테오를 요격하면서 내 체력이 빠지길 기다리는 건가?

“어느 쪽이건…….”

벨로스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난 더욱 속도를 내며 벨로스를 바짝 추격했고, 드디어 벨로스의 손잡이 부분에 당도했을 때.

그 손잡이를 향해 발톱의 가호를 번쩍 든 순간이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뭐?”

그런데 벨로스는 기다렸단 듯이 답하며, 갑자기 검의 궤도를 바꿨다.

분명 내 눈에는 벨로스의 손잡이 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검날 끝이 나를 분명하게 향했다.

[윤도원!!]

흑염룡이 얼른 피하라는 뜻으로 소리쳤지만.

푹-!

벨로스의 이어지는 행동은 미처 대응할 수도 없이 빨랐다.

내 어깨에 벨로스가 꽂힌 순간.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

“꼬맹이, 메테오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전부 막아 주마!”

한편, 히로시와 로버트 윤도 벨로스의 근위대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떨어지는 메테오를 로버트 윤이 능력을 이용해 전부 격추시키며, 로버트 윤은 히로시를 보호하는 서포트 포지션을 잡았다.

“내 움직임. 눈으로 좇을 수 있어요?!”

“그럴 수가 있겠냐.”

“그럼…… 이렇게 방어만 하고 있을 수 있나.”

히로시가 답하는 그 순간에도 히로시를 향한 근위대의 공격은 이어졌다.

히로시는 빠른 몸놀림을 통해 재빠르게 회피한 뒤, 근위대의 하체.

그것도 무릎 뒤쪽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퍼서서석-!

윤도원이 만들어 준 새 무기.

외형은 자신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으니, 성능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단칼에 최상위 크루즈가 무너질 정도라니.”

그 거대한 크루즈의 몸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고작 일격에.

히로시는 자신감을 얻었다.

“좋아요, 메테오만 처리해 줘요! 나머지 크루즈는 내가 더 빨리 움직일 테니까!”

“잠깐, 꼬맹이.”

로버트 윤의 시선은 여태껏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떨어지는 메테오 전부를 요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히로시가 들고 있는 두 무기로 향했다.

“내가 말했지? 너의 초식을 보고 배운 게 있다고. 이게 잘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디 보자…….”

“무슨…….”

로버트 윤은 히로시의 무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직접 만지려는 게 아닌, 히로시의 무기에 마법처럼 무언가를 걸기 위함으로 보였다.

로버트 윤이 뻗은 손을 거뒀을 때.

확실히 히로시의 무기엔 변화가 생겼다.

무기에서 중력, 혹은 자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무기가 끌어당기는 듯한 힘이 히로시의 몸에 전해졌다.

“……뭐예요, 이거?”

“한가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말야. 히로시, 뒤!”

로버트 윤이 소리친 순간.

히로시도 뒤통수에서 섬뜩함이 느껴졌고.

반사적으로 몸을 한 바퀴 빙그르 돌면서 단검을 휘두른 순간이었다.

쿠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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