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영지전 (1)
‘흑염룡,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이미 하들도르 협회장에게 10개의 초월석을 건네받았다.
이 초월석을 이용하여, 어떻게 정화석에 넣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지를 물었으나.
[그냥 정화석에 갖다 대면 흡수돼.]
흑염룡의 답은 간단했다.
흑염룡이 알려 준 대로 초월석을 하나씩 들며 정화석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초월석이 정화석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사라졌다.
“우와. 이거 재밌네.”
[……재미라니, 이 상황에서 무슨 재미를 느껴.]
“자판기 쓰는 거 같은 기분인데.”
초월석을 넣는 방식이 자판기에 동전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이런 농담도 튀어나왔다.
[장난치지 말고! 지금이 장난칠 상황이냐!]
“알아, 이제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쳐 두자는 취지인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니?”
[…….]
지옥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들, 꼭 긴장 바짝 하며 경직된 채로 있어야 하나.
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결의를 다지면 된다.
나 경우엔 중2병이 특기였으니, 나만의 방식으로 결의를 다질 뿐이다.
그렇게 10개의 초월석을 전부 넣었다.
“음……. 10개는 역시 미미한 숫자인가.”
눈에 보일 정도로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감이 들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주 미세하게.
분명히 프리즘의 영역은 한 뼘, 혹은 몇 밀리미터라도 넓어졌고 주기도 몇 초라도 짧아졌을 건 분명하니까.
그러곤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이쯤이면…… 크루즈들도 알겠지? 우리가 이곳에 정화석을 세웠다는 걸.”
[아마 알 거야. 정화석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까, 모를 리가 없지. 더군다나 놈들의 게이트까지 일부 사라졌으니까.]
“다가올 지옥을 어떻게 천국으로 만들지. 열심히 머리 굴려 보자고.”
바닷속에 있는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는 아직 고요하다.
이 고요함 속에서 우린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휴대폰을 확인해 봤다.
연락망이 먹통이 된 상태다.
아마도 크루즈의 메테오로 인해 시설 파괴는 물론, 기지국까지 파괴가 되어 모든 연락 수단이 먹통이 된 듯하다.
하들도르 협회장에게 물었다.
“중앙 의회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 있습니까?”
“곧장 복구 시작하겠습니다. 레이캬비크 전체가 폐허로 변했기에,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네.”
하들도르 협회장이 급하게 복구 작업에 나선 뒤.
로버트 윤, 히로시가 나를 찾았다.
“당장 저 게이트 이용해서 한국으로 가진 않고?”
그중에서도 로버트 윤이 물었다.
“크루즈들도 정화석이 세워진 걸 알 거예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정화석 지켜야죠.”
“하긴, 그래야 한다고 했지.”
“그리고 중앙 의회와 상황 공유한 뒤에.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죠. 그때 잘 부탁해요.”
“나한테 부탁이란 말을 하는 뜻은…….”
“초월석 가지고 오는 일이죠. 보다시피 전.”
정화석을 가리키며 한 답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화석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이곳에서 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화석 근처에 늘 있어야 하며, 아이슬란드에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을 것.
마침 크루즈의 게이트 일부는 정화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로버트 윤이 초월석 조달을 책임져 달란 뜻이었다.
“맡겨만 줘. 어렵지 않은 일이네.”
그는 믿을 수 있는 답을 남겼다.
***
매튜 협회장과 캐나다 협회장의 독대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그러니까. 나만 살아 돌아온 게 의심스러워서, 중앙 의회가 나서서 도울 수 없다. 이게 중앙 의회의 답이란 거죠?”
“예.”
캐나다 협회장은 그의 질문에 냉철하게 답했다.
매튜 협회장이 캐나다로 망명을 온 이유도.
그저 미국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였다.
그 과정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 크루즈의 힘이 심어져 있는지도 몰랐던 상태.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스스로 의도하진 않았으나 자신은 크루즈의 힘을 받았고.
크루즈가 원하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파수꾼이 된 상태다.
크루즈가 파수꾼이 된 그에게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시오스의 대정령과 만나는 것이었다.
[이봐. 상황이 변했어. 시오스 놈들이 우리가 극도로 혐오하는 것을 꺼내고 말았다.]
그러던 중, 매튜의 머릿속에서 크루즈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쳤군……. 이런 상황에 목소리를 내면……!’
지금은 캐나다 협회장과 독대하는 중.
그런데 불쑥 크루즈의 목소리가 들리면 상대가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다.
매튜 협회장이 흠칫하며 캐나다 협회장의 반응을 살폈지만.
“왜 그렇게 빤히 보시죠?”
캐나다 협회장은 도리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다.
[걱정 말라고, 내 목소리는 너에게만 들린다. 넌 우리의 힘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내게 답을 할 때도 방금처럼 생각만 해. 나한테 다 들리니까.]
정신으로 대화하는 방식.
그것을 매튜 협회장도 알게 된 순간이다.
‘신기하군……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그런데 너희 크루즈가 혐오하는 것을 꺼냈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네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넌 시오스의 대정령 앞까지 다가가기만 하면 돼. 우리가 알아서 한다.]
‘상황 보니까 기세등등하던 너희들에게도 어떤 위기가 다가온 듯하군.’
[알면 우리의 지시대로 움직여라. 분명히 말했다. 네 목숨은 우리가 쥐고 있다고.]
크루즈가 답을 한 직후.
지끈!
“으윽……!”
머릿속에 있는 뇌가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눈이 핑 돌았다.
순간적으로 매튜 협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머리채를 부여잡았다.
“……협회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이런 식으로 협박하겠단 거냐.’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고통 속에서 사는지 보여 줬을 뿐이다.]
‘……내가 죽으면, 너희가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지 않나?’
