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영지전 (3)
-한국에서? 중앙 의회 전체가 아니라?
내 답이 마치 한국만이 할 일이 있다는 것처럼 들렸는지 장길수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네, 어차피 매튜 협회장은 한국이 목표일 겁니다. 이미 녹음 파일 다 들었다면서요? 매튜 협회장이 노리는 건 접니다. 다른 국가들은 그나마 한숨 돌렸을 거고요.”
-왜 너를 노리지…….
“매튜 협회장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으나, 크루즈와 일종의 계약식으로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 같아요.”
-계약식……? 크루즈는 사람을 보기도 전에 죽이고 보는데, 왜 매튜 협회장만?
크루즈에 의해 죽은 사람은 이미 셀 수도 없이 많다.
제대로 집계가 되지 않을 정도의 희생자가 펼쳐진 상황.
게다가 매튜 협회장이 있던 미국도 그 희생에 포함이 된다.
그런데 유독 매튜만 계약식으로 목숨을 건졌단 것은.
크루즈가 그에게만 일종의 혜택을 주었단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것까진 저도 몰라요. 저도 겨우 녹음 파일 하나만 듣고 추측한 거라 어쩌면 틀린 예상일 수도 있지만…….”
-아니, 틀리진 않았을 거야. 네 말대로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에 협력한 건 확실하니 미국에서 살아남았겠지. 그저 우린 왜 매튜 협회장만 크루즈에게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인지가 궁금한 거니까.
매튜 협회장은 제 입으로 직접 크루즈와 대화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맞다.
-그래, 우리가 뭘 조치하면 되지?
하지만 매튜 협회장이 과연 크루즈와 어떤 결탁을 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볼 여유 따윈 없다.
장길수는 곧장 닥쳐올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곧 한국으로 갈 거예요. 언제 도착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이 도착하고 나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건가?
“네, 그사이에 한국 협회는 제 부서 있죠?”
-양산부?
“네, 양산부요. 400개가 넘는 게이트를 부랴부랴 없애면서 나온 초월석이 있어요. 그 초월석 미리 모은 다음, 히로시와 로버트 윤에게 전해 줘요. 그거면 됩니다.”
-응……?
곧 한국에게 닥쳐올 위기는 캐나다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정도로 거대한 재앙이다.
그런데 그런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기에 조금 놀란 듯이 보였다.
“제가 없는 한, 매튜 협회장 못 막아요. 그런데 전 지금 아이슬란드에 발이 묶인 상황이고요.”
-발이 묶이다니. 무슨 말이야, 그게? 히로시랑 로버트 윤은 한국으로 갈 거라고 말했잖아? 둘은 자유로우면서 왜……?
저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누구는 활동이 자유롭고 누구는 아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 이유.
난 그제야 아이슬란드를 탈환하고, 무엇을 했는지 설명했다.
“잘 들으세요. 아이슬란드에 정화석이란 걸 만들었어요.”
-정화석?
그렇게 정화석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왜 내가 아이슬란드에 이걸 만들었는지, 설명을 전부 마쳤다.
-그래서 네가 발이 묶였다고 한 거로구나?
“네, 크루즈들도 이 정화석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 정화석이 세워졌다는 걸 알고 어떻게든 이걸 저지하기 위해 움직일 거예요. 그 정화석을 지켜야 하는 게, 제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고요.”
-효력을 다한 초월석을 주입하면, 그 프리즘의 영역이 점차 넓어진다……. 아니지,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그럼 중앙 의회 회원국들이 가진 초월석도 전부 한국으로 모아야 하는 거 아냐?
크루즈가 무서운 이유는 크루즈 자체의 강함도 있지만, 크루즈가 등장할 때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메테오 때문이다.
프리즘의 영역이 점차 넓어져, 궁극적으로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가 된다면.
크루즈는 물론, 메테오까지 당장 우리의 머리 위에서 떨어질 일은 없으니 확실한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셈이다.
분명 장길수는 그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시잖아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아, 하긴…… 크루즈들 전용 게이트가 이미 지구 바다에 넓게 퍼져 있으니…….
특히나 해외에 있는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선, 비행기건 화물용 선박이건.
둘 중 하나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결국 바다를 건너야 가능한 일.
가지고 오는 도중에 크루즈의 공격을 받고 잔해도 남기지 않은 채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제 세계 모든 공항이 폐쇄될 거야. 어디 공항만 그럴까? 항구까지 폐쇄하기로 했어.
“크루즈 때문인가요?”
-응, 미국과 캐나다의 국토가 소실될 만큼의 피해이고, 크루즈의 본거지가 지구상에 있는 바다란 걸 안 이상. 평화롭게 운행할 수 없으니까. 이미 실종된 비행기나 배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는 중이더라고.
처음 플로리다 해협에서 시작해 대서양까지 뻗은 검은 소용돌이를 봤을 때만 해도 인류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그게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란 것도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상황 달라졌다.
무엇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희생을 더 유도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중앙 의회에서 세계 모든 공항과 항구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단 뜻이었다.
“잘하셨어요. 그런 상황까지 있는데 세계에 있는 초월석을 한국으로 모으는 일은 어렵죠. 대신, 한국에 있는 초월석만이라도 꼭 히로시와 로버트 윤에게 전해 주세요. 그것을 시작으로…….”
-점자 영역을 넓혀서 영역이 닿는 국가로 이동, 초월석을 회수한 뒤에 정화석에 주입하겠다?
“정확합니다.”
-좋아, 그럼 일단 난…… 회원국부터 협력 요청할게. 이 계획은 중앙 의회에 공유해도 되는 거지?
“그러라고 말한 겁니다.”
