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91화 (191/200)

§ 191화. 벨로스의 징조 (3)

하지만 시간이 잠깐 지난 뒤.

“에휴.”

북한의 협회장은 귀찮다는 듯한 한숨을 내쉰 뒤, 정식 소개를 올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냥꾼 협회장 리철진이라 하오. 남조선의 사냥꾼 협회장. 누구란 말이오?”

‘사냥꾼 협회라, 이름 참 재밌네.’

설마 헌터란 명칭도 그들만의 말로 바꿔서 말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의 이름은 리철진.

이름도 정식으로 알았으니, 장길수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장길수요.”

장길수가 먼저 악수를 건넸다.

“…….”

반면, 리철진은 그저 그의 손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내래, 친목이나 하자고 온 게 아니지비. 물건 확인하시라요.”

리철진의 태도는 이 땅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단 욕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장길수는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 빨리 가고 싶겠지.’

그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닌 외압에 의해 강제로 하게 된 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었으니, 어디 가뿐한 발걸음과 마음으로 임할 수 있으랴.

그렇다 보니 저렇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인사는 하시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기건 모르겠고. 물건이나 확인하시라요. 야, 물건 내려라.”

리철진은 끝까지 인사를 거부한 뒤, 함께 온 군인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트럭에서 북한군이 일제히 내려 포대 자루를 차곡차곡 내려 쌓기 시작했다.

“까칠하시네.”

“동무, 놀러 왔소?”

“사납기까지 하시네.”

“…….”

리철진은 이제 장길수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의 시선은 습관적으로 북쪽으로 향했으며,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역력했다.

“야, 야! 빨리빨리 하라우! 날 샐 거야?!”

“알겠습네다!”

“날래날래 혁명적으로 움직이라!”

괜히 그 불똥은 북한군에게 튀었다.

헌터인 리철진의 눈으로 봤을 때는 군인의 움직임이 상당히 답답하다고 여긴 듯하다.

장길수는 그저 부리나케 움직이는 북한군들을 관망하듯, 팔짱을 낀 채로 느긋하게 바라만 봤다.

그렇게 약 10여 분 뒤.

드디어 트럭에 있던 모든 포대 자루를 내렸던 모양인지, 북한군의 행동이 멈췄다.

그리곤 리철진이 장길수에게 다가와 종이 하나를 건넸다.

리철진이 건넨 종이는 다름 아닌 리스트다.

초월석을 총 몇 개 건넸으며, 중국과 러시아, 북한.

세 국가가 몇 개의 초월석을 보냈는지, 그 내용이 적힌 리스트였다.

“총 개수가…….”

개수를 본 뒤, 장길수의 눈은 휘둥그렇게 변했다.

약 2만 개.

러시아와 중국이 정식 던전이 존재하던 시절에 초월석을 많이 가지고 있단 사실이 널리 알려지긴 했으나…….

북한과 가까운 일부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보낸 초월석의 양이라고 하기엔 많아도 한참이나 많았다.

“내래 똑똑히 전달했디요. 나중에 허튼소리 하면, 재미없소. 동무.”

리철진은 마치 경고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래요, 다음에 또 보자고요.”

이제 슬슬 두 국가의 교류는 끝을 향해 다가갔다.

처음엔 긴장감과 서늘함만 잔뜩 느껴지는 이곳이, 지금은 안도감으로 서서히 바뀌는 중이었다.

남한의 무장 군인 역시 슬슬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을 뗀 모습들이 몇몇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도 눈치껏 잘 아는 거다.

이제 상황은 전부 끝났고, 저들이 돌아갈 때라는 걸.

“잠깐만요, 리철진 협회장.”

그런데 그런 군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장길수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뭡네까?”

“왜 나를 지목하고, 꼭 내가 초월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겁니까? 나도 의아해서 일단은 나오긴 했지만. 내가 굳이 직접 나왔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긴 하는데.”

과연 무슨 생각으로 리철진은 한국의 협회장이 직접 받아 가라는 제안을 걸었는지가 궁금했다.

무언가 특별한 용건이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막상 장길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대신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무가 직접 가져가야.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겠디요.”

“아까부터 딴소리, 딴소리 그러는데. 설마, 우리가 받아 놓고서 안 받았다고 시치미 뗄까 봐 그러는 겁니까?”

설마 그런 양아치짓을 할까 봐서 이런 번거로운 조건을 걸었냐는 질문이었다.

“그거 말고.”

그런데 리철진의 뜻은 그것만이 있는 게 아닌 듯했다.

“그럼요?”

“듣자 하니 남조선이 중앙 의회의 상임국이라고 하던데. 러시아와 중국은 회원국이고.”

“그래서요? 북한도 중앙 의회 회원국이 되고 싶다, 이건가요?”

“남조선에서 만든 단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소.”

“그런데 왜 내가 직접 받아 가길 원했던 겁니까.”

“당신이 직접 나가서 초월석을 잘 받았다고, 러시아와 중국에게 답하면 그들이 의심하지 않을 거니까.”

‘그렇구먼?’

아무래도 러시아와 중국이 압박을 가할 때, 북한 측에선 반항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연신 리철진이 말하는 딴소리란, 정말 남한이 딴소리를 하는 게 아닌.

러시아와 중국에게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조치한 것으로 보였다.

“뭐, 사정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알겠습니다. 내가 꼭 직접 가서 잘 받아 왔다고. 사정 잘 말하지요.”

“기칸다고 남조선에게 부탁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마시오.”

리철진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트럭에 올라타 버렸다.

말은 부탁이 아니라곤 하지만, 장길수가 듣기엔 어쩐지 부탁으로 들렸다.

“동무~ 가는 길 조심하시라요~”

장길수는 농담조로 리철진에게 이북 사투리를 섞은 인사말을 건넸지만.

