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90화 (190/200)

§ 190화. 벨로스의 징조 (2)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제가 직접 북한 측에서 건네는 초월석을 받으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협회장님이 조치한 게 아니었습니까?”

동시에 대통령과 장길수는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서로가 무언가를 했을 거라고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서 얘기해 본 결과.

둘 중 그 누구도 북한 측과 접촉한 뒤에 무언가를 조치한 일이 없었다.

“전 협회장님이 선제적으로 조치하신 줄 알았습니다. 북한이 선뜻 먼저 연락을 해 오며 상당히 협조적인 자세이길래, 이번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벌어진 사태와 연관이 있는 줄 알았죠.”

“아닙니다.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 또한 협회장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서로 무슨 말이냐는 의미 없는 되물음만 계속되던 중.

우웅, 웅.

장길수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누군가에게 문자가 온 모양이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 뒤, 장길수는 문자를 확인했다.

협회 직원으로부터 대용량 문자 한 통이 와 있었고, 이미지 파일도 첨부되어 있었다.

궁금함에 곧장 이미지 파일을 확대하며 확인한 뒤, 장길수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문자라도 본 모양이시군요?”

도대체 어떤 문자이길래, 엄중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자리에서 웃을 수 있는지, 대통령도 궁금했다.

장길수가 확인한 문자는 러시아로부터 온 공문.

협회 대 협회로 온 것이 아닌, 중앙 의회의 회원국이 상임국에게 보내는 일종의 보고서와 같은 메일이었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장식한 장문의 문자는 해당 원본 이미지 파일을 번역한 것들이었다.

메일 내용은 러시아와 중국이 따로 압박을 가해 북한과 길을 연결했으니, 새롭게 뚫린 길을 이용하여 아시아와 붙어 있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대륙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초월석을 한국으로 전부 넘겨주겠단 뜻이었다.

단, 유럽 대륙의 경우엔 한국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정화석이 있는 아이슬란드로 직접 건네주는 게 훨씬 빠르니 아이슬란드와 가까운 곳은 아이슬란드로 직접.

반대로 한국과 가까운 곳이라면 한국으로 넘기겠단 뜻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의도한 것처럼 됐군요.”

중앙 의회 화상 회의 때, 혼잣말로 아쉬움에 중얼거리긴 했다.

북한의 길만 이용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 협회는 그걸 듣자마자 곧장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엔 중앙 의회 결성 당시에 조금의 잡음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고마웠다.

아마도 러시아 입장에서도 한국이 공격당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을 것.

러시아와 한국은 멀리 떨어진 나라라고 할 순 없으니까.

“협회장님이…… 의도한 게 맞군요?”

이제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반응했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대통령께서 저를 친히 여기까지 호출하신 이유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협력 때문입니까?”

“그야 당연하죠. 우리 입장에서야 북한의 길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긴 하나…….”

“그게 어떤 거래의 빌미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신 거군요.”

대통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억측이라 할 수도 없다.

장길수였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대통령처럼 생각할 게 당연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러시아에서 보낸 공문에는 그와 연관이 된 내용이 있었다.

<북한이 이것을 빌미로 따로 어떤 거래를 요청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조치했으니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음.>

러시아와 중국 협회도 이것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이, 한국을 안심시켜 주는 문장이었다.

이에 장길수는 협회 직원이 보낸 문자를 대통령에게 보여 줬다.

해당 내용까지 확인한 대통령은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이게 정말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 맞기나 한 건지.

그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북한이 저렇게 순둥순둥, 고분고분하게 다가오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되겠군요. 중국과 러시아가 나서서 조치한 일이다 보니까요.”

“……중앙 의회 내부에서 결정된 일이군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장길수는 이제 휴대폰을 건네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려하시던 것처럼 큰일이나 어떠한 대가성 거래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일도 말끔하게 해결됐으니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초월석을 최대한 빨리 모아야 해서요.”

“바쁜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저도 워낙에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라서 호출하게 됐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북한 측에서 교류를 위해 제안한 것들. 그럼 전부 수락하면 되는 거죠?”

“어떤 제안을 했죠?”

“초월석을 건네주는 장소는 강원도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트럭이 언제든 오갈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의 통문 하나를 양국이 상시 개방, 초월석을 건네주는 방법도 북한 측 트럭이 남한 측 통문을 통과하는 게 아닌, 남한 측 트럭이 초월석들을 받아 가는 형식으로 교류를 하자고 했습니다. 상시 개방한 통문이 불안하면 경비 부대나 헌터를 배치해도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이다.

남한과 교류를 위해 이런 삭막한 제안을 거는 것 자체가.

하지만 지금이 찬밥 더운밥 가릴 때일까.

최대한 빠르게 정한 뒤, 행동으로 곧장 옮겨야 했다.

“네, 특별한 조건은 없는 듯하니, 그대로 수락하면 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부도 곧장 협회에 맞춰 움직이지요.”

“그럼, 저 먼저 지정 장소인 강원도로 가 있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장길수는 여유로운 인사를 남긴 뒤,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그가 대통령에게 남긴 인사는 여유로웠지만, 행동은 조금 조급했다.

‘일이 이렇게 풀린 마당이니, 기회를 잡아야지.’

지금은 한시가 급한 때라고 생각했다.

일단 프리즘의 영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꽉 막힌 세계와의 교류에 활로가 생긴다.