-그래, 알겠어. 도원이 네가 없애며 나온 초월석 말고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효력이 다한 초월석은 한국 다른 곳에도 있을 거니까, 그것까지 전부 싹싹 긁을게.
“모아서 안 줘도 돼요. 모이는 대로 계속 주면 됩니다.”
그 정도까지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떻게든 지양해야 한다.
따라서 당장 400개 정도만 주입해도 효과는 분명히 있을 거라 믿었다.
-알겠다, 하…… 이럴 땐 북한의 존재가 참 걸림돌이군. 북한의 육로만 이용할 수 있으면, 대륙이 이어진 남아프리카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초월석 전부 운반할 수 있는데.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나 역시 아쉽긴 하다.
이동 수단에 꼭 비행기와 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육로라면, 가장 가까운 나라부터 시작해, 먼 나라까지.
순차적으로 초월석을 운반할 수 있으니까.
“북한 설득에 시간 오래 걸릴 겁니다. 일단은, 그렇게만 조치해 주세요. 프리즘의 영역이 조금 넓어진다면. 저도 한결 자유로워지니까요.”
-알겠다! 무슨 일 생기면 곧장 다시 연락하마!
장길수는 그 말을 남기며 통화를 끊었다.
당장 할 일이 몇 개 되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수에 한한 일.
전부 큼직한 일들이고, 신경을 잔뜩 쏟아야 하기에 정신이 없을 거다.
휴대폰을 주머니로 넣은 뒤. 난 정화석을 바라봤다.
정화석 뒤에 펼쳐진 바다.
그 속에 있는 게이트로 이미 히로시와 로버트 윤이 들어간 뒤다.
“다들…… 잘하겠지?”
-오리가미랑 오르문이 있으니까 걱정 없을 거야! 그 녀석들 그래도 제법 강한 정령인데!
흑염룡은 나를 위로했다.
***
로버트 윤과 히로시는 무사히 정화된 게이트 속으로 들어왔다.
게이트 속의 던전은 베테랑인 그들도 처음 보는 형태였다.
온통 어두운 곳이 있는 반면, 오로라처럼 프리즘이 물결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보고 있자니 남극이나 북극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어두운 밤하늘에 물감이 퍼진 듯 일렁이던 현실의 오로라를 보는 듯했다.
“던전이…… 신기한 형태네.”
특히 로버트 윤은 히로시보다도 훨씬 많은 던전을 경험한 사람.
그런 로버트 윤이 말했다.
[정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아서 그래. 저 오로라는 정화석의 프리즘이니까.]
그의 정령 오르문이 답해 주었다.
“정화가 완벽히 되지 않았다는 건,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그건 아니야. 위험한 상태였으면,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크루즈들이 덮쳤겠지. 그런데 보다시피.]
“텅 빈 던전이군…….”
텅 빈 던전은 한 번 경험한 적이 있기에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던전이 비었다는 건?”
[크루즈들이 이 던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거지.]
던전은 처음, 인류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포악한 몬스터들이 우글대는 죽음의 장소.
그러나 시오스건, 크루즈건. 그들에게는 던전이 일종의 병영 개념인 듯 보였다.
인간의 군대도 전투 병력인 군인들만 모여서 사는 병영이 있고, 병영을 옮기는 일도 꽤 자주 일어나니까.
던전이란 것은 결국엔 시오스의 몬스터나, 크루즈들에겐 임시 숙소 용도까지 할 수 있는 병영인 셈이다.
“자, 그 활류를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어?”
[일단 기다려야 해.]
“기다려……?”
[하늘에 뜬 저 오로라처럼 보이는 프리즘. 보이지? 저게 포털까지 닿아야 해. 그래야 완벽한 정화가 이루어져.]
로버트 윤은 즉시 프리즘을 다시 확인했다.
확실히, 오르문과 대화를 하는 이 순간에도 아주 미세하지만 프리즘의 영역은 조금 더 넓어진 상태.
그 프리즘이 점점 뻗어, 포털까지 닿아야만 비로소 활류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단 뜻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군. 여기 게이트는 그렇게 정화가 됐다고 치지만……. 우린 한국으로 가야 해. 한국엔 정화된 게이트가 없잖아? 그건 어떻게 하지?”
[어떡하긴, 억지로 길을 연결한 뒤, 프리즘을 넣어야지.]
“……말로만 들었을 땐,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렇다고 해서 복잡한 과정은 아니야. 여기 게이트가 완전히 정화되고 나면,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게이트로 우리가 길을 연결할 거지.]
“가장 가까운 게이트는 크루즈 전용 게이트밖에 없을 텐데……? 그게 가능해?”
[정화석이 있으면 가능해. 우선 길만 연결해 두고, 연결한 통로로 프리즘을 침투시켜 야금야금 정화를 시작하는 형태니까. 그렇게 정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우리가 비로소 넘어가는 거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군.”
활류를 이용할 때, 이전처럼 그들의 몸이 먼저 연결한 게이트로 가는 것이 아닌.
정화석의 프리즘만 먼저 보내고, 연결한 게이트를 일정 수치 이상 정화를 시작하겠단 뜻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히로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 정화법을 크루즈들도 알 거 아냐? 이미 시오스의 세계에서 한 번 당한 적 있으니까.”
[그렇지?]
오르문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겠어?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하지 않을까?”
현실적인 히로시의 질문에 오르문은 뭐라 답하지 못했다.
히로시의 질문은 어차피 곧 일어날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게이트 안에서 크루즈와 싸우게 되는 거 아냐?”
[그건 아니야. 그런 방식이었다면, 윤도원이 너희 둘만 보내려 했을 때 나와 오리가미가 나서서 뜯어말렸겠지.]
“역시, 무슨 방법이 있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