“동무. 지금 그따위 말은 우리와 싸우자는 말밖에 안 되오.”

반면 리철진이 받아들이기엔 조롱식으로 들렸기에, 어설프게 북한의 말을 따라 하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쳤다.

“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말하죠.”

“됐소.”

리철진의 차가운 한마디를 끝으로.

북에서 넘어온 트럭은 다시 그들이 지나왔던 길로 역주행했다.

그리고 이제 장길수의 앞에는 군용 트럭 10대 분량의 포대 자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대장님, 잠시 군인들 손 좀 빌려도 될까요?”

아무리 자신이 헌터라고 한들, 이 많은 양을 한 번에 옮긴 순 없다.

군인을 머슴처럼 부리고 싶진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군인들의 지휘관인 부대장에게 물었다.

“예, 얼마든지요.”

부대장은 흔쾌히 답했지만.

“에이씨…….”

곧장 작업에 동원될 것임을 눈치챈 군인은 저도 모르게 짜증이 먼저 나왔다.

“이 포대 자루들. 지정된 곳으로 옮겨 주시죠. 서둘러야 합니다.”

“네, 맡겨만 주시죠! 자, 부대 차렷!”

부대장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

아이슬란드의 정화석 앞에서 오문성과 나란히 앉은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벌써 로버트 윤과 히로시가 떠난 지 시간이 꽤 지난 상태.

처음에 오문성과 나와는 간단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대화 소재까지 떨어져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게 됐다.

우리가 이렇게 느긋한 여유를 부리는 것도.

정화석을 세우게 되면 크루즈의 총공세가 펼쳐질 거라 예상했건만, 생각 외로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가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그런 사태가 일어났다면, 한국에 있는 장길수가 휴대폰으로라도 미리 연락을 했을 것이며.

장길수가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까운 노르웨이의 페르 협회장이나 아이슬란드의 하들도르 협회장.

둘 중 누군가가 내게 전해 줬을 것이지만, 그런 상황 자체가 없다.

“흠,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꽤 불안한데, 안 그래요?”

오문성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게 물었다.

우리에게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경우, 그 짧은 시간 내에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한 건 아니냐는 조금 지나친 걱정이지만.

크루즈의 위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그것이 지나친 걱정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았다.

“그건 아니겠죠. 만약 그렇다면…….”

난 답하면서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들어간 게이트를 쳐다봤다.

“저 게이트부터 사라졌겠죠.”

다행히 둘이 들어간 게이트는 멀쩡한 상태.

그렇다면 우리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 뜻이다.

“더 궁금하네, 주변엔 악재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데 너무 조용하니까.”

오문성이 중얼거렸다.

주변엔 악재의 징조라…….

하긴, 어떤 악재든 갑자기 닥치는 경우보단 보통은 징조를 보이며 다가오곤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징조 자체가 보이지 않는 상태니, 나 역시도 한참이나 답답하다고 생각했을 때.

[음?!]

갑자기 흑염룡이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집에 혼자 남겨진 강아지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반갑게 반응하는 것만 같은 반응이다.

“왜 그래?”

[게이트!]

흑염룡은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들어갔던 그 게이트를 가리켰다.

“게이트가 왜?”

“왜? 무슨 일 있는 건가?”

정령을 볼 수 없는 오문성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일단 정령이랑 얘기 좀 해 볼게요.”

오문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난 이제 온전히 흑염룡에게 집중했다.

[야, 윤도원! 게이트 잘 봐! 지금 게이트가 작동하고 있잖아!]

“작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애초에 게이트가 무슨 기계라도 되는 걸까.

작동은 또 뭐고?

그렇게 나도 흑염룡을 따라 게이트에 집중했을 때.

휘이이이잉-

“으음?!”

나도 분명히 보았다.

게이트의 입구인 포털.

그것이 회전하며 작동했단 것을.

[그치?! 너도 봤지! 지금 게이트 작동하는 거!]

“그런데 게이트 작동의 뜻이…… 뭐야? 처음 보는데?”

게이트를 그렇게 많이 만들었던 나인데도 방금의 현상은 처음 본다.

게다가 작동이란 말도 지금 흑염룡에게 처음 듣기에 정확히 어떤 의미를 품은 말인지 몰랐다.

[저 게이트랑 연결된 다른 게이트에서 활류를 이용해 이쪽으로 넘어오는 중이란 거지!]

“……아?”

작동이란 건 결국엔 활류가 가동되고 있음이 나타나는 증거.

하긴, 생각해 보면 내가 이 현상을 처음 보는 이유도.

활류를 이용해 다른 게이트로 간 적은 있었으나.

정작 활류와 연결된 도착지의 게이트를 직접 본 적은 없기에 작동이란 현상도 오늘 처음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다.

나와 오문성은 반사적으로 반응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게이트에서 나오는 사람은 둘이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동양인. 그것도 전부 일본인이 하나둘씩,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게 한국인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일본인은 굳이 국적을 묻지 않아도 일본인인 게 훤히 보이기에, 보는 것만으로 일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형! 오래 기다렸죠!”

히로시는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야…… 그건? 네가 무슨 산타 할아버지야?”

히로시도 그렇고, 로버트 윤도 그렇고.

아니, 그 뒤로 나온 일본인 헌터들 역시.

포대 자루를 하나씩 짊어진 채다.

“형! 잘 들어요! 큰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이 터지긴 터졌어요!”

히로시는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터져……?”

아무래도 나와 오문성이 걱정하던 징조.

우리가 아닌 두 사람이 먼저 겪은 모양이다.

히로시는 그렇게 게이트 안에서 겪은 일들을 설명했다.

“……뭐? 벨로스가 나타날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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