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조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다 (1)
[비르, 어땠어? 벨로스의 경호대들.]
흑염룡은 곧장 벨로스의 경호대가 일본과 아주 가까운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단 사실에 집중했다.
오리가미에게 경호대를 묻는 것을 보아하니, 평소에도 이런 보고는 오리가미가 도맡아서 한 모양이다.
벨로스의 경호대라는 상위 등급 크루즈의 등장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겪은 일이기에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특별한 건 없었어요. 다만…….]
[다만 뭐?]
[히로시가 생각 외로 강해서, 우리가 알던 경호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오리가미의 답은 조금 의외였다.
히로시가 생각 외로 강해, 일반 크루즈도 아닌 상위 등급의 경호대라는 크루즈가 알던 것과 달리 약해 보일 정도라니.
오리가미가 답을 뱉자마자 나와 흑염룡 그리고 오문성까지.
자연스럽게 시선은 히로시에게 향했다.
“하하, 쑥스럽네. 이렇게 다들 쳐다보니까.”
히로시는 시선을 즐기지도, 그렇다고 불편해하지도 않는 평범한 반응이다.
이런 시선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그의 인생에서 많이 겪어 왔던 시선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농담 아냐. 이 꼬맹이,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더라. 나도 깜짝 놀랐어.”
히로시와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던 로버트 윤까지 거들었다.
로버트 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분명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헌터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상하게, 온전히 그 사실 전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절대 히로시를 평소에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던 게 아니다.
내가 알던 히로시는 그저 나와 비슷하게 중2병도 가지고 있고, 덕후의 기질 또한 상당히 가지고 있던 녀석.
오죽하면 제 정령인 비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이름을 따서 오리가미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줄 정도겠는가.
게다가 히로시와 함께했던 날 중에서 히로시가 유독 눈에 띄는 강함을 선보였다거나 하는 일이 아예 없기에 당최 상상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히로시 덕분에 나도 많이 배웠지.”
로버트 윤이 덧붙인 말이다.
도대체 뭘 봤기에, 중앙 협회의 감찰부장 출신인 로버트 윤이 몇 수는 접는 듯한 말을 하는 건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보고 싶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로버트 형까지 저런 반응이야?”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을 때.
“에이~ 갑자기 해 보라고 하면 쑥스러워서 못하죠. 외국어 할 줄 안다고 외국어 갑자기 해 보라면 말이 안 나오는 거랑 똑같지!”
히로시는 그렇게 답하며 넘겼다.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보통 우리가 아는 사람 중,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면 다짜고짜 그 자리에서 외국어를 해 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던가?
맥락도 없이 외국어로 말해 보라고 하면 당황한 것보다 대화의 주제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뭐, 어차피 나도 보게 되겠지.”
크루즈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
이 전쟁의 과정 속에서 히로시의 위력을 나 역시 볼 수 있을 테니, 굳이 재촉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가롭게 이런 수다를 떨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히로시와 로버트 윤.
그리고 일본인 헌터들이 가지고 온 포대 자루 안을 들여다봤다.
사정은 이미 들었다.
갑자기 북한에서 길을 열어 주었고, 한국과 북한의 국경이라 할 수 있는 강원도에서 대량의 초월석을 받아 왔다는 것을.
일단은 촉박한 상황이기에 북한과 가까운 중국, 러시아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보냈고 차츰 중국, 러시아 전역에 있는 초월석도 모아서 보낼 예정.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슬란드와 가까운 유럽 국가는 직접 노르웨이를 통해 아이슬란드로 보내고.
아시아와 붙어 있는 가까운 나라는 전부 육로를 이용해 초월석을 이곳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일단은 아이슬란드로 온 초월석의 개수는 무려 2만 개.
내가 정화석에 대해서 빠삭하게 아는 게 아니라고 해도.
현재 상태에서 2만 개의 초월석을 들이붓는다면?
분명 프리즘의 영역은 유럽 대륙의 상당 부분을 보호할 것이라 믿었다.
“흑염룡, 이 정도 양의 초월석이면…… 어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흑염룡 역시 예상을 완벽히 벗어난 초월석의 개수에 크게 놀란 반응이다.
“놀라고만 있지 말고. 이 초월석 전부를 사용하면, 프리즘의 영역을 얼마나 넓어질지, 계산할 수 있어?”
[잠깐만, 내가 지구의 대륙 지형이 지금 헷갈려서 확답을 못 하겠네. 원래 나는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이 아니잖아. 그렇다 보니 가늠이 안 가.]
흑염룡이 답하자마자, 난 휴대폰을 통해 세계 지도를 보여 줬다.
한참이나 뚫어지게 지구의 지형을 살핀 흑염룡은 어느 한 부분을 콕 찍었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아이슬란드지?]
지구의 북쪽 상단.
아이슬란드를 정확히 찍었다.
“응.”
[2만 개면…… 대충…….]
손가락으로 늘어날 프리즘의 면적을 가늠하는 흑염룡.
사람들이 휴대폰 화면을 확대할 때,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확대하는 것처럼.
흑염룡도 비슷한 손놀림을 보였다.
다만, 지금 흑염룡은 중지로 아이슬란드를 찍었다.
마치 손가락이 컴퍼스가 된 것처럼 중지로 찍은 아이슬란드가 중심점이 된 것.
그리고 엄지로 늘어날 프리즘의 영역을 예상했다.
프리즘도 컴퍼스와 동일하게 원형 범위이기 때문이다.
흑염룡은 그렇게 중지를 여전히 아이슬란드에 고정한 채로 엄지를 빙글 돌렸다.
흑염룡의 엄지와 중지 사이에 들어가는 국가가 늘어난 프리즘의 보호를 받는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가 되겠네.]
