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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96화 (196/200)

§ 196화. 저쪽도 전면전을 택했다 (2)

내가 매튜를 부르자,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나와 매튜가 눈을 똑바로 마주 보게 되었다. 매튜가 나를 호위하듯이 서 있는 히로시, 로버트 윤, 오문성까지 살핀 다음이었다.

“…….”

그렇게 거만하던 태도는 물에 담근 솜사탕처럼 말끔하게 사라지고.

지금은 침묵으로 갑자기 태도가 변했다.

[이상해, 눈에 보이는 특별한 건 없어.]

흑염룡 역시 매튜를 보자마자 관찰했다.

크루즈와 계약을 했고, 우린 그 상대가 벨로스란 것도 추측한 상태.

하지만 시오스의 눈으로도 확실하게 보이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럼 다행 아니야? 벨로스는 아직 인간계로 오지 않았다는 거니까.’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 없지. 벨로스가 왜 인간과 계약을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안심이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벨로스는 인간계로 넘어온 상태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흑염룡은 최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 역시 흑염룡과 마찬가지로 매튜를 대했다.

그런데 그때, 매튜의 돌발 행동이 시작됐다.

쿵!

느닷없이 무릎을 꿇더니.

“흑…… 흐흑…….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나를 향해서 애원하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크루즈에게 강제로 계약을 당했고, 크루즈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크루즈는 지금 제 목숨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곤 자신의 사연을 주저리 풀어 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전 크루즈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크루즈와 계약을 하게 된 이유도…… 절대 제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을 때, 갑자기 메테오가 워싱턴 전역을 덮치더니, 정신을 차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이 되어 있던 겁니다…….”

화룡점정.

매튜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그런데 왜일까?

저 닭똥보다 작은 눈물 한 방울을 보는데, 울컥하는 마음보다.

애쓴다는 생각이 먼저 든 이유가.

매튜의 행동은 상당히 인위적이라고 생각됐다.

정말 절박함에서 나온 행동이 아닌, 무언가 철저히 계산한 뒤에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매튜는 스스로 크루즈에게 조종당했으며, 계약 자체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내가 묻기도 전에 미리 다 알려 준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아주 신경에 거슬리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캐나다.

캐나다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 매튜였다.

캐나다 협회장이 죽기 직전 중앙 협회로 보낸 파일 덕분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매튜는 캐나다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것은 왜일까?

그것만큼은 크루즈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닌.

자신이 주도적으로 벌인 일이기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당신이. 크루즈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혹시나 싶어 매튜에게 미끼를 던져 봤지만.

역시나, 그는 덥석 물었다.

‘너무 이상해…….’

마치 내가 이 질문을 하길 유도한 것처럼.

그의 반응은 너무도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제발 저를 크루즈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시오…… 이 크루즈만 없애 주신다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크루즈를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맹신…….

아니, 확신 중이다.

물론, 매튜가 이 사실을 아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중앙 협회 시절에도 크루즈를 막기 위해 내가 게이트를 늘리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즉, 내가 크루즈와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지금은 짐작이 아니라 너무 확신하고 있다는 게 수상했다.

매튜가 예전에도 나를 향해 이런 신뢰와 확신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런 그가 갑자기 거짓의 가면을 쓰곤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오는 중이었다.

캐나다도 제 손으로 직접 없앴으면서 이제야 크루즈에게 조종당해서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다?

명백히 아니다.

매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된 순간.

[크크크큭, 네가 딴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고작 그게 이거야? 이런 유치한 방법이야?]

의문의 목소리가 이 장소 전체를 덮쳤다.

소리가 울리는 지하실에서 음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가 내뱉은 목소리처럼.

노이즈가 꽤 심하고 발음도 부정확하게 들렸으며, 말하는 사람의 성별도 제대로 알기 힘든 그런 목소리다.

[벨로스!!]

그리고 흑염룡이 곧장 반응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벨로스였다.

[큭, 어차피 시오스의 대정령과 드디어 닿게 되었으니. 이제 상관없겠지. 그러나…….]

벨로스의 목소리가 변했다.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억지로 참는 듯한.

그런 불안한 예감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뿌드드득-!

뿌득-!

“끄아아아아악!”

매튜의 몸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끄악……! 끄하아아아악!”

뿌드득!

까득!

주르륵!

그러곤 다량의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까지.

갑자기 매튜의 몸이 목각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팔, 다리 전부가 직각으로 꺾이며 부러졌다.

“끄헉…….”

그리고 목도 비정상적으로 직각으로 꺾였을 때.

힘없는 외마디 비명을 흘린 매튜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목각 인형을 넘어, 레고 부품을 하나씩 빼는 것처럼 매튜의 몸이 점차 작아졌다.

[어쩐지 너무 순순히 따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이놈은 이게 목적이었구나?]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벨로스의 목소리.

“목적……?”

[뭐, 너는 알 것 없어. 나는 너보다는 네 옆에 있는 정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매튜와 벨로스.

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매튜는 몸이 기괴하게 꺾이며 죽었고.

