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86화 (186/200)

§ 186화. 영지전 (4)

[당연하지! 이 방법은 말했듯이, 정화석이 있어야만 가능해. 정화석의 프리즘을 이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가 침투할 게이트에선 크루즈와 싸울 일이 없어질 거라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이미 정령들만 아는 방법이다.

아무리 히로시, 로버트 윤이 정령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들.

윤도원처럼 드래곤에게 정신의 가호를 받아, 기억을 공유받은 적도 없다.

그렇기에 보다 확실히 알고 싶은 것뿐이었다.

[크루즈는 프리즘에 닿으면 소멸하잖아? 그러니까 너희가 크루즈랑 싸울 일은 없다는 거지. 우리가 연결할 게이트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게이트. 그 게이트에 프리즘을 주입시켜, 우리가 안전한 구역을 확보한 뒤에 해당 게이트로 넘어가는 방식이니까.]

“확실히 알겠군, 정화석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 것도.”

묵묵히 듣고 있던 로버트 윤이 답했다.

정화된 아이슬란드의 게이트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한국과 가까운 게이트로 활류를 통해 길을 연결한다.

길이 연결되었다고 해서, 당장 해당 게이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프리즘만 흘려보내며 게이트가 상당 부분 정화되길 기다린 다음.

안전 구역이 확실히 확보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넘어갈 계획인 것이었다.

“그럼, 결국 활류라는 게 원래는 시오스의 게이트에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정화석의 프리즘이 있다면, 크루즈의 게이트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지!]

모든 의문이 풀린 듯,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법은 확실히 안전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지.

“그래서 도원이가 우리만 보냈을 때도 위험하단 소리를 한 적이 없는 거로군.”

크루즈는 프리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신들의 영역을 잃는다.

이 방식은 프리즘만 먼저 보낸 뒤 정화가 원하는 수준까지 진행이 된 다음 들어가는 방법이기에, 확실하게 안전한 방법이 맞았다.

“뭐 해, 얼른 시작하지 않고.”

로버트 윤이 자신의 정령, 오르문에게 말했다.

안전하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오르문이 먼저 게이트의 출입문인 포털로 다가가자, 오리가미가 뒤따랐다.

[꽤 어려운 일이니까. 같이해야 할 거야.]

그렇게 두 정령은 프리즘의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

북한 사냥꾼(헌터) 협회.

띠리리리. 띠리리리.

정말 오랫동안 울린 적이 없던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전화기는 협회장실에만 있는 전화기로, 특정 협회와 연결된 전화기였다.

바로 중국과 러시아.

세 국가가 은밀하게 무언가를 결정할 때만 사용하는, 비상 전화기나 다름이 없었다.

협회장 리철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저 전화기를 바라만 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기래?”

이 전화기는 장장 몇 년이나 울린 적이 없는데.

그 몇 년의 침묵을 깬 순간이다.

러시아와 중국, 둘 중 어느 한 곳에서 필요에 의해 지금 북한 사냥꾼 협회를 먼저 호출하는 중이었다.

삑.

의아함을 가지며 버튼을 누르자.

-오랜만이야, 협회장.

다름이 아닌 중국 협회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중국 협회장은 모국어인 중국어로 말했지만,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유창한 리철진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사냥꾼 협회장이란 자리에 오르려면, 두 나라의 언어를 알고 있어야 했으니까.

“몇 년이나 조용하던 전화기가 무슨 일입네까?”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상황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일본과 남한이 상임국으로 있는 중앙 의회의 회원국이 된 것.

그런 중국이.

갑자기 먼저 연락을 취해 오니, 경계심이 피어올랐다.

중앙 의회의 회원국이 되었다는 건, 남한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북한과 우리 중국의 국경을 이어라.

통보식으로 내놓은 그의 한마디.

“무슨 뜻입네까.”

리철진은 근엄한 얼굴로 답했다.

상대에게 얼굴이 보이는 상태가 아니지만, 결코 달갑지 않은 지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미 상황 잘 알고 있지 않나? 지금 세계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말야.

“괴뢰 미국이 멸국했다는 소식 말입네까? 축제를 벌여야 할 소식 아니오.”

미국 국토 3분의 2 소실.

북한 입장에서야 호재 중 호재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직접 그 상황을 거론하며 국경을 이으라고 지시했으니.

국경을 잇는 이유는 분명 미국을 돕는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 판단해, 반항적인 반응을 보였다.

-멍청하긴, 우리도 다 죽게 생겼는데. 그런 고집 부릴 땐가?

“……고집이라니, 무슨 말이오.”

-하긴, 북한은 아무것도 모르지. 잘 들어라. 크루즈라는 존재로 인해서 세계의 모든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힌 상태다.

“끄루……즈?”

크루즈라는 존재에 대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다.

따라서 중앙 의회 회원국부터 순차적으로 크루즈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정보도 얻었다.

하지만 폐쇄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인 북한은 지금 처음 듣는 중이다.

-설명하자면 길어. 간략하게만 말하지.

그렇게 중국 협회장은 크루즈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 쿠르즈라는 것들이, 괴뢰국을 멸국시켰다, 이 말이디요?”

-그렇다.

“기칸데, 우리 공화국에게 어째서 국경을 이으란 지시를 내린단 말이오?”

-막힌 건 하늘길과 바닷길. 육로는 이용할 수 있다. 우리에겐 효력을 다한 초월석을 모아서 그걸 한국으로 보내야 하거든.

중국 협회장은 이미 중앙 의회 회의에서 한국 협회장 장길수에게 들었다.

중앙 협회장 매튜는 크루즈와 협력.

그런 매튜는 한국을 다음 공격 대상으로 지정했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고.