[이 상황에서 허세를 부리시겠다? 너 말고도 네 역할을 담당할 인간은 많다. 아무나 붙잡고 목숨 쥔 상태로 협박하면 그만이지.]
“…….”
최대한 주도권을 빼앗기기 싫어 강수를 한 번 뒀지만.
크루즈의 말이 맞았다.
크루즈에게 있어서 자신이 귀한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어서 움직여라. 네가 시오스의 대정령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면, 놈들이 오도록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놈들이…… 오도록 만든다라…….’
그런 생각을 곱씹을 때.
“매튜 협회장님.”
캐나다 협회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눈초리는 마치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와 비슷했다.
“중앙 의회에서 미국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류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떻게 당신만 살아남았는가?’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그 부분이 완벽히 해명되어야 확실히 결정될 것입니다.”
“크큭, 그래? 왜? 내가 다른 헌터들 고기 방패로 사용한 거 같아서?”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이봐, 크루즈.”
[갑자기 무슨 짓이지? 다른 인간과 대화하는 도중에 육성으로 나를 부르다니?]
“……크루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하지만 매튜 협회장 안에 크루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캐나다 협회장의 눈엔 그저 매튜 협회장이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느닷없이 크루즈란 이름을 꺼낸 것 자체가 그렇게 보이기에 충분했다.
“끅끅끅끅. 아, 이렇게 쉬운 문제였다니. 크루즈도 내가 쓸모없어지면 다른 인간을 포섭하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협회장!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지금 그 발언은…… 크루즈와 어떤 거래라도 했단 겁니까?!”
그제야 캐나다 협회장은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주머니로 향하는 순간.
매튜 협회장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 내 주위에 인간이 없으면, 크루즈도 포섭할 다른 인간을 찾지 못하게 되는 거잖아? 그렇지?”
[크크크큭, 여전히 재밌는 발상을 하는 인간 놈이군. 그래, 해 보고 싶은 대로 해 봐라.]
“좋아. 캐나다 협회장. 나도 중앙 의회 도움 필요 없어. 대신 이렇게 하자. 캐나다는 현 시간부로 크루즈에게 공격받은 거야. 어차피 미국과 딱 붙어 있는 나라인데, 그 누구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그렇지?”
“지금 무슨……!”
쩌저적-!
그의 몸에 깃든 크루즈의 힘을 꺼낸 순간.
그의 얼굴 일부분이 크루즈처럼 변했다.
“그 얼굴은……!”
“캐나다도 함께 사라지자고. 그리고 캐나다를 넘어, 아시아 대륙까지 공격을 강행하면. 윤도원 그놈이 오기 싫어도 나한테 와야겠지. 그렇지, 크루즈?”
[큭큭, 협박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인간을 제 손으로 다 죽인 뒤. 시오스의 대정령을 가진 인간 놈이 직접 오도록 만들겠다라. 뭐, 나쁘지 않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우린 시오스의 대정령하고만 만나면 되니까.]
매튜 협회장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있는 크루즈 역시.
그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했다.
“자, 캐나다도 수장되거라.”
화륵-!
그리고 크루즈의 모습으로 변한 얼굴 일부분.
특히 용암이 흐르는 듯한 핏줄에서 화염이 일렁였다.
콰아아아앙-!
그 직후, 두 사람이 있던 건물은 격하게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 천장이 무너지며 하늘이 보였다.
캐나다 협회장의 눈에 보이는 선명한 하늘.
캐나다의 맑은 하늘에도 크루즈가 나타난 것처럼, 메테오 다발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매튜 협회장……! 당신……!”
“그냥 죽어.”
캐나다 협회장의 몸을 향해 메테오를 낙하시킨 매튜.
캐나다 협회장은 한마디의 유언만 남겼다.
“일본 협회장의 판단이 옳았다……. 당신만 살아남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음?”
그는 녹음 파일 하나를 누군가에게 전송했다.
“당신은…… 끝이야, 이제.”
“고작 한다는 게 유치한 녹취? 난 또 뭐라고. 오히려 나한테는 좋지.”
하지만 매튜 협회장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주변에 있는 인간은 전부 죽인다.
그리고 윤도원이 직접 오도록 만든다.
저 녹음 파일은 분명 자신과 캐나다 협회장의 대화 내용을 담은 것.
저 대화를 들은 윤도원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보나 마나 뻔하다.
자신에게 올 생각을 할 것.
왜냐, 자신이 크루즈임을 밝혔으니까.
“잘 가라, 캐나다 협회장.”
그 말이 사형선고처럼 내려졌다.
콰앙-!
캐나다 협회장은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이 메테오에 깔려 그대로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산화해 버렸다.
“그럼 이제 느긋하게 관망이나 해 볼까?”
***
정화석을 설치하고 약 3시간가량이 흘렀다.
“이제야…… 복구가 됐네요.”
하들도르 협회장이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이제 중앙 의회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었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잡히지 않았던 신호가 정상적으로 잡혔다.
“고생했습니다.”
난 곧장 한국에 있는 장길수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도원이냐?!
장길수 역시 내 연락을 많이 기다린 듯하다.
그는 연결 신호 한 번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으며, 소리쳤다.
“네, 협회장님 접니다. 여기 상황은…….”
아이슬란드의 상황을 전하려 할 때.
-도원아! 지금 비상이다! 캐나다 국토 전부가 소실됐다! 아예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고!
“……뭐라고요?”
아이슬란드를 탈환했지만, 캐나다는 탈환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하지만 충격은 끝이 아니다.
-중앙 협회장 매튜가 크루즈였어! 캐나다 역시 매튜 그 인간이 혼자서 한 짓이라고!
“그게 뭔 소리예요……?”
이건 충격을 넘어 이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