흑염룡의 중지와 엄지 사이에 들어간 나라는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동쪽 상당 부분.
캐나다는 이미 크루즈에 의해 지도상에서 사라졌지만, 내가 보여 준 휴대폰의 세계 지도의 경우엔 아직 그 사실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캐나다까지 포함하게 됐다.
캐나다를 넘어 미국의 동쪽 일부.
미국의 경우엔 수도 워싱턴을 포함한 영역이다.
이 역시 이미 크루즈에 의해 사라진 땅이지만, 이 지도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가 아이슬란드를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나라.
이제 동쪽의 경우엔.
영국, 독일, 포르투칼,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론 러시아의 모스크바 서쪽 일부.
아이슬란드와 가까운 상당수의 나라가 안전한 지대에 들어서게 된다.
“2만 개로 이 정도가 돼?”
[예상이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정확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변화는 맞다.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 없겠군.”
난 곧장 포대 자루에 든 초월석 전부를 정화석에 쏟아부었다.
내가 먼저 행동하자 히로시, 로버트 윤.
그리고 일본인 헌터들까지.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기 위해 그들도 직접 내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걸린 뒤에 2만 개의 초월석 전부를 정화석에 넣자.
“확실히 하늘이…….”
로버트 윤이 말했다.
하늘 전체가 알록달록 무지갯빛으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다량의 초월석이 투입된 만큼, 프리즘이 내뿜는 형형색색의 빛깔은 더욱 영롱하게 변했고, 그 영역도 넓어졌다.
심지어 기존에는 프리즘이 일정한 주기로 발산되었는데, 지금은 전구를 켜 놓은 것처럼 계속해서 빛이 났다.
게다가 프리즘의 끝을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다.
2만 개의 초월석을 정화석에 넣기 전엔 프리즘 영역의 끝이 눈으로 쉽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는 것처럼.
프리즘 영역의 끝을 보려고 애써도 눈에 보이는 것은 프리즘의 지평선만 있을 뿐이었다.
[휴우…… 일단은 프리즘 영역을 꽤 넓게 확보해서 한시름 놓긴 했지만…….]
흑염룡이 중얼거렸다.
“왜? 무슨 걱정이 또 있어?”
[당연히 있지! 벨로스가 징조를 보였잖아!]
“그랬지.”
하지만 심각하게 반응하는 흑염룡과 달리, 나는 그다지 심각하진 않았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벨로스가 어떤 놈인지 그새 까먹은 거야?]
“까먹었을 리가 있나. 크루즈의 대장이라며? 내가 그걸 까먹을까 봐?”
[그런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이냐고.]
“생각해 보니까…….”
[생각해 보니까, 뭐?]
“지금 조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잖아? 크루즈들. 안 그래?”
그 순간, 흑염룡은 잊었던 무언가가 떠오른 것처럼 입을 조금 벌린 채로 말이 없어졌다.
난 그런 흑염룡에게 한마디 더 남겼다.
“그리고 왜 벨로스는 일본과 가까운 그 게이트를 사수하려 한 걸까? 한국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그건 이미 알고 있었던 거잖아?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와 계약을 했고, 크루즈의 앞잡이가 되어 한국을 공격……!]
흑염룡이 울분을 토하듯 말할 때,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내 반응을 본 뒤 흑염룡은 진실을 깨달았다.
[가만……? 한국을 공격하려는 건 매튜 협회장인데……. 물론 크루즈와 협조하기 위해 한 것 같긴 하지만…….]
“게다가 일본은 그런 한국의 길목에 있는 곳이고?”
[그런 일본 근처에 있던 게이트로…… 벨로스가 오려고 했다?]
“이 정도면 확실하지?”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의 누구와 계약을 한 것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실마리가 서서히 풀렸다.
아직 인간계로 오지 않은 벨로스. 그 녀석이 매튜 협회장과 계약을 한 장본인일 것.
게다가 크루즈는 지금 시오스의 대정령인 흑염룡이 목표다.
무슨 이유에서 흑염룡을 목표에 뒀는지는 모른다.
게다가 흑염룡의 주인인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한국을 공격하게 되면, 자신을 막기 위해 나와 흑염룡이 알아서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으며 강행한 공격.
하지만 이제 그들의 계획은 깨졌다.
아이슬란드에 정화석을 만들어 놓고, 그 영역까지 상당히 확대한 상태이기에 이제 조급한 쪽은 우리가 아닌 저쪽이다.
따라서 주도권은 우리에게 넘어온 상태다.
“자, 이로써 확실한 건. 크루즈들은 현재의 대정령인 흑염룡 너. 너를 꼭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뭘까?”
[그건…… 나도 모르지.]
“왜인지 내 생각에는 말야, 아직 벨로스가 인간계로 넘어오지 못했잖아?”
[그랬지?]
“그 벨로스가 인간계로 넘어오기 위해선. 흑염룡, 너를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 있는 게 아닐까?”
내 질문에 흑염룡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벨로스가 흑염룡을 노리는 이유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론을 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흑염룡. 넌 다른 정령들과 다르잖아? 특히 게이트 관련 능력이 독보적이었으니까. 벨로스도 인간계로 넘어오기 위해선 네가 만든 특별한 게이트가 필요하다거나 이런 게 아냐?”
정령들도 저마다 능력이 있다.
다들 게이트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강하고 특별한 게이트를 만드는 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한 정령은 현재 단 하나.
바로 흑염룡이다.
“벨로스에게 어떤 금제가 걸려 있는 것 같은데? 뭐 의심 가는 거 없어? 너희 어머니의 영향이라든지 하는 것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것들이 꽤 많잖아?”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