단,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크루즈에게 대항하기 위한 시오스의 수단인 정화석이란 것을 아이슬란드에 세운 상태.

문제는 현재 정화석이 내뿜는 프리즘의 영역이 너무나도 좁은 상태이기에, 가진 초월석 전부를 주입해야 한다는 상황을 공유받았다.

장길수는 그 사실을 전하면서, 아쉬움에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육로가 이어진 북한을 이용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분명 한국어로 말했지만, 통역관이 그 부분을 빼놓지 않고 통역했기에 중국 협회장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협회장이 중국 협회장에게 북한의 문을 열어 달라고 지시나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중국 협회장이 생각하기에도.

북한의 길만 연결이 된다면. 이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대응이 될 거라 믿어, 자발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내래…… 지금 남조선을 위한 일을 하란 거요?”

하지만 역시나.

북한 협회장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봐, 협회장. 잘 생각해. 지금 크루즈는 한국을 향해 가고 있어.

“잘된 거 아니오? 우리 공화국과는 상관없는 일입네다. 남조선의 땅덩이가 불바다가 되든, 피바다가 되든. 혁명적으로 불타길 바랄 뿐이오.”

-멍청한 게. 여전히 우리 속에 갇혀 있기만 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러던 중, 다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바로 러시아 협회장.

“…….”

그 순간, 리철진 협회장은 바짝 긴장하게 됐다.

러시아는 북한에게 있어, 거역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냥꾼 육성 기관, 지식 등등.

전부가 열악하고 참담할 정도의 기반을 가졌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에게 정식 던전이 있던 시절.

북한 내부도 면적에 비해 꽤 많은 양의 던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던전만 많으면 무엇하리.

정작, 그 던전 정복에 나설 훌륭한 사냥꾼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그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준 나라가 바로 러시아.

예로부터 러시아와 외교적인 관계는 나름대로 돈독했기에, 다른 국가들의 눈을 피해서 슬쩍 도와주곤 했다.

사냥꾼을 어떻게 육성하는지.

사냥꾼의 능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던전 속 괴물들은 또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그 정보 전부를 공유해 준 덕에, 북한은 자력으로 던전을 정복할 수 있었고, 던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이력이 있다.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북한은 러시아를 아버지의 나라처럼 여겼다.

그런 러시아 협회장에게서 지금, 불호령이 떨어지려고 한 순간이기에, 몸이 나무처럼 바짝 굳었다.

-한국으로 향한단 뜻이 뭔지 모르나? 한국도 미국, 캐나다와 똑같은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압니다.”

-그게 한국으로 끝이 날까? 너희 북한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지. 북한은 한국과 땅이 이어진 나라 아닌가? 중간에 바다도 없이.

“…….”

-그렇게 되어, 너희 북한도 국토를 일게 되면. 너희 수령이 참 좋아라 하겠군. 자기네 땅은 끔찍이도 아끼던 수령 아니던가?

“위대한 수령님을 욕보이지 마시디요……!”

-시끄러워. 이미 러시아 정부도 움직였다.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는 중이니까, 국경 열어라. 그리고 중국은 물론, 한국과 연결하라.

러시아 협회장의 단호한 지시였다.

-이 국제적인 난관을 헤치기 위해선, 북한에서 길을 잇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니 열어라.

“기카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 있단 말입네까……!”

러시아가 정부까지 동원하여 외교적 압박을 가할 정도로 강격하게 나온다면.

따라서 아무리 거부해도, 결국, 러시아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단 것을 잘 알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거역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그 일을 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얻겠다는 일념으로 건넨 질문이었지만.

-없지. 이 와중에도 무언가를 얻을 생각을 한 건가? 염치가 있어야지.

러시아 협회장은 여전히 단호하게 답했다.

마치, 처음부터 길을 잇는 것을 빌미로, 어떠한 조건의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처럼.

즉, 이것은 조율이나 협상이 아닌, 일방적인 명령이었다.

리철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고, 거역할 수 없는 상대지만…….

그의 자존심은 지금 이번 한 번.

거역을 해 보라고 살살 유혹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깃털로 콧등을 살살 간지럽히듯.

신경이 절로 날카로워질 정도의 유혹이다.

“우리 위대한 공화국이! 어째서 남조선을 돕는 하찮은 일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결국, 그의 반항이 폭발한 순간.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너희가 자원 뻥튀기 기술을 비롯해, 던전을 국토 대비 다량 보유했음에도 여전히 온전할 수 있는 게 누구 덕인지는 잊은 모양인가?

러시아 협회장의 한마디.

그 순간, 잠시 가출했던 리철진의 이성이 곧장 제자리로 복귀했다.

“그건……!”

-우리, 그것도 러시아 덕분 아닌가?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사실이니까.

-이거 하나만 분명히 말하지. 아,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은, 어차피 러시아 정부가 북한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으니까 새겨들어.

“…….”

-이번에 협력하지 않으면, 너희는 앞으로 잃을 것만 있을 거다. 무언가 얻기 위해 협력하라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기억해라.

잃지 않기 위해 협력해야만 한다는 말.

단순한 겁주기가 아니라, 진심이란 것은 확실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리고, 길이 연결되면 협회장 너는 네 재량으로 헌터들을 전부 배치해 중국, 러시아에서 보낸 초월석을 안전하게 한국의 국경까지 넘기도록 해라. 어차피 길은 곧 연결될 거니까. 너희들도 잃는 건 두렵잖아? 안 그래?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리철진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이만 끊지. 우리도 바쁜 상황이라서 말야.

뚝.

러시아 협회장이 먼저 일방적으로 끊은 뒤.

뚝.

중국 협회장도 따라서 통화를 끊었다.

띠리리리!

그 직후,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

“……수령 동지.”

그와 연결된 직통 전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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