벨로스 역시 매튜가 다른 생각을 몰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 뜻이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둘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지만, 그 목표는 서로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것.

따라서 매튜가 내게 보인 그 인위적인 행동도.

어쩌면 절반 정도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크루즈에게 벗어나고 싶었을 터다.

그러기 위해선 크루즈가 없어져야 했고, 그 크루즈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나에게 크루즈를 떼어 내 달라고 한 말은 진심이었으나…….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크루즈를 떼어 내 달라고 한 이유 역시, 그의 개인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만약, 내가 그를 크루즈로부터 해방시켜 줬다고 한들.

매튜는 또 어떤 꿍꿍이를 가졌을지 모른다.

그렇다 보니 매튜가 한순간에 죽은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조금 불안하다.

매튜의 죽음 직전에 벨로스의 목소리가 들렸고, 매튜의 몸이 그렇게 기괴하게 꺾인 이유 역시.

벨로스가 전부 무언가를 위해 조종한 것이었으니까.

[저거……!]

흑염룡이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매튜의 시체가 서서히 가루로 변하면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매튜가 있었던 자리에 검은 포털이 생겨났다.

검은 포털.

굳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숱하게 봐 왔기에 잘 알 수 있었다.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란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알던 크루즈 전용 포털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선명하게 보였던 그 크루즈의 전용 포털이.

점차 흐릿하게 변했다.

그러면서 포털을 구성하는 것들이 잿빛의 가루로 여기저기 퍼졌다.

마치 어느 거인의 손이 포털 자체를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듯했다.

“뭐야, 포털이 왜 저렇게 변해?!”

그런 포털의 변화를 우리는 놓치지 않았다.

특히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나자 오문성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흑염룡, 이런 거…… 본 적 있어?’

[없어…….]

‘그럼 이게 어떤 현상을 뜻하는 건지도…….’

[당연히 모르지.]

크루즈와 그렇게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한 시오스의 대정령, 흑염룡조차도 오늘 처음 목격하는 현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히로시와 로버트 윤의 반응도 살폈다.

두 사람의 표정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 나처럼 이미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각자의 정령에게 이 현상에 대해 물었고, 돌아온 답도 나와 다르지 않단 것을 깨달았다.

잿빛의 가루로 흩날리는 벨로스가 만든 게이트.

잿빛은 우리가 있던 장소 전부를 물들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야도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

[크크큭, 시오스의 대정령. 너와 접촉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는데 이렇게 쉬울 줄이야. 감히 상상이나 했겠나?]

잿빛의 어둠 속에서 들린 벨로스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뒤에, 정신이 들었다.

아무래도 게이트가 잿빛의 가루로 변하면서, 우리가 있던 장소 전체를 잿빛으로 물들 때.

우리의 정신도 잠깐 끊긴 듯했었다.

눈을 감거나, 누워 있던 것도 아닌데 정신이 확실하게 잠시 끊어진 상황이었다.

우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음 펼쳐진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온통…… 안개뿐이야…….”

히로시의 한마디.

히로시가 말한 것처럼, 우린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잿빛의 안개 속에 있었다.

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다른 것을 찾았다.

바로 우리와 함께 같은 장소에 있었던 내 부원들.

이지은, 신보미, 정다훈, 정다혜, 권다정까지.

이 5명의 모습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으나.

“……안 보여. 나머지 5명은 어디로 간 거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문성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오문성까지……. 우리만 이 정체 모를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건가?”

이 영역은 분명히 벨로스가 만든 벨로스만의 영역.

그리고 벨로스의 영역에 온 사람의 공통점은.

전부 정령의 주인들이었다.

벨로스는 분명하게.

정령의 주인들만 쏙 골라서 자신이 지정한 곳으로 우리를 끌고 왔다는 게 옳았다.

“흑염룡, 이거 아는 거 없어?”

[……없어. 이건 정말 처음 보는 거야.]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백과사전인 흑염룡도 먹통이 되었으니.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만 주변을 파악하려던 때.

터벅. 터벅.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움직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걸음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하지만 잿빛의 안개가 너무 짙었기 때문일까?

분명히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쿵!

쿵!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시작으로.

이번엔 지천이 흔들리는 지진과 함께 폭음과 굉음 사이의 소음이 들려왔다.

“이 소리는 너무 익숙한데, 나한테…….”

혼잣말로 중얼거린 로버트 윤.

나는 특이점을 모르겠으나, 로버트 윤은 소리를 듣자마자 무엇인지 알았다.

“왜요, 뭔데요? 왜 익숙하단 거예요?”

“내가 이 소리를 듣고 나서 네덜란드 소년이 될 뻔했거든.”

“그게 무슨 소리랍니까…….”

“이거, 크루즈의 발걸음 소린데? 절대 잊을 수가 없지. 이 소리는.”

로버트 윤의 답이 끝난 그 순간, 잿빛의 안개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그 실루엣이 잿빛의 안개를 뚫고, 드디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야…….]

흑염룡이 가장 절망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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