활로가 생기면, 비단 아시아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 국가의 헌터를 한곳으로 모을 수 있으며, 크루즈를 향해 총반격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총반격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크루즈와의 전쟁. 어쩌면 빨리 끝낼 수도 있어.’

그 기대를 품으며 장길수는 급히 강원도로 떠났다.

***

그렇게 도착한 강원도.

초월석을 전달받기로 지정한 지역은 강원도 중에서도 철원이었다.

철원 특유의 서늘하고도 묵직한 공기가 철원 일대에 감돌았다.

이미 철원 일대에 주둔한 군부대에 모든 상황이 공유된 듯했다.

군인들은 철저하게 무장된 상태로, 경직된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북한 쪽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1차적으로 보내는 초월석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초월석 전량과 중국, 러시아에서 보내는 일부 초월석.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엔 영토가 너무 넓어, 가지고 있는 초월석 전부를 보내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 탓에 북한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초월석을 우선적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장길수도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북한 측의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던 중.

군용 무전기가 울렸다.

치이이익.

-북한 측 GP에서 MDL 방향으로 접근 중인 군용 트럭 10대. 트럭 10대라고 알림.

북한 측 GP.

즉, 북한의 최전방인 GP란 곳에서 남한을 향해 진입하는 중이다.

MDL은 군사분계선의 약어.

본래 군사분계선이라 하면, 양국의 군인 병력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지만, 이미 이 부분은 양국이 합의를 했기에 공개적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10대라…… 상당한 숫자네.”

장길수가 중얼거렸다.

군용 트럭으로 10대면 상당한 물량이다.

개수로 치자면…….

도통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허나 분명한 것은 아이슬란드에 있는 윤도원이 상당히 만족스러워할 만한 양이라는 것.

그리고 철원으로 오는 길에 일본에서도 소식이 들렸다.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크루즈 전용 게이트 하나를 정화했으며, 그 게이트의 위치는 일본 지바현의 바로 옆.

이미 크루즈의 영역이 태평양 바다까지 뻗었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과 한국 사이의 바다는 아직 안전하단 거다.

이 적기를 이용해 북한에서 받은 초월석을 그대로 일본으로 보낸다.

그리고 프리즘의 영역을 넓혀, 종전을 위한 반격을 하겠노라고 다짐했을 때.

“저기…… 협회장님, 혼자 나오셨는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북한과 교류하기 위한 지정 장소의 부대장이 긴장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길수가 다른 경호 헌터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온 것을 보고 걱정하는 중이었다.

“네, 괜찮아요.”

“그래도 트럭 10대 분량이면…… 북한 측 병력도 타고 있을 텐데, 그중 헌터가 몇이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진 않을걸요?”

이미 러시아와 중국이 확실하게 조치를 해 놓은 터라, 북한이 아무리 뒤가 없다고 해도 그런 짓까진 하지 않을 거다.

물론, 이 사실은 엄연히 국가 기밀이기에 부대장이라고 한들, 군인들에게는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

“확신이 강하신 건지…… 북한을 믿으시는 건지…….”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만에 하나. 북한이 정말 이상한 짓 해도 상관없습니다.”

“예?”

“제가 보기보다 조금 강하거든요. 북한의 파릇파릇한 젊은 헌터 몇쯤은 가뿐하게 제압할 정도 되니까 혼자 나오지 않았겠어요?”

“아…… 네, 그러셨군요…….”

부대장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수다도 잠시.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군용 차량 특유의 요란한 엔진음이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북쪽에서부터 들려 오는 소리였다.

“벌써 도착인가요?”

“아, 네. 이곳은 북한군 GP와 떨어진 거리가 고작 500m쯤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군요.”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면, 벌써부터 엔진음이 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엔진음을 시작으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북한 측의 군용 차량.

일렬로 질서 정연하게 트럭들 10대가 전부 남한 측 통문 앞에 모여들었다.

트럭이 정차하자, 남한의 무장한 군인들의 손가락은 각자의 총기 방아쇠 쪽으로 향했다.

한 치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끼이익!

둔탁한 철 소리를 내며 한 차량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내리는 한 남자.

새하얀 북한군 장교의 정복을 입은 남자였다.

“거…… 남조선 아새끼들은 손님맞이를 총알로 한단 말이오?”

그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목소리였다.

오히려 총기를 제대로 견착한 남한군을 향해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저 사람이군, 북한의 헌터 협회장.’

반면 장길수는 그의 여유를 보고 단번에 파악했다.

아무리 담력 높은 북한군의 군인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떼로 총기로 무장하고,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걸린 상태면 긴장하기 마련.

실수로라도 누가 격발하진 않을까, 이런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하얀 정복의 남자는 오히려 총을 장난감 취급하듯 했다.

‘그게 뭐겠어. 총알 따위는 쉽게 피하거나 없앨 수 있는 능력자니까 그렇지.’

즉, 헌터라는 뜻이다. 총을 보고도 절대 위축되지 않는 이유가.

“남조선의 협회장 동무는 누구요?”

“협회장을 찾기 전에, 본인 소개를 하는 게 먼저지 않나 싶은데.”

장길수의 답에 북한 측 협회장의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진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북한 측 협회장도 그 답을 한 사람이 한국의 협회장이란 걸 아직 모르는 상태.

서로 정체나 이름을 모른 채로 시작된 작은 기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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