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영지전 (2)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
적어도 나는 매튜 협회장과 실제로 대화를 나눈 적도 몇 번이나 있다.
그런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였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나에겐 대정령 흑염룡이 있으니까.
분명하게 인간인 그가, 어떻게 크루즈라고 확신하는지, 도통 영문을 몰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인간은 분명히 인간이잖아. 그런데 무슨 갑자기 크루즈라는 거야.]
크루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흑염룡까지 저런 반응을 보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협회장님, 지금 제 정령이랑 같이 듣고 있는데. 정령도 이해를 못 하는 중인데요……?”
흑염룡까지 이해를 못 하는 현상이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어째서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라는 사실이 알려진 걸까?
어떤 오류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도원아…… 나도 처음에 이 소식 들었을 때 너랑 똑같은 반응이었어!
장길수가 직접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근거 없는 사실은 아니란 뜻.
장길수와 통화를 하는 그 순간, 휴대폰에서 작은 진동이 일렁였다.
마치 문자가 온 것처럼.
-방금 내가 너한테 캐나다 협회장이 중앙 의회로 보낸 녹음 파일 보냈어! 그거 듣고 판단해! 그리고 확실하게 인지해야 할 건. 캐나다는 완전히 지도상에서 사라졌어! 어디 나라뿐이겠냐? 캐나다인 전부가 한순간에 바다에 수장됐다고! 매튜 협회장 혼자서 벌인 일이야!
캐나다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어떻게 매튜 협회장 혼자서 그런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일단, 녹음 파일부터 확인하고 다시 연락 줘. 중앙 의회도 너의 생각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 생각을 기다린다는 뜻이…… 뭐죠?”
-우리로서는 이 상황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야. 너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뒤, 행동 지침을 내려 달란 뜻이다.
갑자기 캐나다에서 일어난 변수.
중앙 의회는 크루즈에 대해 정보가 지극히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런 중대한 사실을 알고도, 턱없이 부족한 정보력 때문에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몰라 완전히 마비된 상태.
괜히 잘못된 조치로 인해 상황을 더욱 악화하게 만들진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위성사진도 첨부했어. 그것도 확인해.
“알겠어요. 금방 다시 연락드리죠.”
그렇게 통화를 끊은 뒤, 문자를 확인했다.
일단 장길수가 보낸 위성사진부터.
“…….”
사진을 확인한 나와 흑염룡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본래 캐나다가 있어야 할 자리.
그곳은 거짓말처럼 바다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바닷물의 색깔마저 푸르지 않고, 크루즈를 대표하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흑염룡, 이거 확실히 이상하지?”
[응, 중앙만 저렇게 텅 비어 버린 듯이 사라졌다는 건. 크루즈가 의도적으로 없애 버린 게 맞아.]
캐나다의 왼편에는 알래스카가 있고.
밑으로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이미 크루즈에게 최초로 공격당한 곳이기에, 국토의 3분의 2가 소실된 상태.
그런데 캐나다는 정말 지우개로 지워 버린 것처럼 아예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캐나다와 붙어 있는 알래스카의 땅은 온전한 상태인데 말이다.
이어서 난 장길수가 보내 준 녹음 파일을 틀어 봤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 내 주위에 인간이 없으면, 크루즈도 포섭할 다른 인간을 찾지 못하게 되는 거잖아?
[이 목소리……!]
분명히 매튜 협회장의 목소리가 맞다.
그런데 크루즈가 인간을 포섭해?
포섭이라는 게, 크루즈가 인간을 조종할 수 있단 뜻인가?
파일을 더 들어 봤다.
-좋아, 캐나다 협회장. 이렇게 하자. 캐나다는 현 시간부로 크루즈에게 공격받은 거야.
-그 얼굴은……!
캐나다 협회장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생생히 녹음되었다.
“그 얼굴……?”
유독 매튜 협회장의 얼굴을 보고 놀란 듯이 보이는 한마디.
그렇다면 매튜 협회장의 얼굴을 보고 놀랐단 건데.
사람 얼굴 보고 저렇게 반응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걸 듣고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라고 확신한 거구나, 중앙 의회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매튜 협회장이 제 입으로 직접 크루즈가 인간을 포섭한다고 했으니.
매튜 협회장이 자의일지 타의로 인해서일지 모르지만, 크루즈에게 포섭됐다는 건 확실해졌다.
-캐나다도 사라지고, 아시아 대륙까지 공격을 강행하면. 윤도원 그놈이 오기 싫어도 나한테 와야겠지. 그렇지, 크루즈?
이어진 매튜 협회장의 목소리.
[……크루즈랑 대화를 하고 있어.]
마치 나와 흑염룡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매튜 협회장이 크루즈와 대화를 하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남았다.
-자, 캐나다도 수장되거라.
뚝.
그렇게 녹음 파일은 끝이 났다.
“흑염룡. 설마…… 크루즈도 너희 시오스처럼 인간과 계약 형태가 가능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첫째, 비록 영상이 없는, 녹음 파일이지만 상황이 어떤지 대충 짐작이 갔다.
캐나다 협회장과 매튜 협회장 외에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소음도 없는 걸 보면, 둘이 독대하던 상황.
게다가 목소리가 이렇게 선명할 정도라면.
서로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웠단 뜻이 된다.
그런데도 캐나다 협회장은 크루즈를 보지 못했다.
만약, 크루즈가 자신의 앞에 있다면. 애초에 독대하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결정적으로. 캐나다 협회장이 “그 얼굴은……!”이라며 그제야 깨달은 것이 그 증거다.
[그럴 리가 없는데……. 크루즈가 인간과 계약 형태…….]
하지만 흑염룡도 이 부분에 대해선 확답을 하지 못했다.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크루즈가 인간계로 넘어온 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전부터 크루즈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고 해도, 시오스를 상대로 매튜 협회장처럼 계약식의 포섭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 그 능력을 꺼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크루즈에게 있어 시오스는 그저 죽이기만 하면 되는 하찮은 존재로 보였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매튜 협회장은 분명하게 크루즈와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고, 그 목표는 나.
아시아 대륙까지 공격을 강행하면, 내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중이다.
그 이유 역시 간단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매튜 협회장에게 크루즈가 있는 것처럼, 나에겐 흑염룡이 있다.
흑염룡이 어디 일반 정령인가?
무려 대정령.
즉, 내가 오면 대정령도 함께 올 것이고. 그 자리에서 승부를 확실하게 지은 뒤 시오스를 지배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흑염룡, 매튜 협회장에게 있는 크루즈 말야.”
[응.]
“혹시…… 벨로스인가?”
[그건 모르겠어……. 벨로스는 아직 인간계로 넘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흑염룡은 유독 자신이 없었다.
크루즈는 이제 우리가 아는 정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난 슬쩍 정화석을 쳐다봤다.
“어쩌면…….”
불안한 마음에 나온 중얼거림.
정화석을 세우고 프리즘의 영역을 점차 넓히게 된다면.
크루즈는 별수 없이 이곳으로 올 것이란 계산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인간과 계약 형태로 공존하는 능력까지 확인된 크루즈라면,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녹음 속에서 매튜 협회장은 분명하게 다음 목표를 알려 왔었다. 아시아 대륙, 바로 그곳이 매튜 협회장과 크루즈의 다음 목표일 것이다.
캐나다 왼편에 존재하는 알래스카.
그 알래스카만 넘으면 바로 러시아와 닿고, 그대로 밑으로 내려오면 중국에 도달할 수 있다.
아니, 굳이 육로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지구의 바다란 바다에는 모조리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가 깔린 상태.
알래스카에서 바다를 횡단하면 일본에 도착할 수 있고, 일본과 한국은 상당히 가깝다.
매튜는 분명히 한국을 가장 먼저 공격할 것.
그는 물론, 그와 함께 있는 크루즈가 원하는 게 바로 나니까.
“흑염룡, 벨로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날아다니는 검 말고는 없는 거야?”
[일단은 그래. 너도 드래곤 님의 기억을 봐서 알잖아? 크루즈들 생긴 게 다 똑같다는 거.]
“……그렇지.”
결국, 내가 드래곤의 기억 속에서 봤던 그 검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구별법이란 소리다.
“그래도 일단은 다행인 것 같네. 캐나다 협회장의 목소리에서 검이니 뭐니 그런 소리는 안 나왔으니까.”
따라서 매튜 협회장에게 있는 크루즈는 일반적인 크루즈라고 보는 게 옳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마지막 순간까지 중앙 의회에 녹음 파일을 보낸 캐나다 협회장.
이제 캐나다라는 나라는 물론, 그 국가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까지 전부 바다에 수장되었다.
정말 눈 감았다 떴을 뿐인데, 갑자기 죽어 있는.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잠시 기린 뒤, 장길수 협회장에게 받은 정보를 히로시, 로버트 윤, 오문성에게까지 공유한 뒤였다.
“매튜 협회장…… 명색이 중앙 협회장이란 사람이 고작 한다는 짓이 크루즈와 협력……?”
이 사실에 가장 격분한 사람은 역시 로버트 윤.
속내가 그렇게 새까만 사람 밑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일한 자신을 탓하는 듯했다.
“그런 생각 버리고요.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대비라고요. 두 사람이 나서 줘야겠어요.”
난 히로시와 로버트 윤을 가리켰다.
“우리 둘이?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매튜 협회장은 곧장 한국으로 갈 거예요. 저를 유인하기 위해서요. 한국에 가서 할 짓은…….”
“안 봐도 뻔하지, 캐나다에서 벌인 일을 그대로 재현하겠지.”
“네, 제 생각도 같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맡기고 싶은 일은?”
“당장 급한 건 한국에 있는 초월석. 그걸 공수해 오는 거죠.”
400개가 넘는 초월석이 한국에 있다.
게다가 마침 히로시와 로버트 윤은 정령의 주인들.
그렇기에 활류를 사용할 수 있어, 정화된 게이트를 이용해 한국으로 도달하기에 무리가 없을 거라 판단한 거다.
“음…… 그런 이유라면, 난 뭘 해야 하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없는 오문성이 물었다.
“뭘 하긴요. 그냥 여기에서 저랑 같이 대기. 정화석을 꽂은 이상 크루즈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있으니, 저를 보좌해 달라는 거죠.”
어차피 오문성에겐 정령이 없어 활류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나를 돕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보좌라.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구먼.”
오문성은 불만 없이 답했고.
“나도 좋아. 당장 시작하면 되나?”
로버트 윤도 의욕이 앞섰다.
난 이제 히로시를 쳐다봤다.
“히로시, 할 수 있지?”
“물론이죠. 못 할 거였으면 애초에 정령의 주인이 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한국이 공격받으면 제 나라인 일본도 무사하지 못하니, 무조건 가야죠!”
끝으로 히로시까지 확실한 답을 뱉었다.
“좋아, 난 그럼 장길수 협회장님한테 상황 대략적으로 공유할 테니까, 당장 시작하자.”
내가 휴대폰을 든 순간.
히로시와 로버트 윤은 바다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곳이 정화된 게이트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변수가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돌아와. 알았지?”
난 그들에게 혹시 모를 당부를 남긴 뒤.
그리고 장길수에게 통화를 걸었다.
-어, 그래! 도원아! 어떡하니……!
내 연락을 정말 애타게 기다렸단 것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목소리다.
“잘 들으세요. 지금 한국에서 조치할 일이 있으니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